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보다 나은 믿음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성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수 6:20-21).
Ⅰ. 본문해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온 후 첫 번째 여리고를 점령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불세출의 지도자 모세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지도자로 하나님이 세워주신 사람은 여호수아였습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는 차지 않는 지도자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기적을 몰고 다니던 카리스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일생동안 모세 곁에서 수종을 들던 보조적인 지도자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시대를 끝내시고 여호수아를 가나안 정복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경륜이 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모세는 율법을 수여받은 중보자였습니다. 율법하면 모세의 율법이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은혜의 주로 오신 것처럼 모세는 율법의 종으로 이 세상에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세출의 지도자를 삼으셔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박에서 건져내시고 홍해를 건너 광야 40년 길의 인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약속의 땅 가나안이 보이는 언덕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그 가나안땅에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모세의 사명은 거기까지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율법의 대명사였고, 가나안은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언약의 땅의 예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불세출의 지도자는 거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것으로 사명을 끝내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원래 ‘야샤’ 라는 구원하다. 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구원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이것의 또 다른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 호세아, 예수,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모세가 아니라 여호수아를, 우리를 영원히 죄에서 구원하러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삼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되어서 첫 번째 지도력을 시험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Ⅱ. 가나안 정복과 여리고성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정복은 중부 지방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 되었습니다. 중부 지방을 뚫고 들어가서 위 아래로 휘저으며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로 작전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중부 지방을 공격할 때에 제일 먼저 맞이하게 되는 성이 바로 여리고성이었습니다. 이 성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이었습니다. 이 성은 가나안 땅에서 매우 큰 성 중의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성을 회피할 수 없었던 이유는 만약에 이 성을 내버려두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 큰 여리고성에서 쏟아져 나온 군대들에 의해 후방을 공격받을 전략적인 약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싫든지 좋든지 이 큰 성 여리고를 함락시키지 않으면 가나안 정복 자체가 불가능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싸움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 가나안 정복에 있어서 여리고성을 부숨으로서 하나님이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실 것임을 명백히 보여주실 것인데, 그것이 바로 믿음의 중요성입니다.
A. 믿음의 중요성
아시는 바와 같이 모세는 불세출의 카리스마를 가진 기적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구별되는 매우 특별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탁월한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였습니다. 그의 생애 초기부터 마지막 하나님이 그의 시체를 치우신 그의 죽음의 순간까지 그의 생애는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타지 않는 가시나무 떨기의 불꽃 가운데서 그를 소명하신 것부터가 기적이었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기 위하여 맞닥뜨렸을 때에 그의 손에 의하여 펼쳐졌던 10개의 위대한 재앙은 모두 깜짝 놀랄 커다란 기적이었고, 애굽의 바로의 손에 이끌려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 다다랐을 때도 그 위기는 백성들의 많은 두목들의 전략 속에서 헤쳐 나갈 기회를 찾은 게 아니라 모세가 하나님 앞에 대면하고 매달린 가운데 그의 손을 널리 펼쳤을 때 그 홍해가 기적처럼 갈라지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땅을 건너고 따라오던 애굽의 병거들을 다시 수장시키는 기적 속에 이루어졌습니다. 이후에 이루어지는 40년간의 모든 발자취는 그야말로 기적의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300만 명은 족히 되었을법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침마다 내리는 만나로 하루를 시작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메추라기와 온갖 먹을 것들을 기적 속에서 공급받았고 물이 없어 갈할 때에는 반석을 터 쳐 쏟아져 나온 샘물로서 그들이 목을 축였습니다. 수많은 전쟁에서 이긴 기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나님께서는 매순간 그들을 기적으로 인도하셔서 그들의 옷이 헤지지 않고 신발이 떨어지지 않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먹이고 입히고 기르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으로 이어진 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 모세는 이제 죽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제 지극히 연약해 보이는, 하늘로부터 온 사람이라기보다는 자신들 가운데 함께 살았던 연약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여호수아라고 하는 지도자를 통해서 하나님은 모세의 시대와는 전혀 다른 경륜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모세의 생애가 기적을 행하면 사람들이 그 기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었던 생애였다고 한다면, 여호수아가 지도자로 등극한 이후부터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그곳에 모세의 기적에 버금가는 위대한 기적을 행하심으로,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는 그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찌니라.” 하고 말입니다. 이런 놀라운 믿음의 역사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 등장하게 된 이 여호수아는 명백하게 연한 순과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를 전심으로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기로 약속하신 메시야 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훌륭한 예표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여리고성 앞에 나아가 여리고성과 마주하기 전에 한 번의 시험의 중요한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요단강을 건너는 사건이었습니다. 요단강의 물이 넉넉히 흐르던 그 때에 그 많은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넌다고 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단강은 그리 큰 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단을 건널 묘책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법궤를 매고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단 물이 넘쳐흐르는 요단강 속을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이 마르게 되고 땅이 드러나게 되어서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고 나니까 홍해의 물이 갈라지고, 기적을 보게 되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을 건너게 된 것과는 정반대의 순서로 먼저 믿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적을 베풀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의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한 번도 행사해 본적이 없는 이 놀라운 믿음을 가나안 정복에 앞서 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전에는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기적을 먼저 찾았고, 기적을 찾는 곳마다 그들은 모세를 의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적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믿음을 먼저 구하여야 했고, 그래서 보이는 여호수아보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법궤를 메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요단강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에 요단의 물이 마르는 기적을 하나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거기서 믿음이 기적보다 훨씬 위대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고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기적을 먼저 보여주시던 모세시대의 경륜을 깨고 이제는 믿음을 먼저 중요시하는, 그리하여 기적을 뒤따르게 하시는 이런 여호수아적인 경륜을 보이셨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의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지나 가나안 땅, 번영한 세계 한복판에 심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발달한 문명 속에서 살아갈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이 기적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인도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그들에게 진짜로 열매를 맺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 독특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께 대한 전폭적인 믿음이 그들에게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모세를 지도자로 부르실 때에는 하나님이 타지 않는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불 일듯 하게하는 기적을 보이셨지만,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부르실 때는 말씀을 주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부르심에 있어서 어떤 기적을 보이시지 않으셨습니다. 손을 집어넣고 꺼내면 문둥병이 생기고 다시 집어넣으면 문둥병이 낫고, 지팡이를 던지면 그것이 뱀으로 변하는 이런 기적을 베푸시지 않고 오직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부르실 때에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가라는 분부를 그에게 내리시고, 마음을 굳게 하고 강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라고 하는 이러한 약속을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 명령은 여호수아만이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야할 바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리고성 앞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극복하여 커다란 것에 직면하게 하시지 않고 가나안에 있는 제일 큰 성 중의 하나인 이 여리고 앞에 직면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던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이 가나안의 위대한 정복의 역사는 우리들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처음부터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공고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역사에 의하면 이 여리고성은 정말 큰 성이었다고 합니다. 이 성은 이제 거의 20미터나 되는 높이를 가진 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성은 매우 두텁게 형성되어 있어서 그 성벽 위에는 하꼬방 같은 집을 짓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두께를 가진 성이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한 번 들어가 잠그면 난공불락의 성이었던 것이죠. 후에 발견된 고고학적인 자료에 의하면 이 성은 희한하게도 똑바로 곧추서있는 성이 아니라 비스듬히 지어진 성이었다고 합니다. 아마 당시에 있었던 성을 위협하는 많은 이민족의 침략을 염두에 두고 이 성을 탄탄하게 설계하기 위하여 안쪽으로는 성이 곧추섰지만, 바깥으로는 성벽이 비스듬하게 지은 모양의 독특한 성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에 이 성이 똑바로 곧추선 평범한 성이었다고 한다면 성이 무너졌을 때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사람은 그 성 주변을 돌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놀랍게도 이 성이 무너질 경우 무너진 돌멩이들이 안쪽으로 쏟아져 내리도록 이런 성으로 하나님은 공격의 목표를 삼으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약속은 황당한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바퀴씩 조용히 성을 돌고 마지막 칠일 째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마지막 바퀴를 돌 때에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에 맞추어서 온 백성이 소리를 지르면 그 성이 무너질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보다 더 황당한 약속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황당한 약속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었고, 그들이 당신을 전심으로 믿는지 믿지 않는지를 시험해 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을 때 그들은 전심으로 그 약속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 믿음을 그렇게 기뻐하시고, 또 기적을 보고 믿는 것보다도 기적을 보지 않고 믿는 것을 더 좋아하시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기적을 보고 믿는 것은 혹시 그 기적 때문에 설득되어서 믿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을 보지 않고 믿는 그것은 그 약속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의존의 마음 없이는 그분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죠. 우리들이 여기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확률을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 년이면 몇 번씩 비행기가 추락하는 비극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행기에 탑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만 그것은 믿음이라기보다는 확률을 의지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비행기를 탈 때에 그 비행기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타는 것은 믿음이라기보다는 확률을 의지하는 기대이기 때문에 비행기를 아무리 많이 타도 우리 영혼의 참된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우리들이 사람들과의 거래에 있어서도 확률을 믿고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는 상품의 무게를 표시된 그대로 받아들이고 값을 지불하고 삽니다. 고깃간에서 고기를 지불하고 살 때에도 혹시 이 저울만 가짜가 아닐까하고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안 그런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것을 신뢰하고 사지요. 그러나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영혼의 활동이며 움직임입니다. 아무리 많은 고깃간에서 거래를 하고 비행기로 수없이 외국을 출국해도 우리 영혼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반드시 영혼의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예화) 지하실 교회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콘크리트에 못을 좀 박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콘크리트에 못을 박아도 못이 들어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있던 콘크리트용 드릴을 창고에서 가지고 나와서 콘크리트를 좀 뚫으려고 했는데, 박스에서 아무리 찾아보아도 콘크리트용 드릴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철판을 뚫는 드릴을 기계에 끼우고 아쉬운 대로 단 1센티라도 파 볼 요량을 가지고 그것을 전기에 꽂고 힘차게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때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콘크리트를 뚫는 드릴은 특수해서 콘크리트용 드릴을 끼워야 되는데, 철판을 뚫는 드릴을 가지고 뚫으니까 콘크리트가 전혀 뚫어지지 않고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맴도는데 불과 한 3-4분 돌렸을 뿐인데 뚫어지는 대신 그 칼끝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1250도에서 쇠가 녹으니까 그때의 온도가 제가 보기에는 육 칠 백 도 정도는 족히 될 정도로 눈이 부실정도로 시뻘겋게 쇳덩어리가 달아오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말하자면 드릴이 회전하고 벽에 부딪히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불덩어리가 되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참된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참되고 진실한 믿음은 언제나 참된 사랑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는 이유는 믿음은 반드시 사랑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루터가 고백했듯이 사랑이 있는 곳에 반드시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참된 믿음을 찾아낼 수 없을 때의 그 사랑은 성경이 가르치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기뻐하시는데, 왜냐하면 믿음이 있는 그곳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두 가지가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는 믿음이 있는 그곳에 바로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사랑이 있고, 믿음이 있는 그곳에 바로 하나님을 향한 전심의 의존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과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은 삼위일체처럼 하나 있는 곳에 반드시 두 개도 함께 있고, 그 두 개가 없이 한 개만 따로 있는 그것은 참된 그것일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과 의존의 감정이 없는 그 믿음은 자기 암시적인 믿음일 뿐이고 성경이 가르치는 참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사랑이 없는 사람은 성경이 이야기하는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가 없는 그런 종류의 의존의 마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갖기를 원하는 전적인 의존의 마음과는 다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 사랑,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 이 세 가지는 삼위일체처럼 하나 있는 곳에 나머지 두 가지도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 믿음을 무엇보다도 기쁘시게 여기는 것입니다. 기적을 본 사람의 믿음은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믿음일 수 있으나, 참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기적을 보지 못했어도 참된 구원에 이르는 것이죠.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 믿음을 그렇게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믿음이 없는 것을 매우 꾸짖으시는 광경을 여러분의 인생을 살면서 경험한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여러분들이 회개한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사랑도 없고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의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그곳에 평강이라고 하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늘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나부끼고 흔들리는 것이지요. 절재적인 의존의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유는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은 절대적인 순종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어떠한 온전한 순종도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리고성을 그렇게 칠일동안 돌았습니다. 아마 첫 번째 하루 돌 때에는 여리고성에 있는 사람들이 긴장을 늦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똑같이 두 번째 돌 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이고 삼일 째 되었을 때에는 비웃기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여리고성을 돌았습니다. 이성적으로는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것과 이렇게 강강술래를 하듯이 여리고를 도는 것이 어떤 연관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해서 그들은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에 그 모든 것들을 설명할 수 있다면 믿음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전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성을 돌았습니다. 칠일 째 되는 날 그들은 일제히 나팔 소리에 맞추어 소리를 질렀고 이때에 성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은 오늘 성경에 보니까 성이 무너지자마자 이스라엘 백성은 앞으로 나아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그 성이 밖으로 무너졌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나아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안쪽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성벽위에 있던 수많은 군사들과 성안에 진치고 있던 모든 군사들이 깔려 죽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 안으로, 그 무너진 성벽위로 돌진함으로써 이 여리고성을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정복하는 믿음의 승리를 일구어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를 방황하면서 요단강을 건널 때에 품고 있었던 웅장한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나안 땅을 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깃발을 꽂고 주님이 자신들을 선택하셔서 거기까지 인도하신 영광을 만천하에 두루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한 해를 보내고 2009년이라고 하는 우리 앞에 펼쳐진 가나안 땅을 여러분들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2008년은 어떠했습니까? 만약에 2008년 한 해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승리한 한 해였다면 그 기세로 계속 주님을 의지하여 2009년을 정복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 중의 많은 사람은 2008년이 기억하기 싫은 실패의 한 해일 것입니다. 그리고 2008년도에 여러분들이 직면했던 그 많은 여리고성과 같은 문제들, 그것이 2009년 시작하기 전에도 여러분 앞에 다시 놓여 있습니다. 풀지 못한 숙제는 시간만 연기될 뿐 언제나 풀리지 않은 채 우리에게 남아있기 때문이죠. 여러분들이 이 문제를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돌아갈 수 없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이 문제를 회피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앞에 오랜 세월 동안 무너지지 않는 그 큰 성처럼 위엄 있게 버티고 있는 여리고성과 같은 문제가 무엇입니까? 왜 여러분들은 여태까지 이 문제들을 풀지 못했습니까? 아마 여러분들은 문제는 너무 크고 나는 너무 작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너무 어렵고 나는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그렇다고 할 지라도 여리고성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았겠습니까? 그들은 믿음으로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믿음이 행사되는 것을 보시기 위하여 여러분들 앞에 여리고와 같은 이 난제를 아직도 풀지 않고 남겨 두셨습니다. 자! 이제 어찌하시렵니까? 또다시 비굴하게 돌아가 여리고성에서 쏟아져 나온 또 다른 문제들이 매복해 있다가 여러분을 공격해서 실패로 끝나버리는 그런 2009년이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제 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2009년의 가나안 땅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절대 절명의 의존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이 문제를 푸시겠습니까? 문제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 하나님이 나 같은 인간을 선택하시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구속하시고, 성령께서 나 같은 인간을 인 쳐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으니 내가 그분을 전심으로 믿는 거기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하는 신앙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 주님께 대한 전적인 사랑,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순전한 의존의 마음 그 안에서 하나님은 여리고성을 무너뜨렸던 이 큰 위대한 능력을 여러분들의 삶 속에 보여주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 모험하십시오. 이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도전하십시오. 그리하여 더 이상 이제는 문제에 끌려 다니는 2009년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내 인생에 주관자가 되어서 주님의 손에 붙들려 2009년을 정복해가는 그러한 믿음으로 시작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전심으로 바랍니다.
B. 약속의 중요성
믿음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지만, 약속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 믿음은 바랄 수 있었던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었습니다. 막연히 하나님의 큰 능력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 그 안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던 것이죠. 막연한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의 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씀의 사람이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죠. 아무리 믿음을 많이 행사하려고 해도 그 믿음의 행사가 칼싸움이라면 약속의 말씀은 그 손에 들리어진 검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검법을 지닌 무술자라 할지라도 그의 손에 검이 들려지지 않았더라면 그의 뛰어난 검법은 소용이 없는 것처럼, 만약 그가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경향이 그 마음 안에 충만히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받은바 약속의 말씀이 그의 마음속에 있지 않다면 그는 그의 믿음을 행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서 보면 우리도 부러울 정도로 탁월한 믿음 속에서 생활하는 성도들을 봅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담대하고 당당하고, 고난 속에서도 승부수를 던지며 하나님을 향한 모험심이 있는 성도들 말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말씀의 사랑입니다. 자기를 향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그리고 그 말씀이 자신에게 적합하게 주어졌을 때에 강력하게 그 말씀을 움켜잡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그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서 믿음을 행사하는 사람입니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요동하고 마음에 정함이 없이 흔들리는 사람의 특징은 손을 넣고 아무리 그의 마음을 휘 집어 보아도 근심과 걱정, 때로는 울컥울컥 솟아오르는 열정은 있을지 모르지만 약속의 말씀의 칼이 잡히지 않는 사람입니다. 빈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말씀과 함께 행사되며 특별히 약속의 말씀을 붙들 때에 이 믿음은 강한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일전, 자기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여리고성을 앞에 두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일 먼저 왜 나를 믿지 않느냐고 말씀하시지 않고 그들에게 조용히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이 끝나자 그 말씀을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신앙으로 굳게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믿음을 뒤따라 왔던 것입니다.
Ⅲ. 당신의 여리고성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한 해를 사경회로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이때문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금년은 작년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한 해를 시작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희망은 언제나 속임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변화가 없는데 무슨 새 일이 일어나겠으며, 마음에 믿음이 없고 그를 사로잡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데 어떻게 그 묵은 인간이 달력 하나 넘겼다는 이유만으로 새 삶을 갑자기 살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우리 인간이 그런 존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약속을 먼저 받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야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자! 요단강을 기적으로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일 먼저 맞부딪힌 것은 그 큰 여리고성이었습니다. 이것은 피해갈 수 없는 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성 앞에서 제일 먼저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자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크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방법으로 여리고성을 점령하게 하실 줄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셔서 피할 수 없는 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려 후고의 염려 없이 담대한 확신을 가지고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여리고성은 어떤 것입니까? 그 오랜 동안 거기에 서 있어서 바라만 보고 쳐다만 보았을 뿐, 무너뜨릴 엄두조차도 내지 못했던,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거기 버티고 있던 여리고 성은 어떤 것입니까? 이 성은 유서 깊은 성 이었습니다 마는 믿음 앞에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그것을 무너뜨리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여리고성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가슴에 한 번 새겨 보십시오. 그리고 그 성 때문에 주눅 들고 무엇에도 자유 함이 없이, 번민하고 괴로워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서지도 못했던 부끄러운 날들을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고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여러분과 어떤 관계를 가지며 이 한 해를 시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큰 곳 여리고성, 피하지 말고 대면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굳게 붙드십시오. 마침내 여러분 앞에 무너지고 여러분들은 2009년을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