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공부 방법론(3)
녹취자: 이경순
제가 여러분에게 빛으로 산다는 것은 책을 드렸습니다. 여러분이 다 읽고 오셨는데 사실은 한 두 시간 가지고 계속 토론을 하고 싶었는데 강의하기 전에 먼저 그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고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제가 책을 읽히기 위해서 굉장히 많이 노력을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주기도문이라는 책을 제가 썼는데 460페이지 정도 되는데 그 책을 중국에 계신 분에게 번역을 맡겨서 8월에 번역이 끝나는데 여러분에게 올 때에 늦어도 10달 그 때쯤 여러분 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책도 대만에 있는 번역을 잘하는 분에게 맡겨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 중에서 정말 소명감이 투철하고 공부할 능력이 있고 그리고 목회와 신학을 같이 배울 수 있는 아주 우수한 학생들이 열린 교회에 와서 김금성 선생 뒤를 이어서 강호범 선생 뒤를 이어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배우고 한국어를 완벽하게 습득을 해서 이런 작업들을 대만이나 이번에 주기도문도 신천에 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했는데 그러면서 상당한 액수의 번역료도 지불할겁니다. 이런 것들을 이렇게 하지 말고 여러분이 이것들을 해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대 되는 것은 이 책이 천 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할 수만 있으면 한국어 책과 중국어책이 동시에 나오면 참 좋겠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정말 기도해 주셔야 될 제목이 하나 있는데 여러분 제 책 두 권이 중국 정부에서 승인을 해서 ISBN을 받았습니다. 그 두 권이 게으름 하고 새벽기도입니다. 그것을 여러분 졸업생인 찐신 자매가 여러 출판사에 의뢰를 했더니 출판사에서 누구 출판사 큰일 나는 것 보려고 그러냐고 그러면서 이런 책은 안 된다고 다 거절당했는데 감속성인가 하는 멀리 있는 성에서 한 출판사가 다 면밀히 검토해보더니 우리가 해보겠다고 해서 정부에 올렸는데 놀랍게 그게 승인이 났습니다. 다른 사람 모두 어떻게 이런 책이 승인이 날수 있냐고 정말 괜찮겠냐고 했는데 어쨌든 승인이 났습니다. 여러분 알고계시죠 지금 존 스토트나 이런 사람들의 책들이 ISBN을 받은 책이 아니라 삼자교회 안에서만 보도록 지정된 책이라는 것 알고계시죠? 그래서 지금 찐신 자매가 아주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교사리바이벌,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구원와 하나님의 계획, 이런 책을 정식으로 출판하겠다고 요청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굉장히 걱정스럽게 그 자매를 보고 있는 겁니다. 이 자매는 열렬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꼭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자 그러면 다섯 개의 질문이 있는데 그 사람을 불러서 직접 질문하라고 하세요.
(질문 1에 대한 답변)
중생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교리인데 라틴어로 유니어쿰 크리스토라고 합니다. 아주 유명한 교리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 연합이 육적인 연합이 아니라 영적인 연합이다. 두 번째는 그 연합의 성격이 신비적인 연합이다. 자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지요. 그래서 그 삼위일체에서 성자가 보냄을 받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오시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독특하게 인성과 신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떤 학생이 수업시간에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그와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의 몸을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이 계시는데 그분이 이 세상에 내려오셨으면 거기에는 성자가 있으신 건가요. 없으신 건가요. 하고 질문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관계이십니까? 계십니다. 어떻게 계십니까?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뭐하고 부르냐면 전문적인 이야기로 엑스트라 칼비니스트쿰이라고 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칼빈적인 외제라고 할까요. 이것은 인성은 장소에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인성은 여기에 없으십니다. 하늘에 계십니다. 신성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거기에 계시면서 여기에 계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그 아버지는 크게 두 가지인데 위격적 아버지 그담에 신적 본질로서의 어버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서 기도하실 때 불렀던 아버지는 위격적 아버지가 아니라 신적 본질로서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모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면 성자께서 기도하실 때 성자 자신을 포함해서 성부와 성령이신 신적 본질께 기도했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삼위일체에서 매우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언젠가 여러분에게 기회가 있으면 삼위일체를 15시간정도 특강을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제가 삼위일체 책을 한 500페이지 정도 써놓았습니다. 그것이 신앙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주제입니다. 자 그러면 왜 이야기가 필요하냐면 예수그리스도가 계시잖아요. 그 예수그리스도가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면 중생합니다. 중생하는 즉시 그 사람은 영적으로 예수그리스도와 접붙여진다고 하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접붙여진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이신 예수그리스도와 지체인 우리들 사이에 생명과 사랑이 흘러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와 연합입니다. 이 연합은 다시 둘로 나눠집니다. 원리적인 연합과 실제적인 연합입니다. 원리적인 연합은 불변합니다. 영원히 불변합니다. 그리스도께 연합된 사람이 다시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적인 연합은 가변적입니다. 그것은 신자가 그리스도를 향해 가지고 있는 순결한 사랑의 크기에 비례해서 그 영향이 긴밀해지기도 하고 느슨해지기도 하고 이렇게 변화가 됩니다. 이중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연합에 어떻게 참여하시는지, 특별히 성령님이 어떻게 사역을 하시는지 ,그런데 성경에 보면 성자가 성도를 향해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입니다. 아버지는 내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많이 나오는데 성령 이야기는 안 나옵니다. 이런 문제였습니다. 아버지가 내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나오는 게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였고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셨으니 라고 입니다. 그 사랑이 곧 성령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이 함께하신다고 얘기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조나난 에드워즈 의 전집 제21권 성령 론에 보면 이런 내용 들이 풍부하게 나옵니다. 지난번에 제가 예일대에서 나온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집 보여드렸습니다. 그 책을 도서관에 꼭 주문해서 한 달 안에 사 놓도록 하세요. 300만원, 400만 원 정도 될 겁니다.
(질문 2에 대한 답변)
우리들이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공부가 꼭 필요한데 역사하고 철학에 대한 공부입니다. 여러분 역사철학이라는 과목이 있습니다. 요새 한참 뜨고 있는 과학 철학이라는 과목입니다. 특별히 칼포퍼와 토마스쿰의 논쟁 같은 것은 아주 현대에 굉장히 인기 있는 과학철학의 논쟁입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음악철학이라는 과목이 있습니다. 이미 있었지만 법철학 같은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과학이나 예술이라는 학문에 어떤 변화 뒤에 숨어있는 철학적인 코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만약에 중국에서 영화가 상영되는데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를 포함해서 그런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 천편, 수 만 편을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영화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비평적으로 이해할것인가 하는 관점이 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인문학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필요한 과목입니다. 인문학을 하는 사람은 인문학을 신학적인 입장에서 비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문학을 계속 찬양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독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지금 제가 쓴 이런 책들을 보면서 어떻게 그런 것들을 비판하면서 우리자신의 입장을 세워야 되는지를 어는 정도는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해 전에 여러분에게 글로벌 사회에 있어서의 진리의 전달자라는 세미나를 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 못 들으셨을 겁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유럽의 지성사 미국의 지성사 아시아의 국가들이 미국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받고 있고 여러분의 나라도 예외는 아니거든요. 그런 것들을 볼 수 있는 통합적인 눈들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잘못되게 오염되게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이 이야기 하는 진리를 굳게 붙드는 신앙과 견고한 학문이 필요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색이 굉장히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질문한 학생에게 이 책을 한 번 더 읽으면서 어떤 식으로 세상을 저자가 바라보는가. 그런 관점들을 여러분이 이해해 갔으면 참 좋겠다. 생각합니다.
(질문 3에 대한 답변)
개혁주의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양의 공부를 요청합니다. 매우 중요한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신학공부에 있어서 소위 이야기 하는 보편성과 개별성의 조화의 문제입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신학을 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신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중에는 극단적인 오순절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 학교에 들어왔을 리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뭐라고 자기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런 개혁주의적인 것들이 내 신앙이다 라는 고백을 가졌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신학이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신학의 개별성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개별성입니다.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겁니다. 왜냐면 우리가 공부하면서 예를 들어서 교회에 대해서, 오순절 신학, 칼빈주의, 바락트주의 모주의 모주의 하면서 우리의 신앙이 거기서 시작하는 겁니다. 이것이 신학의 개별성입니다. 자기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공부해 나가는 겁니다. 그것만 공부해서는 안 됩니다. 이 신학이 저 멀리 초대교회 때부터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신학의 역사의 발전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좀 두리뭉실하고 좀 정확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가 이단의 공격을 받으면서 정확해 지고 정확해 지고하면서 발전되어 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편신학을 공부할 때는 아주 폭넓게 공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공부가 만나는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왜 자신들의 신학이 이런 형태를 갖게 되었는지 어디까지가 양보할 수가 있는 것인지 어디까지는 양보할 수없는 것인지 이런 데에 대한 이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신학의 독창성도 생겨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런 개혁신학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답이 되었나요. 공부 열심히 해야 합니다. 공부하다가 한번쯤은 병원에 실려 가야 됩니다.
(질문 4에 대한 답변)
화란에 갔을 때 두 사람을 만났는데 한사람은 개혁신학자였고 한사람은 선교전문가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학자에게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개혁주의 의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왜 그렇게 너무나 쉽게 개혁주의를 버렸느냐 했더니 대답이 앤 라이트 먼트 계몽주의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계몽주의라고 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나 다 있었던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런데 계몽주의가 병이라면 교회의 살아있는 생명력과 경건 이런 것들은 말하자면 면역력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이런 면역력이 다 떨어진 겁니다. 충분히 개혁주의는 있지만 그것은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은혜와 성공의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성적인 것으로 전락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몽주의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설득력이 워낙 뛰어난 겁니다. 그러니까 그쪽으로 기울어 버리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주는 경종이 이겁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정치한 개혁주의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공부와 학문적인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만약에 기도하고 생명력이 있는 신앙, 충만한 성령에 이끌리는 삶, 그담에 사역에 있어서 영적인 열매, 이런 것들이 없으면 여러분 교회도 충분히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열렬하게 기도하라는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신학공부하면서 어느 교회엔가 소속이 되어서 아주 뜨겁게 모든 성도들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신실하고 열렬하게 그렇게 교회를 섬기는 사람으로서 신학공부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생각만 하면 너무나 사랑스럽고 눈물이 나는 그런 교회가 있는 가운데에 신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질문 5에 대한 답변)
제가 여러분을 무시한다거나 낮게 평가한다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모두다 이 책을 잘 이해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읽었을 겁니다. 그런데 특히 3장 같은 것 가변성과 불변성의 상대주의 그런 것들을 여러분이 평소에 그런 책들을 읽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는 쉬운 이야기지만 그런 생각을 일체 안하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내용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책을 읽으라고 이야기 하고 싶은 겁니다. 우선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에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어거스틴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내 책중에 무엇인가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칭송하지 말고 그분을 찬송하십시오.’ ‘그러면 만약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입니다. 나를 비난하십시오.’ 어느 학생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책이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이기 때문에 나는 그 책을 읽으면 행복합니다.’ 그 이유는 저의 관심사가 하나님의 아름다움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공부하는지 아십니까? 요즈음은 거리가 멀어졌지만 한때 양자역학에 깊이 흥미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을 보면서 너무 예뻤습니다. 그 안에서 다른 양자역학을 전공하는 나보다 아주 뛰어난 세계적인 학자들은 전혀 못 보는 게 저한테는 보였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아름다움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성경의 진리의 빛을 비춰볼 때에 반짝이는 아름다움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앞에 보면 제책에 추천 글을 쓰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나라의 최고의 철학자중 한사람입니다. 아마 거의 세계적인 학자입니다. 그분은 미국에서 동양철학도 강의했습니다. 동양철학에도 아주 능하십니다. 특별히 칸트철학에 대해서도 능합니다. 그분을 조만한 한번 여기에 모셔오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박수 못 치게 해드릴 겁니다. 그분은 영어, 불어, 라틴어, 희랍어, 화란어, 이태리어, 덴마크까지 합니다. 그분은 그 책속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런 통합적인 사고는 아마도 오랫동안 독서를 하고 그 통합적인 사고를 몸에 익혀온 결과일 것이다. 기억나실 겁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아침에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런 모든 지식들을 어떻게 통합해 나가는지를 계속해서 공부하면서 여러분이 숙달되어 나갈 때 여러분이 내 나이 쯤 되면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여러 해 동안 휴가를 못 갔다가 지난해에 한 달 휴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집사람은 우리아들 결혼식 준비 때문에 못가고 저 혼자 유럽을 갔습니다. 갈 때 중요한 목표 두 가지가 있었는데 프랑스 위글리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었고 피렌체에 가서 르네상스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나라 안내하고 나를 좀 가르쳐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열심히 찾았는데 거기서 한국인으로서 박사학위나 석사학위를 르네상스를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골라보라고 했더니 이태리 여행을 20년 동안 여행을 안내했던 자기가 이태리어를 꽉 잡고 있다는 사람이 제 여행의 가이드를 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액수의 일당을 요구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하고 여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한 시간을 다녔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앉혀놓고 르네상스가 무엇이고 왜 르네상스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한 시간 동안 내가 강의를 해 주었습니다. 그 담서부터 이 사람이 일체 말을 안 하는 겁니다. 오히려 질문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안내만 했습니다. 어디가 어디 있느냐 그러면 데려다 주고 했습니다. 삼일동안 그 사람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 사람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나중에 깊이 저를 멘토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피렌체에 갔을 때 르네상스 역사가 거기서 발생하잖아요. 그래서 여러분이 시오니나나미 라는 사람을 아시지요?
그 사람의 책을 좀 읽어보고 갔습니다. 르네상스 역사는 여러분이 신학을 공부하면서 반드시 공부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근대사상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을 생각했습니다. 우리학생들이 여기 와서 피렌체를 보면서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에 대한 기독교의 해석을 공부할 수 있다면 신학공부에 얼마나 커다란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너무너무도 공부하고 싶고요 내가 아는 것은 너무 아주 작은 부분의 신학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나 자신을 나 자신을 학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공부하고 될 수 있으면 르네상스에 대해서도 한번 같이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아 제가 열린 교회를 은퇴하면 시간이 많이 날 텐데, 은퇴하면 늙어서 힘이 없겠죠. 자 이렇게 해서 벌써 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났습니다. 계속해서 목사신학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목회자라는 말을 여기서도 사용하지요? 그런데 그 목회자라는 게 무슨 뜻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답변을 합니다. 교인들의 인도자다. 교회의 행정의 책임자다. 교회를 대표하는 어른이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2절이나 에베소서에서 보면 포니노러스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목자입니다. 그래서 이 목회자라고 하는 것은 정체성을 규정하기 보다는 그것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목회자가 누구인가? 목사 즉,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려면 자기가 설교하고 있는 이 내용이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것과 일치하는 연장선상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일주일에 한 번씩 설교를 한다고 할 때 이 사람이 실재로 이 성경의 말씀대로 그리고 자기가 설교하고자 하는 내용대로 살아가는 치열한 삶이 6일 동안 있을 때 이 사람이 하는 설교가 사실은 사람이 하는 설교인데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 성경은 예수님의 시대와는 다른 시대에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쓴 것입니다. 그러면 설교가 이렇게 이루어질 겁니다. 성경 속에서 시대를 불문하고 계속해서 흐르고 있는 진리를 찾아내고 그 담에 성경에 쓰여 졌던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회중들이 살아가는 시대를 가지고 이해를 해야 되겠지요 그담에 거기에서 질문을 이끌어 내서 자기가 목회하는 회중들에게 적용해서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설교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말은 간단합니다. 그런데 간단한 게 아닙니다. 이 방대한 성경을 어떻게 올바르게 이해할 것인가? 그 담에 역사적으로 이 성경을 다양한 해석을 해 왔던 수많은 해석들과 사상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어떤 것이 가장 올바른 것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자기의 회중들을 이해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빛으로 산다는 것을 책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아무 생각 없이 건축물을 봤는데 ‘야 이런 사상이 숨어 있었구나.’아무 생각 없이 잡지를 보았는데 ‘그 속에 그림이 숨어 있었구나.’ 어떻게 영화에 그런 말하자면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런 코드가 숨어 있어서 우리가 암암리에 그런 사상을 주입받고 있구나. 이런 것들을 느낄 것입니다. 그것은 중국 천지를 막 돌아다니고 수많은 문예를 들이마신다고 해서 파악되는 것이 아닙니다. 먹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모두 탁월한 요리사는 아닙니다. 그렇듯이 공부는 필요한 것입니다. 그 두 가지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목회를 한다는 게 무엇인가? 양무 리를 돌보는 아닙니까? 만약에 돌보는 동물이 사자가 호랑이라면 우리가 목양이라고 안합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나오는 모든 성도들이 다 양입니까? 누가 대답해 보세요. 모든 교인이 다 양입니까? 그 중에는 염소도 있고 맹수도 있습니다. 그 무슨 뜻이냐면 양으로 변하지 않으면 그것은 목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서 한 때는 염소나 맹수처럼 살아가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생과 회심이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양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진정한 회심의 역사가 여러분의 목회사역에 없다면 그것은 회 자체가 회를 양무리라고 하면 그 회를 무 하는 것이 목회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중생과 회심이 없으면 회 자체가 성립을 안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체라는 말이 성립이 안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굉장히 충격적인 진리를 만나는 겁니다. 중생과 회심이 우리목회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양무리를 돌본다 할 때 이것은 무엇을 돌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인들을 가능하면 물질을 도와주어야 할 때도 있고 가정이 어려우면 정신적으로 도와줄 때도 있고 바브면 그 집에 가서 일도 거들어줘야 될 때가 있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목회의 본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돌봄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의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을 도와주는 겁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수많은 삶의 상태들을 만납니다. 부자로 사는 때가 있으면 가난해 질 때가 있습니다. 젊을 때가 있는가하면 늙을 때가 있고 건강할 때가 있으면 병들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다양한 삶의 사태 속에서도 내가 침몰하지 않고 꿋꿋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방법이 무엇인가, 그런 것들을 탐구하는 것이 철학의 목적입니다. 여러분이 호메로스의 책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읽어 보셨나요? 어떤 사람은 읽었고 안 읽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만 일리아드는 여러분이 잘 아는 트로이이라는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오디세이아는 좀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디세이스 라는 왕이 천신만고 끝에 고생을 한 이야기를 서사시로 풀어낸 것이 오디세이스 입니다. 키클롭스라고 하는 외눈박이 괴물하고 싸우면서 고통을 받은 이야기 사이렌이라는 바다에서 유혹하는 요정의 유혹을 피해서 항해하고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을 다 서술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이렇게 힘든 일을 다 겪으면서 일생을 살아왔습니다. 내 앞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렵고 나쁜 일이 일어난다면 그냥 오라고 하죠 뭐, 이보다 더 어려운 일도 겪으면서 왔는데 그 까짓것 오라면 오라지요.’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의 삶의 사태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원하지만 아무도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럴 때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 철학에서 돈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던 타오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던 이유도 바로 그것 아닙니까. 무엇이 이 세계와 우리 인생을 움직이는가. 그런 근원적인 원리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타워였고 플라톤에게는 일자였습니다. 그럼 우리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가 무엇인가 이런 삶을 꿰뚫고 있는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의 답을 기독교를 통해서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 근원적인 문제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14살의 어린나이에 김남준이라는 소년이 가난해서도 아니고 몸이 아파서도 아니고 공부를 못해서도 아니고 누가 나를 핍박해서도 아니고 그냥 내가 오늘도 사람이라는 이유 그리고 사람으로 살아가야한다는 이유 그것 때문에 논두렁에 엎드려서 펑펑 가슴 아프게 울게 만들었던 것 그게 질문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근원적인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런 점에 있어서 인생의 이런 이치들을 깨닫고 자신 있는 세계관과 인생관으로 무장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경만 마주 대한다고해서 그것이 성경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만 읽고 신학공부를 안하는 사람은 신학공부를 하면서 성경을 안 읽는 사람하고 똑같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목회자의 돌봄이라는 것은 무엇이냐면 성경의 진리를 통해 삶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갖고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도록 돕는 행위 이것이 바로 목회적인 돌봄인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는 누구인가입니다. 목회는 근본적으로 디모데후서 3장 15절과 17절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목회는 하나님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을 정확하게 계승한다. 목회는 정확하게 하나님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목적을 계승한다. 그것은 불신자들은 예수 믿게 만들고 신자들은 그 성경말씀을 통해서 더욱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 그런데 사람들을 이렇게 인도하는 방법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이다. 그래서 목사가 누구냐? 목사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죽어간 선지자들의 후예이며 신약성경에서는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사도들의 후예다. 그러면 이제 목사가 이런 사람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신적 지혜를 안다. 그 다음에 도를 따르며 살아간다. 이 두 가지는 떼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성에 속하는 것이고 이것은 의지에 속하는 것이고 이것은 진리에 속하는 것이고 이것은 사랑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목양을 터득하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들려주는 사람이 목회자 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맹자나 노자나 장자나 이런 사람들의 책을 읽으면서 쉽게 비판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아주 쉬운 말을 했는데도 그 뒤에는 우리가 쉽게 허물어뜨릴 수 없는 커다란 사상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말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발언이 되는 것입니다. 술사와 도사의 차이는 이런 것입니다. 술사는 도를 모르고 기술만 가진 사람입니다. 자기가 왜 그 일을 하는지 철학은 없습니다. 기능적으로 익숙해져서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목회도 이런 기술이 굉장히 필요합니다. 그래서 목회자에게는 세 가지가 필요한데 독수리 같은 눈, 이것은 지성입니다. 사자와 같은 심장, 이것은 담대함입니다. 여자의 손길 이것은 목회의 기술입니다. 여러분이 우리교회에 오셔서 비전드림 가질 때 교회의 돌아가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그런 것들이 기술입니다. 기술만 가지고 목회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술이 없이 목회를 하면 매우 열매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서 도사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 사람은 기술만 가진 사람이 아니라 관통하고 있는 원리와 도에 대해서 눈을 뜨고 이해를 한 사람입니다. 장자의 인간세평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중국어임)
여러분은 이 문장을 기억하십니까? 평소에 이 구절을 알고 있었다면 이게 무슨 뜻일까요? 사람들은 모두 압니다. 써 먹을 수 있는 지식의 유용성에 대해서 압니다. 그렇지만 모릅니다. 써 먹을 수 없는 지식의 유용성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유용 지용의 지식은 당장에 써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용지용 지식은 그것 자체로는 써 먹을 수 없는 지식입니다. 그러나 유용지용의 지식은 소용의 지식이고 무용지용의 지식은 대용의 지식입니다. 그럼 대용의 지식은 어떤 것입니까? 철학, 현상학 그런 것들입니다. 여러분 개혁신학이 어렵다고 하는 이유가 대부분 무엇 때문인지 아십니까? 대부분 시간과 공간 필연과 우연, 시간과 영혼, 존재와 무 이런 것들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장횡거라는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중국의 철학자입니다. 아마 다 알겁니다. 그 사람이 ‘무는 없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잠재성이다.’ 그래서 중국철학에서 무는 없는 게 아니라 수없는 잠재력입니다. 유와 무라고 하는 것도 사실 만나는 것도 진정한 무고 진정한 무가 바로 유의 원천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크레아치오 엑스니히노’라는 라틴어를 알고 있죠? ‘크레아치오 엑스니히노’, ‘무에부터의 창조’, 그 ‘니히노’가 ‘무’입니다. 그게 사실은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크레아치오 엑스니히노’가 이런 창조 기준으로 보면 ‘니히노’이지만 사실은 모든 피조물이 있기 전에 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크레아치오 엑스니히노’ 할 때도 그 ‘니히노’ 자연사물의 기준에서 보면 ‘니히노’가 맞지만 그러나 거기에 모든 존재의 유일의 원천이신 하나님, 사실은 무에 부터의 창조가 아니라 물에 부터의 창조는 진정한 유로부터의 창조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목회에 있어서 사역의 열매를 맺게 하는 실천적인 지식은 꼭 필요합니다. 그것은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예가 모세의 이야기 입니다. 모세가 광야시절에 사람들을 재판하는데 끝없이 사람들은 재판을 받아서 죽어갑니다. 재판하는 사람이 모세한사람뿐입니다. 그러니까 장인 이드로가 옵니다. 정말 너는 왜 그렇게 바보 같으냐. 너 쓰러져서 죽겠다 그러다가 백부장, 천부장, 이런 제도를 만들어서 말하자면 다심제를 만들어라 하고 조언을 해줍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똑똑한 모세가 그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가 아니라 술입니다. 기술의 문제입니다. 기술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렇지만 그것은 목회자의 영적 성장과 함께 강조되어야 하는 겁니다. 영적인 성장은 사랑과 지식의 성장입니다. 삶에 사상의 성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학을 공부하는 동안 신학의 도를 터득하는데 마음을 쏟아야 하는 겁니다. 건전하고 확고한 이론과 사랑의 토대에서만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과 학문은 무슨 학문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사모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아름다움 때문에 영혼의 만족을 얻는 것 그것이 목회를 위한 가장 훌륭한 준비인 것입니다. 모든 현재적인 활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건과 진실 속에서 일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