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이 다시 사는 날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I. 들어가는 말
어린 아이들을 전도하려면 골목에 가서 그 아이들을 만나야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옛날 전도방법에만 익숙해져 있던 목사님이 교사들을 골목으로 모두 보냈습니다. 돌아와서 하는 이야기가 “목사님 이제는 골목에 애들이 없습니다.” 지금은 컴퓨터도 있고 TV도 있고 게임도 있고 아이들이 골목에 나와서 놀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집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포장되지 않은 땅바닥의 그 골목이 아이들의 놀이터였습니다. 그 땅바닥에서 구슬치기, 망까기, 말타기, 술래잡기 하고 놀았었습니다. 몇 살 때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땅바닥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이 즐겨하던 놀이가 석필로 큰 원을 그려놓고 작은 유리조각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세 번 만에 돌아오게 하는 땅따먹기 놀이였습니다. 그날은 왜 그런지 땅이 잘 따졌습니다. 그래서 그 넓은 원을 제가 거의 독차지를 했습니다. 저녁때가 되었는지 골목 여기저기 굴뚝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아줌마들이 하나씩 골목에 나와서 자기네 애들 이름을 불렀습니다. 같이 놀던 친구들이 엄마가 부르니까 땅따먹기 하던 것 다 집어치우고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 둘 가고 나니까 나 혼자 덩그마니 남았습니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땅 많이 땄는데...’ 다 가 버렸습니다. 몇 살 때인지 기억에 남지 않지만 그 텅 빈 골목에 서 있을 때 그 느낌이 몇 십 년 후의 인생에 대해서 느낄 느낌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죽음이라는 것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죽음의 빛을 받아보면 우리 인생의 의미가 훨씬 달라집니다. 제가 알던 집사님 한 분이 회를 먹으러 군산으로 친구들과 내려가다가 고속도로가 꽉 막혀서 보니까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는지 사람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것을 보았답니다. 그리고는 친구들에게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러 가는 거니?”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죽음의 빛 아래서 인생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이후에 가 본 사람이 없는데 죽음이후 세계에 무슨 일이 있을까? 그래서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보들입니다. 여러분 교회 마당을 보십시오. 열린공간 마당을 보면 다 시커먼 땅이었는데 다시 싹이 납니다. 작년에 모두 잎 떨어지고 말랐던 식물들이 땅바닥에서 봄이 되니까 살아납니다. 고목과 같이 죽었던 나무가 다시 잎사귀를 내고 꽃을 피워서 오늘도 열린교회 앞마당에는 목련이 하얗게 피지 않았습니까? 죽은 것 같으나 그 죽음이후에 또 다른 생명이 있는 것이야말로 자연 속에서도 입증되는 이치입니다.
II. 다시 오실 그리스도
성경은 말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요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오늘 예수님은 그것에 대해서 더 상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그때가 올 텐데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오리라.”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한번은 이미 오셨고 또 한번은 앞으로 오실 작정입니다. 처음 오신 그 오심을 가리켜서 우리는 초림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그 초림은 매우 초라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왕궁이나 집에서가 아니라 말구유 천한 그 곳에 내려오셨습니다. 일평생 예수님은 가난한 생애를 사셨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왕이나 귀족에게서 볼 수 있는 어떠한 육적 존귀함도 그분에게는 없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는 마른 땅에서 나온 연한 순과 같아서 우리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무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고 예언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그 초림은 그야말로 겸손과 낮아짐, 종 된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의 이 초림의 낮아짐의 극치는 우리를 위해 종처럼 섬기시다가 마지막에 죄수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건에서 극치를 이룹니다. 그때 예수님은 더러운 강도들과 함께 매달리셨고 거기서 우리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다시 살리셨고 부활하게 하셔서 마지막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거기서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시키시는 주가 되어서 만유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잠시 후에 다시 오실 텐데 이것을 가리켜서 재림이라고 합니다. 호령과 천사장들의 그 놀라운 역사 속에서 이 세상에 내려오십니다. 하나님의 나팔과 그 모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타남 속에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재림의 날을 우리들은 예고 받고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볼 수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찬란한 영광 가운데 이 세상에 내려오십니다. 낮고 천한 구유에 가난한 집 갓난아기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천군천사와 모든 종들을 거느리시고 이 세상을 다스리실 심판주로 이 땅에 내려오십니다.
그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부활시키십니다. 죽은 자들은 다시 살아나 몸과 영혼이 결합되게 하시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 몸과 영혼을 변화시키셔서 부활의 몸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제껏 배우기를 사람이 죽으면 믿는 사람들은 천당에 가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옥에 간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충 배운 것이고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과는 좀 다릅니다.
즉, 이제 우리가 죽게 되면 몸은 이 세상에 남겨두고 우리의 영혼만 올라가게 됩니다. 그것은 아직 완전한 인간 존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는 몸과 영혼이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들이 들어가게 되는 나라는 엄밀하게 말하면 천국이 아니라 낙원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낙원은 천국의 대기소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낙원도 천국의 대기소이긴 하지만 천국에서 누리는 어떤 안식과 기쁨을 영혼으로서 어느 정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신자의 중간상태라고 이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죽으면 지옥에 간다고 배웠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음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음부는 지옥의 현관쯤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이 음부에서도 여전히 그 영혼이 지옥에서 맛보는 어떤 고통을 일정 부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음부에 있는 인간 존재는 아직 몸을 이 세상에 남겨둔 상태이기 때문에 완전한 인간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불신자의 중간상태라고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간상태에 있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재림하시므로 말미암아 모두 그 영혼이 다시 내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흩어졌던 모든 육체와 만나서 몸과 영혼의 연합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은 마지막에 부활하여야 하기 때문에 화장을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매장을 해도 몇 십 년이 지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어차피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아니면 그 몸을 영혼과 만날 온전한 육체로 만드실 수 있는 분이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상관없습니다. 매장을 하던 화장을 하던 수목장을 하던 무엇을 하던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결국은 어디엔가 원소로 흩어져 있을 우리 인간의 몸을 하나님이 창조에 버금하는 능력으로 모두 모아서 다시 위에 있는 영혼, 혹은 아래에 있는 중간상태의 영혼과 결합시키셔서 그래서 몸과 영혼이 온전히 만난 그러한 인간 존재로 변화시키시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부활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인간의 몸을 부활시키실까? 이 부활은 바로 이제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게 될 인간의 처지와 밀접한 연관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몸은 공중에도 올라 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TV에서 가끔 우주선을 고치는 우주복을 입은 우주인의 유형을 보실 것입니다. 그 우주복은 매우 특수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우주복을 입은 그 밖의 온도는 영하 273도입니다. 만약에 우리 육신의 몸으로 노출된다면 잠간 사이에 완전한 얼음덩어리가 되어서 툭 치면 와르르 부서집니다. 뿐만 아니라 진공상태이기 때문에 우리 몸이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간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하늘나라가 공상과 상상 속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이 하나님의 나라가 장소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는 것입니다. 이 하늘나라는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우주 공간 어디엔가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우리의 몸이 이 육체의 상태로서는 그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아주 특별한 몸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인간 존재는 영혼만 있거나 육체만 있어서는 온전한 존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둘을 결합시킨 온전한 인간 존재를 특별한 몸으로 변화시키시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또한 심판받을 사람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최후에 심판은 이제 대기소에 있는 음부의 영혼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서 불 가운데 던지는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종료됩니다. 만약에 우리의 이 몸을 가지고 불 가운데 던져진다면 아마 10분도 되지 않아서 우리 몸은 모두 타고 소멸되어 버리고 영혼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영원한 형벌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이 되기 위해서는 육체의 몸은 가지고 있지만 그 몸이 영원히 계속되는 하나님의 지옥의 형벌을 감당해도 소멸되지 않는 육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매우 특별한 몸으로 영원히 살도록 그들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심판을 받을 사람들도 부활로 나아오게 됩니다. 영원히 계속 되는 지옥의 불길 속에서도 결코 소멸하지 않는 그 육체로 끊임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감당해야 하는 영육합일체로 하나님이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이것이 결국은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다시 살아나게 하셔서 부활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이런 의문이 제기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죽었던 사람들이 부활한다면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영혼과 육체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그 상태에서 영생에 이르기에 적합한 부활체로 변화되게 되고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살아있는 상태에서 영원한 심판에 처해지기에 적합하도록 부활체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날에 있을 이 부활을 둘로 설명하시는데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심판의 부활입니다.
1. 생명의 부활
먼저 예수님은 생명의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믿는 자들이 경험하게 될 이 부활을 생명의 부활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지 몸과 영혼이 죽지 않는 다는 이유 때문에 생명의 부활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멸절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생명을 생명이라고 한다면 지옥 형벌에 처해질 영혼들에게도 똑같은 생명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한 몸으로 생명에 이르게 될 이 부활을 생명이라고 가리키는 것은 바로 이 부활을 통하여 신자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예수를 통해서 연합을 이룰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삼위일체의 하나님과의 연합은 곧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연합이며 이 생명적인 연합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사랑이신 하나님으로서 서로 교통하시는 그 속으로 우리 신자들이 연합되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당신 자신의 생명으로 교통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믿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활의 몸으로 다시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까?
이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선을 행한 사람들이라고 못 박고 계십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선을 행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일반적인 의미에서 도덕적으로 착하게 산 사람들의 그 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선은 사람들 보기에 선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인 바로 그 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창조 목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 인간을 각자를 창조하신 것은 목적이 있고 계획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적과 계획은 하나님의 영광이었고 하나님의 기쁨이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었고 고유한 목적이었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되는 것은 결과적인 목적이었고 부차적인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렇게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당신 자신의 영광, 하나님 자신의 기쁨으로 선택하셨으니까 이 세상에 살던 사람들 중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들이 누리게 될 마지막 열매가 바로 이 생명의 부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창조의 목적을 거슬려 살고 싶어 하고 창조주 하나님과 원수 된 죄 된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선을 행하며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거슬려서 살던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돌이키는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회심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거슬려서 살던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이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예수님을 믿게 되는 이 변화를 경험하지 않으면 누구도 신자가 될 수 없고 이 신자가 되지 못한 사람은 결코 선을 행하며 살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결국 여기서 말하는 선을 행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한 사람들, 은혜 안에서 창조의 목적을 따라서 살았던 사람들이라고 정의 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비록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자기의 죄를 깊이 뉘우치고 이제는 자기 자신이 온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시며 자기의 인생의 최고의 가치는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들, 그 원리를 따라서 중생한 마음으로, 영혼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았던 사람들이 바로 생명의 부활로 들어갈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얻은 모든 사람들은 이제 이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생각이 예전과는 달라져야 합니다. 예전에는 자기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살았지만 이제는 인생의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합니다. 열심히 돈 벌 때에 그 목표는 번 돈으로 호위 호식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열심히 돈을 벌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고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돕고 이 물질로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지 못하는 이 세상의 굽은 것들을 펴는데 기여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통치하기 위해서 높은 지위를 구했다면 이제 이런 생명의 부활로 나아갈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지위와 권력으로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망가뜨렸을 이 세상을 하나님 창조주의 뜻을 따라서 펼치고 고치는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이바지하면서 살도록 하나님이 그들을 불러주신 것입니다. 전에는 벌어먹고 살고 무지한 사람들보다도 더 좋은 입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공부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공부해서 이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빛을 주기 위해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은 우리의 재산과 지위 우리의 젊음 우리의 지식 생명까지도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 이바지 하는데 사용되어 질 때 그때 우리의 삶이 선을 행하는 삶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업하는 사람들은 남 주기 위해서 벌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끼치기 위해서 연구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통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발을 씻겨 섬기기 위해서 높은 자리에 오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든지 결국은 하나님을 섬기며 선을 행한 사람들의 인생을 살게 될 것이고 바로 그렇게 믿고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이 생명의 부활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보면 이름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리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남보다 부자도 아니고 건강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힘에 넘치도록 섬깁니다. 구역의 식구들을 섬기고 여리고 전도를 섬기고 이 병원 저 병원에서 환자들을 섬기고 옥에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해외에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 헌금하고 여름이면 그 좋은 휴가 반납하고 코피 나는 열심으로 해외로 뛰어다니며 복음을 전합니다. 얼마 전 병원에 갔을 때는 그 병원에서 섬기는 열린교회 지체들을 원장님이 많이 칭찬했습니다. 지체가 부자유한 환자가 섬김을 받다가 갑자기 대변을 확 쏟았는데 시트에 떨어질까봐 지체들이 손으로 받아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들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곳에서 지체들이 섬깁니다. 제가 보기에는 너무 과로했어요. 그런데도 몸이 부서질 듯이 그 많은 섬김 들을 감당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에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해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서 그들의 손만 잡아주고 눈물만 흘리면 하나님께로 돌아올 영혼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갈 사람이 없습니다. 몸이 열 개라도 그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주에도 여러 곳에서 그중에는 꽤 많은 청중들이 모이는 곳에서 저를 불렀습니다. 아무리 시간을 쪼개도 갈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나의 몸이 복제 인간이 돼서라고 한 2-30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중에 하나는 집안에 꼭 남겨두겠습니다. 원본이 어디로 가느냐가 문제이지...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왜 그렇게 안식이 없는 노동의 생애를 사셨는지 아세요? 할 일이 너무 많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이렇게 예배 중에 만나면서 목자로서 정말 안타까운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에는 무위도식하는 신자가 없게 해 주십시오.”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을 살았죠? 벌어먹기 위해 버리 적 거린 것 말고, 자기 즐거움을 위해서 이 모양 저 모양 살아간 것 말고 정말 땀 흘려 주님을 섬긴 날들이 있었습니까? 우리에게 그런 날들이 있었습니까?
[연약한 자에게 힘을 주고 슬픔의 쌓인 자 위로하며 길 잃은 자들을 친절히 이끄니 사랑의 주 내 주님께 주님을 섬기다 평안히 가리라 사랑의 주 내 주님께]
그렇게 사는 사랑하는 지체들이 마지막 주께서 다시 강림하실 때 영광 가운데 다 살아납니다. 각각 그들이 행한 바를 따라서 하나님이 그들을 상주십니다. 그때 자기만을 위해서 살았던 신자들은 그날이 매우 부끄러운 날이 될 것이지만 연약한 육신에도 불구하고 많은 물질 없어 가난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지식 없어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위 없어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있는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섬기며 살았던 그 지체들은 그 날에 얼마나 영광스런 몸으로 부활하게 될까요? 그들이 생명이신 주님과 함께 교통하며 그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날에 우리는 우리의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면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뵈올 것입니다. 기도 속에서 영혼으로만 만났던 그 주님을 우리의 육체로 친히 뵙게 될 것입니다. 그 소망을 가지고 놀면 안 됩니다. 우리가 만약에 안일하게 살다 가면 마지막 날에 지옥에 간 선교지의 수많은 영혼들이 우리를 고발할 것입니다. 네가 게을렀기 때문에 나에게 복음 전해준 사람이 없었다고 말입니다. 병들고 죽어간 이 땅의 수많은 우리의 동포들이 절규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네게 주신 그 많은 시간과 물질을 왜 날 위해 써서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않았느냐고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전도사 때 설교를 했는데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중의 여러 명의 지체들이 그 후로 몇 달 동안 기도하기만 하면 수 십 만 명의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 중의 꽤 여러 명의 지체들이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영안을 열어 주실 때, 우리의 영적인 귀를 열어 주실 때에 듣게 되는 이 세상의 고통의 음성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이 소리가 들리지만 세상을 향하면 이 소리는 절대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경이 되고 귀머거리가 됩니다. 정말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찰스 피니라고 하는 전도자는 아침이면 나와서 복음을 열심히 전하다가 맨하탄 거리에 주저앉아서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데 난 어떻게 합니까?” 라고 말입니다.
이 부활의 날에 우리가 생명의 부활로 나아올 때에 그 찬란한 영광을 생각해 보십시오.
열린교회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괴로울 때나 기쁠 때나 주님을 섬겼던 사람들은 얼마나 칭찬받을까요? 주님이 세워주신 그 자리에서 도망친 사람들은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자기에게 주신 젊음과 건강 물질을 드려서 구겨진 이 세상을 펴기 위해서 살았던 사람들, 주님의 심장 가지고 이 땅을 바라보시던 주님의 마음으로 이 땅의 회복을 위해서 울며 섬기던 사람들, 좋은 의복이나 맛있는 음식으로 위로받기를 거절하고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으니 내가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라고 예수처럼 고백하는 사람들은 그 날에 얼마나 복 된 사람들일까요? 주께서 일평생 주님을 섬기며 살아왔던 그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씻길 것이고 진리를 따라 살기 위해서 입었던 무수한 전투에서 입었던 상처들을 주님이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잠시 머물 이 세상을 향락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보낸 사람들이 아닙니다. 신자는 바로 이런 세상에서 주님을 본받아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더라면 섬기셨을 그 일을 위해서 온 마음을 드려 자기의 건강과 물질과 젊음과 지성을 드려 섬기기 위해 이 세상에 보냄 받은 것입니다.
선교학을 전공하고 계시는 유명한 목사님이 저를 만났습니다. 저희 교회를 구석구석 돌아보시고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듣기 좋아하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선교학자로 많은 교회를 연구했습니다마는 이 규모의 교회에서 이렇게 힘에 넘치도록 선교하는 교회를 처음 보았습니다.” 또 어떤 목사님은 이 교회는 자기 덩치에 비해서 4배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직도 여러분 중에는 이런 소명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방관자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슬픕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의 귀를 열어 주셔서 열방과 이 땅의 수많은 통곡소리를 듣게 하신다면 교회 안에 회심하지 못한 영혼과 자기 자식들, 동네 있는 수많은 영혼들의 그 고통 하는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여러분들이 이렇게 살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열심히 살 것입니다. 우리가 조그만 더 땀을 흘리고 우리가 대신 울어준다면 이 지역에 있는 수많은 영혼과 변화되지 않은 우리의 자식들, 회심하지 않은 열방의 많은 영혼들이 주님을 만나게 되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예수 섬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아까워하시겠습니까? 돈을 달라면 안 주시겠습니까? 건강을 달라면 하나님이 인색해 하시겠습니까? 능력을 달라면 하나님이 아까워하시겠습니까? 지혜를 달라면 하나님이 거절하시겠습니까?
[은혜와 긍휼을 열방 중에 전하소서. 빛 되신 주의 말씀]
이 대목에서 더 많은 말이 제 가슴에 있습니다마는 그냥 묻어두겠습니다. 난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주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생명의 그 날에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오늘 주님과 영혼을 위해서 피 흘리는 사람들은 그날에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부활입니다.
2. 심판의 부활
이어서 예수님은 또 하나의 부활을 말씀하시는데 심판의 부활입니다. 이 부활은 영원한 지옥 형벌에 처해지기에 적합하도록 몸과 영혼이 변화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지옥의 불길 속에 영혼들, 육체를 입은 그 영혼들이 던져질 때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몸으로 느끼는 고통의 극치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전부 망가졌고 일평생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았기 때문에 그 인간의 죄의 크기를 한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것입니다. 무한한 죄를 지었다면 무한한 형벌에 처해지는 것이 공의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형벌에는 끝이 없습니다. 천국에서 성도들의 기쁨과 행복이 나날이 증가되는 것처럼 지옥에서는 오히려 나날이 그 고통과 형벌의 크기가 가중될 것이며 이것은 영원히 계속될 형벌입니다. 영적으로 고통을 당하면 목회자도 울고 경건한 성도들도 여러분들을 위해 섬김의 기도를 드려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가족이 회심하지 않은 여러분들의 고통 하는 상태를 인하여 눈물을 흘려줍니다. 그러나 그날에는 아무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주던 섬김의 때는 끝났고 하나님은 당신의 무한한 공의 속에서 최종적인 심판을 완성하시므로 지옥의 그 고통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회심하지 못하고 악을 행하며 살았던 그 모든 인간들이 부활한 몸으로 형벌에 던져지는 그 불 주위를 돌며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며 그들의 고통 하는 심판을 통해 드러날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주의 영광을 보며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그치지 않고 계속될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악을 행한 사람들이고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지옥의 형벌에 던져지느냐는 의문이 제기 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 하나는 이 기준이 교회의 출석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 출석하는 이것이 기준이 된다면 거듭나지 못한 때 형식적으로 교회 나오는 사람들은 이러한 기준이 큰 위로가 될 것이지만 공정하신 하나님은 이런 교회의 출석을 기준으로 정하시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진정으로 자기의 길을 회개하여 돌이키고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으면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의 돌이킴이 진실하다면 그는 결국 하나님을 어려움 속에서도 섬기고야 말 것입니다. 잠시는 미끄러질 수 있을 것이나 곧 일어나서 주님을 섬길 것이고 주님을 위해서 창조의 목적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지체들과 한 대열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 주님 앞에서 자신의 큰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으심 때문에 자신의 죄를 참회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지옥 형벌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6.25 때 일이었습니다. 북한군이 쳐 내려와서 낙동강까지 밀리게 되었고 나라는 이제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 마지막 전선에 투입될 장병들이 군인교회에서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대부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전투지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군목이 무엇을 설교할까 고민하다가 한번 밖에 설교를 들을 수 없을 이 사람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을 설교했습니다. 지옥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들어가게 될 영원한 불의 형벌 장소라고 하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을 때 예배당은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그중의 한 장교가 손을 번쩍 들고 거만하게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지옥에 불이 있다구요? 그러면 우리는 거기서 불고기가 되겠네요.” 하고 비아냥거렸습니다. 많은 장병들이 함께 웃었습니다. 그때 이 젊은 목사는 말했습니다. “거기에 불길이 있는지 어떤지 당신이 그렇게 될 지 안 될 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잠시 후 당신이 직접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전쟁은 끝나도 그 장교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부활에 이를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주시지 않습니다. 오직 한 번의 기회는 이 세상에서 여러분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주어집니다. 오늘이라고 일컫는 이 날에 여러분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에서 여러분들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에 여러분들의 삶은 돌이키게 되고 예전에는 악을 행했으나 이제는 선을 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을 섬기는 삶이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십자가에 함께 못 박혀 죽은 그 강도를 낙원으로 이끄신 것처럼 생명의 부활로 나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도 이 약속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오늘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자기가 죄인 인 것과 지옥 형벌에 처해질 악을 행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위해 죽으신 것을 믿으며 생명의 부활로 옮겨 달라고 기도하셔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결국 우리는 이렇게 부활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잠시 머물 이 세상은 모두 지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우리가 영원히 사랑해야 될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먹어도 사멸하고 지나가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 부활의 소망을 굳게 붙들고 그때가 어느 때이든지 괴로우나 즐거우나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예수를 섬기는 복 된 성도들이 되어 그날의 기쁨 속에서 모두 생명의 부활로 우리 같이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