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이기려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 전서 10장 13절).
고맙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들이 금요기도회로 모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들이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도하기 원하시는지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또 ( 녹취가 없어짐 ) 담아 받으려고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셔서, 이 말씀을 듣는 동안에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우리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들이 물러가고, 주의 은혜와 사랑으로 저희의 마음이 충만하게 채워져서 주 앞에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신자들이 시험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이 시험은 신자의 삶 속에서 피할 수가 없습니다. 왜 신자에게서 이 시험이 피할 수 없는 것일까?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첫째는 인간 자신이 가기고 있는 연약성 때문에 시험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하는 것이죠. 인간은 비록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고 싶어 하지만 아직은 찌꺼기가 그 속에 남아 있어서 하나님을 싫어해요. 그리고 구원받기 전에 살았던 것처럼, 옛날처럼 살고 싶어 하는 사악한 본성이 남아 있는 것이에요. 절대적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며 살고자 하는 것이 많고, 그리고 주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거슬러 살려고 하는 것이 작지만 그러나, 이 작은 것이 신자의 삶 속에서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은혜생활을 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기도 하지 않으며는 그러면 이 작은 것이 큰 힘을 가지고 신자 전체를 가득 채울 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미워하고 주님을 원망하고 주님을 싫어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인간은 시험을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라고 하는 것이죠. 시험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 하는것이죠.
두 번째는, 이 세상에 죄와 유혹이 가득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죄와 유혹이 가득하기 때문에 이 시험은 피할 수가 없다라고 하는 것이죠. 이 세상은 죄가 들어온 이후로는 이세상의 특징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에요. 그런 것들로 꽉 차 있는 것이 이 세상의 본질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교회로부터 멀어지고, 은혜 받은 공동체로부터 멀어져서 세상 속으로 쑤욱 들어가게 되면 그 세상은 강력한 힘으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미워하고 죄를 짓기 좋아하는 성질들을 그 깊은 곳에 숨어있는 것들을 끌어내 은혜 받은 지체들 가운데에 있고 교회 안에 있을 때에는 그런 것들을 끌어내는 요인이 없기 때문에 묻혀있는데, 세상 속으로 가게 되며는 그것들이 강하게 끌어내어 지는 거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런 세상이에요. 그래서 신자가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세상 속에 사는 신자가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많이 노력을 해야 돼요.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노력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데, 세상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정말 분투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아침에 기도하면서, 눈물을 흠뻑 흘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저녁때에는 말할 수 없이 곤고한 심령이 되어서 잠자리에 드는 일은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이거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시험을 만나게 돼요.
세 번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특별히 성숙시키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반드시 이 시험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피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이렇게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이렇게 자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에요. 우리의 신앙은 그렇게 자라는 게 아니라, 쭉 자라다가 이렇게 신앙이 자라란다는 거죠 신앙이 평상시에도 자란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어떤 계기가 주어져서 그것을 딱 극복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 순전함 이런 것들에 도전을 받으면서 신앙이 크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죠? 그렇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며는 우리를 다 쓰러져가는 비천한 인간들을 이 세상에서 끌어 모았을 때에는 그야말로 방탕한 생활에서 돌아온 탕자처럼 돈도 없고, 자원도 없고, 힘도 없고 예의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그런 속에서 쓰러질듯이 주님의 품에 안기죠, 늘 드리는 말씀입니다마는 하나님을 믿어야 할 분명한 이유를 갖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러던 사람들인데 그 처음에 와서는 하나님이 잘 거두어 주시고,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재워주시고 모든 것을 돌봐 주셔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노숙자들을 거둬들이는 것처럼 그렇게 보호시설을 만들어서 그냥 집단생활이나 하게 하실려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에요. 그들을 이 세상에 더러운 인간으로 살던 습속들을 털어내고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을 잘 무장시켜서, 다시 이 세상에 파송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에요. 근데, 이 어려요. 하나님께서 시련을 주시는 거애요, 여러분 애 둘 낳아 보며는 그 심한 애들은 큰애가 작은애를 그렇게 시샘하지 않아요. 엄마 없으면, 그 갓난아기를 가서 막 때리고 꼬집고 더군다나 그 “애기 낳았으니까 너 이제 엄마 젖 양보해야 된다” 그랬을 때, 그 아이가 느끼는 그 질투심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근데, 그러한 그 아이로 보며는 참 인생의 허무를 느끼게 만드는 그러한 그 아주 극심한 관계의 좌절을 겪고 나서, 그 아이가 형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돼요. 그래서 결국은 어떤 말이 성립 하냐 하며는, 형 만한 아우가 없다 형이라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동생은 영원한 싸가지 에요. 언제 한번 태극기 휘날리며 라는 영화를 천 이백만명이 봤다고, 그때 까지 전 못 봤거든요. 셋째 동생이 형 그 영화 좀 봤우? 그래 그게 뭔가 하고 한번 공휴일 날 비디오를 빌려오게 해서 봤어요. 뭐 6.25 전쟁 뭐 그러면서 형이 동생을 위해서 그냥 한없이 희생하는 그런 이야기만 기록이 되어있더라고요. 그래서 형 그거 봤우? 봤지 뭘 좀 느낀 게 없우? 느낀 거 있지 뭔데, 동생은 영원한 싸가지드라, 형이 그렇게 희생해도 끝까지 저 잘랐다고 형을 원망해, 그다음에 아무 말이 없어요. 그래서 형은 자라면서 계속 양보를 배우는 거예요. 물론 인제 그 버르장머리가 없고 그래가지고 그런 게 전혀 안된 사람들도 있죠, 그런데 일반적으로 볼 때, 그것을 계속 배우는 거애요. 그래서 형들이 동생을 많이 거느린 형들이 동생이 볼 땐 아무리 형이 못났다고 생각이 되어도 천재성 이런 것에 있어서는 뒤질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마는 양보하고 이러는 사회성들은 훨씬 많이 배우게 되는 거죠. 그것이 무엇이냐 하며는 아픔 속에서 크는 거애요. 뭐 내가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막내가 버릇장머리 없다는 것은 우리 뻔히 다 알잖아요. 그죠. 근데, 그런 것이 교육수준에 따라 틀리기는 하지마는, 그게 왜그러냐 하며는 시험을 안 당해봐서 그래요. 시험을 당하면서 자기를 꺾고, 자기를 양보하고, 그 자기를 희생하고 하는 것들을 자기가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강요에 의해서라도 그런 것들을 해보면서 그러면서 인간이 이것을 배우는 거애요. 근데 참 이상한게 말이죠, 이게 형이 동생한테 뭘 양보하고 자꾸 뺏기고 하는 이런 것들은 상처가 안되는데, 이게 거꾸로 되어서 동생이 뭘 뺏기고, 부모사랑을 형만 받고 자꾸 이렇게 되며는 그 아이가 문제가 생겨요. 무슨 말씀인지 알죠. 제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치가 딱 맞죠. 대개 편애해가지고 뭐 상처 받았다고 막 이러는데, 제일 큰 형이나 큰언니는 그런 이야기를 안 해, 항상 막내 아니면 중간, 뭐 둘째, 셋째 뭐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요. 그런 것들이 다 무엇이냐 하며는 시험을 당해보지 않아서 그래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 시킬 때에도 항상 그런 시험을 당하게 하세요. 그래서 그 시험 속에서 우리를 연단하시고 강하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되어가게 하신다 이거에요. 여러분, 곱게 그 부족한 것이 없는 집에서 잘 자란 자녀들 보다는 물론 잘 자라면서도 부모가 교양이 있고 똑똑해서 사람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범을 보이면서 회초리를 들고 정신 똑바로 차려서 교육을 시킨 집안의 아이들은 괜찮죠. 그러나 그렇지 않고 부모들도 도덕성이 없고, 그저 돈이나 많아 가지고 흔들거리면서 자라고 아이들을 거의 교육시키지 않은 집안일 경우에는 부족한 것이 없는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인생의 불행이 확실하게 보장이 되는 거예요. 확실하게 보장이 되는 거죠. 결혼하면 이혼해요, 동업하면 깨지고, 직장가면 상사하고 대판거리 싸우고 뛰쳐나와요. 천재이면서 그러면, 그래도 불쌍히나 여기는데, 별로 그렇게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모두 천재가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거 아무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사는 거죠. 그래서 앞길이 불 보듯이 뻔해요. 인생의 행복은 소유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됨이 좌우하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주님이 십자가의 은혜로 구속해 주셨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쓰실려고 하세요. 그러면 얼마나 많은 연단이 필요하겠는지 생각해보세요. 간단한 게 아니에요.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를 무인도 같은데서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즉시, 무인도 같은데 우리 한사람씩 던져놓고 주의 일하라고 곡괭이 하나씩만 준다면, 그러면 하나님이 연단 조금만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왜, 어쨌든 혼자 하면 되니까, 근데 이게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살아야 되고, 그 사람들과 함께 싫은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주님을 섬겨야해, 그러면서 수 많은 시련과 난관들을 헤치면서 살아가야 돼요 두 사람이 싸우면 어떤 때에는 한사람이 100% 옳고, 한사람이 완전히 틀린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교통사고만큼이나 드문거에요. 교통사고는 쾅하고 부딪히면, 피해를 본 사람은 저 녀석이 와서 받았다고 그러지만, 보험회사 가보며는 100대 0 이렇게 나오는 적은 거의 없어요. 그저 신호 위반이반이나 하고 미친놈처럼 운전하기 전에는 그렇게 나오는 경우는 항상 무슨 10대 8, 5대 8, 한사람은 티코를 운전하고 가다가 멀쩡히 가는데, 갑자기 벤츤가 하는 무슨 차가 오더니 쾅하고 들이받았데요. 옆 다구니를 말이죠. 그래가지고, 자기는 피해를 받았으니까, 보험회사를 들어갖데요, 나중에 티코 운전수 보고 돈을 물어내라고 그러는데 돈을 100만원인가 200만원인가를 물어내라고 그러더래요. 왜 그러냐고 그러니깐, 티코는 찌그러져서 견적이 한50만원 밖에 안나왔는데, 벤츠 차는 문짝이 나갔는데, 뭐 400만원인가 500만원이 나왔데요. 그래서 더해가지고, 당신의 과실이 2이고 저 사람이 8이어서 나누기 하니까 그렇게 나왔다 이거에요. 그 황당한 거죠. 그래가지고,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깐, 그럴경우에는 그래서 사람들이 얼마나 열 받겠어요. 후진차 타고 다니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지가 와서 들이받고, 이렇게 가다가 이렇게 받아도, 그러니까 이렇게 온 것 이렇게 받아도 이게 100대 0이 아니란 말이죠. 이게 오며는 이 사람이 좀 비겨주고 이러는 원칙이 있는데, 그걸 안지켰으니까 박치기 했으니깐, 과실이 좀 있다 이거죠. 저 사람이 몇 백만 원 피해보고, 여기 몇 십만 원 있으니까 합쳐가지고 10대 8로 나누니까 피해자가 돈을 물어내야 되는 거죠. 그래 나중에 그런 경우가 생기면 가난한 사람을 좀 봐준다고 그러더라고요. 난 당해보지 않았는데, 그래요. 인간사도 마찬가지거든, 그러니까 뭔가 다툼이 일어나고, 어려움이 일어나며는 자기 생각에는 자기가 100% 맞는 것 같고, 저 사람이 완전히 틀린 것 같거든, 그런 것은 없거든요. 그럴 때도 있어요. 그럴 때도 있지만, 안그럴때도 많아요. 그러니까 저 사람이 100% 잘못한 것 같아도, 사실 정확하게 뒤집으면 자기도 20%~30%, 그것도 안 되며는 10%라도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 속에서 견디지 못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어요. 환난도 마찬가지죠. 가난과 시련, 고난, 핍박, 오해, 원망 미움 배신 좌절 쓰라림, 이런 것들을 다 딛고 나가면서 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의 전쟁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전쟁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무슨 일이 안 일어나겠어요. 그것을 견디려면 자기 자신이 성숙하고 연단되어야 해요.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을 아주 잘 의지하고 깨끗한 사람인데도 하나님이 훈련시키시는 거예요. 그건 왜냐하면, 하나님이 깨끗한 건 인정하시지만 하나님은 깨끗할 뿐만 아니라, 강하기를 원해요. 깨끗할 뿐만 아니라 강하기를 원하신다 이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연단하신다 이거에요. 이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들이 신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시험을 피할 수가 없어요. 반드시 시험이 온다. 때로는 이 시험은 불같이 와요. 불같이 와요. 불에 데워보셨어요. 불같이 와요.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불같은 시험을 통해서 그 신자가 누구인지를 하나님이 시험해 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진위를 알아보시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가만 나두고는 모르시는 분인가, 아시지요. 가만 나둬도 하나님은 아시는 분이시지만, 그걸 드러나게 하셔서 신자로 하여금 자기의 믿음이 어디까지 와있는 믿음인가 하는 것을 스스로 보게 만들어 주세요. 그래 시험이 오는 거죠.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크고 작은 환난, 마음의 살을 에이는것 같은 시련, 그리고 고난과 말 할 수 없는 쓰라림, 이런 것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말이에요. 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일어나는 일이에요. 신자이기 때문에 매일 맑은 날만 있고, 오늘도 즐겁고 내일도 즐겁고 모레도 즐거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항상 이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시련이 있게 마련이고, 시험이 있게 마련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이라고 하는 훈련장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들어오기에 적합하도록 우리들을 훈련시키시는 선생님이시거든요. 구원받은 즉시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순종의 학교에 입학해요. 그래서 그 순종의 학교에서 연단을 받으면서 순종을 배워가요. 그렇게 순종을 배워가게 되는데, 그렇게 순종을 배우면서 이제 이 신자들을 하나님이 아무렇게나 미친 듯이 다루시지를 않으세요. 원칙이 있어요. 그게 무엇이냐 하며는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거나, 두 번째로는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는 거죠.
첫째는 하나님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셔요.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셔요. 시험가운데는 감당해야 하는 시험이 있고, 혹은 피해야 하는 시험이 있어요. 그렇죠? 감당하는 시험이 있고, 혹은 피해야 하는 시험이 있어요. 감당해야 하는 시험들은 고난, 시련, 역경, 좌절 이런 것들이에요. 그런 환경들이 우리 앞에 끊임없이 펼쳐져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뜻을 세우지 않고 살아가면 그런 것 많이 피할 수 있어요. 뜻을 세우면, 그러면, 그런 난관과 어려움들은 피할 수가 없어요. 반드시 그 어려움은 있어요. 오늘 밤에라도 무엇이든지 뜻을 정하고, 그리고, 선한 목표를 가지고, 그대로 해봐야 되겠다라고 마음만 먹으며는 평소에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했던 무수한 장애들이 자기 안팎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돼요. 발견하게 돼요. 요즘 건강들을 위해서 신경들을 많이 쓰지요. 그럼 생각해보세요. 많은 건강학자들이 이야기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며는, 하루에 최소한 6KM 정도는 걸어야된다고 해요. 부지런히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건강에 문제가 온다고 그래요. 최소한 6KM를 하루에 꾸준히 걸어야 되는데 부지런히 걸으며 는 6KM를 한 시간에 걸을 수 있는 거리에요. 빨리 걸어야 돼요. 다른 사람하고 떠들지 말고 부지런히 그러며는 6KM 정도 걸어요. 그것이 건강에 좋다고 그래요. 아주 좋다고 그래요. 혈압이 높은 사람은 혈압이 내려가고, 배 나온 사람은 배가 들어가고 입맛 없는 사람은 밥맛이 돌고, 그러고 무슨 소화불량 걸린 사람도 낫고, 말할수 없이 좋다는 거거든요. 다 알아요. 해보세요. 되나, 해보세요. 되나, 안돼요. 심지어, 여러분 드라마 보는 것 좋아하죠, 그죠, 좋아하면서 또 안 좋아 하는 척 하면서 가만히 있는 거봐, 좋아하죠. 그것도 뜻을 세워봐요. 재미있던 없던 나는 1시간씩 꼬박 보겠다, 그것도 쉬운 게 아니에요. 뭐든지 뜻을 세우면. 그 뜻을 세우면, 쉬운 게 아니에요. 날이 추우면 추워서 걷기 싫고, 비가 온다면, 비가 온다고 핑계, 추우면 길이 얼었다고 핑계 하여튼 길거리에 사자가 많아요. 길거리에 사자가 많아요. 이렇게 난관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 것들은 감당해야 할 것들이지 피해야 할 것들이 아니에요. 그 감당하는 것들을 어떻게 감당하며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심으로써 감당하게 하시는 거에요. “내게 능력주시는 이는 그리스도시니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능력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이지, 그리고 그 뜻을 지향하면서 갈수 있는 것이지, 자신에게 은혜의 힘이 없으면 감당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결국은 뜻은 세웠지만, 잠시 후에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좌절하게 되는데, 이렇게 시험에 지게되며는 반드시 영적인 손해가 오게 되는 거예요. 시험이 와서 그 시험을 이기지 못하면, 반드시 불순종을 하게 되어있어요. 이것은 자동이에요. 설명을 할 테니까 잘 들어 보세요. 자, 나에게 하나님이 무슨 사명을 주셨어요. 그 사명을 완수할려고 가는데,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은혜의 힘을 얻으면, 아주 다양한 은혜는 마치 전쟁터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무기와 같거든요. 은혜의 힘이 주어지며는 그러면 사람들은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마음이 생기고, 자기에게 오는 육신적인 고통은 이길 수 기쁨이 생기고, 그렇죠, 이런 모든 것들이 생기는데, 이게 없어요. 고갈되어서 주어지지를 않아요. 그러면, 결국은 그 사명을 감당할려고 감당할려고 그러다가 결국은 거기에서 주저앉고 말아요. 주저앉고 말며는 어떻게 되겠어요. 자신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거죠, 감당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무슨 뜻이냐 하며는, 불순종했다는 이야기에요.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나가 버린다던지 혹은 그 자리에 근근덕신으로 남아있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나를 어렵게 해서 사명을 완수할 수 없도록 그 환경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그대로 묻혀버린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예를 들어서 영혼을 위해서 헌신한다고 칩시다. 그런데 영혼을 위해서 봉사하는데 어려움이 많아요. 그래서 어느 날 아이 도저히 안 되겠다 그리고, 내버려 두었더니, 그 다음에는 놀랍게 편안한 길이 열려서, 그래서 말 몇마디만 해도 영혼들이 다 변화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그런 꿈같은 일들이 일어납니까? 안 일어나지요.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으면, 좋은 때 기다리죠. 그런데 성경은 오히려 반대로 이야기해요.”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좋은 때에든지 나쁜 때에든지“ 원어에 이렇게 나와요. ”복음을 전하기 좋은 때이든지 나쁜 때이든지 넌 힘쓰라“ 전도인의 역할을 다하라. 그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감당할 수 있는 은혜의 힘이 모자라면, 반드시 불순종 하게 돼요. 불순종 하며는 죄잖아요. 금방 영혼에 더 큰 파괴가 오는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멀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감당해야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가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태만하고, 그 사명을 향한 애정이 식었는데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뜨거운 사랑을 받는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한다, 이건 전부다 코미디에요. 그런 거 없다 이거에요. 그것을 이기도록 감당하게 하는 방법이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시는 거에요. 은혜를 계속 부어주셔서 그 은혜로써 이기게 해주시는 거예요. 고난이 와도 은혜를 받으면,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기쁨을 우리에게 주셔요. 시련이 와서 견디기 힘든 고통이 있어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소망이 생겨나요. 함께 주님을 섬겨가면서 마음이 맞지않아서 사람들이 나를 많이 괴롭게 해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돼요. 이런 변화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매 시간 은혜를 받는 것은 말하자면, 이렇게 은행에 불의사고를 대비해서 은행에 저축을 하듯이 우리의 영혼의 위기가 올 때에 보험을 드는 것과 같아요.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 안에 가득 채우면, 그 은혜가 없었더라면, 감당할 수 없었던 시험들을 능히 감당하면서 걸어가게 되는 거예요. 환란과 시련, 고난과 핍박이 어디는 없겠어요. 이 세상사는 동안에는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녀요. 그때에 이 모든 것을 감당하게 하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냐 하며는 은혜에서 나온다 이거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은혜를 사모해야 하는 것이에요.
마지막 두 번째는 피해야 할 시험이 있어요. 그죠, 피해야 할 시험이 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유혹, 우리를 넘어뜨리는 육욕적인 시험 이런 것들은 우리들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냐하며는 “너희에게 능히 또한 너희에게 능히 피할 길을 내시느니냐” 피할 시험은 피해야 하고,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해서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받아야 할 시험은 은혜를 받고, 그것을 극복을 해야 돼요. 그것을 거꾸로 하면 안된다 이거에요. 구약의 인물가운데 순결한 삶을 살아서 하나님 앞에 사랑을 많이 받았던 요셉이 있죠. 그 요셉이라는 이름을 사람들이 아주 좋아해서 미국사람들 구라파 사람들이 죠셉이라고 하는 것을 거기에서 따온 거거든요. 그렇게 좋아해요. 요셉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무엇을 더해주신다”그런 뜻이거든요. 근데 그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아무도 없는 방에서 내실에서 그를 유혹했어요. 어떻게 해야되요.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을 해야 되지 않아요. 그러면 거기서 무릎을 끊고 기도를 해야지 은혜를 달라고 유혹을 받았으니까, 극복할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되지않아요. 거기에서 무릎을 끊고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면서 기도하고 장시간 있었더라면 결국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어났겠지요. 그 저돌적인 여자가 거 가만 내버려 두었겠어요. 그런 종류의 시험은 감당해야할 그런 시험이 아니고 어떻게, 피해야할 시험이었죠. 그리고 그 다음에 감당해야 할 시험이 생겨요. 뭐냐하며는 감옥에 쳐 넣은 거예요 그때에 거기를 왜 들어가? 탈옥을 하면 되지않아요. 감옥으로 딱 끌고 갈 때 살짝 빠져나와서 번개같이 도망을 간다던지 투옥되었으면 숟가락으로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벽돌을 딥다 파가지고 한 3년 만에 파서 도망을 가면 되지않아요, 그렇지 않아요. 근데, 보디발의 집의 내실에 있을 때에는 기도도 안하고 뛰쳐나오더니, 그다음에 감옥 속에서는 계속해서 인내하면서 벽돌한장 건드리지 않고, 나중에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녔잖아요. 전옥에 관한 간수가 그에게 권한을 주어서 그 감옥의 일을 돌보게 했잖아요? 얼마든지 탈옥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안가지요. 왜냐하면 그것은 피해야 할 시험이 아니라 어떻게 감당해야할 시험이니깐, 근데 이 2개를 자꾸 혼동하면서 그러면서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범죄해요. 분명히 피가 맺히도록 눈물이 쏟아지도록 거기에서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깨어져도 감당을 해야 될 자리인데 피해요. 피해요. 피해요. 그러니, 그런 비겁한사람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살아있을 수가 있겠어요. 주님이 어떤 생애를 사셨어요.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그렇게 되지 않아요. 감당해야지 그런데 피해요. 그런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이냐 하면, 피해야 할 시험의 자리에서는 감당하려고 애를 쓰는 거예요. 어떻게 감당이 되겠어요. 유혹의 자리에서 내 이 시간에 왜 유혹은 감당하며는 안 되는지를 설명 하지는 않겠어요. 또 밤새도록 해야 되니까, 그렇지마는 한 가지만 이야기를 할게요. 한 가지만 유혹을 감당하며는 무슨 일이 생기냐 하며는 유혹을 감당할려고 하며는 결국은 반드시 죄와 접촉을 해야 돼요. 죄가 딱 접촉이 되고나면 바로 우리의 영혼과 이 마음을 감염시켜요. 감기 들린 사람 옆에 앉아서 같이 밥 먹고 생활하고 악수하고 뭐 대화하고 그러면 영락없죠. 그날 밤에 바로 감기 걸리죠.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마찬가지로 유혹을 감당하다고 죄가 딱 감염이 되며는 제일 먼저 죄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하며는 딱 들어와서 죄를 싫어하는 기능을 마비를 시켜버려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죠. 처음에는 경계하면서 감당하다가 마지막에는 죄를 끌어안게 된다이거에요. 그러니까 감당하면 안되는 거죠. 피해야조. 뭘 기도를 해봐요.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인데,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이 그 뇌물을 갖다 줄려고 그러는거에요. 기도 해봐야겠다. 뭘 기도를 해요. 그런 것은 기도를 하며는 하나님이 싫어하셔요. 기도할 것을 가지고 와서 기도를 해야지 뭘 그런걸. 가지고, 발람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 였지않아요. 뭘 기도를 해봐요. 그게, 그래서 결국은 말씀의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기도를 많이 해도 소용이 없어요. 말씀의 분별력이 있으면, 말씀에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3초 만에 결정하는 게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 40일 금식 기도하는 것 보다 더 정확해요. 뭘 기도를 해봐요. 하나님이 안기뻐하시는 것인데 뭘 기도를 해봐요. 단칼에 탁쳐야지. 그래 피하질 않는거에요. 그러니까 감당해야 될 것은 피하고 그래서 죄짓고, 피해야 할 것은 머저리 같이 감당하겠다고 덤벼드는 거예요. 그래서 자꾸 감염이 되어버린거에요. 그래 망하는 거예요. 그렇게 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앞에 쭉 나오고 있는거에요.
자, 그러면 이제 결론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오늘 여러분에게 묻고 싶어요. 지금 여러분들이 직면하고 있는 시험의 종류가 어떤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감당해야 될 시험들이 많지요. 그죠? 솔직히 말해서, 싫지만, 감당해야 할 시험들이 많지요. 그죠 괴롭지만 감당해야만할 시험들이 많지요. 감당해야되요. 감당해야되요. 괴로워도 정말 감당해야되요. 수요일 날 예배 끝나고 나서 저쪽에서 인사를 하는데, 어느 자매가 눈물로 꽉 찬 눈을 하고와서 인사를 해요. 누구냐? 그러니까 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 아니래요. 무슨이야기냐, 말씀에 너무 많이 찔려서 그렇데요. 누군가를 너무 미워했는데, 계속회피하고 싶은거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에 하나님은 나에게 많이 아프도록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런 것들은 어떤 거죠. 그런 것들은 피해야 될것이 아니라, 감당해야 될 것들이죠. 뭐가 필요해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해요 은혜 없으면, 결국은 자기의 본성이 나와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해요.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시옵소서. 고난도 이기고, 시련도 기쁨으로 극복하고 예수 따라가는 기쁨과 그 즐거움과 소망을 느끼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돼요. 유혹이 있죠. 유혹이 있을 때 피해야 되는데, 피하지 않고 감당할려고 하는 것은 그게 왜 그러죠. 그게요. 몰라서 그러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당하고는 있지만, 그러나 그 시험이 파괴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좋아하니까 그것을 감당할려고 하는 것에요. 좋아 하니까 감당할려고 하는거예요. 좋아하니까 근데 그렇게 옳치않은 상황이 닥칠 때에 요셉처럼 뿌리치면서 단칼에 돌아서게 만드는 그 힘도 어디에서 나오냐 하며는 결국은 은혜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거예요. 은혜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거예요.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깨끗하게 목욕하고 새로 산 깨끗한 하안 옷을 생전 처음 입었어요. 오늘 개시야 그리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하얀 구두를 신고 지금 막 외출을 해요. 가다가 보니깐 다리가 아파요. 벤치가 있어요. 못 앉아. 왜 더러울까봐 다른 사람은 다 앉는데, 예비군 훈련 갔다고 땅바닥에 뒹굴다가도 앉고 이러는데, 못 앉아요. 왜 그래요. 이게 너무 깨끗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예비군입고 길바닥에서 막 뒹굴고 뭐 사격연습하고 그러다가 벤치가 있어도 땅바닥에 털썩 앉아서 도시락도 먹고 담배도 피고 그러지 않아요. 음료수도 마시고, 그거 왜 그래요. 더러우니깐 더러운 것에 대해서 저항감을 안느끼는 거에요. 그것도 결국은 뭐예요 피하는 것도 결국은 뭐가 있어야 피하는 거죠 그렇죠. 은혜가 있어야지 피하는 거에요. 그게, 그래서 요셉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해요. 그 여자는 우리 둘밖에 없다고 이야기 하니깐, 아니 셋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계시다 이거에요. 그게 뭐예요.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들어 주는 거 그래서 그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 내가 그 하나님 앞에 할 수 없는 것은 나 혼자서도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힘 은혜의 힘이에요. 은혜의 힘. 결국은 어때요 감당해야 할 시험이 올 때에도 피해야 할 시험이 올 때에도 결국은 그 시험을 감당하게 하는 것도 피하게 하는 것도 결단을 내리게 만들어 주는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의 힘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거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돼요. 은혜를 받아야해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고 감당해야 할 사명은 눈물이 쏟아져도 살이 찢어져도 감당을 해야하고. 피하기 위해서 결단을 내려야 될 지점에서는 용기 있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에요. 기도하시겠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 하나님 앞에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깨달았는데, 은혜가 없이는 시험을 감당할 수도 없고 시험을 피 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주시고, 또 이런 은혜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시기에 적합하지 않은 우리의 굽은 마음과 하나님을 향해 불결한 심령, 더러운 마음, 하나님께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우리 한번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