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눈물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18:33).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 보니까 아버지가 무엇 때문인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펑펑 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 아버지가 아들을 많이 사랑했던 모양입니다. 오을 우리 앞에 놓여있는 본문은 지금으로부터 삼천년 전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들도 아실 수 있는 다윗이라는 임금이었습니다. 이 다윗은 여러 명의 처를 거느리고 있었고 그 몸에서 난 소생이 스물아홉명 정도 되었다고 했으니 참 큰 가족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다윗에게 압살롬이라고 하는 셋째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은 같은 배에서 태어난 다말이라고 하는 누이와 함께 자랐습니다. 또 다른 부인에게서 큰아들 암논 이라는 아들이 태어났는데 자라면서 이 암논이 이복누이 동생인 다말에게 연정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를 좋아했는데 연애하는 마음이 불붙은 나머지 몸이 아픈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가 이 누이를 강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오빠인 압살롬은 복수를 꿈꾸게 되었죠. 이 이야기가 아버지 다윗에게 알려졌을 때 그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 졌겠습니까? 모든 백성의 본이 되어야 할 왕가에서 이복 남매 사이에 겁탈이 일어났으니 말입니다. 아버지는 큰 아들을 미워하기 시작 했고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에서 멀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맏아들로써 왕위로부터도 멀어졌지요. 아버지의 마음이 큰 형인 암논에게서 완전히 떠난 것을 알고 결국엔 압살롬이 복수를 하게 됩니다 자기 동생을 강간한 그 형을 초청해서 술을 먹게 한 다음 죽여 버린 것이죠. 이 소식을 듣자 아버지는 더 마음이 찢어지게 되었습니다. 큰 아들 하는 짓이 못 됐지만 셋째 아들이 큰 아들을 살인 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왕의 마음은 더 진노에 불탔고 셋째 아들 압살롬은 이 아버지로부터 멀리 도망을 가게 되었던 것이죠. 그렇지만 이 아버지는 셋째 아들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끔찍한 죄를 지었지만 압살롬을 잃어버릴 수가 없어서 마음의 노여움이 점차 가셔 갈 때에 신하들이 그 마음을 읽고 그 아들 압살롬을 데리고 와서 아버지와 화해를 시켰던 것입니다 형식적으로는 화해를 했지만 아버지인 다윗의 마음에 입은 상처는 너무 큰 것이었고 또 그 과정에서 아들인 압살롬도 아버지에 대한 진실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이 아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르게 위해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은 왕으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기에 눈물을 흘리며 부지중에 당한 봉변을 피하기 위해 남의 나라 땅으로 도망을 치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다윗의 군사는 아들 압살롬의 군대를 보기 좋게 무찔렀습니다. 반란의 괴수 이던 압살롬은 도망을 가다가 나뭇가지에 목에 걸렸고 결국은 장수들이 찌른 창에 맞아서 절명을 하게 됩니다. 난은 모두 평정 되었고 상황은 끝났습니다. 문제는 누가 승리의 이 슬픈 소식을 왕에게 전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장수들은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두 명의 파발꾼을 보내었습니다. 맨 먼저 파발꾼이 와서 보고를 합니다. ‘전쟁은 어떻게 되었느냐 이겼느냐 예 그러면 내 아들 압살롬은 어떻게 되었느냐 거기 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두 번째가 당도하게 됩니다. 제일 먼저 물어보는 말이 우리 아들 압살롬은 어떻게 되었느냐? 그랬더니 이 보고자가 차마 죽었다는 소리는 못하고 누구든지 왕을 대적하는 사람은 그 소년처럼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완곡하고 말함으로써 그의 죽음을 암시했습니다. 이때에 아버지 다윗이 가슴을 찢으며 망루로 올라가 거기서 슬피 울며 통곡하면서 아들을 여덞 번이나 부릅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불렀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난이 평정된 상황을 생각해 보면 다윗이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습니다. 이 압살롬이라는 인물은 아주 악한 인간 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겠다고 그 목에 칼을 겨뤘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워낙 인자한 분이었기 때문에 자기가 반란을 일으킨다고 해서 이성을 잃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아버지가 두고 간 아버지의 후궁들과 백주에 동침하고 그 소문을 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로 하여금 분노하게 하여 자기에게 독한 마음을 품게 하면 백서들 마음속에 있던 인자한 아버지의 영상이 지워질 것이라고 간교한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 보는 앞에서 자기의 바지를 벗기는 것 같은 부끄러움을 준 이 자식 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많은 병사들이 그 자기 자식 때문에 죽었고 온 나라는 도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대도 그 아들이 죽었을 때에 다윗이 문루에 올라가며 통곡하였습니다.” 아들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 하면 울었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을 보여 주는 대목이라는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가정을 주신 것은 우리 모든 인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가정을 주신 겁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속에서 태어나는 자식들이 엄마 아빠를 통해 우리의 참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 신지를 알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가정이라는 제도를 주신 것이죠. 특히 아버지는 매우 중요 합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 제일 먼저 만나는 세계는 엄마 품이지만 철들면서 엄마 무릎에 따로서기 시작할 때에 어깨 너머로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이 바로 아빠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할 때에 이 아이는 자라기 시작하고 말 못하고 생각이 없는 때에 본능적으로만 엄마를 찾던 이 아이가 엄마의 품에 서 또 다른 세계를 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아버지입니다. 가족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 함께 살아야지만 가족이 되는 것이에요. 멀리 있는 친척이 가까이 있는 이웃만 못하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아이가 태어나서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기까지 사랑을 받고 자라기위해서는 함께 살아야지만 가족이라는 거죠. 저는 지금도 후회되는 일은 뭐 그렇게 훌륭하게 교육을 받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부모님들이 시골에서 사업을 하신다고 큰아들인 저를 유치원까지는 함께 데리고 있다가 초등학교 들어 갈 때가 되자 혼자 서울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제 생애에 대부분을 부모님이 아니라 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학부형 회의 한다고 하면 애들은 젊은 엄마를 데리고 오는데 나는 할머니를 데리고 갔습니다. 친구들이 니네 엄마는 왜 그렇게 늙었냐고 그래서 챙피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시는 바와 같이 저희 때에는 중학교도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험이 아주 치열 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초등학교 삼학년쯤 되 면은 천천히 중학교 입시 준비를 시작을 하기 시작하고 방학 때도 놀 틈이 없었습니다. 방학 때면 집에 내려가는 데 한 두어달 놀다 오면 좋을 텐데 길어야지 열흘 그렇지 않으면 일주일 혹은 닷새 밖에 못 놀고 바로 서울 돌아와서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돌아오면 그 전날부터 울기 시작해서 집에 돌아와서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적응이 안 되고 집에 있던 엄마생각 아빠생각 동생생각 하면서 울며 밥도 못 먹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는지 참 이해가 안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부모들이 모두 그랬다곤 하지만은 참 무심하셨던 것 같습니다. 뭔 교통이 불편하고 시골에서 여기 올라 오는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사업에 바쁘셨다고 하더라도 요즘 같은 엄마 같으면은 일주일에 한번은 올라 올 텐데 일주일은 그만 두고라도 한달에 한번이라도 좀 올라와서 그래서 자식이 학교는 다니는지 뭘 먹는지 이렇게 보살피고 그랬으면 좋겠지만 전혀 기억에 없습니다. 이렇게 이러면서 어린시절을 막 밤 이면은 부모를 그리워하고 그러면 서 어린시절을 보냈어요. 그러다가 결국은 온 가족이 함께 살 기회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사업에 망하니까 타의에 의해서 모두 같이 모여 살게 됐어요. 그제서야 중학생이 되고 났는데 뭐 니가 보고 싶었다. 우리 아들을 보고 싶었다고 어머니가 손을 잡고 우는 데 가슴에 와 닿는게 하나도 없어요. 결국은 일평생 아버지와 거리감을 가지고 소원하게 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요즘 보면 애들을 조기 유학을 시킨다. 뭐 지방에 있는 명문 학교에 집어는다. 그러는데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 돼야 됩니다. 저 보십시오 그렇게 유학 시켰어도 별일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아버지가 한 없이 어려운 사람이 되었어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고 앉아본 적이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자라면서 아버지에게 따귀 한 대 맞아 본적이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없이 어려웠습니다. 얼마나 어려웠냐하면 아버지하고 마주 앉아 있으면 마치 가정 방문 온 선생님하고 앉아 있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결국은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난 나가고 아버지가 나오면 난 도로 들어가고 이러면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 속에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단점과 잘못하는 점들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가슴에 콱콱 박혔습니다. 이제 자식이 아버지를 향해 가지게 있는 마음이기 때문에 상처는 쉽게 받지만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부모에 대한 특별한 정이 없이 그렇게 아버님의 결함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스물한 살 되는 때에 제 인생에 큰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그건 바로 제가 예수를 믿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없다고 굳게 믿는 무실론자 였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엉터리 일수가 있을까 착하고 진실한 사람들이 고생을 하고 고통을 받는가 하면 악한 사람이 번성하고 저렇게 잘 사는 데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책임도 안지고 이런 세상을 내버려 두시나 그러고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교회도 그만 두고 안 다녔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오랫동안 방황했습니다.
사람의 철학과 사상에서 인생의 문제를 풀어보려고도 애를 썼지만 그러나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해답을 찾아보려 해도 그것이 인생의 무게를 점점 도 무겁게 할뿐 가볍게 하고 나를 해방시켜주는 못 했습니다. 그런 천신만고의 고뇌 끝에 언젠가는 마음이 겸손해 지면서 만약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내가 그 분을 믿고 싶다. 라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 앞에 나의 죄를 깊이 회개하고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제가 스물 한살 때 내 발로 교회를 걸어 나가던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삼십 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수요일 작은 이층교회였습니다. 삐그덕 거리는 풍금 소리를 맞추어 찬송가를 부르는 몇 명 안 되는 신자들과 예배를 드리면서 난 아무도 내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평화가 무엇인지를 경험했습니다. 마치 오랜 동안 가출을 했다가 고향집에 돌아오니까 따뜻한 밥과 그리고 따뜻한 아랫목 그리고 포근한 등불과 어머니가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지난 어느때 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어느 날 아버지를 다시 사랑하라고 나에게 강하게 타이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얘야 네가 육신의 아버지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찾아와 니 아버지를 대신해서 많이 너를 사랑해 주지 않았니 이제 너의 육신의 아버지도 불쌍한 사람이니 용서하고 사랑하거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마루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다가 얼마나 많이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바로 그때 내 마음속에는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생전 처음 기도하는 가운데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는데 그렇게 불쌍할 수 가 없었습니다. 나는 이제 것 까지 아버지가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았다고 느끼면서 내게 준 상처만을 기억했는데 어느 순간에 가만히 우리 아버지는 우리 가족 중에 누구의 사랑을 받았을까 그러고 생각했더니 가족 중에 아무도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해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나도 아버지를 그렇게 진실하게 사랑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외로웠던 것처럼 우리 아버지도 아무의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고 외로우셨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마루에 엎드려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후로부터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지난날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런 화해를 가르쳐주는 종교에요 하나님이 자기의 외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도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곁을 멀리 떠나 마음이 갈라진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 시키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 후로부터 저는 은혜를 받을수록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려고 많이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직 하나님을 모르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나하고 똑같이 변했으면 정말 뜨겁게 서로 사랑할 텐데 내가 아버지를 마음으로 용서해도 눈을 껌벅거리며 저를 쳐다보시는 아버지는 내가 너한테 뭘 잘못 한게 있냐? 이런 눈빛 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려는 마음이 수시로 꺽임을 당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 것 같이 내가 너의 아비도 사랑하니 너는 나의 사랑으로 너의 아버지를 사랑하라 그러셨습니다. 정말 내 마음속에서 아버지를 더 큰 사랑이 마음에 밀려왔던 것은 사십이 훨씬 넘으면서 철을 들기 시작할 때 또 일어났습니다. 그때야 옛날에 한일 한토막이 기억이 났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었는데 저와 동생이 공부하던 방 책꽂이 저 구석에서 우리는 평소에 못 보던 노트 한권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둘이 열어 보았더니 아버님이 쓰시던 일기였습니다. 글씨도 이쁘지 않고 삐둘삐둘 했지만 우리 둘은 그 글을 읽으면서 난생 처음 아버지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수신자도 없는 편지 형태로 쓴 그 글속에서 아버지는 당신의 마음에 있는 괴로운 심정을 토로 하셨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빚에 몰려 매일 빚쟁이들이 찾아와서 시달리는 바로 그때에 쓴 글이었습니다. 그 고통을 다 필역하면서 몇 번을 죽으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마지막 보태신 말씀이 있습니다. “ 그렇지만 나는 내 앞에서 자라나고 있는 내 아들들을 볼 때에 마음이 한 없이 뿌듯하고 나는 저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한다. 내가 어떠한 고생을 하더라도 이 아이들을 잘 기르고 싶다” 고 하는 당신 자신의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때에는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변함이 없기 때문에 일기가 가슴 깊이 다가오지 않았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 그때에 내 나이 되는 내 아들이 자라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엄마의 사랑과 달리 아버지의 사랑은 많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효도라는 것은 이렇게 말로 표현되지 않는 아버지의 마음 안에 감처어진 사랑을 찾아내는 것 그 자체가 자식의 도리요 효도다 라고 말입니다. 어떤 때는 평생을 살아도 자식들이 아버지의 마음 안에 있는 그들을 향한 사랑을 찾아내지 못하고 결국은 아버지는 자식을 많이 사랑했는데 자식들은 아버지를 향해 자기들에게는 관심도 안 가져주었다고 원망을 하며 죽을 때 까지 화해를 하지 못하는 자식들도 있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 TV에서 특집 방송을 했는데 로또복권에 당첨돼 대박이 터진 사람들이 그 후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를 추적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다 추적해 봤더니 예외 없이 모두 불행해 졌습니다. 물론 처음에 오천원 그렇게 당첨된 사람들은 불행해지질 않았지만은 몇 십억에 당첨된 사람들은 예외 없이 불행해 졌습니다. 신도시가 개발 된다 그래서 그저 똥지게 매고 논밭을 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때 부자가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집은 조상대대로 물려받던 논밭을 넘겨주고 백팔십억의 보상금을 받았는데 그 전까지는 화목한 가정이었습니다. 보상금이 나오면서 형제들이 각각 자기 몫을 찾겠다고 법원에 소송을 하고 싸움질을 해서 가족들이 갈기갈기 찢어지게 되었고 아버지는 내가 평생을 조상 땅 물려받아 여기서 농사를 지었는데 내가 농사 받게 지을게 어디 있다고 나보고 어디 가라 그러냐고 서울로 올라가잔 아들들의 손을 뿌리치고 밖에서 목매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그렇게 남편이 목매어 자살한 것에 충격을 받아 풍을 맞아 드러누워 버렸고 그리고 법원에서 싸움은 계속되고 풍비 박살이 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이런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있습니다. 특별이 부모와 그리고 부부 자식간에 관계 그 안에 인간의 참다운 행복이 있는 것이죠. 빚에 몰리고 빚쟁이들이 밤마다 와서 유리창을 부수고 난리를 치던 고통스런 때였는데 어느 순간에 동생들을 물리고 아버지가 저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큰 애야 내가 너한테 할 얘기가 있다 그러더니 뭐 심각한 얘기를 하나 그랬더니 내가 사는 게 너무 괴로워서 죽을 결심을 하다가 사실은 내가 점을 보러갔단다 그랬더니 그 점쟁이 하는 말이 다른 애들은 필요 없고 당신이 노년에 큰아들 덕을 볼 거라고 그래서, 그래서 내가 희망을 너한테 갖는다. 그러면서 그 가난한데 어디서 꺼냈는지 백원짜린가 종이 돈 하나를 오백원인가 그거를 꺼내서 꼬깃꼬깃 한걸 절주면서 용돈을 쓰라고 그러는데 그때 제 마음에는 뇌물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여튼 제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이제는 편하게 말할 수 있는데 참 효도하기 힘든 아버지였습니다. 악의는 없으신 순순한 분이 신데 얼마나 황당한 일을 많이 버리셨는지 모릅니다. 어느 날 연세가 칠십이 거의 다 되어 갈 때에 오셔서 얘야 내가 이제부터 부르는 거를 잘 알아보기 좋게 한문으로 좀 써보라 그게 뭐 뭔데요. 수첩을 하나 새 책을 요만한 걸 내려놓으면서 그래 넌 알거 없다 하여튼 간 한자로 적어봐라 그래서 그럼 부르세요 그랬더니 여관, 기차역, 화장실, 병원, 경찰서, 공항, 가격, 백화점, 시장 그러고 수십개 단어를 적었어요. 그거 하나를 딱 들고 생전 가 본적이 없는 중국을 혼자 가셔서 무역을 시작하신 분이에요 무역협회에 아예 등록을 해놓고 사업을 벌이셨으니 다른 분 같으면 경로당에 앉아서 화투나 치실 나이에 정력이 왕성하셔서 그렇게 사업을 하신다고 중국을 넘나드셨습니다. 성공을 해서 아버지 덕을 봤냐구요. 말도 마십시오. 어느 날 사업이 망가지면서 정확하게 일억원을 날리시고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결국엔 그 문제를 형제들이 다 해결을 드렸습니다. 그 때가 얼마 되지 않아서 더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 큰 애야 예 백오십 만원만 내놔라 예 왜요 우리 팔대 조 할아버지 묘가 무너져간다. 아니 그 할아버지 얼굴을 내가 봤습니까? 지옥에 있을 그 할아버지를 살아있는 사람 고기라도 한 근 사주면 모르지만 그 할아버지 산소가 무너지는 거 하고 당신가 무슨 상관이 있길 래 큰아들보고 백오십만원을 내 놓으라 그래서 얼굴도 모르는 팔대 조 할아버지 묘지를 고쳐주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갑니다. 할아버지가 팔대 조 할아버지라면 팔대가 내려오는 동안에 자손이 수천 명 일 텐데 왜 그 할아버지한테 유산을 받은 것도 아닌데 당신이 가서 내 돈을 가지고 그걸 고쳐줘야 되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예 그렇게 하십시오. 나는 팔 대조 할아버지 좋아하지 않지만 할아버지 산소 고치는 걸 당신이 좋아하시니까 하십시오.” 결국은 못 고치고 돌아가셨지만은 그저 그렇게 효도를 하려고 했습니다. 명절 때에는 얼마나 어린 애처럼 좋아하시는지 며느리하고 아들하고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캄캄한 오밤중에 오셔서 문을 두드리면서 명절 준비하자고 소리를 치시던 때가 있었습니다. 구정이 되면 늘 모여서 예배를 드렸는데 마음속에 그런 결심이 어느 핸가 있었습니다. 그래 뭐 이제 부모님이 사셔야 얼마나 사실까 그저 아버님이 언제까지 살아계실지는 모르지만 내가 살아계신 동안은 매년 세뱃돈의 액수를 갱신해서 드리리라. 그래서 작년보다는 올해 더 많게 내년에는 올해보다 많게 그렇게 세뱃돈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제가 세배를 드리면서 그랬습니다. 아버님 새해 복 많이 받고 신앙생활 잘 하십시오. 자 여기 지상 최대의 세배 돈 이 있습니다. 그리고 백만 원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좋아 하셨습니다. 너도 어려운데 이런 것 왜 주니 그러면서 얼른 주머니에 넣으셨습니다. 일주일에 하번씩 주일이면 예배가 끝나자마자 저희 집에 오셨고 한달에 한번 셋째 주는 수금하는 날이었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용돈을 넉넉하게 챙겨서 주머니에 넣어 드리면서 아버님 이거 누구 주시지도 마시고 또 이거 어디 보내지도 말고 모으지도 말고 잡수시고 싶은 것 있을 때 잡숫고 가시고 싶은 곳 있으면 택시타고 다니시고 그러다가 모자라는 게 있으면 며느리한테도 얘기 하지 말고 어머니에게도 애기하지 말고 저한테 전화 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또 드리겠습니다. 그 때마다 고맙다 너도 돈 없고 어려운데 이런걸 뭐 하러 주니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지 한번도 안 받으신 적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상처를 생각할 때는 아버지가 용서가 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나에게는 아직 읽혀지지 않은 많은 사랑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까 아버지가 다 용서가 되고 그리고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셔서 그분도 주님을 믿게 하시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는 영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참 용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그만큼 살아 보니까 내가 아버지였더라도 내가 주님을 몰랐으면 우리 아버지만도 못한 인생을 살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버지는 정말 외롭고 고단한 인생을 사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결심을 했습니다. 잘해 드리자 나 때문에 이 세상에서 참 복을 받을 거라고 예언한 사람이 하나님이 아니고 점쟁이였지만 그래도 참 우리 아버지가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말년에 암으로 병원에 입원 하셨는데도 얼마나 힘 이 넉넉하시는지 병원에 문병을 갔더니 제가 매일 문병을 다녔습니다. 어머니하고 다투고 계셨어요. 왜 그러시냐고 그랬더니 머리가 하도 더러워서 좀 감자고 하니까 몸도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잔소리 한다고 아버지가 버럭 화를 내시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조금 있다가 일어나세요. 제가 머리를 감겨 드릴께요. 그랬더니 그렇게 기운 없다고 하시는 분이 벌떡 일어나셨어요. 휠체어를 타고 소리 없이 따라 오셨어요. 제가 밀고 갔습니다. 세면대에 가서 수건을 두루고 맵더라더 좀 참으세요. 그리고 머리를 감겨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그것 이제 인생에 있어서 최초였어요. 머리를 깨끗하게 감겨 드리고 세수까지 씻겨 드리고 손까지 씻어드린 다음에 머리를 깨끗이 말려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시원하고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여튼 참 효도하기 어려운 그래서 참 인내심을 많이 시험하시는 분이였어요. 저도 옳게 집을 누리면서 산적이 이제까지 별로 없지만 아버지가 늘 세집에 전전하시는 것이 마음이 괴로워서 형제가 의논을 해서 그래서 돈을 좀 모았습니다. 일년 동안에 인세를 다 모으고 해서 아파트를 조금한거를 하나 장만하는데 일부라도 보태려고 그렇게 작정을 했는데 사건이 또 터졌어요. 그리고는 결국은 그 빚을 갚느라고 한 일년 이상을 정말아버지 때문에 고생을 하며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그 상처만 남아 있더라도 아버지가 다시 그렇게 했더라면 아마 아버지를 다시 안 봤을 텐데, 이상한게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나니까 밉지가 않았습니다. 속은 상하고 경제적으로는 참 어려웠지만 이게 우리 아버지의 모습인데 달라지실 리가 있겠는가 하고 그렇게 웃으면서 넘길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거지요.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 주신 사랑 그리고 내가 니 애비를 사랑한 것처럼 너도 니 애비를 용서하고 사랑하거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십은 넉넉히 사실 것 같은 그분이 칠십 오세를 일기로 갑자기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 전에는 항상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아버지는 내게 해준 건 없지 늘 사고 치시고 날 힘들게 했지 덕분에 나는 주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지 우리 아버지는 내가 성화되는데 참 도움을 많이 주셨지 그렇게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2월에 돌아가시고 나서 첫 번 어버이날을 맞게 되니까 그때 비로서 철이 들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아버지가 이 세상에 있는 자식을 위해서 해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살아계신 것이구나, 주일이면 쓸쓸이 올라가 보면 아버님이 앉아 계시던 자리는 비어있고, 창을 등지고 앉아서 하얀 머리카락에 힘없이 앉아서 식탁을 기다리시면 조용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면서 여러 날을 그리움 속에 눈물로 보내었습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 합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들은 저를 오늘 처음 만날 겁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들이 누구든지 부탁 합니다 가족을 많이 사랑 하십시오. 가족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의 부모를 깊이 사랑하시고 아버지를 사랑하십시오. 그분의 사랑은 여러분들이 아는 것과는 틀립니다. 마음속에 많은 사랑이 있어 엄마는 그것을 표현해도 아버지는 표현하지 않고 가슴에 묻어 두는 것이죠.
“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달토록 고생 하신다 ” 고 했는데 이 어찌 어머니의 마음만을 노래하는 노래 일 수가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사랑이 그 못지않게 매우 큰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 계셔서 나보다 행복하게 지내시겠지만 일주일이라도 다시 돌아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님이 일주일을 여기 올수 만 있다면 내가 일년을 먼저 가도 좋으련만 그래서 머리고 감겨 드리고 세수도 씻겨 드리고 가고 싶어 하시던 곳에 모시고 가고 늘 바쁘다는 핑계로 못해드린 효도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 세상에서 아무리 수많은 사람에게 박수갈채를 받고 놓은 지위를 누리고 재물을 많이 모았다 할지라도 자기의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완성된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자기의 인생을 온전히 이룬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을 자기의 목에 칼을 겨눈 자식을 향해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하고 통곡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육신의 부모의 마음이라면 우리의 영혼을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더 뛰어난 마음이겠으며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이 얼마나 크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은 육신의 부모보다 더 큰 우리의 영혼의 아버지가 계심을 가르쳐줍니다. 그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또 우리 인간도 지으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지어 서로 사랑하고 그 슬하에 자식들이 부모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며 그렇게 한 가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인 왕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킨 이 인간처럼 우리 인간도 창조주 하나님을 버리고 도망 쳤습니다. 그리고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으로 바로 자기를 창조하신 아버지를 버리고 먼 나라 땅에 와 근본을 잃어버리고 사는 인간들이 되었던 것이죠. 만약에 사람이 자기 나아준 부모를 잊고 제 멋대로 살아가고 가문의 뿌리도 모른다면 어찌 후레자식이라고 아니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육신의 부모를 알아보지 못해도 그렇게 되는데 우리의 영혼과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신 있는 모든 것들의 아버지이신 그분을 몰라보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이 바로 잘못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를 믿는 것은 나만 아니하는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렇게 인간이 철을 들자 자신의 육신의 아버지의 사랑을 알아보는 것처럼 영혼이 철을 들자 영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알아보게 되는 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이렇게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참 아 보실 수 없어서 하나님이 자기 의 외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으로 보내셨으니 이분이 이천년 전에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분이 오신 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지은 우리 모든 인간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그리고 형벌을 받으심으로 위로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아래로는 인간과 화목하게 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내려 오셨던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가난하고 병들고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눈물과 땀과 피로 섬기시고 마지막에는 그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는 이 땅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서로 물고 찢으며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사는 근원이 되는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형벌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 서 하나님 보좌위에 오르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고 내가 죄인이며 내가 육신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처럼 내 영의 아버지를 다시 찾아가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구원은 하나님과의 끊어졌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님 없이 살던 때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물질만으로 사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가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세상을 넉넉히 살아갈 자원을 공급해 주십니다. 물질이 필요할 때면 하나님께 기도하면 주님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십니다. 정신이 너무나 혼미하고 곤고해서 혼자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힘들을 공급해 주시고 우리를 위로 하십니다. 깨어져서 도저히 회복 될 수 없는 저 같이 망가진 사람들도 그 사랑으로 마음을 녹여 다시 아버지를 사랑하게 해주시고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하시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쓴물을 머금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때를 지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이 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힘을 주셔서 그리고 소망을 갖게끔 만들어 주십니다. 예전에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속에서 갈등하며 살던 사람들도 하늘 아버지와 화해함으로 육신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줍니다.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 찼던 가족들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고 나면 고통스러운 인생의 일로 인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을 때 전에는 두려움과 원망뿐이었지만 이제는 그 모든 고통의 가시밭길이 주님이 나를 당신께로 부르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주님을 나의 길이라 부르면서도 그 길로 가기 싫어 딴 길로 해맸네 어둡고 캄캄한 그곳 가시밭길에 길 잃은 양 한 마리 떨고 있을 때 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의 음성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 지금도 저는 생각합니다. 주님을 모를 때에는 그렇게 원망스럽던 아버지가 주님을 알고 나니까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버지 당신은 이 세상에서 나에게 더 많이 사랑과 효도를 받으셨어야 했습니다. 하고 말이죠. 철들기 전에는 이런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마음에 칼을 품고 사는 것처럼 우리가 아직 영혼의 철을 들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 아버지를 몰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 하셨습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합니다.
어느덧 저는 오십이 넘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고난의 많은 길을 극복하고 미워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을 용서하고, 원수 맺을 수 있었던 사람들과 사랑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시고 인생의 슬픔을 환희로 바꾸시면서 광야와 같이 마른 땅에 꽃이 피고 새 우는 것 같은 인생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피도 살도 섞이지 않은 여러분이지만 나는 여러분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나처럼 그렇게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을 짊어지고 사는 줄을 압니다. 나는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합니다. 육신의 아버지와 깊이 화해하십시오.. 그리고 영혼의 아버지와 깊이 화목하십시오. 예수그리스도는 바로 이 일을 위해 여러분들의 죄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셨으니, 그 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화해와 용서, 세상을 이기는 축복들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가정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