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물을 지나며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 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 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시 66:12)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시는 사실 누가 지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시의 목적은 아주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에게 행하신 이전의 위대한 일을 찬송하고 또 앞으로 그 위대한 일이 열방에 널리 퍼지기를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그런 선교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신들만 경험한 구원이 아니라 그 구원을 통해서 열방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행동을 기대하고 또 송축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시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이 시의 배경은 다름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탈출해 나오는 그 사건을 염두에 두고 기록을 한 시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을 지냈고 또 거기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고, 모세에 의해서 그들이 구출되어 나올 때쯤에는 그들의 종살이가 극도의 고통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할 수 없이 어려운 가운데 고통을 받으면서 그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고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는 고통소리를 기억하셔서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을 건져내실 구원의 행동을 보이신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별히 이런 상황에서 많은 고난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받은 권한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받은 그 권한은 크게 두 가지로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우선 첫째는 그들이 압박과 멸시를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기에서 압박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사람들이 자기들을 밟고 머리 위를 지나갔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를 가리키는 것이죠. 사람에게 있어서 발바닥은 모든 인체 가운데 가장 천하고 끝에 있는 부분이고 머리는 모든 사람위에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존귀한 지체의 상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존귀한 지체가 사람들의 가장 낮고 천한 지체인 발에 의해서 밟혀졌다고 하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존엄성과 자존감 같은 것들이 짓이겨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출애굽기 1장부터 몇 장을 읽어나가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와 구원의 길을 들어서기 전에 애굽에서 얼마나 비참한 종살이를 하고 있었는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노동력에 불과하였고 그래서 그들은 노예로서 짐승취급을 받으면서 그들은 긴 세월동안 아무 소망도 없이 애굽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모든 더럽고 힘들고 어려운 일에 종사하면서 그들에 의해서 짓밟힌 삶을 살았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었습니다.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한 마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들이 실제로 애굽에서 살았던 그 삶은 광야에서의 삶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삶이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로 오늘 당하는 고난은 매우 커 보이고 옛날에 당한 고난은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이 기다리고 있는 광야에서의 그 고난을 약속도 없고 치욕과 멸시만 있는 애굽에서의 고난과 비교하려고 했고, 그래서 그들은 그 애굽에 있었던 날들을 그리워하는 불신앙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그들은 그 애굽에서 애굽 사람들의 멸시와 치욕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지난 한해를 우리들이 돌아 볼 때 우리도 때로는 이렇게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성공적인 시간들도 우리에게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도 더 많은 시간들이 이렇게 이 세상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면서도 짓밟히고 멸시받는 것 같은 때가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기 때문에 그렇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그렇게 큰 시련을 당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주님께 야단을 맞으면서 이렇게 부끄러운 과거를 걷기도 했습니다. 어떠한 경우이든지 간에 우리들은 이런 큰 고난과 어려움을 통과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지난 한해는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 커다란 고난의 때였고,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일년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IMF때는 아니지만 그러나 그때처럼 많은 젊은이들이 취업을 못하고 직장에 다니던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하는 그런 정말 어둡고 우울한 일년을 우리들이 보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날들을 보낸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큰 압박과 어려움 속에서 고난과 박해를 받으며 애굽 사람들의 멸시거리가 되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난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늘 말하기를 물과 불을 통과하였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물과 불을 통과하였다고 하는 것은 은유적으로 모진 고난과 고생의 세월들을 보냈다고 하는 의미도 되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이 불은 애굽 사람들과 함께 애굽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심판하셨던 그 놀라운 광경을 우리로 하여금 생각나게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않는 애굽을 향해서 하나님이 큰 유황 불비를 내리셨습니다. 애굽 전역이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호를 받았지만 두 눈으로 똑똑히 그 자신들을 노예로 부리던 애굽 전역이 불에 타는 무서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고난은 우리에게 이런 것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로 특별한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그 불의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애굽 사람들 전역에 내리는 그 불의 심판을 보면서 그들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보호자 되시는 주님의 은총을 노래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불 가운데 있는 것과 같은 시간을 지냈습니다. 온 애굽 자신들이 가장 크다고 믿던 그 온 애굽이 불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 가운데를 통과했다는 이 고백은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을 생각나게 만들어줍니다 홍해가 갈라진 사건은 그야말로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속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홍해가 갈라지는 그 순간부터 주님의 위대한 능력은 나타났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힘과 용기를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노래한 것은 홍해가 갈라졌을 때가 아니라 홍해의 물이 합쳐졌을 때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쫓아오던 애굽의 병사들이 다시 합쳐진 그 물 위에 떠돌면서 그들이 수장되었을 때에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언덕위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송하게 되었습니다. 뒤에서는 600승의 병거가 말발굽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잠시 불기둥으로 인하여 어지러워져서 그들이 잠시 대열을 멈추고 있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숨을 노리는 수많은 병사들의 고함소리가 들렸고, 말발굽소리가 났습니다. 홍해가 갈라졌을 때, 그들은 갈라진 그 홍해 위 하나님께서 갈라놓으신그 위대한 능력을 맛보았지만 그들은 빨리 그 마른땅과 같이 변한 그 길을 걸어서 쫓아오는 애굽의 병거로부터 멀리 도망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양쪽으로 갈라진 그 물 사이를 통과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꼈을 그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모두 오늘날 우리들이 그 사건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그 믿음으로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시구나, 하나님이 이렇게 홍해도 가르실 수 있으니 뒤에서 애굽의 병사들이 아무리 많이 쫓아온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다고 하면서 그들이 천천히 놀면서 그 물 가운데를 통과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위대하신 기적 속에서도 그들은 두려움이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물 가운데로 통과하였습니다.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그 어마어마한 기적을 통과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에 대해 한번 놀라고 또 한번은 자신들을 추격해오는 이 애굽의 병사들의 집요한 추격을 바라보면서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일어난 놀라운 기적이 후일 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하나밖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지만 실제로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커다란 두려움과 그리고 그 심판하시는 하나님 구원하시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그 엄위하심에 놀랐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지나온 한해는 마치우리가 물 가운데를 통과하고 불 가운데를 지나온 것과 같은 한해였습니다. 우리 개인적으로는 한사람 한사람마다 각기 살아온 삶의 발자국이 틀릴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곤고하고 어려운 때에 은혜의 호황을 누렸을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경제적으로도 많은 축복을 주셔서 헤아릴 수 없이 행복한 한해를 보내신 분들도 있습니다만 어떤 사람들은 이 오늘날 조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경제적인 위기와 정치적인 불안감속에서 사업에 위기를 만나거나 직장에 어려움을 당하거나 여러 가지 말 못할 사정과 고생으로 인해서 큰 어려움을 당하면서 그 어느 해보다도 힘겨운 그러한 1년을 지내온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전 여러분들의 삶 하나하나 다 들어가서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교회적으로 보자면 이 일년 동안은 정말로 교회도 물 가운데를 지나는 것 같고 불 가운데를 지나는 것 같은 어려움들은 통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한 해 동안 한번도 시험에 든 적이 없었습니다. 교회가 큰 시험에 들거나 유혹에 빠져서 갈 길을 잃어버리고 휘청거린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물을 통과하고 불을 지나는 것 같은 고난과 시련은 있었습니다. 그런 시련과 어려움을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서 노심초사하며 눈물을 흘리던 많은 성도들은 오늘 저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의 목자로서 이 교회를 어거해가도록 하나님에 의해서 세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아픔은 곧 그리스도의 아픔이며 교회의 아픔은 또한 그리스도가 세우신 저의 아픔이기도 합니다. 그런 견지에서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 저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그 큰 은혜 못지않게 우리에게 시련이 많은 한해였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2004년은 제 인생 중에 주님 앞에 가는 날까지 잊어버릴 수 없는 한해가 될 것입니다. 내 생애에서 주님을 믿은 이래로 하늘나라가 가장 많이 생각이 난 그런 한해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어려움들 속에서도 우리들이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그런 어려움을 자초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와 어리석음과 하나님 앞의 불신앙이 이런 시련과 어려움들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뜻을 세우고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려고 했기 때문에 당한 어려움이었고 시련이었으며 또 고난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지난 한 해 동안에 우리에게 많은 시련 가운데 있게 하시고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졸이며 교회를 위해 노심초사하고 교회와 더불어 마음 아파하는 시간들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충분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뜻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고난을 받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에게 분명한 목표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많이 희생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며 우리가 가야할 길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었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는 부단히 현실과 싸우면서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는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지난 한해는 교회적으로 그 어느 해보다도 가장 많은 변화를 겪었던 때였습니다. 이곳에 와서 정착한지 2년이 되는 해였으며 교회 건축이 끝나고 채 2년도 되기 전에 다시 미래에 자라나는 영혼들과 돌봐야하는 돌봐야 할 많은 장년 지체들에 대한 목양적인 섬김을 위해서 저희들이 교육관을 구입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어려운 일들을 감당해 나갔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뜻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아마 훨씬 우리는 한 해 동안에 편안한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며 뜻을 세우고 가야할 목표가 우리에게 없었다고 할 것 같으면 희생이 두려워서 그런 목표를 정하지 않았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편안하고 좋은 환경 속에서 살면서 하나님 앞에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일과 안전이라고 하는 이 거짓된 모든 것들을 미워하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이 붙어있고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는 동안에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이 이 땅에 살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고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서 우리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 얻은 영혼들을 주님의 올바른 사람으로 세우고 그들이 어두운 세상에 나아가 타협하고 야합하는 비겁하고 야비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참된 신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그 대가를 치루는 당당한 사람들로서 길러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우리의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과 모든 것을 원하는 그러한 섬김의 부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운지 10년 기간동안에 그 어느 해보다도 많은 영혼을 우리에게 보내주셨고 그리고 우리는 어찌하든지 이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는 이들을 따뜻하게 품고 돌봄으로 말미암아 선명한 복음으로 그들에게 길을 가르쳐 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이 그들을 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으며 그들이 왜 주님을 믿어야 하며 믿은 그들이 왜 참된 신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우리에게는 흔들릴 수 없고 움직일 수 없는 그 큰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모아서 수고할 수 있었고 애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걸어온 1년의 그 길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어느 해 보다도 우리 자신의 한계를 느낄 때였고 그 어느 해보다도 우리들이 정말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 한해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의 도움을 구하고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은혜로 주님이 당신의 날개 안에 모아주신 영혼들이 우리의 무지와 어리석음 불충성과 나태함으로 인해서 그들이 다시 잃어버려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힘을 다하려고 많이 애를 썼습니다. 그렇게 정해진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물 가운데를 통과하는 것 같고 불 가운데를 통과하는 것 같은 1년을 지냈습니다. 하나님의 매일 마다 붙들어주시는 주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아마 커다란 어려움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한 해 동안에 그 고난 속에서도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는 이 교회가 사람의 교회가 아니요, 당신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그리스도 예수의 교회이심을 드러내어 보여주신 훌륭한 한 해였습니다. 고난도 많고 시련도 많아서 하늘나라가 많이 생각나는 한해였지만 그러나 그 어느 해보다도 많은 간증을 남기게 해주신 그러한 한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말씀의 은혜를 주셔서 성도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서 섬기려고 애를 썼고. 그리고 구원받지 못하고 변화 받지 못한 지체들을 위한 눈물이 교회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충성스런 교역자들과 지혜롭고 재능이 있는 주님을 사랑하는 직원들을 스탭으로 주셔서 주님을 섬기며 일치단결하여 일하게 하였고 누구하나도 신앙에서 뒤로 미끄러져 침륜에 빠지거나 타락하는 사람이 없이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며 교회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과 시련의 때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세워진 방야(?)와 그리고 안수집사와 권사들을 비롯한 많은 직분자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의 많은 성도들이 사람은 알 수없지만 하나님만이 아시는 그 시간에 눈물을 흘리며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리고 자신들에게 베풀어주신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을 헌신과 섬김의 열매로 맺기 위해서 애썼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을 섬기려고 많이 노력했기 때문에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작년에도 1000명이 넘는 영혼들을 우리 교회에게 보내주시고 그중 상당수의 사람들을 교회 안에서 복음의 생수를 마시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이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주님의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물과 불을 통과 하는 것 같은 그 깊은 시련 속에서도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을 가나안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항상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뜻을 세운 뒤에 걸어가는 그 길에는 언제나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고난을 피하기 위하여 거룩한 뜻을 세우지 아니하거나 이 세상과 수시로 야합하고 자신의 믿음의 뜻을 수시로 양보하면서 뒤로 물러가는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서 우리들은 늘 주님께 실망시키고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는 유형무형의 많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우리는 몸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붙어있는 모든 지체들입니다. 그래서 이 지체들을 하나하나의 건강한 상태는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머리되신 예수그리스도의 통치를 거절하고 순종하는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한사람의 신앙이 개인적인 신앙일 수 없고 공동체의 신앙이며 내가 하나님 앞에 건강하고 좋은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굳게 붙어있는 것 그 자체가 주님을 향한 우리의 가장 훌륭한 섬김입니다. 10년 동안을 하나님께서 교회를 붙드시고, 이끌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속에서 우리는 여기에 왔습니다. 난 여러분들의 인간적인 지도자이긴 하지만 그러나 나 홀로 지도자가 아니고 나도 여러분들의 지도자이기 이전에 나를 인도하시는 목자 되신 예수님의 손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한 마리의 어린양에 불과합니다. 금년에 우리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그리고 앞으로 10년 후에는 이 교회가 어떻게 될지 그리고 나의 일생은 이 교회와 함께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갈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단하나 마음의 소원이 있다면 이제껏 주님의 손에 이끌려서 10년을 온 것처럼 어린아이처럼 주님의 손을 붙들고 한 걸음 한 걸음 역사의 어두운 앞길을 빛 되신 주님 그 한줄기 빛을 따라서 걸어가고 싶다 라고 하는 소원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물과 불을 통과한 것은 그들을 어디론가 인도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따라서 고난과 시련을 받을 때 하느님이 반드시 거기에서 그들을 건져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내시어 풍부한 곳에 들이셨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셔서 그들이 심지 않은 포도나무의 열매를 먹고 그들이 따지 않은 실과를 먹게 하셨을 때에 그들의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이었습니까? 이제까지는 애굽에서 던져주는 그 사람들의 그 조악한 그들의 상에서 떨어진 것이나 먹는 노예나 전쟁의 포로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하느님께서 만나를 먹여주셨지만 이것은 구호품, 비상식량이었습니다. 이제 추수 때가 되어서 그들이 심지 않은 포도나무의 열매를 먹고, 그들이 심지 않은 곡식을 거두게 되었을 때 그들의 마음에 가득 찼던 그 희열과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이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갔더니 물과 불을 통과하는 것 같은 시련의 때가 있었지만 믿음으로 인내한 사람들은 주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그 영광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믿으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것도 아니고 사명감을 느끼고 하나님 앞에 출발한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그 마지막 하나님께서 도달하게 하시려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십니다만 기회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마지막 최후의 승리한 사람으로 남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마지막까지 승리하고 견뎌서 면류관을 받는 사람이 소수일 것이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명감에서 우리의 섬김을 시작했어도 끝까지 그 자리에서 주님을 섬기고 한 마음으로 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다가 그 사명의 자리에서 자신의 인생을 마름하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주님의 나라에서 별같이 빛나고, 수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서 살아갈 때에 이 세상에서는 무명하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으나 그러나 주님이 보실 때에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인지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매 순간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싶어 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마음에 깊이 새기고 그리고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사랑과 그 은혜를 받아서 매순간 여기까지 걸어왔고 주님이 매순간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모든 시련과 고난에서 건지시는 성실하신 보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순례의 길에서 사명의 길에서 우리의 성화의 도성에서 이미 오래전에 이탈하고 우리는 낙오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신 후에 당신이 기뻐하시는 목표를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동이 있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나 진멸되지 않고 아직까지 살아서 믿음으로 이 길을 걸어와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성도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올 한해는 작년 한 해보다 우리에게 훨씬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복 많이 받고 모든 일들이 형통하고 순조로워 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저도 여러분들에게 그런 일들이 일어나길 바라고 또 저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저도 고난이 싫고, 그리고 시련이 괴롭습니다, 평탄하고 그리고 고난과 시련이 없는 평안한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뜻을 세우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고난과 시련은 친구처럼 따라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에 들어선 것은 단지 애굽을 탈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나안땅을 향해 걸어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들어간 사람 못지않게 많은 사람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순종속에서 죽어갔습니다. 얼마나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시작한 것을 끝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42.195키로 미터의 마라톤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걸어가는 올 한 해의 인생의 길에도 만약 우리가 양보하지 않고 분명한 뜻을 세우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이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여기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르신 거룩한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서 이곳에서 주님을 섬기고 뜻을 세우고 참된 신자가 되기를 위해서 노력을 한다면 우리는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당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시련과 어려움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물과 불을 통과하게 하실 때마다 하나님이 우릴 홀로 버려두시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붙드셔서 우리들이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를 보이시고 우리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우리들이 뜻을 세우고 주님을 위해 충성되게 살지 아니하였더라면 일평생 도저히 알 수 없는 은혜의 세계에 대한 지식들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헌신되게 살고,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뜻을 세우고, 주님을 위해서 목숨이 붙어있는 날 동안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갈 때 이 세상에서 당하게 되는 어려움이나 시련들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뜻을 세우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어려움들을 당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오늘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한번 보십시오. 담대하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애굽을 탈출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서 물과 불을 통과하는 것 같은 연단을 받으며 시련의 모진 광야를 지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그 땅에 들어갔고 그 땅에서 광야에서 당한 고난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놀라운 축복과 하느님이 함께하시는 임재의 영광을 누리면서 주님의 이름을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들이 믿음으로 고난을 이기고 시련을 이기면서 개인적으로 신앙을 지키고 교회적인 어려움 속에서 우리들이 많은 헌신과 노심초사하는 기도 속에서 우리들의 고난과 어려움의 때를 잘 지났습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제 이 어려움을 통과하게하신 주님의 은혜와 영광을 노래하고 앞으로 받을 하나님의 위대한 상급과 놀라운 구원 이후의 역사를 기대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은혜의 놀라운 계획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올 한 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이 주신 목표를 따라 걸어간다면 어디에서든지 주님이 우리를 지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을 만날 때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부를 것이고, 거기서 주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향하여 신실하지 아니하지만,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주님의 성실하심과 인내로 인해서 우리는 주의 도움을 받으며 믿음의 길로 매순간 이 길을 따라서 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 일을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이 길을 걸어가기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 서 있습니다. 꿈같이 바람처럼 지내는 인생 가운데 마지막에 이 세상에 남길 것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취할지 모르는 재물도 한순간에 공중의 재처럼 흩날려져 버리는 이 세상에서의 지위나 영광도 우리가 추구하고 사랑하여야 할 것은 아닙니다. 한번밖에 없는 우리의 목숨 꼭 한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주님의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도록 부름을 받은 우리의 인생은 오직 하나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뜻과 온 영혼을 다해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매 순간순간의 삶에 충실하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죄의 어두움가운데서 건져서 빛 가운데로 들어오게 하시고 주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쓰레기같이 이 세상에 아무 소망도 없었을 우리들을 건져내는 도구로 사용하신 이 교회를 기억하고 나처럼 이 어두운 세상을 유리하고 방황한 그리고 고통 하는 이 많은 영혼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어떻게 할까요, 누군가가 그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고 가슴 아파도 울 수 없고 울어도 스스로 위로할 수 없는 그 불쌍한 영혼들을 주님을 대신해서 품어주는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되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 위에 이런 것들 이외에 다른 많은 것들은 대부분 의미가 적은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섬기고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영혼들을 돌보고 그 영혼들을 위해서 우리의 마음과 뜻을 다해서 주님의 사람으로 세우고 예수 사랑 알지 못해 고통 하는 이 역사의 한복판을 흐르는 강물처럼 살면서 주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그 삶 이외에 우리의 많은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삶의 양태와 삶의 질을 너무나 자주 혼돈합니다. 내가 어떤 지위를 누리면서 이 세상에서 살아갈까 내가 시집을 갈까 장가를 갈까 내가 공부를 얼마나 많이 할까 내가 좋은 집에서 살까 나쁜 집에서 살까 내가 하나님을 직접 섬기는 목회자가 될까 평신도로 살까 내가 이 사업을 할까 저 장사를 할까.. 이 모든 것들은 삶의 양태이지 질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 삶을 살아가는 한 방식이고 양태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은 그런 양태의 삶이 아닙니다. 수많은 임금들이 이 세상에 살다갔지만 임금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 사람이 주님의 시선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수많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이 땅에 살다가 갔지만 그들이 예쁘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주님의 눈길을 끈 적이 있습니까. 재능이 뛰어나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눈길 한번 주신 적이 있습니까. 올 한해도 역사 속에 영원히 잊혀질 수 없을 것 같은 수많은 기라성 같은 거물들이 역사 속에서 고인으로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모두 삶의 양태에 불과한 것입니다. 삶의 질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오늘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내가 주님의 손으로 빚어져서 이 땅에 주님의 숨결을 힘입으면서 이 땅에 살아있는데 이 땅에 얼마나 살진 모르지만 살아있는 동안에 내가 얼마나 주님을 섬기고 그리고 주님이 내 마음에 사랑이 되시고 어떠한 환경과 유혹 그리고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다른 사람과 비교의식을 느끼지 아니하고 시기하거나 분쟁하지 아니하고 마음을 오로지 함으로써 하나님 한분을 바라보며 주님을 향한 온 사랑을 나의 생애의 일기장속에 적어갔는가, 이것이 바로 삶의 질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양태가 아니라 삶의 질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질의 삶을 살 것이냐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바로 그 애굽에서 종으로 팔려가서 고생했던 그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보디발의 집에 끌려가서 마당이나 쓰는 천한 종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애굽 그 위대한 제국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하는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두 양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이 맨 처음에 바빌론에 갔을 때에는 끌려온 포로 자식이었습니다. 그 후에 그 역시 바빌론의 온 제국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두 삶의 양태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양태였습니다. 근데 그것은 양태였을 뿐입니다. 애굽에서 보디발의 집의 마당을 쓸며 개 취급 받을 때에도 그리고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도 요셉의 삶의 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니엘도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다리오 왕이 사자 굴에 억울하게 던져 넣어진 다니엘에게 나아왔을 때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하나님이 지난밤에 너를 구원하셨느냐 물어보았습니다. 불신자인 그 사람도 양태에 상관없이 다니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눈치 챌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루하루의 순간은 얼마나 소중합니까? 주님을 향한 사랑이 없어도 하루라는 시간이 없으면 그 사랑을 고백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너무나 소중한 날들을 주에 대한 적당한 사랑, 그리고 하나님과 겸하여 세상을 섬기려고 하는 그런 두 마음을 품은 어리석은 생각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에게 주신 고유한 사명을 깨닫지 못한 채 욕심을 따라 흔들리듯이 살아가는 그 많은 불순종의 시간들 주님이 사명을 주셨는데도 처음의 올곧은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그런 어리석음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 속에서 받는 그 불신앙적인 열등감과 비교의식에서 오는 좌절, 이런 것들로 우리의 인생을 허비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이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하는 중대한 죄입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살아있을지도 모르고 살아있는 날 동안 주님을 건강하게 섬길 수 있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남은 우리의 모든 날들은 우리의 날들이 아니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날만 살아있는 오늘 이날만이 우리의 날이고 나의 날입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우리들이 주님을 위해서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나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믿음을 따라 산 많은 성도들 지난 한 해 동안 분골쇄신하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성했던 성도들이 올해는 지난해의 고난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하나님의 큰 은혜와 위로가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을 소진해가며 주님을 섬겼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불편해 지는 것도 마다않고 물질로 주님을 섬겼던 사람들 소중하고 값진 재능을 주님을 위해서 아낌없이 바치면서 섬겼던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을 섬겼던 여러분들 위에 올 한해 지난해의 고난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하나님의 축복과 위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비록 그렇게 살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다시 마음을 추스르며 주님을 섬기고 이 교회에서 진정으로 주님의 영광을 보고 싶어 하는 여러분들에게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언제나 깃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 모두 기쁘고 소망에 가득 찬 마음으로 우리를 사용하실 올 한해 우리를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며 활기찬 소망 가운데 새해를 맞이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