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함이란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레 24:1-2)
녹취자 : 김세나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전에 관해서 정확히 말하면 성막에 관한 규례를 일러 주시는 가운데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아시다시피 성막은 그렇게 화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 돼지 가죽으로 만든 텐트였고 18평 쯤으로 되어 있는 그 텐트가 12평짜리 방과 6평 짜리 방으로 나뉘어 있는 그러한 곳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으면서 이제 그 물 돼지 가죽은 거무틱틱하게 빛이 바랬을 것이고 먼 발치에서 보면 그 성막이 그렇게 특별하게 보였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성막 안으로 들어가면 각종 중요한 제사를 드리는 도구들이 있고 하나님을 섬기는 물품들이 있었습니다. 청색, 홍색실로 짜고 그리고 그 모든 성막의 내부는 아주 화려했습니다. 바로 그 성소 안에서 어떻게 등불을 밝힐지를 오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 주어 분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등잔불에 관한 규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캄캄한 어두움으로 가득찬 성막 안에서 이 등잔불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섬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이 무엇일까요. 이 세상 사람들은 육체의 눈으로는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봅니다만,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신 분인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진리들이 얼마나 찬란한 빛과 그리고 놀라운 미를 지니고 있는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신학을 공부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에 관해서 크게 감화를 받은 것, 그것이 신학을 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목표가 하나님이 된 사람, 인생의 목적이 예수가 된 사람들이 신학을 공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한꺼번에 아멘하세요.) 그 캄캄한 성막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했습니다. 그 빛이 필요했던 것처럼 또한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신학의 도상에 서서 주님께 부름을 받았으면 열심히 찬란한 이 진리의 빛을 마음에 가득 담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제일 먼저 주님을 깊이 만나 열렬히 주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이 시대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깨닫되 여러분들은 창칼이나 돈으로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 있는 것은 오직 칼도 없고 돈도 없고 오직 단 하나 진리의 말씀 하나가 있어서 이것을 가지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진리가 없다면 목회자의 마음 속에 진리의 빛이 없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부른 모든 사람들이 저절로 진리의 사람들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주님이 부르셨어도 자신이 그 부름에 충실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소명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능력을 받은 것도 아니고 소명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진리를 올바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제 이렇게 여러분들이 부르심을 받은 이 소명 앞에서 열심히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학교에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참 미래가 걱정이 됩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공부를 안하기로 뜻을 세운 것 같습니다. 웃음이 나오겠습니까? 나같으면 웃음이 안 나오고 눈물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게 뭐가 우스워요? 여러분, 그렇게 공부 안 해 가지고는 좋은 목사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심각하냐 하면 신학자와 기독교 철학자들은 하나님을 다른 하나님으로 만드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고 목회자들은 성경이 가르쳐 주는 신앙의 길이 아닌 다른 일을 가르쳐 주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처음에 예수를 믿을 때 그 마음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예수를 믿으려 합니다. 삼자가 합력하여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 때에 비록 변두리에 있는 어느 작은 한 교회에서라도 진리의 말씀을 딱부러지게 외치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말씀이 아니면 이 인간들이 살길이 없다라고 외칠 수 있는 담대한 증거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한순간의 혈기나 한순간의 오만으로 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신학의 체계가 있고 주님을 깊이 만나 사람으로서 자신의 학문에 대해서 철저히 헌신하는 노력이 있어야 된다 이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여러분들 아픈 데를 찔러서 미안합니다만, 여러분들은 공부하는 출발부터가 서울대 다니는 학생들과 틀린 출발을 했습니다. 실력이 훨씬 못 미치는 가운데 인류대학에 다니는 세상 학생들보다 훨씬 어려운 신학을 배우겠다고 출발 선상에 섰습니다. 출발은 어쩔 수 없이 잘못 섰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과거는 돌이킬 수가 없고 이제 달려가는 그 길에도 다른 사람들이 한걸음 달려갈 때 여러분들은 두 걸음을 가고 다른 사람들이 걸을 때 뛰고, 다른 사람들이 뛸 때 여러분은 더 피나게 달음질 하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라고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한번 신학교를 들여다 보십시오. 얼마나 나태하게 살아가는지 정말 걱정이 됩니다. 나는 여러분들 중에서 공부하다가 기절을 하거나 건강을 헤쳐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해야 할 공부에 대한 압박 때문에 잠을 줄인 사람은 여러분 가운데 얼마나 될까요? 신학교 입학하면 1학년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모두 전도사로 뛰어들어서 넥타이 매는 거나 좋아하고 그리고 교회 봉사라는 미명하에 별로 유익도 안 되는 일들로 교회에서 하세월 시간을 보내고 그러는 가운데 4년 혹은 3년을 졸업하고 이제는 강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어야 하니까 이제는 아무에게도 배우려고 하지 않고 이제는 자신이 마치 기독교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양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한번 해 보십시오.
언젠가 제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어느 학생이 2학년 때 찾아와서 저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교수님이 우리보고 읽으라고 수업시간에 소개해 준 책을 모두 노트에 기록을 해서 모두 사서 보거나 빌려 보려고 애를 썼는데 정확하게 1년에 한 키였습니다. 차곡차곡 쌓아 놓아서 한 키씩을 읽으라고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신학교 2년, 3년, 신대원 다니는 학생들은 이제 7년을 공부했는데 한번 일곱 키를 읽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레포트 쓰기 위해서 배껴쓴 책, 그리고 공부하다가 30페이지 읽고 집어 치운 책, 이런 것 말고 한번 여러분들이 끝까지 집착을 가지고 책을 읽어서 사상을 소화한 책들이 신학교 입학해서 애태껏 오는 동안에 얼마나 되었는지 한번 생각을 해 보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는 우리들이 다가오는 시대에 점점 예수를 안 믿을 이유를 발견하는 이 세대 속에서 우리의 사명을 옳게 감당해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학문을 공부하고 여러분들의 신학대학원의 초빙 교수로 와서 한 시간 강의를 하면서, 이름이 칼빈 대학원 이잖아. 그래서 여러분들은 개혁 신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한 60-70명 신학생들이 모여 있길래 개혁신학을 사랑하느냐고 물으니까 아멘이라고 그럽니다. 여러분 중에 기독교 강요를 읽은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니까 두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칼빈이 뭐라 그랬는지도 모르고 칼빈 대학을 다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열심을 내어서 여러분들이 학문을 탐구하고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서 여러분들이 공부해서 자신 안에 진리의 밝은 빛을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이제 목회의 길을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그 때 여러분, 얼마나 목회 사역이 고달픈가 하는 것은 여러분들은 아직까지 몰릅니다. 그러다가 교회를 했는데 교회가 잘못해서 잘 안 된다. 그러면 공부할 의욕도 없을뿐더러 이제 생존의 문제,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됩니다. 그래서 몸부림 치느라고 공부할 시간이 없습니다. 잘해서 교회가 부흥을 했다. 개척을 했는데, 100명 200명 300명 400명 500명 1000명 2000명 막 늘어난다. 그러면 더 공부할 시간이 없습니다. 교회가 안 되는 것 보다도 더 공부할 시간이 없습니다. 왜, 이른 새벽부터 시작해서 깊은 밤까지 코피가 나도록 몸부림쳐도 그 일을 다 감당을 못해. 거기에다가 밖에서 활동까지 좋아해서 정치판에까지 발을 내밀게 되면 그 다음에는 인사불성이 되도록 일을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책 한자 볼 시간이 없습니다. 보통 결심을 가지고 몸부림치지 않는한 어림도 없습니다. 그 때 여러분 그 나름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마치 겨울이 되는 것입니다. 겨울에, 여름에 베짱이가 좋은 그 날에 한없이 기타나치고 놀았더니 겨울에 개미의 집에 먹을 것을 얻으러 가는 추운 신세가 되었죠. 여러분도 그렇게 됩니다. 그것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하지 그렇지 못하면 알지도 못하는채 이제 권위를 세우고 사람들을 짓누르고 교인들이나 타고 다니고 그러려고 하지 않겠어요? 너무나 많은 목회자들이 교인들에게 책을 안 읽힙니다. 왜 안 읽히냐 하면 책을 읽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면 성경이라고 열심히 읽히냐, 성경도 잘 안 읽힙니다. 왜 그럴까. 본인이 공부를 안 하니까 교인들이 책을 읽고 책을 열심히 읽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목회자인 자신에게 무안한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졸렬한 목회를 해서 여러분, 되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지금부터 열렬하게 공부해야 됩니다. 진리의 밝은 빛은 공부만 해서 되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사상의 힘과 은혜의 힘입니다. 여기에 만약에 여러분, 돌맹이를 한 트럭 쌓아 놓았다고 칩시다. 그것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보라고 하면 둥글둥글한 돌맹이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벽돌을 놓고 쌓아 올리라고 하면 열 트럭을 가지고와도 정확하게만 쌓아 올리면 높이높이 쌓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여러분들이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뭘 사먹는 것에는 5천원, 만원 기분 좋게 먹고 책 한권에 5천원, 만원이라고 하면 그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짝 놀라는 그런 마음가지고는 안 된다 이것 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공부하고 그리고 지금 이 맘때 여러분들이 온전히 공부에 헌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묻고 싶겠죠. 목사님이 목회를 해보니까 도대체 공부가 얼마나 되었으면 되겠습니까. 내가 오늘 시원하게 이야기 해 주겠습니다. 건강을 위협받을 정도로 5년 정도는 오직 공부에 헌신해야 합니다. 오직 5년, 바람직하면 한 10년 정도는 매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뭐가 우스워요. 그러고도 일생동안 계속 학문을 하는 일에 매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한 사람이 이 단에 올라가 설교를 할 때 그 설교가 신학적인 내용을 갖추어서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화를 줄 수 있기 위해서는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학문을 공부하고 그 학문을 흡수하는 일에 자신의 전력을 바쳐야 하는 것이죠.
여러분, 저는 개혁신학을 아주 사랑하고 그리고 개혁신학을 목회 속에 온전히 적용해 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요즘들어 사람들이 묻습니다. 개혁주의가 교회 성장에 도움이 되냐고 말입니다. 성장에 도움이 되라고 개혁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성경과 가장 가까운 신앙이요, 신학이라고 믿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칼빈이 사랑스러워서 개혁신학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이 성경에 매우 근접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 후계자들에 의해서 발전을 이룬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이 오늘날 개신교 사상의 형성에 있어서 자양분이라고 믿기 때문에 우리들이 공부하는 것이죠.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서 개혁신학을 습득하고 그것을 도구 삼아서 성경을 통해 진리가 무엇인지를 체득하면서 여러분들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죠. 목회의 모든 좋은 열매들은 신앙에서 나오지 학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학문을 공부하면서도 그것이 신앙안에서 소화되지 못할 때에는 마치 불붙지 않은 장작이 온 집안에 연기를 가득내서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쏟아지게 하는 것처럼 한 사람 안에서 소화되지 않은 신학에 대한 지식들은 온갖 부작용들을 양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열심히 공부해야 하십시오. 5시간 자는 것은 죄짓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나이에. 그렇게 살아서는 복덕방도 그렇게 해서는 돈을 못 벌습니다. 땅을 파는 모래 장수를 해도 그렇게 게으름을 부려서는 안 된다 이것 입니다. 각오를 세우고 딱 하고 나의 실력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만한 실력이 되는가 하는 것은 정확하게 측정해 봐야 합니다. 신학책 한권만 들어보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번만 들어보면 여러분들의 실력이 어디에 와 있는지 너무나 잘 알 것 아닙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치열하게 공부하고 특별히 여러분들은 신학교에 곧바로 들어와서 인문학 분야의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부지런히 역사와 철학, 문학,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그러면서 여러분들의 소양을 보충하고 특별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일반 계시에 대한 이해들을 넓혀가야 합니다. 어디 놀 시간이 있고 한가하게 우리들이 시간을 보낼 시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온 마음을 다해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면서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요즘은 덜 옵니다. 초창기에는 신학교 학생들이 굉장히 많이 왔었습니다. 하여튼 총신 학생들만 80명이 우리 교회에서 우글 거렸습니다. 가끔 대학원 학생들도 많이 옵니다. 대학원 학생들 들어와가지고 교인들하고 같이 교리 시험 보면 평균 20-40점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교리반을 수료 하려면 당시에 85점을 맞아야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잡다한 지식들은 많이 배웠는지 모르지만 진짜 핵심적인 지식, 하나님이 누구이고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증거하고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믿고 무엇을 규칙으로 삼으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러한 전체적인 이해가 현저하게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신도 정리가 잘 안 된 상태에서 어떻게 어두운 이 세상에서 목회할 때 이렇게 불빛을 비출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신앙과 삶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개혁파 정통주의 마스트리히트라는 사람은 자신의 책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신학지식은 신학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때문에 사는 삶의 교리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고 나를 지으신 목적일까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신학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이 신학은 다른 학문과는 다릅니다. 다른 학문은 내가 이해를 해서 사람들에게 전달을 해 주면 끝납니다. 지식을 장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학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관한 학문을 배우고 그것을 내 안에 먼저 불을 켜서 환하게 밝혀 나 자신부터 먼저 지혜롭게 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어둠 속에 헤매던 모든 어리석은 일들을 버리고 진리의 빛 가운데서 행할 수 있는 기쁨의 삶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누리고 그리고 거기에서 주님의 생생한 사랑과 성품을 깨닫고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했기 때문에 그 발견한 지식에 우리의 눈물과 땀과 피를 발라서 그래서 아직까지도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에게 인생은 이렇게 살고 주님을 믿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말과 혀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궤적으로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신학을 하는 사람은 제일 먼저 구도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I am the way. 내가 곧 길이요. 길이신 도이신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구하고 그 분과 하나되기를 갈망하는 구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목회의 길을 걸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오늘날 하나님을 향한 이러한 구도의 염이 없는 사람들이 신앙을 가르치기 때문에 이렇게 예수를 믿으면 성공할 수 있다. 저렇게 예수를 믿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예수를 믿으면 신나는 인생을 살 수 있다라고 복음을 왜곡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잘못된 번영주의와 성공주의는 사실은 복음이 아니라 복음이라는 이름은 가졌지만 모두 쓰레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우리의 마음에 이 진리의 빛을 밝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 안에서 끊임없이 등잔불을 밝혀야 될터인데, 그 등잔불을 밝히는 데 필요한 기름을 어떻게 조달할 지를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참 흥미롭습니다. 그 거기에 사용되는 기름은 감람유인데 올리브 기름입니다. 이 올리브 기름을 백성들에게 가지고 와서 그래서 그것을 거두어서 그래서 이제 등불을 밝히라고 하는 것인데 오늘 성경에 보면 감람을 찌어낸 순결한 기름이라고 그랬습니다. 여기에 찌어내다라고 하는 이 부분이 히브리어로 까띠뜨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까따뜨라는 동사의 피동 분사입니다. 그 까따뜨라고 하는 단어는 무슨 뜻이냐 하면 깨뜨리다. 때리다. 부수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그 기름은 감람나무 열매를 깨뜨려서 부수어서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람나무 열매를 가지고 기름을 착유하는 그러한 일상적인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일상적으로 그 사람들은 감람유를 많이 사용을 했습니다. 그래서 감람열매를 그냥 먹기도 했지만 그 감람나무의 씨를 잘 볶아서 그것을 찌어서 그것을 압착기에 넣고 프레스로 눌러서 그래서 기름을 짜내는 것이 일방적인 방식입니다. 그들도 그렇게 기름을 짜서 먹었습니다. 바르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그리고 여러 가지 용도로 그 기름을 사용을 했고, 그 올리브유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친근하게 사용했던 그러한 물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성막에서 사용하는 감람유는 그렇게 짠 것이 아닙니다. 감람열매를 놓고 절구로 때리면 깨뜨려집니다. 깨뜨려지면 그 사이에서 저절로 기름이 흘러나옵니다. 그 기름을 하나씩 하나씩 체집해서 만든 그 기름으로만 성막에서 불을 켜라 이뜻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기름 사이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압착기에 집어 넣어가지고 프레스로 돌린 그 기름은 세게 짜서 양은 많이 나오지만 거기에는 억지로 눌러서 짜기 때문에 반드시 기름이 아닌 불순물들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올리브 열매의 과육들이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름이 아닌 것들이 섞이면 우선 불빛이 밝지 않고 거기에서 온갖 그을음이 납니다. 그러나 아까 말씀 드린바와 같이 까띠뜨하는 방법으로 체집한 기름은 아주 순수하기 때문에 거기에 불을 붙이면 아주 맑고 그리고 연기하나 없는 깨끗한 기름이 되었기 때문에 연기하나 없이 환하고 밝은 빛이 성막 안을 찬란하게 비추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나는 조금전에 여러분, 공부해야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정말 공부해야 합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이미 여러분보다 상당히 먼저 목회의 길을 걸어간 사람으로서 그리고 몸소 교회를 개척을 해서 17년을 목회를 해 오면서 내가 느낀 소감으로 여러분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만약에 이 학교 선생님이면 내가 공부하라고 하는 말이 여러분들의 마음에 과히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왜, 선생님은 원래 그러시니까. 그런데 나는 여러분들의 선생님이 아닙니다. 그냥 목회하는 목사고 그것도 서울도 안 되고 촌에서 목회합니다. 평촌. 시골 사람들과 목회합니다. 그런데 절실하게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나의 17년의 설교 사역속에서 느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성경책을 들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 마음안에 있는 것처럼 설교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공부해야 할 양은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공부하지 않으면 잠시 후 아주 쓸모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 안 하는 사람하고 어울리지 마. 대부분 나쁜 사람들입니다. 놀지 마세요. 전도하기 위해서는 만나도 절대로 어울리지 마세요. 친구 똑같이 따라 갑니다. 맨날 공부 안 하고 볼링이나 치고 골프나 치는 친구들 따라다니면 겉멋이 들어서 맨 그러고 돌아다닙니다. 해외여행이나 하고 돌아다니려 하고 쓸모 없는 사람들이 됩니다. 붙어 앉아서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열렬히 공부해야 합니다. 영어는 넘어야 할 벽이죠? 그러니까 치열하게 공부해서 졸업하기 전에 자유롭게 영어 원서라도 읽을 정도로 공부해야 하고 히브리어와 희랍어는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원어가 담긴 그 계시가 가장 순수한 계시의 말씀입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강조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공부 많이 한 분이 가장 훌륭하게 설교 잘 할 것이라 이야기 하면 여러분들이 동의를 안 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설교를 잘 하게 하는 요소는 단순히 공부를 하는 것 이상의 무엇이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보여주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서 사람들이 왜 그런지 그 말씀이 설교하는 그 사람의 영혼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신학을 공부하면서 자신이 깨뜨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을 공부하고 많은 학문들을 하는 것은 주변이고 핵심부에서는 바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들이 직접 성경으로 접하면서 그 말씀 안에서 여러분들이 깨뜨려질 때 거기에서 순수한 신학의 그 진액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난 여러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물론 매일 그럴 수야 없겠지만 성경을 읽다가 그 말씀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쿵 하고 때려서 그래서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가슴이 멍해지고 그래서 그 말씀 앞에 떨면서 무릎을 꿇고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일들이 매일 일어날 수는 없지만 가끔은 일어나야 합니다. 난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학을 공부하다가 보면 모든 지식은 고린도전서 8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람을 교만하게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을 많이 습득하고 나면 그 지식이 신학지식이라도 그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자꾸 얼 듯 얼 듯 우리의 마음 속에서 우습게 여기는 마음의 교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만약에 내버려 두면 오히려 그 학문이 그 사람을 더 쓸모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왜, 우리들이 정말 전해야 할 것은 지식의 나부랭이가 아니라 그것은 다만 도구일 뿐이고 학문을 도구로 해서 그 사람 마음속에 진리의 말씀을 던져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여러분들이 그 진리의 말씀에 깨뜨려져야 합니다. 한글 성경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는 것은 여러분들이 영어를 몰라도 알 수 있는 것이고 히브리어를 몰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공부를 열심히 안 한다면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까. 입학할 때 보다 주님을 더 사랑합니까. 입학할 때보다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까.
오늘 보십시오. 그렇게 감람나무 열매가 절구에 얻어맞고 쏟아지고 나니까 그 기름이 순전한 기름이 흘러 나왔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깨어짐입니다. 여러분, 저는 극단적인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극적으로 칼빈주의로 돌아선 신학자들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여기에서도 인정을 못 받고 저기서도 인정을 못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자기가 깨뜨려지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고 주권이 무엇이고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찬양) 우리 죄와 강팍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하시네
채플실에 올라와서 혹은 교회에서 자신의 모든 무거운 짐을 주 앞에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은혜 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말씀을 펼치면 어린아이처럼 그 말씀이 가슴에 깊이 찔려서 흐느끼고 그 말씀에서 나타난 빛 때문에 감격하고 그래서 성경을 가슴에 끌어안고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른 시절이 신학교 시절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도 세월이 흐르면 변합디다. 그리고 그 위에 끊임없는 자기 깨어짐 속에서 성령의 은혜가 여러분 속에 깊이 흘러 들어와서 그래서 여러분 자신을 변화 시키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살과 피가 되도록 가슴에 함께 지닌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 여러분들이 정말 하나님 앞에 쓸모 있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