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사람
녹취자 : 김세나
질문1)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해왔다』의 집필계기와 집필 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들어 보고 싶습니다. 또, 집필당시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해왔다』에 대한 목사님의 평가가 어떠한지 들어 보고 싶습니다.
답변1) 김상훈 교수님이 배려해 주셔서 그분이 나를 좋게 봐서, 2008년 신대원 개강 수련회를 한 번 갔고, 2012년에 한 번을 갔습니다. 그런데 2008년도에 가서 강의를 할 때 굉장히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 번을 설교하는데 셋째 날에,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리고 나서 학생들이 진짜 회개를 많이 했습니다.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는데 한창 라틴어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라틴어 강의를 문병호 교수가 하는데 첫날 강의시간에 들어왔다가 도로 나갔답니다. 학생들이 하도 많이 있어서, ‘아, 내 강의실이 아니구나.’ 생각했답니다. 항상 15명 쯤 모였는데 남의 강의실에 들어왔구나 생각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한 학생이 “교수님 어디 가십니까? 여기 라틴어 공부하려고 모였습니다.”, 80명이 수강신청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쨌든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12년에 갈 때는 신학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프레임을 만들었는데, 기다랗게 설교프레임처럼 만들었는데 그것을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끄적거리며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강의하고 온 것이 책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물론 돌아와서 저것을 목차를 잡고 자료들을 찾고 하면서 기본적으로 지금 이것의 세 권 분량을 써 놓았습니다. 이거 하나 교정을 보는데 8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내가 보는데 8개월이 걸린 것이 아니라 출판사에서 보는데 8개월이 걸렸습니다. 내가 보는 데는, 이것은 그래도 쉽게 썼습니다. 한 6개월 정도 만에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한꺼번에 2천 페이지 책을 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만들어 보니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두 권, 혹은 세 권으로 나눠서 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맨 처음에는 두 권으로 내겠다고 여기 책에는 아마 써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1권은 이렇게 끝나고, 2권은 “신학공부를 위한 준비”라고 해서 역사, 철학, 언어, 과학, 이러한 공부부터 시작해서 속사도 교부들-초대교회로 들어가고, 마지막 끝나는 게 르네상스 쯤에서 끝나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다음에 마르틴 루터부터 시작해서 현대 신학자들까지 한 것인데, 써야 하는데, 자꾸 다른 책들을 쓰게 되어서 못 하고 있는데, 어쨌든 2권을 쓰려고 합니다.
“집필이 5년 지났는데…” 뭐, 한 줄도 달라진 의견이 없습니다. 15년이 지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책이 나오고 나서 그때 강영안 교수님이 책을 받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목사님, 꼭 영어로 번역을 해서 미국에서 출판하세요.” 하시는데,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오늘 하려는 주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책을 가지고 공부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그래도 공부에 도전을 받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더러 있고, 그러는데 왜 이렇게 깊이 있는 목회나 설교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안 나오는 것인가?’ 이것이 의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공부하는 것과는 별개 문제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온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해야 합니다. 전심으로. 그래서 결국 액체의 신학을 해야 합니다. 땀과 눈물과 피로 버무려진 신학을 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신앙생활과 경건생활에 있어서도 특별한 것이 없고, 교회 사역도 그렇고, 그다음에 학문적인 관심이 좀 있어서 공부한다고 해서 깊이 있는 목회를 하고, 설교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트리니티 가 있는 우리 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면서, 긴 기도제목도 없습니다. 항상 매일 똑같이 기도하는 것은 “순전한 말씀의 사람으로 준비되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체험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체험해야 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목사와 설교」는 이제 1980년도인가에, 80년도인지 70년도에 웨스트민스터에서 설교에 대해서 일주일 동안 특강 요청을 받고 아침서부터 오후까지 일주일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굉장히 훌륭한 책입니다. 아마 설교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이야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성경론에 있어서는 그 당시와는 달리 지금 마틴 로이든 존스 목사님의 성경론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설교자가 어떻게 되는가 하는 설명들에 대해서는 특히 오늘날의 사람들이 깊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번 꼭 읽어 보십시오. 읽어 보았더라도 다시 읽어보면 어렸을 때 읽어본 것과는 느낌이 아마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경험해야 합니다. 그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한 하나님의 영광은 아무에게나 쉽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평가’. 변한 것이 없습니다. 뭐, 내 책에 대해서 내가 평가한다는 것이 웃기지만, 혹시 견해가 바뀐 것이 있냐고 한다면 없습니다. 한 줄도 바꾸고 싶은 내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저 책을 보면서 내 자랑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자랑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고, 그렇게 살아온 고비 고비가 그 당시로서는 하나님 의지하면서 살아왔고, 뒤돌아보니까 나를 설교자로 만드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과정들이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자유입니다. 그다음 2번 문제 하겠습니다.
질문2) 우리나라에서는 개혁주의하면 칼빈주의를 떠올리고 개혁파 정통주의에 대해서는 최근에야 접해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학풍이 국내 신학교의 한계 인지 아니면 해외에서도 동일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개혁파 정통주의를 알게 되셨고, 어떻게 연구해 오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답변2) 이번에도 사실은 신대원에서 (볼룸을 조금만 더 높여 주십시오.) 커리큘럼에 대해서 조언을 달라고 해서 몇 가지 조언을 주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특히 철학에 관한 과목들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과 그리고 특히 이제 채플 설교에 대하여…, 세 가지인가 네 가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철학에 대한 공부를 더 시키고, 그것이 어떻게 신학에 대해서 연결되는지를 더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들이 오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철학적 사고가 없이는 설교가 깊어질 수 없습니다. 깊어지면 이상하게 다른 데로 갑니다. 소위 이야기하는 ‘영해’(領解)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철학을 소화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무엇을 조언했는가 하면, 라틴어 공부를 훨씬 더 강화해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라도 계속 라틴어를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채플을 이렇게 총신에 돈 내는 후원자들을 불러서 수련회 시키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차라리 안 받고 말지, 그것은 아닙니다. 후원해 봐야 몇 억을 하겠습니까. 몇십 억을 하겠습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쿵 하는 커다란 울림을 줄 수 있는 그러한 신학적인 내용이 있는 설교를 하는 목사님들을 국내외를 막론하고 - 채플을 통해서 기부를 받을 생각하지 말고 - 오히려 돈을 투자해서라도 그러한 설교자들을 국내외, 전 세계에서 불러서 학생들에게 커다란 울림이 있는 설교를 듣게 할 때 학생들이 ‘아, 우리가 공부하는 이 신학이…’ 그러니까 설교를 들었는데 ‘아 역시 신학교 공부를 별로 필요가 없구나.’ 그러한 생각을 갖게 해도 안 되고, 또 그래서 결국 신학을 공부하고 그게 채플 시간에 그 신학이 어떻게 어우러져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토해져 나오는가, 그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옛날에 고려신학교 시절에 두 사람만 채플 시간에 섰습니다. 뭐냐 하면, 김창연 목사님과 한상동 목사님입니다. 한동안 말입니다. 그러한 학교에서는 설교가 채플시간에 학생들이 은혜를 받으면서 스펄전의 표현에 의하면, 쇳덩어리를 오전에 마련하고 오후에 이제 찰스 스펄전이 설교를 하고 강의를 하면서 두드립니다. 그래서 공구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신학과 설교를 연결시키는 것을 어떻게 하는지 혼란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뭐냐 하면 본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아, 신학이 이렇게 설교 내용을 풍성하게 하고 가장 사변적인 신학이 가장 실천적이구나.’를 깨닫게 되는 모본을 볼 때에, 결국 모방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주 탁월한 설교를 꾸준히 읽거나 듣는 것, 그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꾸준히 읽었던 설교 중에 찰스 스펄전의 설교도 있었고, 칼빈의 설교도 있었고, 한동안 30대 초반에는 크리소스톰 설교에 깊이 빠졌었습니다. 참 놀라운 것이 크리소스톰의 설교, 특히 그런 사람들이 쓴 책들이 대게 설교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거스틴의 <요한복음 강론>하면 몇십 개의 설교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크리소스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성경신학을 전공하고 설교를 해 온 방식과 너무 유사합니다. 그래서 나는 설교를 많이 읽으라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제가 제안한 것이 개혁파 정통주의를 전공한 사람을 불러오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총신에 없습니다. 17세기를 전공을 했어야 하는데, 지금 한병수 목사인 경우 17세기를 전공하였는데 그러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교수로 초빙해서, 물론 안 올 것입니다. 목회도 잘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교회 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200명 모인다고 합니다. 교수하면서 학교 안에서 하는데, 내용이 있으면 어쨌든 사람들은 모이는 것입니다.
‘개혁파 정통주의’를 알게 된 것은 이제 제가 2007년인 것 같습니다. 우연히 개혁파 정통주의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눈을 뜨게 해 준 것이 리처드 멀러 교수의 책이었는데, 그것을 보면서 내가 평소에 궁금해하던 것, 어떻게 이것이 소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하는 삶의 지혜를 얻는 것과 신학이 어떻게 연관을 갖게 되는가 하는 것을 깊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였고, 2008년도였을 것입니다. 맨 처음 1기 스터디 모였을 때, 2008년도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2008년도에 총신대 학생들이 공부를 같이 하겠다고 모였습니다. 그때 이제 외부 스터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리처드 멀러의 책, 원서도 아니고 이은성 교수가 번역을 어렵게 하였는데 그 책을 가지고 그냥 내 생각에는 두 시간 정도 introduction, 소개를 하고, 그다음에 빨리 PRRD를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것을 거의 6개월에서 8개월을 공부한 것 같습니다. 한글책을 말입니다. 산 에 들어가 진짜 밤늦게까지 기도한 기억이 있는데, 그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누구인가 만나보기 위해서 도르트레이트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었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하고 거기에서 만나고 그렇게 하면서 한동안 읽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오프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국내 신학교의 한계입니다.
그리고 “개혁파 정통주의와 종교개혁과의 연관에 대한 것”은 이미 1970년대부터 벌써 본격적인 연구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실은 화란 같은 데서는 처음부터 신학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 당연히 교부시대가 다르고, 중세가 다르고, 중세와 그다음에 종교개혁시대 다르고, 당연히 다르니까 시대가 구분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종교개혁과 개혁파 정통주의 다르고, 그때와 계몽주의가 다르고, 뭐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기본적으로 유럽에서 특히 네덜란드 같은 학자들과 이야기해 보면 기본적으로 단절성만을 배운 것이 아니라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서 신학을 공부해 왔고 서재에 지금 책을 만권 정도 나에게 넘겨주었던 스페이커 교수님과도 같이, 내가 뭐 그분을 만난 것만 거의 여덟 번 이상 만났으니까 만나면 항상 절 좋아하셨습니다. 장시간 대화를 하고 신학적인 대화도 나누고 그랬는데, 기본적으로 아펠도르 신학교의 교장까지 하셨으니까 철저한 개혁신학자입니다. 기본적으로 신학의 뿌리가 깊은 화란 같은 곳에서는 개혁파 정통주의에서 오늘날 개혁주의의 유산이 발전되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합니다. 그런데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한 논쟁은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제가 논문을 발표하였었습니다. 아마 그 자료들을 여러분들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리처드 멀러테제와 미래” 할 때 각주까지는 달지 않았지만 상세하게 거기에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읽어보시면 아마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개혁파 정통주의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그렇게 알게 되었고, 높이 평가했던 것은 사실은 굉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이미 17세기 이후에 소위 이야기하는 데카르트 주의가 나오면서 커다란 역사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것은 르네상스였고, 르네상스인문주의, 인문주의에서 기독교인문주의, 기독교인문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은 종교개혁자들. 당시 종교개혁자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기독교인문주의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기독교인문주의의 뿌리는 인문주의이고, 인문주의의 뿌리는 르네상스입니다. 연관을 설명하면 한참 길지만 그러나 어쨌든 그렇게 되었습니다. 대게 이제 우리가 1530년경부터 우리들이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로 봅니다. 아니, 1560년경. 그러니까 1517년에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그다음에 이제 칼빈이 죽은 때가 1559년이니까, 60년도 칼빈 이후부터로 봅니다. 루터파 쪽에는 멜란히톤부터 시작이 되고, 그러니까 사실은 맞습니다. 1530년경부터 봅니다. 그래서 이제 루터파 쪽은 조금 더 빨리 시작이 되고, 칼빈파 쪽은 조금 더 늦게 시작이 되는데 1530년경부터 시작해서 1720년경까지 개혁파 정통주의라고 부르는데, 이때에 한없이 긴 이야기입니다. 짧게 하겠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종교개혁이 나올 때는 사실 기본적으로 로마가톨릭에 대한 반대에서 나오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이런 사상에 대해 반대한다.’고 하면서 개신교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왔었는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가톨릭의 반론이 시작되었습니다. 가톨릭의 특히 유명하였던 샤도레토의 공개서안이라든지 제네바에 있었던 그러한 것이라든지, 저쪽에서 있었던 소위 이야기하는 Counter Reformation (,반종교개혁), 종교개혁에 역공을 펼치는 그러한 것들. 가톨릭에 변증가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의 신학적인 깊이는 굉장합니다. 그러니까 엄청난 학문들을 가지고 다시 종교개혁의 대의들에 비판이 이루어지니까 그것을 변증해야 했고, 두 번째는 이단들이 그 후로 출연하면서 사실 우리 개신교 신앙은 그러한 것과는 다르다고 하는 것을 변증해야 했습니다. 세 번째는 뭐냐 하면 언제까지 가톨릭이 가지고 있는 신학에 붙어서 그 중 흠집 난 잘못된 것만 꺼내서 이게 우리 의견과 다르다고 하는 것만을 이야기하며 살 것인가. 우리 나름대로의 신학을 체계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그러한 요청들이 생기면서 신학적인 작업들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개혁했던 사람들은 아주 탁월한 학문에 수재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리처드 멀러가 PRRD(Post-Reformation Reformed Dogmatics)에서 언급한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가 320명쯤 됩니다. 엄청난 사람들인데, 실제로 활동한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였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을 때 사실은 개혁파 정통주의에 대해서, 우리 후배들은 모르겠습니다. 우리 배울 때만 해도 결국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이 칼빈의 신학을 다 말아 먹었다, 그리고 결국 이성주의 신학으로 만들었다고 그러한 식으로 배웠습니다. 알기도 전부터 적대감부터 길러 주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나니까 그것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이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 그럴 수 있었던 아주 중요한 요인은 개혁파 정통주의를 만나기 전에 알다시피 저는 존 오웬에게 깊이 천착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까 그가 개혁파 정통주의 라인에 있는 거봉이었습니다. 아주 엄청난. 그래서 너무 재미있는 것이 네덜란드 대륙 사람들의 자존심이 아주 보통이 아닙니다. 화란에 가면 머리 하얀 할아버지들이 존 오웬을 전공합니다. 존 오웬은 대륙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신학적인 깊이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여러분들이 직접 보십시오. 그다음 하겠습니다.
질문3) 목사님께서는 책에서 성경과 교회의 역사를 산맥에, 인물들을 산봉우리들에 비유하셨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거대한 산들이 한꺼번에 등장하여 고원을 이룰 때도 있었고, 산이나 구릉지대 정도가 아니라 거의 평야와 같은 시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자와 같은 시대에는 특별한 특징이 있었는지 아니면 부흥과 같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로 보아야 할지 알고 싶습니다. 또, 이것이 현대 목회자들에게 주는 교훈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답변3) 이게 아예 용어가 있습니다. 천재 폭발 현상이라고 합니다. 역사에 보면 참 재미있는 게, 딱 가다가 천재가 하나 툭 나오고 쭉 가다가 툭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안 나오다가 한 번에 나오면 후루룩 천재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음악계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미술계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미술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르네상스에 들어가 보면 특히 메디치가에 의해서 예술의 강력한 후원을 받던 피렌체의 천재들도 역시 거기에서 세계 역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천재들이 불과 80년 동안 23명이 쏟아져 나옵니다.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푸치에, 이러한 그 브루넬레스키, 건축가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가 하면 개신교로 넘어가보면 종교개혁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엄청난 천재들이 어떻게 그렇게 계획되었듯이 말입니다. 마르틴 루터 그 한 사람이 그것을 막 쳐들고 95개 조항을 가지고 가서 비텐베르크 성당에 붙이고 교황이 파문을 하니까 파문장을 불태운 곳이 바로 쓰레기 소각장이었습니다. 태울 때만 해도 사실은 요만한 운동이었는데, 어마어마한 천재들이 여기저기에서 동시에 일어나면서 나옵니다. 그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얀 후스 같은 사람이 나오고, 윌리엄 틴넬 같은 사람이 나오고, 그러고 나서 솟아오르네 하더니 이렇게 내려가더니 그다음부터 마르틴 루터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루터, 츠빙글리부터 시작해서 어마어마한 천재들이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지금도 그 사람들이 남긴 작품들을 보면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남긴 작품을 평범한 사람이 필사할 때 20년을 필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양의 저작들을 남겼고, 또 어거스틴 시대에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것이 뭘까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옛날에 김희복 교수님이 계셨을 때 하나님이 교회에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인물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한 시대의 교회를 사랑하실 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인물이다.” 사람을 주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선물이겠지만, 왜 그러한 식으로 될까 보면, 이것이 뭐냐 하면 교육의 영향력입니다. 한 사람의 걸출한 사람이 나오면 그 영향을 받은 사람이 나오고,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하나의 산맥을 형성하게 됩니다. 산 하나로는 산맥이 되지 않습니다. 산이 여러 개 붙어있는 것이 산맥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산맥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보면 히말라야 산맥에서 보면 에베레스트 산 밖에 아는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한 인물, 아인슈타인이라고 이야기할 때 아인슈타인 옆에 있었던 수많은 걸출한 사람들의 이름은 알지 못합니다. 그것들이 함께 모이면서 알프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의 이치입니다.
이제 세 가지 요인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첫째는 시대의 요청입니다. 한 시대가 그러한 인물들을, 루터나 칼빈 같은 인물들을 부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역시 교육입니다. 교육. 교육한다고 해서 모두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교육을 안 받고도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부싯돌을 수없이 때린다고 해서 성냥처럼 한 번에 켜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부싯돌을 두드리지 않고는 결코 불을 붙힐 수 없는 것처럼, 부싯돌을 두드린다고 불이 붙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부싯돌이 부딪히지 않고는 불이 붙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교육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과의 교류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저렇게 역사의 영향을 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사역 자체도 영향을 주었지만, 저술을 통해서 영향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무디가 직접 전도한 사람이 100만 명 쯤 된다고 선교학자들은 추산합니다. 사도바울이 직접 복음을 전해서 예수 믿게 한 사람을 130만 명 정도로 본다고 합니다. 삐까삐까 하지 않습니까. 무디는 잊혀졌고 바울은 기억에 남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약성경. 신약성경의 절반 정도를 사도바울이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이 영향력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이같은 고백을 합니다. 자신은 진짜 책 쓰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말이 거짓말 같으면 한번 나에게 와서 두툼한 책을 줘 봐라, 그러면 읽는 것을 좋아하는지 쓰는 것을 좋아하는지 금방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안 하기 때문에 자신이라도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가 250개 정도의 저술을 남기는데 아직 다 번역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제가 가지고 있는 WSA가 이렇게 팔을 벌려서 하나 정도이니까, 뭐 다 완성이 된다고 하면 두 배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래봐야 사실은 뭐 그렇게 많은 책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는 팸플릿 같은 작은 책자도 한 권으로 쳤으니까 말입니다. 그러한 책을 통해서, 어떤 책은 거의 영향을 못 끼쳤지만, 그러나 어떤 책들은 1600년 이상의 세월 속에서 지금도 기독교를 지탱하고 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그렇게 뛰어난 산봉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제 학문을 병행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현대 목회자들에게 주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거대한 봉우리가 되기를 꿈꾸라는 뜻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산봉우리 같은 인물들을 사용해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입니다. 거기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입니다. ‘나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조용히 살다가 죽고 싶다.’ 그것과 그다음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목회자로 일생을 살면서 어떻게 하든지 나의 시대가 하나님의 나라의 이상이 더 풍부하게 이루어지고, 나의 땀과 눈물과 피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 내가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겠다.’고 하는 그러한 높은 이상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서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야망을 가지는 것은 안 됩니다. 야망은 무슨 야망입니까. 그렇게 유명하게 되고, 자기 야망을 따라서 목회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렇게 행복한 인생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뵈옵는 순간 자신은 잊혀져야 할 존재이고, 사라져야 할 존재이고, 그분이 나타나야 할 존재라고 바라본 것도 큰 구릉의 역사를 한꺼번에 보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이상을 품으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내 말을 듣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젊었을 때 전기를 읽는 것이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전기를 읽는 것. 그런데 잘 하지 않습니다. 특히 신학교를 다닐 때 전기를 읽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전기를 읽어 보십시오. 그래서 읽으면서 가슴이 뛰고 하면서 이제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의 그림들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높은 뜻을 품는 것이, 그렇다고 해서 교회를 무슨 만 명, 이만 명 해야겠다, 교회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큰 꿈을 꾸라는 이야기입니다. 다음 하겠습니다.
질문4) 교회의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신학을 집대성한 사람들이 있고 그 이전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대의 신학을 집대성한 인물들 외의 그 밖의 인물들을 공부하는 것에는 어떤 유익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답변4) 무슨 의미입니까. “신학을 집대성한 사람들이 있고 그 이전의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우진 목사님 : 이제 교부시대를 따지면요.)
어거스틴이 있고 어거스틴의 이전이 사람이 있고.
(오우진 목사님 : 어거스틴의 저작을 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교부시대의 인물들의 책을 읽는 것도 유익이 있을 것이라는….)
그렇게 생각하면 사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코로나19 안 걸리고 여기에 있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고, 열린교회 몇 년이 되었는데도 안 떠나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고, 사람으로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사실은 어거스틴을 먼저 읽었습니다. 어거스틴을 먼저 읽고 그다음에 테르툴리아누스, 이레네우스 등등 뒤에 가고, 요새 이제 「염려에 관하여」책을 쓰면서도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교부들을 들여다보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한 사람의 잘 정리된 신학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수많은 오류에 빠졌던 사람들이 있어 주었고, 그다음에 그 속에서 옳은 것을 찾아서 몸부림쳤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오류에 빠진 것을 보면서 자신은 그 견해를 조정하고, 올바른 것들을 보면서 올바른 것들을 더욱 구체적으로 밝히고 하면서 사실은 세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거스틴을 천재로 많이들 묘사하는데, 물론 그분은 천재입니다. 제가 읽은 저자 중 유일하게 천재성을 부여한 사람입니다. 천재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도 저술가가 됨으로써 천재가 된 것이 아니라 이전에 이미 있었던 사람들, 그러한 속사도 교부들이나 그다음에 테르툴리아누스나 오리겐이나 이레네우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굉장히 친숙하였습니다. 다방면의 독서를 굉장히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한정적이기는 하지만 이미 그래도 희랍어를 좀 할 수 있었고 빅토리아누스라는 사람에 의해서 번역된 희랍어의 책들을 많이 읽고 있었고, 그리고 히브리어는 썩 잘하지는 못하였지만 어쨌든 그렇게 다방면의 책들을 읽어낼 수 있었고, 당시는 로마 시대였으니까 그리스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이제 사람들이 결국 집대성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이전 것은 사실 잘 못 보니까, 하나만 보고 모든 것이 그 사람의 창작품인 것처럼 높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고 이전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씨를 뿌려 놓은 것들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났는데 그렇게 뿌려 놓은 씨들은 예전에도 있었는데, 왜 하필 그 사람이 집대성 하였을까?’ 그것이 바로 천재성입니다. 그것을 못 하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공부를 수없이 막 이렇게 이 공부, 저 공부 학문적인 것들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엮어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집대성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것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떤 진리의 번쩍이는 빛이 지성 속으로 들어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번쩍하고 들어오면서 이것들이 쫙 번개처럼 퍼져 가면서 성경, 신학, 역사, 철학, 과학, 이러한 모든 학문들에 쭉 같이 들어오면서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어거스틴 뿐만 아니라 루터나 칼빈도 마찬가지고 아퀴나스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결국 공부, 학문 자체가 아주 다면적입니다. 이제 여러 개의 공부의 면이 여기서 이렇게 예를 들어서 철학, 역사, 과학, 이러한 면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학문과 학문 사이를 관통하는 진리들을 엮어낼 수 있는 능력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빛을 가지고 성경을 푸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권하는 것은 내가 학교 다닐 때에는 뭐라고 가르쳤는가 하면, 결국 어거스틴의 성경 해석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알레고리적 해석(interpretation)에 깊이 물들었기 때문에 아무 가치가 없다고 배웠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이제 삼위일체나 고백록 같은 것에도 보면 숫자 가지고 숫자 놀음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나는 일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그것이 유행이었으니까, 그것도 뭐 그렇게 접고 휙 읽고 쓸데없는 이야기 다 넘어가면 됩니다. 결국 그러한 자기 시대에 태어나면 자기 시대를 떠날 수 없는 것인데, 공부하면서 전체를 엮어낼 수 있는 위대한 능력들은 아무에게나 생겨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은 교육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지금은 뭐 다 은퇴하신 교수님이신데, 김이현 교수님이, 나에게 구약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당시 공부를 참 재미있게 하였습니다. 오셔서 서재를 쭉 보면서 마지막 하는 이야기가 “나는 평생 구약과 함께 살았는데 학문의 세계가 참 넓구나. 나는 구약만 있는 줄 알았는데…” 구약만 있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신약도 있는데, 역사도 있고 철학도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집대성한 인물들은 아주 소수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꼽아 보면 얼마 안 됩니다. 신학의 역사가 이렇게 오면서 얼마 안 됩니다.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집대성한 인물 이외의 인물들을 공부하는 것은 좋은데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집대성한 인물들을 먼저 공부하고 그다음에 이제 그에게 영향을 미쳤던 이외의 인물들을 공부해 갈 때, 집대성한 인물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테르툴리아누스 같은 사람은 결국 몬타누스주의자로 인생을 마감하였지만, 그 자체가 신학적으로 오류 아니겠습니까. 좋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을 향한 엄청난 뜨거운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그러면서도 진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어마어마한 학자였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의 오류와 그 사람들이 발견한 진리 사이를 잘 이렇게 걸어 다니면서 어거스틴은 자기 나름대로 필요한 것들을 채집해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일단 집대성한 사람에 대해서 이해를 해서 큰 이해를 가지고, 그다음에 집대성한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의 작품들을 같이 읽어가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집대성한 사람이라도 읽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 읽는 것은 쉽지 않지 않습니까. 개인적인 능력도 있고, 그리고 외국어를 얼마나 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학문의 팔을 펼치는 것은 애들의 팔의 길이는 이만큼 밖에 안 하고 어른은 깁니다. 외국에서 옷 하나 사 입으면 제일 자존심 상하는 것이 다 맞는데 팔이 긴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팔이 길다는 것입니다. 키가 크니까. 팔이 길어서 여기에 맞춰 사 입으면 이만큼 남아서 몇 번을 접어야 합니다. 그러면 많이 돌아야 합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그래도 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한 권씩 밖에 못 읽으면 한 권씩 이렇게 돌고, 두 권 읽을 수 있으면 두 권씩 돌고 100권 읽을 수 있으면 100권 돌고 그렇게 하면서 성경으로 출발해서 성경으로 나와서 원을 그리면서 자기의 관심사들을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가 모르는 것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막지한 것입니다. 정말 겸손하게 생각하면서 배우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는 것을 깨닫고 하나씩 하나씩 배워가는 기쁨을 가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 된 것 같습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