성소로 흐르는 강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시 46:4)
녹취자 : 조원정
이것은 고라 자손의 시인데 4절을 같이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이것은 세 가지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첫째는 도시는 곧 성소다. 하나님의 성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게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도시입니다. 혹은 도시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지금은 성이라는 것이 없지만 옛날에는 보호받기 위한 성이 있고 진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성 밖에 살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안에 삽니다. 그 성안에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성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성이 곧 도시입니다.
하나님의 도시는 곧 성소다. 성소라는 말은 성경에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하나는 성막 중에서 지성소 앞에 있는 열두 평 크기의 방을 성소라고 합니다. 그 앞에는 지성소가 여섯 평 자리가 있어서 일 년에 한차례씩 대제사장만 들어가고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만날 때에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당연히 제사장만 들어갑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치고 있을 때 언제나 중앙에 성막이 쳐져있었는데 그 성막 전체를 가리켜서 성소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아마 여기에서는 두 번째 의미로 사용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도시는 성소다. 구약시대에는 성소가 세상과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교회를 삼으셨는데 교회를 삼으신 것은 믿는 사람들을 구별해 내어 성에 가두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을 계속 뻗어나가게 해서 이 세상을 교회로 만들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교회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는 이 모든 인간의 죄 때문에 교회와 대조되는 죄악 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을 복음으로 다 정복해서 이 세상 어느 곳이든지 인간이 사는 곳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장소가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씨앗이 썩고 깨트려지면서 신약의 교회가 나왔고 그 교회가 마지막에 문드러지고 죽으면서 세상 전체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 성경의 전망입니다.
우린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가 하면 예수 믿는 교회와 이 세상이 줄로 그어진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하게 살고 오늘 구호를 제창한 것처럼 믿음의 본이 되기 위해서 살아야 된다는 점에서는 세상 사람과는 구별이 되지만 저 세상도 언젠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불신자도 이교도도 이단도 심지어는 이슬람까지도 미래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이 되어야 한다는 전망을 가지고 우리들이 선교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 진리는 은혜는 도시를 기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무엇 때문에 도시가 기뻐합니까? 도시가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교회의 비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이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는 세상을 만들려면 교회가 먼저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아무리 율법을 잘 지키고 전통에 빛나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교회의 더 큰 의무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선교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선교는 존재의 선교입니다. 존재 자체가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는 삶, 하나님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선교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늘 하시던 말씀입니다. ‘네 꼴을 보고 누가 예수를 믿겠니?’ 늘 잘하시던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그 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때문에 정말 기뻐해서 세상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 지금 죽을 지경인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기뻐할까? 초대교회 제자들이 핍박을 받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고난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하나님이 여겨 주셨다는 것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뭔가 저 사람에게는 내게 없는 뭔가가 있기 때문에 저렇게 고난을 받고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기뻐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 기쁨이 신자 안에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모이신 분들은) 장로님들이신데 교회의 지도자의 가장 훌륭한 섬김은 (자신이 그리스도로 인해) 말할 수 없이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웅변입니다. 설교입니다. 담임목사가 인상을 팍 쓰고 어두운 수심의 그림자가 가득합니다. 뭔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게 됩니다. 장로들하고 당회가 끝나고 나면 오만 인상을 다 쓰고 집에 와서 권사님한테 외투를 벗어주면서 한숨을 푹 쉽니다. 교회 갈 때는 그렇게 기뻐서 가던 사람이 돌아오고 나면 온갖 근심과 염려를 지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 꼴을 보고 누가 예수를 믿겠느냐 말입니다. 교회 지도자가 행복하지 않고 어떻게 교인들이 행복할 수 있습니까? 물론 우리들이 주님의 일을 하다보면 고난이 왜 없겠습니까? 어려움이 왜 없겠습니까? 어떤 때는 죽을 것 같은 괴로움입니다. 그 고난과 고통이 기쁨을 이길 수 없어야 합니다. 그게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섬김입니다.
오늘날 도시를 보십시오. 텔레비전만 켜면 보기도 싫습니다. 만날 여행가는 것 아니면 먹는 것입니다. 그게 방송을 다 뒤덮어 버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즐거움이니까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도시마다 넘쳐나는 이 어마어마한 향락의 문화를 한번 보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삶이 기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죄라도 지으면서 기뻐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어서 살 수가 없고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문화가 넘쳐납니다. 교회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수없이 맛 집을 찾아다니고 먹는 방송을 찾아서 전 세계를 일주를 하면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해도 그것은 잠깐입니다.
홍콩에 가서 어느 사업가를 만났습니다. 먹는 이야기를 자기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돌아다니면서 대접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중국 사람인데 그 사람이 투자 회사의 사장입니다. 자기한테 돈 맡긴 사람이 많습니다. 일본에 갔답니다. 자기를 전 수상하던 사람이 패밀리가 자기를 초청해가지고 음식점에서 밥을 먹습니다. 너무 맛있더랍니다. 얼마인가 나중에 봤더니 열 명 인가 밥을 먹었는데 삼천 만원 나왔답니다. 왜 사람들이 (비싼 가격을 주고) 그렇게 먹겠습니까? 목구멍에 넘어 가기까지 불과 몇 초인데 왜 그것을 위해 사람들이 많은 돈을 소비하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있는 것은 세상이 그런 것들을 기뻐해서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사모님들께도 이야기합니다. 의사들이 말하길 가짜로 웃어도 50% 건강에는 효과가 있답니다. 이번 주일부터 교회 가기 전에 거울보고 웃는 연습하셔서 밝은 얼굴로 인사하는 장로님들을 보면서 저분은 교회만 오면 저렇게 벙글벙글 웃으시고 행복하시구나라고 성도들이 생각하게 하십시오. 교인들이 아마도 존경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기뻐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그렇게 교회가 도시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은혜가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그 강물이 도시를 적시니까 도시가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시내라고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강입니다. 그 강이 때로는 바다를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이 되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집회 갔을 때 말로만 듣던 테네시 강을 갔습니다. 바로 그 옆이었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강인데 강폭이 한강의 20배는 될 거 같았습니다. 거짓말 좀 보태서 강의 수평선이 보일 것 같았습니다. 모토 보트를 타고 30분을 가다가 돌아왔습니다. 30분을 갔는데 반도 못보고 왔습니다. 그런 강을 이야기합니다. 강이 흐르는데 나뉘어 흐르는 것입니다.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두 개로 나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스라엘에 갔을 때 거기 안내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나치에 의해서 600만 명이 학살당했습니다. 독일은 일본처럼 비겁하지 않았습니다. 깨끗이 잘못했다고 하고 배상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면서 독일은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습니다. 그것을 여러 차례 나뉘어서 돈을 배상을 했는데 천문학적인 액수의 배상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아마 다 나누어 줬을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부자가 아닌데 국회에서 한 푼도 백성을 안줬습니다. 그 천문학적인 액수를 가지고 한 가지 사업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척박한 땅입니다. 그 척박한 땅을 바둑판 모양으로 전 국토에 수로를 깔아 가지고 어디서든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금 번영한 나라로 만든 산업이 두 축이 있습니다. 하나는 농업이고 하나는 첨단과학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킬체인이나 미사일도 다 이스라엘에서 들어왔습니다. 킬체인 프로젝트도 이스라엘 것 도입합니다.
그런 첨단과학기술도 농업을 통해서 투자 환경이 조성이 되고 자본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그 농업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가지고 전부 다 바둑판처럼 수로를 깐 것입니다. 다 압니다. 교ㅕ회가 넘치는 힘으로 이 세상을 선교해야 합니다. 교회 모든 성도들은 장로를 포함해서 목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기쁨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말로 되는가 말입니다. 은혜생활을 안하는데 어떻게 기쁠 수 있습니까? 지도자가 별거입니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을 때만 주님의 사람이지 우리가 주님의 손 놓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쓰레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떡해야 합니까? 교회에 지도자의 가슴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야 합니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고 변화를 받는 지도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회개하며 그 사랑에 감격하여 눈물 흘리는 장로와 목사가 있는 교회는 어떤 어려움 만나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어차피 교회야 죄 많은 이 세상에 있는데 살아가면서 뭐든 어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24년을 목회하고 보니까 한 20년 될 때까지는 교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저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나는 저들이 거짓말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황당한 일이 일어나는가? 그런데 세상에 있는 교회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차피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으면서 교회는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헤쳐 나갈 힘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은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상당부분 한의학을 신뢰합니다. 맹신하지 않지만 한의학이 신기합니다. 약을 써도 안 낫고 별짓을 해도 안 낫는데 침을 맞으면 낫습니다. 원리가 무엇입니까? 우리 몸이 있는데 침을 탁 찌릅니다. 온 몸으로 하여금 이상한 게 공격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발휘되지 않을 힘을 몸속에서 확하고 끌어내는 것입니다. 큰일 났구나. 이거 방어해야 되겠구나. 그래서 몸을 잠자던 기력들을 확 일깨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그 은혜 때문에 이 속에서 잠자고 있던 힘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가 떨어진 목회자 모임, 말만 많습니다. 은혜가 떨어진 당회의 모임, 변론만 많고 분쟁만 많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흘러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십자가를 지려고 하고 시련과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오히려 이 속에서 주님을 향한 은혜가 샘솟듯 쏟아납니다. 그 모든 것을 헤쳐 나갑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교회를 위해 예수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 속에 채우면서 주님의 사랑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교회 장로님들 여기에 계시지만 간곡히 부탁합니다. 은혜가 있는 장로님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의 물이 항상 흘러서 그 은혜가 자기를 사로잡아서 주님의 손에 붙들려서 사는 것입니다. 얼마나 더 할 수 있습니까? 저도 10년 남았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어떤 분들은 이미 끝났고 어떤 분들은 3년, 4년, 5년, 10년, 15년을 남긴 분도 계십니다. 바람같이 흘러갑니다. 허허벌판에 공장하나 사가지고 두드려서 수리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15년이 지났습니다. 잠깐입니다. 그 잠깐 밖에 안 되는 세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깊이 은혜의 물이 흘러 이기는 사람, 영광 돌리는 사람들이 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