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막으로 나아간 사람들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출33:7)
I. 본문의 배경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시내산으로 율법을 받으러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아래 남아있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속히 내려오지 않자 사람들은 이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자고 하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금붙이들을 다 모아서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얼핏 보면 말도 되지 않는 황당한 일들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이일에 있어서 아론이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올바르게 인도 하기는 커녕 그들의 여론에 밀려서 어리석은 일들을 하게 된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의문이 듭니다. 이것도 사실 우리의 문맥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의 문맥에서 보면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이들이 우상을 만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을 섬기자는 뜻으로 배재적인 사상을 가지고 다른 종교를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역사적으로 늘 있는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만 그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 대한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모든 종교는 자신의 신을 형상화 했고 그렇게 보면 그들이 섬기는 신은 매우 구체적이고 확실성이 있는 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 여호와는 일체의 형상을 만들지 말도록 뜻했고 그것을 어기는 것은 우상숭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송아지를 만든 것은 여호와 말고 다른 신을 섬기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인도하여내신 그 하나님을 형상화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형상화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수단으로 삼으로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아주 엄격하게 금하셨고 이일에 대해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백성들을 모두 진멸하시려고 하다가 모세가 자신의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을 걸고 하나님께 중보 하였고 하나님이 이들에게 잠시 노를 푸신 후 말씀하시는 내용이 오늘 읽은 33장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커다란 영적 각성을 동반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형상으로 만드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 번째 이유는 당시 자신이 형상화 하여 다른 모든 신들과 함께 어깨를 겨루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을 거부하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만약 하나님을 이렇게 형상으로 만들게 되면 여호와의 종교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특성들이 소멸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을 형상으로 가지고 있으면 혹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거나 하나님의 관계가 막혔다 할지라도 그 형상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거기 계신 것 같은 암시를 받습니다. 어느 정도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교회가 형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가장 커다란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이형상과 이모든 숭배할 상들이 사라지고 나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입힘을 받고 영안에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매달리며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열납 될 때는 그런 우상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하나님이 생생하게 느껴지지만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신앙이 진리와 은혜를 떠나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염려하고 의도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 하나님은 참 진리와 영안에서 경배를 받으시는 분이기 때문에 너희가 참 진리와 영의 은혜를 떠나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 더욱 하나님을 마음으로 의지하고 매달려 여호와의 종교의 영적인 원래에 충실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형상을 금하신 것입니다. 셋째로는 하나님이 우상을 금하신 것은 우상을 만들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우상을 향한 경배를 혼동할 것을 뻔히 아셨기 때문에 금하셨던 것입니다. 당신의 형상을 빗겨 어떤 형상을 만들면 그것을 섬길 때 우리의 마음은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경배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 되니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우상과 공유하기 원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신앙의 함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 아벡의 전투입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이 함께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법궤를 들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 법궤는 하나님의 큰 신통력이 있어서 잘못만지면 사람이 죽기까지 했으니 이 법궤를 들고 가면 전쟁에서 이기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그게 아니라 전쟁에서 패배하고 법궤까지 빼앗겨 이방인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충격은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법궤의 하나님의 임재가 잇는 것이 법궤의 효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는 성소의 언약 때문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지 보여주셔서 여호와의 종교의 영적인 특성을 분명히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우상을 만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었지만 하나님 아닌 다른 신을 섬기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이도록 형상화해서 그것을 의지하며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까 말씀드린 세 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절대로 금하신 것이었고 이것은 하나님의 큰 진노를 샀습니다. 모세의 간절한 중보가 있었고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셨습니다. 진노가 누그러진 가운데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아주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주기로 약속했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고 그들의 힘으로는 정복할 수 없으니 사자들을 앞서 보내어 가나안 주인들을 멸하고 이기게 하셔서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자신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즉시 알아차렸으니 커다란 죄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고 있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 대한 큰 각성이 일어나자 자신들의 최고의 유업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도 아니고 그 땅에서의 번영도 아니고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애굽을 탈출할 수 있었고 홍해를 건널 수 있었고 광야를 지날 수 있었고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게 되었던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슬퍼하면서 한사람도 자신의 몸을 단장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세속적이고 육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진노하시는 하나님과 그 앞에서 범죄 한 자신들의 생각과 의식이 자신을 가득 채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신앙적인 태도를 보시면서 모세에게 장신구를 떼어내고 당신이 주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호렙산에서 말씀하셨을 때 호렙산에서부터 장신구를 떼어내고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 명령의 내용이 7절부터 12절의 것인데 하나님께서 직접 그것을 명령하셨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모세가 그것을 적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영적인 지도자였던 모세는 이 국가적인 위기 교회적인 위기 속에서 장막하나를 취하여 이 바깥에 멀리 떠나 쳤습니다. 이것은 바로 일종의 텐트였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진 중앙에는 성막이 있습니다. 그 성막 말고 제사를 드리기 위한 성막이 아닌 또 다른 회막을 진 안이 아니라 진 바깥에 쳤습니다. 남자만 수십만 명이 애굽에서 탈출 할 때 200만에서 300만 가까운 사람들이 중앙에 성소를 놓고 그 주위에 12지파가 둘러서 진을 쳤으니 아마 중심성막에서 회막까지 나가려면 진 밖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거리를 걸어 나가야 됐을 것입니다. 진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했으니 성막 중심으로 계산을 한다면 상당한 거리를 걸어 나가야 했던 위치에 텐트를 치고 거기를 텐트, 곧 만나는 텐트라고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회막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렇게 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거기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II. 위기 속에 사용하신 사람들
A.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
여기서 우리는 위기 속에 사용하신 사람들이 누구인지 보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앙망한다는 뜻은 바라보고 희망을 가지고 원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나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마음으로 먼 길을 걸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마련된 회막으로 나아갔습니다. 거기서 무슨 일을 했을까요? 11절에서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사람이 자기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말입니다. 모세는 진으로 돌아왔지만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회막에서 무엇을 하였을 까요? 민족은 위기를 당하였고 말씀이야 부드럽게 하셨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며 준엄한 말씀을 듣고 세상의 즐거움들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그 회막에서 이 영적인 위기 앞에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기 위하여 회막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B. 기도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심
하나님은 교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기도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왜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원래 그렇습니다. 원래 모든 사람들이 뜨거운 마음으로 일시에 열렬히 기도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기도하게 하시기 전 먼저 영혼을 깨어나게 하고 그 마음을 각성시킨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게 하십니다. 세상도 없고 나도 없소 구속한 주만 보이도록 분 한분께 영혼의 시선을 고정하고 간절히 매달리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형성하십니다. 그들이 마음을 모아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그들의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의 죄까지도 그들이 공동체적으로 짊어지게 하셔서 남의 허물과 죄가 마치 자신의 죄와 허물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며 아버지 앞에 기도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이 기도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위기 속에 있는 나라와 교회를 건지신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는 권력 쥔 사람들이 주인공 같고 돈 많은 사람들이 주연인 것 같고 힘 있는 사람들이 그 모든 것을 연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 세상의 역사를 움직이십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여서 당신의 역사를 움직이시고 중대한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 하나님의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영혼이 깨어난 이들은 슬픔 속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일상의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뒤로한 채 걸어서 먼 회막까지 갔습니다. 얼만큼 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회막이 섰는지는 알 수 없고 분명히 멀리 떠나게 했다고 했으니 진이 끝나는 지점에서도 꽤 먼 곳, 아마 진중에서 들려오는 일상적인 소리나 대화에서 나는 여러 가지 소음들이 전혀 들리지 않는 먼 거리에 회막을 세웠기 때문에 뜻을 정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막으로 나아가는데 상당한 시간과 거리가 요했을 것입니다 거기로 걸어가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 까요? 아직도 진에서는 하나님의 준엄한 선포가 있었음에도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애절하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법은 거의 없습니다. 소수의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소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한 사람이 곧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1907년도에 평양에 불어 닥친 위대한 부흥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의 역사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 역사가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계획과 프로그램에 의해 일어 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디선교사를 비롯하여 그 사람의 각성된 선교사들이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하면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낫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바로 이렇게 부흥의 역사 뒤에 간절히 기도하던 사람들이 있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사람들은 다수의 사람이긴 했지만 처음부터 다수가 아니라 그저 모닥불처럼 모여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사용하셔서 정말 크고 놀라운 일들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실제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의 사람들이 교회를 지키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종종 사람들은 왜 이렇게 적은 사람들밖에 기도하지 않을까? 또 온 교인이 가득모여서 열렬히 기도하는 방법은 없을까? 모두 좋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너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행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기도에 모인 사람들의 수도 중요하지만 모인 사람들이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어마어마한 돈을 쓰고 거기서 사람들의 얼굴을 알리고 이름을 높이고 이런 일들을 아무리 많이 한다할지라도 그런 모임에서 하는 형식적인 기도는 골방에서 3사람이 모여서 마음을 모아 눈물로 기도하는 기도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회나 커다란 집회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물같이 녹고 쏟아 부어졌는지를 알아보시고 당신의 위대한 일들을 기도의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의 사람들을 사용하여 일 하십니다. 그렇게 일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일들이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높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큰 부흥과 각성 우리가 할 수 없는 위대한 일들의 성취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고 남 때문에 기도가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고 아무도 없고 나 혼자 있어도 내가 마음에 불을 지펴 중심을 쏟아놓으면 하나님께서 나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또 다른 불을 주실 것이고 그들을 모아 기도의 불길을 일으키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온 산을 수개월동안 태우는 어마어마한 삼림의 대 화재가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일어납니다. 어마어마한 불덩이를 갖다가 화산을 퍼붓듯이 부어서 그런 불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큰 불이든 작은 불이든 처음 시작은 불꽃하나로 시작합니다. 큰불이라고 해서 큰불로 시작하고 작은 불이라고 해서 작은 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불꽃 하나로 시작해서 그렇게 온산을 수개월동안 태우면서 무엇으로도 끌 수 없는 불길들을 뿜어갔던 것입니다. 남이야 기도하든지 말든지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고 자신이 마음을 쏟아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런 사람들 마음을 움직여 기도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 되는 것이지 모양새 갖추기 위해서 기도하고 분위기 따라서 기도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세월이 많이 흘러도 기도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C. 기도와 구별된 마음과 환경
세 번째는 기도와 구별된 마음의 환경입니다. 왜 하나님은 있는 그 자리에서 기도하라 그러시지 왜 그렇게 진 바깥 멀리 떨어진 곳에 회막을 두고 사람들이 그 진을 떠나 회막으로 나아가 동떨어진 곳에서 기도하게 하셨을까요? 이것은 기도가 마음의 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우리의 마음과 환경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오만가지 사물들의 모습이 우리의 눈을 가득 채우고 우리의 눈을 가득채운 사물들은 우리 마음속에 크고 작은 욕망들을 불러일으키고 즐거움과 관련된 연상을 가져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흐트러진 마음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기 위해서는 모아져야 되는데 우리의 모든 마음들이 이 시간과 공간에서 산산이 찢겨져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 기도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화)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들이 흔히 오늘 20mm의 비가 내리겠습니다. 혹은 100mm의 비가 내리겠습니다. 하면 100mm하면 10cm인데 10cm의 비가 공정하게 내리면 그것이 뭐 그렇게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100 혹은 20mm가 내리면 커다란 비인데 순식간에 쏟아지는 비가 평평한 곳에 그대로 내리면 그게 위협적일 수가 없습니다. 완벽하게 평평한 대지위에 10cm 비가 왔다 그러면 절반정도는 땅에 스며들고 절반정도는 땅위에 있겠지요. 그런데 지형은 그렇지가 않고 높은 곳과 낮은 곳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같이 70, 80% 넘는 곳이 산으로 되어있는 나라에서는 전국에 20mm의 비가 내리면 실질적으로 70%만치면 실제로 100mm의 비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왜 그 위에 쏟아지는 물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마어마한 물이 되어서 계곡을 훑으면서 쏟아져 내릴 때 바위를 무너트리고 나무를 뿌리 채 뽑으면서 무서운 기세로 계곡을 달아내려 개울까지 내려와서 내려오는 나무와 쓰레기 더미들로 커다란 교각을 들이받고 부러트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물의 힘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모릅니다.
무엇을 보여 주냐면 우리의 흐트러진 마음이 모아질 때 거기서 정신과 영혼의 힘이 나오고 이것이 기도가 될 때 그 기도가 능력이 있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모아지지 않은 마음으로 백번을 기도해도 그것은 하나의 중얼거림, 염불과 같은 것이지 하나님을 향해 힘 있는 기도가 되지 못합니다. 영적인 세력들을 파하고 단단한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동토와 같은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힘차게 역사하게 만드는 기도는 모아진 기도입니다. 마음이 모아진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인의 마음 안에서 모아졌을 때 모아진 그 사람들이 모였을 때 회중전체에 큰 기도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소리를 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너무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육체의 행동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속에서 이 기도를 위한 우리의 생각들이 한곳으로 쏠려서 힘 있는 물줄기처럼 하나님을 향해 흘러가는 그런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시 복잡한 일상사에서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공간적인 떠남뿐만 아니라 정신적이고 마음적인 떠남이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구별된 기도의 시간과 구별된 기도의 장소가 필요합니다. 누구에게 묻기를 ‘당신이 기도하십니까?’ 묻고 고정된 장소와 시간이 언제냐고 물을 때 더듬거리면 그 사람은 거의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거나 아니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예수님에 버금가는 기도의 세계를 가지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인데 후자일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전자입니다. 그렇게 약한 우리들이기 때문에 구별된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고 그것은 구별된 마음과 정신을 갖는데 이바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매일매일 싸우며 기도하기 싫어하는 자기 자신을 채근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III. 적용과 결론
여러분은 지금 아마 모두 마음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 용서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 기도를 위하여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모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희망이 우리하나님 한분밖에 없는 것처럼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되어서 주님께 매달리십시오. 주님이 이미 주신 것들 혹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들 때문에 교만해지고나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의 기도의 불을 끄기 위한 사탄의 대표적인 전략입니다. 모든 기도의 모양과 예배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하고 깨어진 마음, 하나님 앞에 모아진 마음이 없는 모든 섬김과 봉사 이것은 열렬한 기도의 영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을 돌려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난해질 이유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이 붙들어 주시기 때문에 좋은 것이고 만약에 우리에게 나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의지하게 하시기 위하여 주시는 상황과 환경들입니다. 매순간 자신에게 절망하는 사람만이 주님을 붙들 수 있습니다. 매순간 자기를 믿지 못하는 사람만이 주님께 든든하신 그분께만 믿음의 닻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 마음을 다하여 구별된 마음과 환경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기도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진을 빠져나와 일상의 안일함과 즐거움을 버리고 먼 회막을 따라 나아가던 이스라엘 사람들.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 앞에 범죄 한 자신과 이스라엘을 생각하며 은혜와 용서를 빌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되십시오. 하나님이 거기서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크고 놀라운 은총을 바로 그 회막에서 여러분에게 보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