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를 연단하시는 것은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사 48:9-10)
여러분들은 혹시 은이나 금을 흑연으로 만든 도가니에서 연단하는 과정을 보신 적 있습니까? 은이나 금은 모두 그 가치가 순도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순도가 높은 은 순도가 높은 금일수록 더 값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떻게 은과 금의 순도를 높이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땅속의 은이나 금이 덩어리로 존재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매우 희귀합니다. 대부분 금성분이나 은성분이 담겨있는 그 금속가루들을 채집해서 흙과 모래 같은 것들이 섞여 있는 그 은을 도가니에 넣고 이제 순수한 은으로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그것을 원하는 틀에 넣고 모양을 만들어서 장신구도 만들고 또 기타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 냅니다. 정말 꼭 필요한 순수한 은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은은 치열한 풀무불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뜨겁게 가열을 해서 그래서 은이 액체상태가 되어 버릴 때 거기 함께 섞여 있어서는 안 될 고체 상태의 다른 물질들이 분리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순수한 은을 꺼내서 다시 제련하고 다시 제련하고 하는 여러 번의 과정을 거쳐서 은은 아주 순도가 높은 순수한 은이 되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게끔 순도 높은 신앙을 갖게 도는 과정도 은이 순수함을 갖게 되는 그러한 과정과 아주 흡사합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순수하게 만드는 그 과정을 은을 연단하는 과정에 비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은을 연단하는 과정과 성도들을 연단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연단하는 과정을 유사하게 연관시키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를 연단하되 은을 연단하는 것과 같지 아니하고 고난의 풀무불에서 너희를 택하였노라 말씀하셨습니다. 불순물이 섞여 있는 은을 만들기 위해서는 처절하게 타오르는 그 불길이 극렬한 뜨거움을 더해서 결국 순수한 은을 만들어 내듯이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동안에 우리는 그 믿음을 더럽히고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가지고 있는 사랑과 믿음을 그 순수함을 잃어버리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러한 수많은 요소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을 사랑하실수록 우리를 연단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깨끗한 믿음을 갖게끔 하나님께서 만들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도 평탄한 한해를 산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 많은 사연을 많은 연단을 받으면서 한해를 지내오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죄악된 성품과 본성 그리고 우리 바깥에서 끊임없이 우리의 죄악된 본성을 향해 유혹하는 그 많은 우리의 신앙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더럽히는 요소들과 싸우며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신앙의 절대적인 순수함을 간직하기가 쉽지가 않고 더더군다나 우리들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간직함에 있어서 처음 하나님과 나누었던 진실하고 뜨거운 사랑을 순수한 상태에서 시종일관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거듭나고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아무리 그러한 삶을 원하고 원해도 정말 우리의 혼자의 힘으로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없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 환경을 사용하시고, 시련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연단하셔서라도 우리를 깨끗하게 유지시켜 주시도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고난이 다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받는 고난과 같지 않습니다. 시련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우리들은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정결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시려고 하는데 하나님 내가 이것을 통해서 어떻게 더 새로워 져야 되겠습니까? 하나님, 나의 더러운 부분 나의 신앙이 지난 한해의 비해서 많이 자랐지만 주님이 받으시기에는 도저히 불편하신, 그 깨끗하지 못한 불결한 부분이 어떤 부분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탄한 길만 주셔서는 깨달을 수 없는 무지몽매한 인생이 아닌 아 이번 이 시련과 연단을 통해서 내가 깨닫고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런 기도를 드리면서 우리의 인생의 고난과 위기를 맞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큰 뜻을 발견하게 되고 실패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 앞에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는 발판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고난의 풀무에서 너를 택하였노라고 말입니다. 풀무는 아시다시피 쇠를 혹은 쇠붙이를 녹이기 위해서 대장장이가 지피는 뜨거운 불을 의미합니다. 고난의 풀무였다고 말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국가적인 커다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이 그 커다란 풀무불과 같이 고통스러운 고난 속에서 택하셨다는 이야기죠 근데 여기서 택하셨다는 이 말은 히브리어 본문에 보면 입증한다는 말로 나옵니다. 내가 너희를 고난의 풀무 속에서 입증하였노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내가 고난의 풀무 속에서 너희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시험하였노라 혹은 시련하였노라 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커다란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어떠한 사람들인지를 입증하신 것처럼 또한 하나님은 오늘 우리 위에 당하는 고난과 커다란 시련을 통해서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며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가 어디에 왔는지를 하나님께서 시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고치시고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이런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정말 그 정결하고 깨끗한 사람들로 하나님 앞에 입증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들이 풀무불과 같은 그러한 극렬한 고난에 직면하게 될 때 그것을 자신을 순수하게 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난 그 자체가 우리를 우리의 믿음을 더럽게 만들거나 우리의 믿음을 순수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저 고난은 고난일 뿐입니다. 시련은 시련일 뿐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풀무불과 같이 고통스러운 연단 풀무불과 같이 자기를 다 녹일 듯이 밀려오는 커다란 아픔 실패, 이런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그 실패를 통해서 우리들이... ... 고난 자체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거나 아니면 우리를 타락하게 하는 것은 아니에요. 고난은 고난일 뿐이에요. 문제는 그 고난을 받아들이는 태도예요 하나님의 연단을 받아들이는 태도예요. 거기에서 우리는 발가벗은 듯이 하나님 앞에 다 들어나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하고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으며 그리고 내가 아무리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왔다고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과의 사이가 얼마만큼 투명한지에 대한 그 증거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한 해 동안 많은 고난을 또 어려움들을 당해왔을 것입니다. 특별히 금년과 같이 국가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당하고 있는 때에는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덜 당했을지도 모르는 어려움들을 사회로 말미암아서 더 크게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당신의 백성들을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셨다. 고난의 풀무에서 내가 너희를 입증하였다. 어떤 사람으로. 너희들이 내 백성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시험을 해보니까 너희들은 과연 고난 속에서 내 백성이더라. 여러분 주님 앞에 이렇게 입증되셨습니까? 이렇게 입증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주님을 믿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수많은 날의 신앙생활을 위한 몸부림은 얼마나 아까운 것이 되겠습니까? 그는 한때 믿음으로 살고자 몸부림쳤고 누구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서 거룩한 성도의 삶의 살고자 몸부림 쳤지만 그러나 결국은 뒤로 물러가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아끼는 자 없이 죽었더라, 이런 사람으로 입증된다고 해서야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정말 주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오히려 고난 속에서 풀무와 같은 연단 속에서 오히려 이제껏 까지 내가 믿어왔던 그 하나님이 바로 이 고난 속에서 나와 함께 하시는 구나 이 실패 속에서 그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시는 구나 나를 창수하고 나를 허물어뜨리기 위해서 애쓰던 원수들은 보라 내가 이 고난 속에서 이렇게 하나님과 가까워졌으니 정말 하나님은 이 풀무 속에서 나를 택하신 것이 아니냐, 이 풀무불과 같은 고난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 그 분께서는 나를 당신의 것으로 입증하신 것이 아니냐, 이렇게 외칠 수 있는 신앙이 되어야 된다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연단하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그 백성을 향해 기대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기대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연단하십니다. 때로는 이유 없는 연단을 당해서 자기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살을 에는 것 같은 그런 연단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자기의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연단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어디로부터 연단이 다가왔는지는 그 연단을 당하기전까지만 중요하지 일단 연단을 당하고 나면 어디로부터 연단이 왔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로부터 연단이 왔던지 그 연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애매히 고난을 당하고 자기는 의롭게 살았지만 까닭 없이 고난을 당하는 딱한 처치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고난을 당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 앞에 자신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대신 그러한 훌륭한 시련 속에서 뒤로 물러가고 넘어진다면 그는 반드시 악의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는 시험을 당하기 전까지는 의로웠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시험을 당하고 나서 그는 죄인의 길에 떨어질 것이며 그는 오만한 자리에 앉게 되고 말 것입니다. 평탄한 가운데는 살아가던 자신의 삶은 자기를 더럽히지 않았지만 그러나 애매히 당하는 그 값진 고난을 통해서는 오히려 자기를 더럽히고 시험에 떨어져서 하나님을 등지는 불행한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비록 나의 죄, 나의 허물, 나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시험을 당하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이 있을 적마다 죄 위에서 무릎을 꿇고 베옷을 입고 옷을 찢으며 머리를 풀어헤친 체 기도하던 신은의 선조들처럼 그렇게 자기의 죄를 정직하게 고백하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은혜를 베푸시도록 사죄를 탄원하고 용서를 구하며 그 연단을 이겨낼 때 비록 그 연단이 자기의 죄 때문에 왔지만 그 연단을 통해서 그는 정말 한때는 범죄 했으나 범죄 한 것보다 더 더 많은 때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해서 결국은 하나님께 칭찬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사랑하는 자녀들이 정말 당신 닮은 사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더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표시입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하는 표시입니다. 사랑은 항상 기대를 동반합니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로 실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실망하는 것은 항상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무엇 때문에 서로를 향한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실망합니다.
새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한테 제일 화나는 일은 누가 자기 차에다 못 같은 걸로 차를 긁어 놓는 것입니다. 저희가 살던 빌라 앞에 어느 해인가 한번은 에스페로우 승용차를 깨끗한 거를 그것도 수박색 짙은 수박색을 하나 딱 뽑아났는데 임시 번호판 띤지도 얼마 안됐는데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굵은 못으로 긁으면서 한 다섯 바퀴 쯤 돌았어요. 고칠 수가 없어요. 고치려면 제가 기억하기로 한 백오십만 원 줘야지만 공장에 가서 칠하는데 그 칠도 원래 나온 칠이 안 돼 원래 나온 칠은 전기로 해가지고 가루를 쏘아 가지고 흡착시키는 특수 분장입니다. 그거 나중에 한 거는 다 긁어내고 거기에다 뿜칠을 하는 거예요. 그 차는 결국은 칠이라고 하는 외관에 있어서는 버린 거지요. 한번 여러분이 차를 사다가 밤에 세워놓고 본네뜨에다가 뽀뽀까지 하고 들어갔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나와보 니까 그렇게 됐다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그렇게 한 사람을 결국 못 잡았어요. 만약에 잡았다고 칩시다. 그래서 초등학교나 중학교 다니는 아이가 그렇게 푹푹 긁고 다니는 것을 봤다고 칩시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잡자마자 반 죽이겠습니까? 전혀 그러지 않습니다. 야. 너희 집 어디냐? 같이 가자 데리고 가는 겁니다. 왜 때립니까? 남의 자식을... 그 집 주인한테 얘기했습니다. 얘가 이걸 긁었는데 공장에 가니까 백오십만원 달라고 그럽니다. 돈만 주고받으면 끝나요. 그러나 만약에 그 긁은 사람이 자기 아들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반죽이는거죠 왜 반죽여요? 이렇게 물어보니까 어떤 사람이 돈을 못 받기 때문에 반 죽이는 거라고 아니에요.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왜 애가 이 모양일까? 그거예요. 그 실망감 때문에 마음 아픈거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돈 많아요? 뭘 가지고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뭐 특별한 재주 여러분 있어요. 뭐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은 오직 하나 우리가 그분 닮은 사람이 되어가지고 그 분이 우리를 이 세상에 만들어 놓으셨을 때에 살기를 원하시던 그런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에요. 이거는 어떤 말을 한 두 가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존재자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존재로 돌아가라 그 돌아가라는 것이에요. 그걸 원하는 것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는 열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우리를 온전한 사람 만들고 싶어 하시는 거예요.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로 만족하고 언제 천국행 열차를 탈까 그 티켓 한 장을 들고 그것도 대부분 가짜를 들고 그리고 기다릴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그것이 아니에요. 어떻게 하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내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구속한 내 백성이 날 닮은 사람들이 될까? 어떻게 하면 나처럼 거룩하고 나를 닮아서 사랑하고 나를 닮아서 순결하고 나를 닮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그런 자녀들이 될 수 있을까? 그 온전한 모습을 우리 안에 이루시기 까지 하나님은 지치지 않는 열심을 가지고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풀무와 같은 연단을 통해서라도 우리를 역사하시는 거예요.
제가 어느 교회 집회를 갔는데 몸이 너무 비만해서 고민하는 성도 한분이 저희가 외국에서 근무하면서 어떻게 날씬한 몸을 만들어 보려고 고군분투했는지를 간증하는데 참 처절한 것을 느꼈어요. 하다하다가 안되니까 배를 갈랐답니다. 배를 가르고 청소기 같은걸 뱃속에다가 집어넣어서 배 가죽 밑에 근육사이에 붙어 있는 그 돼지기름 같은 그 기름을 청소기 같은 걸로 빨아 낸데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했더니 가능하데요. 그래 어떻더냐, 그러니까 한없이 기름이 나오더래요. 근데 얼마나 아픈지 정신을 못 차리겠더래요. 그러고 난 뒤 찢은 데는 어떻게 하나 그러니까 기름만 빼낸 다음에 다시 꿰맨대요. 그래서 그러니 좀 줄어드느냐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은 6주가 가고 나서 십 한 이삼 킬로 뺐대요. 기름이 빠지고 나니까 배가 쫙 들어가더래요. 그 사람이 지금 내가 여자 얘기하는 것 같죠. 남자에요, 남자에요. 그래 뭐라 하면은 근데 목사님 소용없습디다. 왜? 육 개월 밥 먹으니까 다시 기름이 또 끼더래. 처절할 정도로 노력을 해요. 진짜 처절할 정도로 노력을 해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집사님 오늘 집사님 얘기를 듣고 많이 배웠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우리 속에 있는 돼지비계 말고 사악한 욕망이나 더러운 죄를 뽑아내기 위해서 칼로 배 가르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드러눕는다면 뭔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랬더니 굉장히 기분 나쁜 표정을 짓더라고요.
잠시 머물 이 세상 헛된 것들 버리니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 보다 더 귀하다
그런 것들 다 지나가는 거예요. 그런 거들 다 지나가는 거예요. 일부러 살을 찌거나 일부러 넣기 위해서 애를 쓸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가는 세월을 누가 붙잡으며 떠나는 홍안 다가오는 백발을 누가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것들은 인생과 함께 모두 사라지는 한낱 치장 품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이렇게 잠시 있다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것들을 붙들고 열중하며 극렬히 자신의 외모를 가꾸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주님 닮은 사람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에요. 우리의 인격 그리고 우리의 삶 우리의 사고 그리고 우리 속에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를 닮은 덕성들이 더 온전해지기 위해서 온전하게 만드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풀무와 같은 연단으로 연단하셔서 그래서 우리를 주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백성 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한해를 보내는 문턱에 서서 우리는 모두 그동안 한 해 동안에 일어났던 모든 고통스러운 일들이 다 잊고 싶은 일들이고 그리고 모두 우리를 우울하게하고 불행하게만 했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살을 에는 것 같은 고난을 그 어려움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그러한 외로움 이런 것들을 통해서 오히려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찾아왔으며 그리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며 오히려 꿈속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또 우리를 단련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근데 오늘 성경은 연단하시되 은과 같이 하지 아니하셨다고 말합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결국 무엇을 의미하냐 하면은 은을 녹여서 순수한 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정사정없이 뜨거운 불속에서 완전히 해체될 때까지 불태워야 하지만은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들고 싶어 하시는 마음이 하나님께 간절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인정사정없이 우리를 시련의 풀무불속에서 녹여버리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감당할 시험밖에는 당한 것이 없는 줄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체질과 우리의 한계를 아시는 그러한 자비한 사랑으로 우리의 고난을 경감시키셨고 우리의 시련을 많이 줄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이 고통당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온전한 사람 되어가도록 하나님이 반드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보살피심으로 인해 우리의 한계와 그리고 우리의 체질의 한계를 아시는 그 하나님의 자잘한 손길이 있었기에 많이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고통을 당하시는 하였지만 아주 무너지지 않고 오늘도 이렇게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예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얻으시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많은 나라를 정복해서 당신에게 달라고 요구하셨습니까?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것들을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요구를 하셨습니까? 짐승의 피나 수많은 기름들을 하나님이 요구하셨습니까? 물로 그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셨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굶주리거나 가난해서 그것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얘들아 너희는 나 닮은 백성들이 되어라. 너희는 나의 분신처럼 이 세상에서 살아다오 너희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이 불붙는 사랑에 대해서 뭔가 합당한 반응을 내게 주고 그래서 우리 함께 마음을 주고받는 가족과의 관계가 되어서 그렇게 나는 너희의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너희는 나에게 유일한 백성으로 그렇게 이 세상에서 살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런 의미에서 볼 때에 고난은 하나님의 아주 놀라운 은사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선물이라고 하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당신 닮게 만드시고 결국은 한없이 우리를 당신의 친밀한 관계 속으로 부르셔서 우리에게 복주시기 위한 훌륭한 도구입니다.
어떤 남자가 한눈에 반한 여인에게 끊임없이 프러포즈했습니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 바쳐서 그 여자에게 자신의 사랑을 받아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청혼을 받아 주기만 한다면 몇 달을 살다가 죽어도 자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수 있겠노라고 열렬히 구애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 대답 대신 자기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그 남자에게 최초로 대답 대신에 물건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집에 돌아가 보니까 뚜껑을 열어보니까 칼이었습니다. 근데 이 사람은 그 칼을 보면서 뛸 뜻이 기뻐하며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남자는 수염을 더부룩하게 길러서 다니는 사람이었고 그 여자 분이 건네준 박스 속에는 사람 죽이는 칼이 아니라 면도칼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당신이 이 면도칼로 면도를 하고 오세요. 내가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고난도 말하지만 면도하고 오라고 우리에게 주신 칼이에요.. 그 면도칼로 붙들고 이 여자가 만나기 싫으면 그만이지 이걸 가지고 할복을 하라는구나 할복용 칼 다르고 면도용 칼 달라요. 하나님이 당신을 믿는 자녀들에게 주신 고난은 할복하고 죽으라는 칼이 아닙니다. 그 고난 속에서 마음껏 부르다가 죽어버려라, 그렇게까지 살고 그렇게 까지 불순종하고 살아왔으니 거기서 죽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아니냐. 하나님 그런 칼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얘야, 고난을 당하고 있지? 많은 시련의 풀무 속에서 쉼 없는 그러한 고난의 연속 쉼 없이 이어지는 연속된 고난 속에서 정신없는 삶을 살고 지금도 내 인생이 곤고하구나, 네가 나를 만나기를 원하느냐 나도 너를 만나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네 모습이 온전치 않구나, 여기 칼이 있다 면도나 좀 하고 와라 하나님 주시는 게 고난이라 그 칼을 가지고 뭐하셨습니까? 혹시 몇 번씩 런닝을 들추고 배꼽 있는데다가 데 보지 않았습니까? 아 결국은 여기서 죽으라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그 커다란 죄악가운데 있고 그 더러운 백성들을 정결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강력한 소원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은을 연단하는 것 같이 영영히 사정없이 타오르는 불길과 같은 진흙 속에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집어넣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의 체질과 약함을 기억하시며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주시고 이겨낼 수 있는 연단으로 그들을 단련시키셔서 그들도 진멸시키지 아니하시고 또 그들을 하나님 자신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 만들기를 포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이미 여러분들이 받는 연단 속에서 입증되고 있는 것입니다. 연단당하고 고난을 당하면서도 진멸되지 않는 여러분 자신이 많은 죄와 허물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한주먹에 여러분들을 부셔버리지 아니하시고 깨닫도록 때로는 우리를 두드리시고 때로는 우리를 문지르면서 때로는 우리의 양심을 각성시키기도 하시고 때로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밖에서 살아가는 것들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깨닫게 하시면서 그렇게 우리를 연단시키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대로 우리들을 만들어 가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왜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부셔버리지 아니하시고 은을 제련할 때에 사정없이 불을 가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감당할 수 있게끔 단련하시고 단련하시는 그러한 은혜를 베푸셨는가, 오늘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의 인내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인내가 우리로 하여금 변화되지 않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진멸시키시는 대신에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 그리고 이것은 끊임없이 당신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중보기도 덕분일 것입니다. 열매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를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주인에게 호소를 하는 농부와 같이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서 간구하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더 구하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이렇게 오래 참으시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시험에 들게 되고 커다란 시련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를 싫어서 외면하시는 것을 혼돈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면 외면하시죠. 그러나 우리들이 잘못하고 있는데도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은 외면이 아니라 사랑의 표시예요. 물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진노하시는 것보다는 침묵하는 것이 낫고 그리고 참아주시는 것이 낫지만은 더 좋은 것은 직접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시련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닮은 사람들로 만들기 위해서 애쓰시는 것처럼 또한 우리가 시련을 당할 때에 그 시련 속에서 우리를 건져주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을 너무 간단하게만 생각하면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정말 깨끗한 사람 되기를 원하시고 정결한 사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걸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당신과의 교제를 침묵으로 몰고 가십니다. 부르짖어도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이 없는 것 같은 그러한 외로움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십니다. 그건 무슨 뜻입니까? 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하나님과 낯선 관계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자.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참고 계신 것입니까?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인내하시는 그 사랑을 알고 거기에 대해서 우리들이 옳게 반응하기를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난 한해도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인내 속에서 살아온 한해였다 생각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있는 많은 불순종과 죄악을 보시면서도 하나님이 참아주실까? 은총이 아니라 징벌을 맞아야 마땅한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기다려 주시고 참아주시면서 언젠가는 니가 내 사랑을 알리라 너에게는 내 이름이 그리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러나 내게는 어떻게 너의 이름이 그리움이 되었는지 너가 내 마음을 알게 되는 날 네가 이제껏 버릴 수 없었던 것을 버릴 것이며 이제껏 까지 내려놓을 수 없던 것을 내려놓을 것이며 이제껏 까지 그렇게 즐겨 걸어갔던 그 길에서 돌이킬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이 오래 참으심은 반드시 그 하나님의 진노와 관련돼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오래 참으심은 죄를 향해 오래 참으심이고 진노를 벌하기에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시편 구석구석에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커다란 찬양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못하게 살고 심지어는 하나님 앞에 거스르고 대드는 삶을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갚으셨다고 할 것 같으면 아마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을 향해서 대적하고 거스른 삶을 살 때조차도 하나님은 참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분을 무시하며 사는 것을 정당화 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진노가운데 하나님 앞에 형벌 받아야 마땅한 백성인데도 하나님께서는 당신 안에 있는 사랑 때문에 우리를 진멸하지 아니하고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을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이 베푸실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랑의 덕목을 하나님께로부터 배웁니다. 많은 사랑의 덕목을 배우지만 그러나 역시 그렇게 배우는 많은 덕목 가운데서 가장 하나님을 흉내 내기 어려운 덕목이 오래 참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 더우기 나는 그렇게 사랑하는데 상대방은 자기를 향한 나의 사랑을 전혀 알아주지 않는 그러한 사람 오히려 사랑을 알아주는 대신에 마음을 아프게 하고 사랑을 원수로 갚고 은혜를 대적으로 갚는 사람들을 향해서 오래 참음 말하고 싶은 것을 참고 폭발하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며 참고 그리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고 참는 것 그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제껏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보이셔서 여러분들 여기까지 살아 오셨습니다. 가끔 저와 상담을 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지난 3년 4년 동안 답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뭐 기도도 할 수 없고 말씀도 들어오지 않고 은혜도 받지 못하고 하여튼 참 그런 답답한 생활을 살았습니다. 하나님 사랑을 많이 잃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못 느끼고 살았습니다. 사실 그것도 가만히 잘 뒤져보면 그 사람은 지금 자기가 살아온 삶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은혜 안주시는 것만 계속 섭섭한 생각이 남아 있는 거예요. 그러나 뒤집어 보면 그렇게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게 살아 왔는데 안 죽고 살아 있는 게 하나님의 은혜 아니에요? 나는 그러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바꾸기만 하면 회개가 터져 나온다고 생각해요. 하나님 내가 그렇게 살아온 것에 비추어 보면 폭포수 같은 사랑을 쏟아 부어주시는 대신 주님이 나를 진멸하지 아니 하신 것만 해도 하나님 찬송 받으실 만한 분이십니다. 주님이 진노 가운데서도 저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죄 가운데서도 저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이처럼 인내하시는 것은 결국은 제가 정말 주님이 주시는 이 연단을 통해서 완전히 바꾸어진 새 사람 되게 하시려고 주님이 기다리고 기다리는데 하나님 내 인생이 주님이 이제 껏까지 참으신 이 오래 참으심의 인내를 반드시 멸시하지 않는 인생이 되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그릇된 길을 걸어가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깨닫기를 기다리십니다. 물론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스르고 불순종한 길로 걸어가는 그것이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 거기는 거기 나름대로 하나님의 적절한 대책이 서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인내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참으시면서 우리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해서 연단을 받으며 그 연단 속에서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곧게 붙들고 아버지 앞에 돌아오도록 하나님은 그렇게 원하고 계십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오래 참으시는 것이 하나님 자신의 이름과 영예를 위함이라고 하나님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한 것은 사실이었고 하나님을 향하여 거스fms 것은 사실이었지만 잠시 거스르고 불순종한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무자비하게 심판하셨다고 할 것 같으면 아마 이방의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보는 대신 하나님의 그 무자비함 그리고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끝까지 인도하실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백성들을 진멸하셨다고 그리고 지금은 그 백성들을 모두 파멸로 몰아가셨다고 그렇게 하나님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해서 당신의 이름이 이 세상에서 멸시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어떻게 해서든지 그 패역함의 백성을 고쳐서 내 백성을 통하여 나의 인자함과 나의 내 백성을 향한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리려 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의 갖고 계신 마음이요 계획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난 한 해 동안도 죄와 불순종 속에 우리의 마음 중심을 하나님 앞에 다 드리며 살지 못했는데도 이렇게 살아서 다시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해를 살게 하며 하나님 앞에 한해도 은혜를 구하게 된 것 그 자체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깊이 깨닫고 우리가 당하고 있는 연단이나 이 실패를 뒤로 물러가 넘어지는 기회로 삼는 대신에 오히려 이 실패와 어려움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회복하고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그 사랑의 품으로 돌아가는 그러한 기회로 삼게 되기를 하나님이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때릴 때 부모가 원하는 것은 내 사랑하는 자녀가 이 악물로 내 매를 다 맞아 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이런 마음 아니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의 생각을 한번 바꾸어 보십시오.. 여러분 , 고난당하고 계십니까?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시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한번 여러분들이 당하고 있는 시험과 시련을 다른 시각에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제껏 까지 당하게 하신 시련과 시험 속에서 여러분 혹시 하나님 바꿔 보려고 애쓰면서 헛수고 하면서 살지 않았습니까? 때로는 기도가 모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기도보다 더 급한 것은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여러분들을 어떤 사람 만들려고 하는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가서 하는 그 기도가 하나님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한번 바꿔 보십시오. 하나님 내게 주신 이 고난 이제껏 까지 내 인생에서는 없애버려야만 좋은 것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 전 이제 하나님이 어떻게 저를 연단해서 온전한 사람 만드시려는지를 알았습니다. 이제껏 까지 저는 환경과 더불어 살아왔으나 이제는 하나님 하나님과의 관계를 붙들고 싸우고 변화되지 않는 나와 싸워서 그래서 내가 온전히 주님의 이 연단을 감당하여 주님이 의도하시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얻고 그래서 내 인생도 얻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연단의 어두운 밤을 지날 때 여러분들은 분명히 이렇게 어렵게 지낸 연단의 때를 그리워하며 그 때가 하나님을 만난 때였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