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적으로 기뻐하지 못하게 하라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시13:4-5)
저는 어렸을 때는 야구도 좋아하고 축구도 좋아했지만은 그렇게 심하게 과격한 운동을 해 본적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는 제 주위에 킥복싱이나 권투를 아주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중에 어떤 친구는 대회에도 나가고 그랬습니다. 그런 친구들은 항상 코뼈 성할 날이 없습니다. 항상 얻어맞아가지고 뭉개져있고 그런데 문득 이 성경을 보면서 그런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시합장에 나가서 비록 그것이 세계타이틀매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기라고 고함을 지르고 이제 둘이서 붙어서 마구 싸우다가 보면 비지땀이 흐르면서 아무런 의식도 없고 그리고 거의 무의식으로 싸우다시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오직 딱 하나 눈에 들어오는 게 뭐냐 하면 그렇게 견디다견디다 힘이 빠져서 곧 그 캠퍼서 위에 누울 것 같이 사지에 힘이 빠지며 스탠스라 그러죠 권투선수들은 서는 자세가 있습니다. 움직여도 그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좌우전후로 움직이면서 경기를 하죠 그런데 스탠스가 흔들 린데요 상대방이 쉽게 얘기하면 발이 균형을 잡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그게 흔들린다는 거죠 발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다음에는 몸이 넘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그런 경험을 얘기해요 너무 치쳐서 그 캠퍼스 위에 누워버릴 것 같은 힘이 다 빠져 막다른 지경에까지 갔는데 상대방이 그 자세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 조금아까까지 막 소나기 펀치를 막 자기얼굴에다 퍼붓다가도 그 상대방이 자세를 흔드는 것을 보면 자기도 알 수 없는 몸의 밑바닥에서 괴력이 쏟아났다는 거예요 왜 그건 이제 자세가 흔들리고 있으니까 한방만 맞으면 그냥 누워버리는 거예요
신앙의 세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전쟁의 장이라고 불리우는 에베소서6장 10절 이하에서도 그리스도인인 영적이 군사들이 서는 것에 대해서 말합니다, 마치 이 모든 일을 행한 것이 서기 위함이라 서있기 위함이라 서 있는 것은 싸움을 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라는 말이죠 그런데 오늘 성경은 시인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얼 보여주는 고하니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가지고 산 사람들을 원수들이 늘 지켜보고 있거든요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이어감에 있어서 우리의 대적들을 과소평가하거나 우리의 대적들을 눈여겨 주목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그 대적과 화해를 한 적도 있지만은 그러나 우리의 대적은 우리를 쉬지 않고 지켜보고 노려봅니다. 그때에 원수가 가장 기뻐하는 것은 뭐냐 하면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요동하는 것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있는 주님이 우리를 어느 자리에 세워 주실 때 기본적으로 우리가 서 있도록 만들어 주신 자세가 있어요 그 자세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대적들은 갑절의 힘을 얻고 용기를 얻으면서 우리에게 달려들어요. 왜냐하면 우리의 걸음이 요동하고 흔들릴 그 때가 한방을 먹이면 그 신앙의 싸움의 장에서 길게 뻗어버리게 만들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거죠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원수들은 마치 게릴라전을 하는 것 같아 우리가 강하면 꼼짝도 못하지만 우리가 약하면 강해져요 우리가 공격하면 도망가지만은 우리가 물러가면 집요하게 달려들어요. 우리가 그들의 목을 밟고 있는 동안은 가만히 있지만 우리가 쓰러지는 동안에는 기사와 같이 일어나서 그래서 우리의 목을 판데요 그래서 우리의 영적이 대적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능히 이길 수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그런 대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 모든 기본적인 것이 뭐냐 하면 요동하는 것입니다, 요동하는 그 자체는 이미 커다란 말하자면 좌절을 맛보게끔 만들어주는 첫걸음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요동하지 않는 삶을 살려고 애를 써야합니다. 그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과도 말할 수 없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확하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돼야 됩니다. 요동하면 요동하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요동하면 우리는 주님이 세워주신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고 주님이 세워주신 자리에 우리들이 서있지를 못하고 요동하면 우리가 넘어지는 것은 아주 순간의 일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들이 무너지게 될 때 우리들이 주저앉는 것은 순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동하면 억눌렸던 대적들을 일어날 것이고 그리고 우리의 발아래 밟혔던 대적들은 고개를 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틈을 보이지 않고 굳게 주님이 우리 각자를 세워 주신 그 자리에서 마음에 동요가 없이 굳게 서 있는 그런 사람들이 돼야 됩니다. 함께 단체생활을 하다가 보면 어느 조직에서나 심지어 교회에서 마찬가지입니다만 두려운 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두려운 일을 만날 때가 있고 직장이나 혹은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우리들이 어려운 일을 만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때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동요하고 그럴 때 한 사람이 자기자리에 서서 평안을 누리고 있는 그 모습을 보여주는 그 자체가 말 할 수 없이 훌륭한 선물이 됩니다. 그래서 막 동요하고 많은 사람이 불안해 할 때 한사람이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괜찮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안심하라 너희는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이 믿으니까 나를 믿어라 누군가가 선언해 줄 때 그 힘은 굉장히 커다란 용기와 커다란 힘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동하는 자에게는 축복해 주시지 않습니다. 요동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맛 볼 수 없습니다. 요동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위기가운데서 그 위대한 능력으로 건져내시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동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실적인 기대와 자신의 힘 자기의 인간적인 계산속에서 살아갑니다. 시인이 가장 크게 두려워했던 것은 내가 요동을 할 때 대적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 이였습니다. 내가 요동해도 만약에 내가 요동하는 것이 대적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 그 대적들은 힘과 용기를 얻을 것이고 그래서 자기를 넘어뜨리기에 충분함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넘어졌을 때에 다시 일어서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은 그러나 요동하지 않는 삶 그런 것이 중요합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어느 동화책인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전 가보진 않았습니다만 화란은 네덜란드는 국토의 대부분이 바다보다도 낮은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댐이 유난히 많은 나라에요 풍차와 튤립이 많은 나라라고 그러잖아요. 실환데 어는 소년이 뚝 길을 따라서 걸어가고 있어요. 우연히 보니까 둑이 조그만 구멍이 나면서 갈라지고 있는 것을 소년이 보았어요. 손을 집어넣으니까 그 다음에는 손가락이 들어가 손가락들 대니까 그 다음에는 여러 개의 손가락이 들어가고 주먹이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팔이 들어가고 그래서 몸을 집어넣어서 막고 다행히 그 소년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지나가는 사람이 그를 발견해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몸으로 그 댐의 붕괴를 막은 그 소년을 건지고 그리고 그 댐을 응급조치를 해서 많은 농토와 가옥들이 침몰은 면했다. 수몰을 면했다.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의 무너짐 우리의 넘어짐은 항상 커다란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요동하는 것이 대적들에게는 기회이며 그리고 우리가 요동하는 것이 대적들에게는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한 절호의 찬스에요 그래서 우리들은 커다란 넘어짐을 경험하지 아니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넘어지기 전에 우리들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심기를 견고히 하고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셔서 여기에 보내셨는지를 생각하면서 주님이 어떻게 나를 인도하셔서 어떠한 발자취를 지나서 오늘 내가 서있는 여기에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셨는지를 가슴에 깊이 새기면서 내가 이 자리를 지키지 아니하면 나도 없다. 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요 내가 나 되고 내가 하나님 앞에 정말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힘겹고 어려워도 주님이 세워주신 자리가 여기이기 때문에 여기 서 있는 것 때문에 주님이 나를 인정해 주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수시로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요동하고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를 끊임없이 채근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인이 시편42편과 43편에서 말했던 것처럼 내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내 안에서 불안해야 하는 고 시인은 마치 영혼과 자기가 별개의 사람인 것처럼 자신 속에 있는 영혼을 타일렀습니다.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자기의 의식이 여러 가지일로 낙담하고 하나님 앞에 절망하고 그래서 요동하려고 하는 지신의 영혼을 타이르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믿음대로 살려고 하는 나 자신과 눈에 보이는 현상대로 살려고 하는 나 자신이 언제나 싸우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우리 자신이 육신의 안목대로 살려고 하는 우리자신을 일깨우도록 우리는 그렇게 우리자신을 가르쳐야 합니다, 요동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흔들리지 않도록 가르쳐서 그래서 견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던지 폭풍이 몰아치던지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형통할 때나 혹은 고난과 위기가 찾아올 때나 환경이 나를 도와줄 때나 나를 배신할 때나 변함없이 주님이 나를 세워주신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요동함이 없이 서 있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평강을 주시고 그리고 어려운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아서 대적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시인은 말을 하는 거죠 나의 소망이 주님의 인자하심에 있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흔들리지 않으려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어떤 이유가 있어야 된다 말이죠 비유를 한번 해 봅시다.
바닷가에서 큰 폭풍이 일어서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옵니다. 제가 똑똑히 눈으로 봤는데 방파제위에 프라이드를 세워놨는데 확 밀려와 꽝 치니까 프라이드가 그냥 날아가 버려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그렇게 어마어마한 힘이 파도에게 있어요 그렇게 엄청난 파도가 칠 때 흔들리지 말아라 파도에 흔들리지 말아라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의미 없는 것입니다. 힘이 없는데 어떻게 안 흔들리냐 프라이드는 자동차는 사람보다 훨씬 무거워요 사람 아마 열댓명 무게 정도는 될 정도로 무거워요 그런 자동차가 파도에 라면박스 날아가듯 날아가는 상황인데 인간보고 거기서 흔들리지 말라 그러는 것은 그건 말도 안 된다 이거죠 그러나 인간이 파도보다 훨씬 더 연악하고 가벼운 존재이지만 자동차는 파도에 떠밀려서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도 연약한 인간이 그렇게 파도가 칠 때에 파도에 휩쓸려서 물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 하나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자동차보다도 훨씬 더 강한 등대나 혹은 커다란 기둥에 자기의 몸을 굳게 묶고 있으면 아마 물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잠시 바닷물을 먹거나 그 파도를 뒤집어쓰는 일은 있을 지라고 틀림없이 그 물속에 떠밀려 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 시인이 오늘 그걸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어디까지 우리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지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연약한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 그분이시고 또 우리를 주님 만나게 하셔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분도 그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체질의 한계도 아시고 우리의 신앙의 한계도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대책도 없이 파도가 휘몰아치는 방파제 위에 우리를 세워두고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무도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집채와 같은 파도가 밀려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을 말씀하십니다, 그게 뭐냐 하면 너희 자신을 나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묶어라 하나님이 인자하시다는 사실 하나님이 당신이 택한 백성들이 믿음을 지키지 못해서 흔들리는 위기를 만날 때에도 당신을 의뢰하는 사람들을 저버리지 않는 하나님 여호와라는 사실을 깊이 인정하도록 하나님께서 실연가운데 흔들리고 요동하는 사람들을 당신의 자비하심에 주목하도록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할수록 결국 우리 자신이 얼마나 우리자신을 의뢰하는 것이 얼마나 헛되고 바보 같은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그래서 신앙이 어렸을 때에는 자기를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지만 신앙이 깊어지면 자기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능하게 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할지언정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지푸라기와 같이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한 것을 통해서는 자신의 약한 것을 보며 강하게 하신 하나님을 감사하고 그리고 견고할 때에는 하나님 없이는 흔들릴 수밖에 없는 자신을 든든히 서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잘살고 주님께 기쁨을 드렸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붙들고 인도해주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소망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되겠다는 소망을 더욱 굳건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자녀들의 양식은 주님의 자비하심입니다. 당신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무지가운데 있는 하나님 백성들의 그 무지를 진리의 말씀으로 깨우치셔서 그래서 우리를 지루할 정도로 설득하시고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또한 강화 시키셔서 결국은 주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우리를 세우시려고 하는 그 하나님의 열심이 있는 인자와 자비하심 이것이 결국은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찬송 제목이 되는 것은 그들이 이 자비를 힘입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흔들리고 요동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를 흔들려고 하는 대적이나 원수 그리고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여러 가지 두렵고 무서운 상황들로 인해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기 전에 먼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이 세상의 현실보다 더 큰 하나님의 능력 더 놀라운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우리를 이제껏 붙들어서 여기까지 세워주셨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면서 돌아보아야 합니다.
(찬양)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에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양에 인도해주시리
사람이 말이에요 인생을 살다가 자기가 스스로 원했건 등 떠밀리다시피 갔건 불순종하는 길을 걸어갈 때가 있거든요 그때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워서 돌이키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충격을 받고 무서워서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은 사람들이 하지만은 그것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는 못해요 그게 율법에 의한 회개의 한계에요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던 길을 돌이키고 그리고 우리가 불순종하며 살던 삶을 청산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녹일 때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녹일 때 그리고 짐승과 같이 막 살아오던 광포하게 달음질하던 그런 어리석은 우리들에게 찾아오셔서 그 무딘 마음에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리고 어떤 자비하심과 인자하신 은혜를 베푸셔서 여기까지 데려오셨으며 내가 막 떠나려고 하는 그 자리에 주님께서 어떻게 세워주셨는지를 깨닫게 하셔서 우리의 그 무디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마음에 그리스도 심장의 그 뜨거운 사랑이 우리에게 느껴지게 만들어 주실 때 그 때 우리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셔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믿음의 비밀을 나와 함께 나누시면서 사람들은 내가 살아온 인생을 하찮다고 말할지 모르고 웃긴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 하나를 데리고 이 자리에게 세우시기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인도하셨는가? 하는 그 사랑에 눈뜨게 하실 때 그래서 그 사랑이 그 당시에도 못 느꼈지만 지금 그러한 것들을 깊이 느낄 때 그때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정말 이러한 특별한 사랑을 입은 사람인데 내가 이렇게 주님을 거슬려서 살아도 되는가? 겨우 이런 길을 걸어가게 하시려고 주님이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또 헤아릴 수없는 수많은 날 동안 생명적인 교제를 나누시고 우리 속에 주님을 아는 지식을 심으시고 자라게 하셔서 결국은 은혜위에 우리에게 사명을 더해주셔서 여기에 서게 하셨는가! 그렇게 생각할 때 주님이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그 자비하신 인자와 자기가 그것에 반응하고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사이에 너무나 엄청난 격차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인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렇게 살수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주신 구원의 은혜이고 그리고 아무 쓸모없이 이 세상에서 지푸라기와 같이 바퀴벌레와 같이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과 많은 사람들에게 혐오와 고통을 주다가 사라져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쓸모없는 인생 이였는데 주님이 나를 여기에 이렇게 세워 주신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깨닫게 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를 흔들어 요동하게 만들었던 많은 염려 혹은 우리의 고민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그 자비하신 사랑에 비추어 볼 때 그게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를 깊이 깨닫게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자비하신 하나님의 그 인자하심이 마음속에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견고한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군인정신은 단지 용기와 담대함과 죽음을 무릅쓰는 헌신만 있으면 되지만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의 군인정신은 그 사랑에 늘 녹아지는 그 마음 사랑의 정신없이는 군인정신도 없는 것이 신앙의 세계에요
시인이 오늘 이 경험을 말하는 거죠 그래서 요동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늘 느끼고 주님이 우리와 같이 쓸모없는 인생들을 위해서 어떻게 자기의 외아들을 주셨고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대적과 모욕 수많이 받은 은혜에도 불구하고 불충성스러운 삶을 살았는데도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우리의 행위대로 갚지 아니하시고 오로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으로 갚으셔서 진노아래 있어야할 우리들을 은총가운데 살게 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보이신 진노는 혹시 있었다고 하더라고 잠깐 지나가는 것 이였고 주님의 은총 우리의 삶을 둘렀는가 하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동하지 아니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의 그런 사랑에 대한 확신에 우리 자신의 인생을 둘러 메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예수그리스도의 자기를 버리신 희생적인 사랑과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면서 우리를 오늘 서 있는 이 자리까지 데려오신 하나님 아버지의 크나큰 사랑에 우리의 삶을 붙들어 매서 그래서 그 사랑을 떠나서 살지 못하도록 우리 자신을 얽어매야합니다.
신파조의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어떤 정말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쓰레기와 같은 삶을 산 사람이 어느 날 이제는 내 인생을 바르게 살아보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감추는 부끄러운 자신의 인생의 이력들을 정직하게 써서 자기를 채용하고 싶어 하는 회사에 제출했습니다. 사장이 이렇게 보더니 맨 도망 다닌 이야기 지명 수배된 이야기 감옥 갔다 온 이야기 이력이 하도 많은데 그 중에 건전한 이력이 별로 없어요. 그러면서 이런 이력서를 가지고 당신이 우리 회사에 취직하려고 했다니 당신이 우리 회사를 어떻게 본 겁니까? 말했더니 이 젊은이 말이 감동적이에요 사장님 그 이력은 좋은 이력은 아니고 후회되는 이력도 많지만 그러나 한 칸 한 칸 메꿔왔기 때문에 지금 제가 여기 있습니다. 사장님에게는 쓸모없고 하찮고 그리고 못나 보이는 이력이지만 저에게는 대나무의 한마디 한마디처럼 귀하기 짝이 없는 이력들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나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저는 숨길 것도 없고 가릴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도 이러한 자세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 앞에 실패하기도 했고 또 성공하기도 했고 잘 살기도 했고 못살기도 했지만 그러나 결국은 우리의 삶 전체를 돌아보면 우리를 우리 되게 만들었던 것은 하나님의 자비 그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때문에 진멸되지 않고 우리가 여기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우리가 요동하지 않을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시인이 지금 여기서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요 이제껏 자비로 우리의 삶을 인도해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처하고 있는 큰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의 팔을 내미셔서 당신을 의뢰하는 백성들을 배반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이 하나님을 의뢰하는 그 신실한 의뢰를 저버리지 아니할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 .라는 사실을 굳게 믿는 믿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오늘밤에 이런 믿음을 위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여기에 세우신 주님 요동하지 말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요동함으로 인하여 대적들이 즐거워하지 말게 하시고 우리를 오로지 이제껏 까지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셨던 주님의 자비하심에 굳게 붙들어 맬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달라고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탄원하는 그런 신앙을 가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