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사 40:6-8).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이 오시기 700여 년 전에 이 땅에 와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의 도래를 예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은 매우 부패해 있었고 하나님의 율법이 그들의 삶의 중심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배역과 하나님의 율법이 그들의 삶의 표준이 되지 못하는 무법한 삶을 탄핵하셨습니다. 이사야서는 66장으로 되어있고 1부가 39장까지고 2부가 40장부터 마지막장까지입니다. 공교롭게 이것은 구약성경, 신약성경의 권수와 일치합니다. 39장까지 하나님의 진노와 두려운 심판에 대해서 경고하신 후에 40장부터는 하나님의 음성이 갑자기 바뀌면서 하나님의 큰 위로의 말씀, 교회의 회복을 위한 약속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40장은 시작합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 외쳐 고하라. 그리고 복역의 때가 끝났고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는 말씀으로 시작을 합니다. 놀랍게도 이 40장의 시작은 외치는 자의 소리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선구자로 보냄을 받았던 세례요한의 출현을 예고하는 예언이었습니다. 그가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것을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외침은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를 주어서 뒤이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고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놀라운 회심의 역사가 있도록 준비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메시지 속에서 이렇게 한 해 한 해 세월이 흘러가도 어떻게 불변하는 진리가 역사 안에 우뚝 서고, 교회와 우리 신자는 이 진리에 대해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살며 섬겨야 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오늘 성경에 보면 외치는 자의 소리가 등장합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시는 그 앞길을 예비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던 세례요한의 선포를 예고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말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고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그리고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고, 골짜기마다 돋우어 지고,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것은 옛날에 왕이 어느 지역을 행차하게 되면, 제일 먼저 외치는 자가 가서 왕이 모년 모월 모시에 이곳을 지나신다. 라고 외치면 그 고을에서는 모두 왕을 맞을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어서 도로를 보수하는 사람들이 그 길을 다시 정비하기 시작합니다. 그걸 배경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돋우어진 길들을 깎아서 낮추고, 낮아진 곳에는 흙을 메 꿔서 평평한 길을 만들어 왕의 마차가 달려도 흔들리지 않는 평탄한 길이 될 수 있도록 그 길을 보수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왕이 드디어 행차를 하게 되는 것이고 그 길을 지나게 될 때에 만백성은 그 왕의 행차 앞에 부복하여 예를 표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그것이 만약 왕의 행차로 묘사된다면 세례요한은 이렇게 외치는 자의 소리로 비견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물질로 난 그 길을 따라 오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의 길을 따라 오시는 것이니, 이 외치는 자의 회개의 선포를 듣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악함과 죄를 진실하게 뉘우치기 시작할 때에 마음의 교만하게 높아진 부분들은 주저앉고 좌절하여 주저앉은 부분들은 다시 들어 올려 져서 평탄한 마음이 됨으로서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의 메시지를 들려주실 때에 그분을 온전히 진실 되게 믿을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이 되는 것이죠. 그 일을 위해서 세례요한이 보냄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을 때에 많은 사람이 회개하게 되었고, 그들의 회개는 뒤이어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가슴속에 전달하게 해 주는 아주 중요한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꿈꾸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는 특별한 감격이 없이 지리멸렬한 신앙생활을 계속 합니다. 주님을 만나는 깊은 신앙의 감격을 위해서는 제일 먼저 자신의 마음에 중대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당신 자신의 영광과 그 큰 은혜,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실 때까지 마음속으로 주님을 만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들을 끊임없이 주님 앞에 내려놓으며 가난하고 목마른 마음으로 주님을 뵈옵기를 갈망하는 그런 심령이 될 때에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 가상의 외치는 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외치라.” 그러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물었습니다.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내가 어떻게 외쳐야지만 이 사람들의 교만한 마음은 낮아지고 낙심 속에 주저앉은 마음은 주님 앞에 돋우어져서 예수 그리스도 오실 그 때에 그분을 참으로 뵈올 수 있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육체와 말씀의 대조였습니다. 즉 우리의 육체는 점점 쇠잔해져 가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굳게 설 것이라는 대조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이고 우리의 많은 죄는 우리가 이 쇠잔해가는 우리의 육체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관심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성경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잠시 있다가 사라져 없어질 우리의 육체에 대한 모든 정욕과 욕망, 사랑 이런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영원히 굳게 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변하고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과 불변하고 영원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 이 둘을 대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개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제일 먼저 들려주어야 할 음성은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풀의 꽃과 같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풀’이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말로 ‘하찌르’라고 하는 것인데, 다년생 풀이 아니라 매년 자라났다가는 스러져 없어지고 마는 우리로 말하면 잡초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육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봄이면 싹이 돋고 여름이면 무성하게 자라는 것 같지만, 가을이면 시들어 누렇게 변하며 검불이 되어 흩어져 허공중에 사라지게 되는 그것이 바로 들풀이고, 그리고 그 들풀의 아름다움은 그 풀에 맺힌 보잘것없는 꽃과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들풀에 맺힌 그 꽃이야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지도 못하고 그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씨앗을 담기 위해서 돋았다가는 사람들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 들꽃 같은 것이 바로 이 세상의 인간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관심을 갖고 마음으로 근심하고 있는 대부분의 많은 일들은 바로 이렇게 어떻게 들풀과 같은 목숨을 유지할 것이며, 똑같은 들풀이지만 그 위에 꽃을 매달므로 모든 들풀위에 내가 좀 더 나은 들풀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서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 사람들에게 존귀 히 여김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것, 그것이 오늘날 관심사 아니겠습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이 모든 염려들, 어디에서 더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까? 누구와 함께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이 모든 행복에 대한 갈망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서 얻어지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 바깥에서 추구되는 것들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육체의 아름다움과 번영을 추구하면서도 우리가 곧 죽을 몸이며 하나님 앞에서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한해살이 들풀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가끔은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생각하라고 주신 우리의 지성을 이 땅과 나의 육체를 위해서 사용하고, 주님을 사랑하라고 주신 이 마음을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추구하는데 다 써 버려서 하나님을 위해 바칠 것이 없게 됩니다. 주님이 당신을 알고 사랑하고, 당신을 향해 선한 의지를 가지고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우리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모든 것들을 우리의 육체의 영광을 구하는데 사용하는 적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고민과 우리의 노력, 우리의 정성을 들이는 그 많은 삶의 몸부림들이 사실은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고 계십니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올바로 깨달을 때 그는 올바로 살 수 있습니다. 만약에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올바로 알지 못하고 그릇되게 안다면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고, 자기보다 뛰어난 하나님을 자신에게 낮추며,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사용하고 하나님은 즐거워해야할 인간이 오히려 하나님은 사용하고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섬기게 되는 역리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외치는 자의 소리에게 제일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 예수 그리스도 오시기 전에 이 세상의 자랑과 즐거움에 빠져 있는, 이 일을 위하여 종교까지 이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진정으로 누구인지를 일깨워주라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외치는 자의 소리는 이렇게 부르짖어야 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육체의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경험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져다줍니다. 첫째는 우리가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티끌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 그래서 주님은 중요하고 아주 위대하시지만, 주님에 의해 창조된 이 세상과 나는 가치에 있어서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때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위대하신 주님 앞에 부복할 수 있는 경건한 두려움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함의 경험이 가져다주는 또 한 가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정말 더러운 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깊이 만난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하찮은 존재일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아주 더럽고 불결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도덕적으로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부복하고 하나님의 지극히 탁월한 거룩하심 앞에서 자기가 죄악의 덩어리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를 자각한 인간은 오직 의지할 곳이 우리의 죄의 해결을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의지하게 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자기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의지하게 되는 것이죠. 이 때에 자신이 비록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는 들풀과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하찮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들풀과 같은 자신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깊은 신앙의 감격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코의 호흡함만 있을 뿐 그것을 거두면 차가운 육체로 돌아가는 흙으로 돌아갈 아주 연약한 인간이고 그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무궁한 세월을 흐르는 이 우주 속에서 아주 티끌과 같은 것이지만, 들풀과 같이 사라지는 자신에게 깃들어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유한한 인생너머의 영원한 세계를 전망하게 되는 것이죠.
지난 한 해 동안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을만한 그 어떤 존귀함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주님이 우리의 영혼에 베풀어주신 말할 수 없는 은혜는 차치하고라도 아침마다 새롭게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위로, 그리고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일용할 양식과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과 시련을 당해도 아주 쓰러지지 않도록 날마다 우리에게 베풀어주셨던 하나님의 많은 사랑과, 육체적으로 필요한 것들에 대한 공급들, 이것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들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들풀에 관심도 없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돌보시는 그 특별한 은혜의 돌보심으로 우리를 지켜오셨습니다. 이게 바로 들풀에 깃든 사랑이었습니다. 들풀이야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없지만, 우리의 일생을 돌아보면 끊임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가슴에 못을 박으며 살아온 배반의 세월들이었습니다. 지난 한 해동안도 우리는 분에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과, 매일 매일 공급해주시는 영혼의 위로와 육체의 공급으로 살았습니다. 고난과 시련의 길에서 은밀히 우리와 동행해주신 위로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노중에 이미 엎드러졌을 것입니다. 쓰러질 만하면 일으켜 세우시고 넘어질 만하면 붙들어주시는 하나님의 그 탁월하신 사랑이 들풀과 같은 우리에게 깃든 그 사랑이 오늘 우리를 우리 되게 하였고 다사다난했던 일 년을 부족한 것 없이 주님의 손에 붙들려 살아오게 하셨습니다.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입히는 하나님, 하물며 우리랴 염려 필요 없네.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도 먹이는 하나님, 진흙 같은 이 몸을 정금 같게 하시네.
끊임없이 주님을 대적하고 마음의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연인으로 품는, 배반하기를 좋아하는 우리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을 대충 믿었지만, 주님은 우리를 섬세히 사랑하셔서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당신 자신의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새로운 주의 자비하심 속에서 눈뜨게 하시고 저녁마다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눈을 감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일하고 먹고 마시고 살았던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러나 들풀에 깃든 하나님의 사랑이 그 모든 풀들을 살아있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어머니와 같은 사랑으로 아버지와 같은 자비하심으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지 아니하시고 붙드시는 그 큰 사랑 때문에 우리들이 일 년을 살아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난 한 해와 같은 날들이 나의 인생에서 반복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람을 느끼고 자랑할 수 있는 일보다는 후회되는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위해 봉사한 것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 한 해였고 이렇게 들풀같이 사라지는 이 비참한 인간을 위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섬세한 보호와 인도는 너무나 크게 보이니, 지난 한 해도 오직 주님의 은혜로 살아왔을 뿐임을 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면서 날마다 생명의 기운을 잃어가고 죽음의 기운에 삼키 우는 우리의 육체를 보면서도 우리는 낙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른 들풀과 같아도 신실하신 우리 주님 때문에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날로 새롭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바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는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죽음의 기운에 잠식되는 쇠잔한 육체에 마음 뺏기지 않고 지난 한 해 동안도 들풀과 같은 우리 인간에게 베풀어주셨던 하나님의 큰 사랑,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위로와 마음을 가눌 수 없는 허무함 속에서의 보람과 어찌할 수 없는 미움과 분노 속에서 주님이 그 마음을 바꿔주신 평안과 넘치는 자비를 경험합니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육체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날이 쇠잔해져가도 들풀과 같은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의 그 큰 사랑, 들풀과 같이 쇠잔해져가는 우리의 육체 속에서도 날마다 새로워져가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랑, 그것은 결국 무엇을 통해서 우리에게 경험됩니까? 그것은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 불변하는 이 진리를 통해서 우리의 가슴속에 경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무하고 쇠잔해져가는 우리의 마음에는 언제나 우리가 있었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회복과 놀라운 이 영혼에 대한 도전 한복판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셨습니다. 우리는 비록 들꽃같이 사라지고 들풀처럼 쇠잔해도 우리의 마음속에 이 진리의 말씀이 살아있을 때, 그래서 나 같은 인간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가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 아름다움 때문에 그분을 사랑하게 되는 이 놀라운 은혜의 경험 속에서 우리는 들풀과 같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큰 사랑, 사라져가는 허무한 존재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 탁월하고 놀라운 사랑,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주의 성실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결국 들풀같이 사라져가는 인간이 진심으로 추구하여야 할 바는 오늘 피었다 사라지는 그 꽃이 아니라 불변하는 진리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고 모든 육체는 풀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게 되어 있는데 후~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까지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은 시간 속에서 태어나서 시간 속으로 사라져 없어지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혼을 주신 것입니다. 영혼은 시간 속에 창조되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영혼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영혼의 지배를 받으며 우리의 욕심으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기뻐하며 이 시간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육체는 끊임없이 양식과 음료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을 통하여 육체가 생명의 기운을 유지하고 기도하듯이 우리의 영혼의 양식은 불변하는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참된 기쁨을 잃어버린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입술로는 신앙을 고백하나 마음으로는 참된 영혼의 양식이 될 수 없는 것에 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체의 양식이 밥과 물이라면, 우리의 영혼의 양식은 불변하는 진리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체는 맛난 밥상 앞에서 기쁨을 누리지만, 우리의 영혼은 진리의 성찬 앞에서 큰 즐거움을 누리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들이 살아온 삶을 돌아봅니다. 언제나 한 해는 지나간 한 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시작하지만, 세상사는 것이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들로 남의 나라와 같은 이 땅에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고 육체를 사랑하고 세상과 짝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그래서 지난 한 해동안도 이 세상에서 주님을 믿고 사는 그 일은 우리에게 매우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고난과 시련이 그치지 않고 갈등과 어려움이 계속 되어서 육체를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이것이 더욱 좋게 느껴질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내버려 두시지를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갈한 중에 진리의 말씀에 해갈하게 하시고 주린 중에 그리스도로 배부르게 하셨습니다. 예기치 못한 때에 우리를 만나 주셔서 새 힘을 주시는가 하면,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뵈옵기를 원하는 간절한 목마름과 기도 속에서 약속대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가 미끄러 졌으나 아주 넘어진 것이 아니요, 우리가 잠시 주님의 은혜에서 벗어났으나 여전히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인 것을 주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찬송합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시시 때때로 베풀어주신 주님의 큰 은혜, 오류에 빠졌을 때 베풀어주신 주님의 선명한 빛, 그릇된 사랑에 빠졌을 때에 베풀어주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 대한 은혜, 이것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주님을 향해 가는 순례자의 여정에서 이미 엎드러져 버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난 한 해동안도 우리가 진정으로 의지하고 붙들어야할 바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시란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배가 바다위에 떠 있고 그 물 아니면 배가 항해할 수 없지만, 그리고 그 물을 먹을 수 없고 하늘로부터 내리는 또 다른 음료를 기다리듯이 이 죄 많은 세상이 없이는 주님을 섬기고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의 참된 양식이 이 바다와 같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변하여 미끄러질 때쯤이면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나를 깨운 영혼의 말씀을 붙들고 우리가 다시 이 순례의 길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단지 들풀일 뿐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찾으려고 하는 그 모든 영광은 여호와의 기운이 붊에 검불이 되어 사라지는 들의 꽃과 같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아주 연약한 인간이란 사실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존의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 밖에는 없음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 밖에 없네.
마지막에 더 깊은 신앙의 고통 속에서, 영혼의 방황 속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주님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은 없고 진리이신 그분보다도 우리의 영혼이 진정으로 행복해 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 뿐이었습니다. 교회가 희망이 없는 죄인들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님을 섬기고,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마음에 베풀어주신 불변하는 진리의 힘,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였습니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 들풀같이 시들어가고 들꽃처럼 말라가도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그 진리와 그 진리의 은혜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살아있게 하셨던 것이죠.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는 것을 보여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뒤를 이어서 그것을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사랑을 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흥왕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도구가 되게 하시는 거죠.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확장이 됩니까? 주님의 나라는 커다란 교회 건물이나 문화의 사역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이 쇠잔해 가는 육체, 들풀과 같은 우리가 진리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을 깨닫고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변화되는 것으로써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가 된 것처럼 또한 이 영원한 진리의 말씀이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세워지고 심겨지게 될 때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진리이신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 자신이 다만 들풀일 뿐이요, 자기가 추구했던 그 영광이 들의 꽃과 같은 것이라고 고백하는 그 진정한 자기 굴복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앞에 무릎 꿇은 사람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를 자신의 온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그 통치를 따라 살 그런 사람들의 나라,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교회를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번영하는 교회가 있는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 있습니다. 시들어가는 교회, 거기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는 끊임없이 번영해야 합니다. 이 번영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번영이 아니라 영적 번영입니다. 이 영적 번영은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신자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에 담지한 하나님의 진리의 힘에 있습니다. 이 진리를 굳게 붙들고 이 진리 안에서 들풀과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 진리를 모르는 인간을 위해서 친히 진리 그 자체로서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를 뜨겁게 사랑하는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번영이 곧 교회의 영적인 번영입니다. 진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그렇게 썩은 나무토막처럼 교회 한곳에서 누워있어, 하나님의 나라의 번영을 가로막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몸은 교회에 나오지만 진리는 그 어떤 것도 가슴에 없는 성도들, 몸으로는 주님을 섬기지만 그 동기가 자기같이 그릇된 인간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생명을 버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결코 아닌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번영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알의 밀알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를 온전히 죽이심으로 교회를 싹트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죽고 교회는 세워지게 하셨습니다. 초대 교회를 구성했던 모든 성도들, 가슴 벅찬 언어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바로 우리 죄를 위해서 오신 메시야였다고 핍박을 받으며 외쳤던 그 모든 성도들의 가슴속에 있었던 예수님을 향한 그 뜨거운 사랑이 그들의 교회를 번영하게 하였습니다. 잘 지어진 교회당 하나 없고 유명한 정치 지도자의 비호도 없었지만, 그들은 번영한 교회의 지체들이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해의 삶이 지극히 고달프고 고통과 말할 수 없는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해 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돌아봅니다. 이 세상에서 영광을 얻을 때가 아니라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을 때, 나 혼자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나를 이기게 하시는 진리가 우리의 마음속에 깨달아지고 역사할 때, 이 긴 세월 예수를 믿었지만 결코 알 수 없었던 하나님의 큰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의 고상함에 눈 뜨게 되었을 때, 그 때 우리의 마음은 벅차올랐고 온 세계 인류를 향해 외치고 싶었습니다.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에 이런 진리의 힘을 주셨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의 배역과 게으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교회를 끊임없이 번영하게 하셨고, 당신 자신의 마음을 이 세상에 흘려보내시고, 그릇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힘을 교회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삶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입니까? 흐르는 세월 속에 날마다 피폐해져가는 우리의 육체를 보는 것이 우리에게 슬픔을 가져다준다면, 그 진리의 참된 빛을 받고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지 못하는 우리의 영혼들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왜 슬픔이 되지 않는 것입니까? 그분이 우리를 위해 하신 그 일, 오류가 가득 찬 세상에 진리로 오셔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보여 주시고 주님을 향한 모진 배반이 있는 그곳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난 죄인들의 표독스런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언제나 거기 계셔서 우리를 부르시는 아버지의 마음이요, 자식이 아무리 집을 떠나도 마음은 자식을 떠나도 마음은 자식을 떠날 수 없는 어머니의 심정이었습니다. 신자의 참된 행복은 그러므로 이 들풀과 같은 세상에서 강건한 육체를 지니고 들의 꽃과 같은 영광을 많이 취하는 것에 신자의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자의 진정한 행복은 진리를 드러내는 삶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온 마음으로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의 마음을 지금도 보여주시는 계시의 말씀을 깊이 붙들고 거기에 마음을 바치며 그래서 급기야 말씀 속에 담겨진 우리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녹아들도록,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온 삶이 그 아름다운 진리를 드러내는 삶을 살도록 하는 그것이 신자의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들풀은 들풀이지만, 그러나 육체는 사라져도 영혼은 주님의 진리로 인하여 찬란하게 빛나고, 우리의 영혼을 육체 속에 두시는 날 동안 우리의 온 삶으로 이 진리를 드러내고 하나님을 보여주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신자의 진정한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마지막 주일에 오늘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오시기를 원하십니다. 여전히 들풀과 같이 스러져가는 육체임에도 하나님의 기운이 불매 말라버릴 들꽃이나 구하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지극히 긍휼히 여기시며 여러분들의 눈을 들어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하도록,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주님의 은택을 온전히 의지해서 살도록 하나님이 오늘도 여러분들을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해가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마음에 더욱 새로울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의 육체가 가장 피폐하고 매 말라 죽음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이 사실은 우리 안에 진리 되신 주님이 가장 충만하게 살아계신 때가 되도록 그렇게 주님을 의지하고 진리의 말씀을 굳게 붙드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