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서의 금전거래에 관하여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행 6:1).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반드시 우리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태도가 올바르지 않으면 고난이 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교회가 부흥하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많은 교인들이 변화되고 새로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교회가 시험에 들고 어려움이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사람이 죄를 짖고 누군가가 교회에서 나쁜짓을 해서 교회가 시험에 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올바르게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라도 계속 인간이 시련을 당하듯이 교회도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이 가르침을 여러분들이 복음의 빛 아래서 잘 받아들이고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여러분들 생활의 지표로 삼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본문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한창 부흥을 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그때의 제자가 더 많아 졌는데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고 나서 계속해서 성령의 놀라운 역사 속에서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큰 핍박이 있었는데 믿음으로 극복을 했고 5장에 와서는 아나니아와 사삐라 라는 인간이 성령을 속이고 땅값을 감추면서 교회의 순결을 위협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그 둘이 심판을 받아서 죽고 하나님의 성령의 강한 역사가 일어나면서 다시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그런데 6장에 와서 교회의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구제입니다. 그래서 당시 교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전도하는것과 기도하는것 그리고 구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훨씬 어려운 사람이 많았었기 때문에 사회에 구제해야 할 사람들이 지천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시대때 로마가 한창 전성기여서 잘 나갈때에는 로마의 도성 안에서는 빵을 아침에 많이 만들어서 나라에서 그것을 실려 내보냈습니다. 그래서 골목골목 다니면서 굶주리는 사람은 그 빵을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보여 주고 싶었는가 하면 적어도 이 대 로마제국의 수도에서는 굶어 길거리에서 헤메는 사람이 없게 하라 하는 혜택을 누렸습니다. 로마가 그럴 필요를 느낄 정도 였으니까 식민지하에 있던 다른 도시들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리고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이 복음이 왕족이나 권세 있는 사람들에게도 전파 되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많이 믿었습니다. 선교의 역사를 보면 국민 소득 5,000불 미만일때 가장 예수님을 잘 믿습니다. 5,000불이 넘으면 벌써 다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벌써 15,000불 20,000불 하다가 다시 고꾸라 졌지만 어쨎든 바람이 날 때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외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을 보니까 여러분들도 가난한 것 같습니다. 5,000불이 안 되는 모양인것 같습니다. 어쨎든 그러니까 여기도 심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구제를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보다 더 훨씬 상황이 심각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대부분의 돈들이 구제하는데 사용이 되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때의 모델들을 보면서 우리는 왜 그대로 안하고 교회가 건물을 유지하는데 돈이 든다고 하는데 그것은 반은 맞는데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까지 이 시간에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시대적인 문맥이 다릅니다. 어쨎든 구제에 열심히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다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 이었는데 구제 받는 대상의 가장 우선 순위가 고아와 과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같은 경우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 보는 것이 그것이 경건이다 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매일 구제를 하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있고 히브리파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같은 유대인들인데 언어를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백성이 있고 헬라어를 사용하는 백성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로마가 지배하기 전에 역사상 마케도니아라고 하는 나라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제국의 통일을 이루면서 지금으로 말하자면 그리스어를 광범위하게 전세계에 보급을 해서 그래서 그 제국하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헬라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조상대대로 바깥에 가서 살았겠죠? 그러다 보니 마치 미국에 오래 산 한국 사람들이 몇세데 자식을 낳고 뿌리를 내리고 살다가 한국어를 잊어버린것 처럼 그렇게 히브리어를 잊어 버려서 당시 세계 공용어였던 헬라어가 입에 밴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모인 사람들도 헬라어로 말을 해도 다 알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들이 대부분이 헬라어로 쓰여졌고 그 당시에 애용하던 구약성경도 헬라어 성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정이 묘했을 것입니다. 같은 한국사람 교인이 여기 있는데 얼굴 생김새나 옷차림이나 다 비슷한데 저쪽 줄에는 영어만 쓰는 사람들이 모이고 이쪽은 한국어 쓰는 사람들이 모였다면 안그럴려고 해도 기분이 애매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점점 멀리하고 한국어를 쓰는 사람끼리 붙어 다니려고 할 것 아닙니까? 어쨎든 그런 미묘한 기류가 여기에 흐르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교인들이 낸 헌금을 가지고 구제를 하는데 문제는 뭐냐면 이 구제를 누가 담당을 했는가 하면 사도들이 직접 지휘를 해서 담당을 했습니다. 워낙 중요한 일이니까... 그런데 이것이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니까 구제할 일도 엄청 많이 졌습니다. 우리 옛날 지하실 교회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왜 구제대상자만 등록을 하는 것입니까? 헌금 대상자는 등록을 안하고... 굉장기 큰 사업을 하는 사람, 직장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그런데 옛날에 그런것을 했던 사람 지금은 별 볼일이 없는 사람... 그래서 그 당시에 유행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교수 였는데 유행하던 말이 목사님이 제일 부자입니다. 그 말이 유행이었습니다. 그때는 목사도 아니었지만... 나중에 목사가 되었지만 한동안 그런 이야기가 몇 년동안 돌았습니다. 다 구제 대상자들만 등록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몸에 붙어서 교인들이 밥을 사주면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그때 제가 얻어 먹은 적이 별로 없습니다. 진짜로 심방 가기 전에는... 그러니까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니까 구제 자체가 굉장히 큰 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뭐라고 했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우리가 구제를 일삼는 구나 이렇게 반성할 정도로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일부러 그랬을 리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누어 주고 보았더니 공평하지가 않다고 하면서 투덜거리는 불평이 들어 왔는데 우리가 히브리말 할줄 모르고 헬라말 밖에 할줄 모른다고 우리를 깔보는 것이냐? 왜 우리 과부들은 똑같은 과부고 불쌍한데 왜 우리 과부들은 빠뜨리고 히브리말 하는 과부들은 몇사람씩 더 도와 주느냐 하면서 시비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헬라파 유대인들이, 헬라파 과부들이 그런것이 아니라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같은 통속의 교인들이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과부가 과부를 원망한 것이 아니라 과부와 같은 언어를 쓰는 같은 심정을 가진 사람이 히브리파 과부들을 원만한 것이 아니라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만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원망하면서 결국은 마지막에 그 사람들을 원만하면서 누가 분배했냐 하면서 올라 갔을 것입니다. 감히 베드로가 목회를 그 따위로 했느냐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 한번만 손들어 죽어 넘어가던 세상이었으니까... 까불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쨎든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을 받고 사랑으로 충만하던 이 모습은 사라지고 날카로운 이해 대립이 생겨나게 되면서부터 놀라운 틈새가 교회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항상 사단이 역사하는 방식입니다. 그것이 뭐냐면 온 성도들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이 모이지만 세상이 감당하기 참 좋은 그런 교회도 많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만약에 마귀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마귀의 편에서 한번 생각을 해 본다면 교회의 힘을 잃어 버리게 하려면 복잡하게 많은 것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져 몇가지만 잘 하면 교회의 힘을 확 꺽어 버릴수가 있습니다. 제가 설교하러 가는 어느 교회인데 갔더니 교회당을 들어 서는데 황당했습니다. 교회가 홀라당 다 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옆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들어서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교회 진짜 시험들었겠구나... 교회가 시커멓게 타서 나 같으면 검은 칠이라고 해서 탄 것이라도 막아 버리고 막이라도 가려 버릴텐데 시커멓게 타서 교회가 홀라당 탄 것이 옆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지 않았냐고 했더니 정말 하나님은 놀랍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했더니 불이 났는데 그것도 크리스마스때 났다고 합니다.
주님이 오신날 교회가 불꽃놀이를 한 것입니다. 홀라당 타서 하나도 안 남은 것입니다. 폭탄 맞은것 처럼... 모두들 불이 나는 그 순간에 시험에 들었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 불이 나서 갈데가 없으니까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면서 온 교인이 회개를 한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해 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와서 교회에 불을 지른다고 해서 교회가 시험에 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여기 4장의 역사에 보면 사도들이 끌려가서 죽도록 두들겨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맞고 돌아왔다 라고 이야기 했더니 온 교인이 한 마음이 되어 기도했더니 오히려 성령이 다시한번 충만하게 임해서 은혜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핍박하는것도 마귀가 이길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면 뭐냐면 몇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진리가 울려 퍼지지 못하도록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도들이 기도할 수 없게끔 마음을 부패시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교인들 속에 일치하는 마음이 생기지 못하도록 이렇게 마음에 분열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모두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자를 붙잡아서 이빨 뽑고 수염 뽑고 그리고 발목 뿌러뜨려 놓으면 그것이 사자일 수가 있겠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이 6장에서 바로 그런 계교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구제가 잘못된것이냐 잘못된 것이 아니라 아주 올바른 것이었고 주님이 평생 하시던 일이었습니다. 주님이 하시던 일을 뒤잇고 있었는데도 그것을 성경적으로 올바른 원리를 따라서 행하지를 안으니까 이렇게 혼란이 생기고 사랑과 일치로 가득찼던 성도들의 마음이 찢어지면서 예수안에서 함께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라는것 보다 헬라말을 쓰는가 히브리말을 쓰는가 하는 것이 더 큰 기준이 되어서 편들이 나누어지게 되는 일이 일어나서 결국은 사랑하는 대신 원망하게 되었는데 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돈을 빌리고 꾸어주는 것은 제가 목회하면서부터 절대 하지 말라고 여러분들에게 심각하게 설교해온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왜 그렇게하면 안 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첫째로 그리스도 교회의 성도들이 모인 교회의 공동체는 목적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특별한 교제이기 때문에 그런것을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인데 청년들이 놀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목사님이 목적을 다 보고 적합하지 않으니까 가지 말라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갔습니다. 애초에는 50명이 갔는데 30명이 갔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불러서 혼을 냈습니다. 문제가 되어서... 그래서 왜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갔느냐 했더니 회장이 하는 이야기가 이것은 교회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왜 상관이 없냐고 했더니 목사님이 가지 말라고 해서 청년부에서는 계획을 포기 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서 우리 30명이 모여서 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이 없는 여러분들 가운데는 고개를 끄떡끄떡 할 것입니다. 그럴수도 있겠구나... 그런데 교회의 모임은 그렇게 사용해서는 안되는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주워 모을때에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모임에서만 교인들을 소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소집할 수 있는 권한이 교회 아무에게도 없는 것입니다. 목사에게 조차도 그런 권한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협오하는 것이 헌금을 모을 목적으로 하는 부흥회입니다. 그것은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건축헌금을 모으기 위한 의도에서 시작된 부흥회, 선교지의 헌금을 모으기 위한 의도에서 기획된 사경회 그런것들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을 모으려고 할 때에는 하나님께 예배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거나 섬기기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가운데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주일학교에서 모두 모여서 회식했는데 그것도 동기 자체가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한 교회에서 공적으로 인정해 줄 수 있는 목적에서 모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모르겠지만 여러분들 속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임들은 저에게 모두 보고가 올라 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담임목사의 목회에서 그 모임을 챙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책임입니다. 그래서 교역자 회의 시간에 크고 작은 사소한 모임이 모두 보고가 됩니다. 그것없이 사람들이 어떤 목적으로 성도들을 소집할 때 그런 목적으로 소집하는 것도 잘못하는 것이고 거기에 응하는 것도 속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입니다. 어쨎든 그런 논리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교회 안에서 성도의 교통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교통이고 그 모든 교통을 통해서 그 이익을 하나님이 친히 받으셔야 하는 모임입니다. 저는 교회 안에서 꽂꽂이회, 골프클럽, 인라인스케이트 모임, 독서 모임 이런것을 많이들 하는데 성경의 원리와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들 아파드에 가서 하면 됩니다. 동네 주민들하고 하면 됩니다. 그것을 교회 안에 만들어 놓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그런 취미활동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로이드 목사님이 목사님이 되고나서 세인즈필드에 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교회안에 스포츠 클럽을 없애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족구모임, 축구모임, 테니스 모임 이런것을 싹 쓸어버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교제는 그러한 자기의 이익을 위한 사사로운 목적으로 모일 수 있는 그런 교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반 자체가 신령한 목적을 가진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의 성도의 교통은 거룩한 교통입니다. 첫 번째는 그 교통의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두 번째는 교통의 방식이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만나는 이유는 자기자신을 만족하기 위해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만나도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안에서 성도의 교통은 목적 그 자체가 자기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모임의 목적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이 교통이라고 하는 의미 자체가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주신 것을 사람들속에서 서로 공유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한때 박찬호 선수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광고 하다가 나중에 장가를 갔습니다. 카드 한 장을 내밀면서 이 카드 나하고 같이 쓰실 사람 하고 이야기 합니다. 누굴 찿는 것입니까? 카드 회사 직원을 부르는 것입니까? 아내를 구하는 것입니까? 아내를 구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카드를 남편과 같이 쓸 수있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남편 돈이 아내 돈이고 아내 돈이 남편 돈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중 상당수는 어림없는 말씀하고 계시네 할 분들이 있을텐데 그것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생활비를 벌어 아내에게 가져다 주지만 그렇게해서 남편이 다시 그 돈을 타가는데 비굴해질 정도로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면 여러분들이 소탐대실한 것입니다. 작은것은 얻고 큰 것은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목회자들 가운데 아직까지도 아내에게 사례비를 안 가져다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늘 아침마다 와서 여보 기름사게 돈줘? 아니면 유모차 사게 돈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는 정상적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부터 남편이 외출하면 아내가 세가지를 챙겨 주었습니다. 도장, 지팡이, 돈 한냥. 그렇게 남편과 아내는 교통하면서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공동체는 교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안에 있는 것들을 성도들의 것들을 함께 나누어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유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그것을 나누어 쓰고 가난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의 것을 나누어 쓰고 재능이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그래서 부유한 자는 가난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면하고 이렇게 유통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오히려 돈을 잘 꾸고 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목적이 틀립니다. 그렇게 유통함으로서 교회의 성도의 교통은 그런것을 유통함으로서 자기가 편의를 보고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든든하게 하기 위해서 그 모든 것들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한번 결제 서류가 올라 왔습니다.
이러이러한 청년을 도와 주어야 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가는 것이 직장에 잘 다니는 청년 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를 도와주어야 겠다고 결제가 올라 왔습니다. 교역자를 불렀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는 직장도 못다니는 청년이 많이 있고 교회에 올 버스비가 없어서 고통받는 지체도 많은데 내가 알기로 이 지체는 좋은 직장에 다니고 한달에 월급도 이만큼이나 받고 자기 집에서 사는 것으로 아는데 왜 이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큰 돈을 올렸느냐 했더니 부모가 빚을 많이 져서 교회가 도와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네가 도와줘라. 교회의 구제는 여기를 보십시오. 여기서 공개라고 하는 이말이 무엇인가 하면 식탁을 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뭐냐면 초대 교회에서부터 교회가 구제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살아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식량과 질병 이런 문제들로 교회가 구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따지면 진짜 도와줘야 할 사람은 교회가 아니냐? 교회가 빚이 제일 많으니까... 그래서 제가 젊쟎게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성도의 모임은 그 교통을 통해서 주님이 주신것들을 나누는데 육적인 것들은 물질을 나누고 영적인 것들은 용서하면서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와 충고는 영적인 자선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부유하심을 함께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성도의 교제의 특성은 영적인 생명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만나서 교회의 성도보다 끈끈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동업하는 사람 같은 회사에서 운명 공동체가 되어서 한 사업을 하면서 배를 탄 사람 모두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은 영적인 결합은 아닙니다. 그냥 이익을 위해서 사람들이 모이고 모이다 보니까 인간적인 정으로 끈끈해진 것입니다. 생명은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 예수께로부터 시작해서 거기에 접붙여진 지체들 사이로 예수의 생명이 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적 생명이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자 각 사람에게 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실제적인 생활에 있어서 잘못 교통하게 되면 교제를 잘못하게 되면 이 관계가 딱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도 목회자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시험이 들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반항 하는 사람과 교제를 깊이 가지고 그 사람과 인연을 끈끈하게 가지게 되면 놀라울 정도로 그 영적인 질병들이 끈을 타고 연결이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 한사람이 시험에 들어 쓰러지면 그 사람과 함께 기가막히게 같이 쓰러지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것이 뭐냐면 교제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기에 적합하지 않은 비 영적인 교제를 하게될때 그렇게 어느 한순간 넘어질때 같이 쭉 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이 안 믿는 가족에서 나 혼자 신앙생활할 때 가족들하고 올바른 관계를 갖지않아도 기도의 문이 막히고 부모 원망하고 그 다음에 시집 식구들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기도가 막히고 말씀이 자꾸 방해를 받으면서 은혜의 생활에 지장이 오는데 하물며 함께 예수안에 접붙여져 있는 성도들끼리 올바른 성도의 교제가 안 이루어지고 이탈된 방법으로 교제가 이루어질때 이것은 곧바로 각자의 영적인 생명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아주 죽지는 않지만 그래서 기도가 막히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막히고 영혼이 시름시름 병들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와서 여러분들이 생활할때에 하나님앞에 은혜를 받을뿐 아니라 목회자 그리고 성도들 이런 사람들과 하나님이 슬퍼하시지 않는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것은 자기가 받은 은혜를 보전하는 영적인 껍질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개념이 없어서 아무렇게나 한다는 것입니다. 머리에 골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몸에 팔이나 어깨 같은 데에는 칼에 찔려서 1cm 파인다고 할지라도 생명에 지장이 없고 손 같은 것 총에 맞아도 죽지 않습니다. 최악의 경우 손목을 잘라내면 됩니다. 그러나 만약에 머리에 문제가 생긴다면 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단단한 뚜껑을 씌여 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 단단한 것 같지 않지만 벽에 부딪히면 유리창이 와장창 깨졌는데도 골은 끄덕 없습니다. 이것이 워낙 단단해서 잘 보전이 되는 것입니다. 소중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튼튼한 껍질에 보관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에 있어서 골이 그렇게 중요해서 단단한 껍질에 보관을 하셨다면 여러분들이 예수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 영적인 생활은 얼마나 단단한 껍질에 제대로 둘러 싸여 있어야 되겠는가 하는 것을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머리가 하얗게 되었는데도 시험이 들어서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또 저 교회에서 이 교회로 연말이면 두루 방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 들으면서도 그런 사람이 있으면 이제 끝내십시오. 언제까지 그렇게 살 것입니까?
그러다 막판에 죽었을 때 추도 예배 드려줄 교회도 찾지 못해서 그래서 두 다리 세 다리 건너서 이 목사 저 목사 꿔다가 관 뚜껑을 덮는 그런 인생을 산 사람이 그것이 올바른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유리 방황하면서 영적으로 정착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어떤 사람의 경우인지 아십니까? 교회에서의 성도의 교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목회자와의 바른 관계, 성도들과의 안정감 있는 올바른 관계 이것을 유지하면서 살지 못하는 다시 말해서 골은 있지만 껍질이 튼튼하지 못해서 한번 부딪히면 두부가 부서지듯이 골이 부서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영혼 안에서 일어 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안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면 교회안에서 돈을 빌려 준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개척하면서부터 하지 말라고 증거를 대라고 하면 제가 수십개의 테이프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지 말라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굉장히 존경하는 집사님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는 나를 교회로 인도해 준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책도 사 주고 나를 이끌어 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에게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자기도 빌려서 빌려 주었는데 안 갚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전에 돈 거래가 없을 때에는 나를 인도해 주시고 내 영혼을 챙겨 주시던 분이 이제 빚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속에서 그 사람 관계 때문에 계속해서 채무 문제로 고통을 받는데 이것이 성도의 영적인 교통이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역장 이었는데 구역원 이었는데 늘 나의 말에 고분고분하고 나를 따라오던 구역원이었는데 구역장이 돈을 잔뜩 빌려 갔습니다. 사업을 하겠다고... 그래서 존경하는 구역장이니까 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갚지 못합니다. 안 갚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어려우니까 잘 안되는 것이겠지요. 못 갚습니다. 그러면 구역장이 성경을 펴 놓고 가르치는 그것이 자기는 이 사람 때문에 대신 이자를 물어 놓고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그 말씀이 들어오겠습니까? 그 사람한테 목양이 가능해 지겠습니까? 심지어는 목회자들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저는 모르지만 목회자들도 교인들에게 돈을 빌려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꽤 많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이야기 하는데 목회자들이 돈 빌려 달라고 하면 빌려 주면 안됩니다. 교회가 빌려 달라고 할 수는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빌려서 썼으니까... 갚고 있습니다. 거의 다 갚았습니다. 그것은 공적인 것입니다. 교회에서 건축을 하기 위해서 돈을 빌리는 것은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에서는 부목사가 계속 사모를 통해 돈을 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에서는 결국 부목사가 못 있고 부인하고 교회를 사임했는데 5억을 떼어 먹고 도망을 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을 만났습니다. 왜 교회를 옮겼냐고 하니까 IMF가 나서 교회를 옮길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IMF하고 네가 부목사 하는 것 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것이 IMF 상관이 있는 것입니다.
사모님이 그렇게 돈을 빌려다가 그런데 그것이 중독입니다. 가는 교회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교회에서 목회자나 목회자의 사모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꾸로 하는 것도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옛날에 마당에 앉아서 교회를 옮기고 고통받고 있는데 명색이 성도라는 사람이 와서 얼굴도 잘 익히지 못한 성도인데 와서 “목사님 부탁이 있습니다. 700만원만 오늘 좀 빌려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돈도 없거니와 내가 지금 돈 염려를 하면서 나무 그늘 아래서 이렇게 있는데 번지수를 잘못 집어도 한참 잘못 집었지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이야기를 해 줄 접촉점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집사람 한테 세상에 어쩜 그렇게 개념이 없나 목사는 그런 것 빌려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영적인 목자입니다. 그러면 나한테 700만원을 빌려 갔다고 치면 나도 없었으니까 누구에게 빌려서 주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못 갚을때에 자기 말로는 700만원만 해 주면 한달 뒤에 일억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것이 거짓말 아닙니까? 그럴때에 과연 그 사람이 계속해서 교회에 나와서 내 설교를 들을 수 있을까? 구역장인데 그렇게 하면 리더쉽이 서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것은 처음부터 시작을 잘못 한 것입니다. 요즘도 보면 여러분들이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주고 마음 고생한다는 이야기들이 들리니까 제가 이런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조금 더 하십시오. 마음 고생을 더 하십시오.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하는데 쌉니다. 왜 말을 안 듣죠? 왜 목사가 이렇게 이렇게 생활 하라고 입이 닳도록 가르쳐 주었는데 그 룰을 스스로 집어 팽겨치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마지막에 원망하는 것은 교회를 원망합니다. 두 번 죄 짖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하면 안 되는 일인데 교회에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벌써 여러분들 그렇게 해서 성도들에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돈을 빌려 쓰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신뢰하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히브리파 과부와 헬라파 과부처럼 서로 눈치를 보고 원망을 듣는 그런 관계가 되었을 때 예전처럼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형제로서 그 빚쟁이를 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해서 안되는 것을,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을 알면서 했을리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자주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그러면 알면서도 그렇게 했으니까 여러분들은 그것이 그 사람들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으로 했다기 보다는 그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빌려 줌으로서 유지되는 당신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의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생계를 위한 비용이 아니라 사업을 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빌리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것은 커다란 일을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의 양심으로 확신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의 영혼은 잠자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에서 멀어져도 한참 멀어진 사람입니다. 그는 어려운 사정이 있을지 모르지만 거의 기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바라 보지 못합니다. 가난한 마음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한동안 교회에 그런일이 우리 교회에 절대 없었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 이었습니다. 요즘에 여기에 나온 대로 제자가 더 많아 졌는데 그때에 교인이 더 많아 졌는데 돈 빌려 준 열린교회 교인이 돈 꿔간 열린교회 교인을 원망한데... 뭐가 우습습니까? 저는 일주일 동안 밤 잠을 잘 못자는데 여러분들에게는 이것이 웃음거리로 들리십니까? 거두절미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까요? 지금이라도 제 말을 들으면 영혼의 손해를 덜 보고 마무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계속 저의 이야기를 안 듣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둘 다 심각한 위험에 바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의 마음속에 있는 이 사랑의 마음속의 말을 잘 듣고 이해 하기를 바랍니다. 우선 돈을 꿔간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잘못한 것입니다. 교회의 이 성도의 모임은 여러분들이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모임이 아닙니다. 그런 자신의 이익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런 일을 했다는 것 자체가 여러분들은 잘못 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아마 양심이 있고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면 교회 밖에서 충분히 돈을 빌릴수 있는데 교회 안의 성도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다하다 안되니까 구역장에게 구역원에게 그리고 같은 교사에게 부장 집사님에게 부탁을 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얼마나 어려우면 가엾고 동정이 갑니다. 그렇지만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신앙적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처음부터 여러분의 머릿속에 대못을 박으십시오. 교회는 그럴 수가 없는 곳이다 라고 못을 박으십시오. 교회에서 먹고 살기가 어렵고 갈곳이 없으면 구제는 받을 수 있지만 지체에게서 돈을 빌릴 수 없다. 그것을 머리에 대못처럼 박으십시오. 그렇게 해서 일시적으로 변통해 쓰면 문제가 없겠지 그것이 아니라 그렇게 거룩한 성도의 교통을 개인적인 경제적인 이득과 관련해서 사용하는 자체가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둘 사이에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루어 져서 원망을 안사도 죄를 짖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속한 시일내에 변제를 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이것이 꾸어간 사람들에게 주는 첫 번째 충고입니다. 두 번째 충고는 하나님은 당신과 하나님 자신과 성도들의 관계를 끊임없이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다양한 섭리의 수단들을 사용해서 여러분들을 다루십니다. 그래서 돈 걱정은 없는데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게 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게 되는 사람들도 있고 돈도 많고 건강도 좋은데 마음의 번민과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서 손들고 예수께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도들이 주님을 알아가고 주님앞에 자기를 돌아보고 매달리고 주님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만복의 근원은 우리 주님밖에 없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 많이 사용하시는 방법이 물질을 쪼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이 모두 하나님과의 관게가 잘못 되었기 때문에 징벌을 받고 있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보면 주님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사람들 중에도 빌레몬 같은 부자도 있었지만 정말 가난한 사람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잘 섬기면 부자가 된다고 하는데 저는 평생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기면서도 셋방에서 살다가 평화롭게 주님의 나라에 가는 아름다운 성도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을 염두해 두면서 받아 들이십시오. 그러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여러분들이 모두 다 그런 극소수의 사람 가운데 하나가 나 일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돌아 보십시오. 돈을 많이 주셨을 때에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다가 잃어 버렸는지 그리고 주님이 주실 때 그것을 교회와 하나님을 위해서 온전하게 사용하고 충성되게 관리를 했는지 돌아 보십시오. 돈을 번다고 눈이 빨개져서 돌아 다닌다고 돈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고 도저히 안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막으시는 사람은 안 됩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집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물질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연단속에 있지 않은지를 세심히 보라는 것입니다. 제가 마음속에 있는 이런 이야기를 다 하면 나는 할 수 있는데 여러분들이 너무 마음이 상할 까봐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습니다. 놀라운 일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질의 크기나 그가 가지고 있는 권력의 크기를 보고 감동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의 근원이 하나님 자신 이시니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시는가 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옛날에 있었던 교인인데 장로님입니다. 외부에서 오셨던 분인데 그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워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병까지 들었습니다. 심방을 갔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말이 목사님 저는 왜 되는 것이 없습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잘 될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연단이죠 그런데 계속해서 연단입니다. 아주 지긋지긋한 물질의 연단... 마지막에 건축헌금 3,000만원 떼어 먹고 도망 가는 것을 보면서 모든 의문이 풀렸습니다. 저렇게 여러 교회를 떠돌아 다녔구나... 그래서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해야 주님이 주시는 복은 막을 사람이 없고 주님이 주시지 않은 것을 뺏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는 아니지 않습니까? 평안하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러움이 없이 성도들을 섬기며 그렇게 살 수 있으면 되지 않습니까?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주님의 복을 받으라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다음에 빌려준 사람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 회개하라 교만을 회개하라 자기가 돈을 빌려 줄 수 있다고 믿는 그 교만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왜 빌려 줍니까? 그러면 성도의 부탁이 중요합니까? 목사의 목회적인 가르침이 더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합니까? 사람의 인정이 더 중요합니까? 왜 정직하지 못합니까? 교회에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목사님께 배웠습니다 라고 짜르지 못합니까? 그렇게해서 여러분들이 빌려 주었을때 특히 거금을 빌려 주었을때 여러분들을 그 사람이 얼마나 고마워하고 높였겠습니까? 그 받을 영광을 충분히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회개하십시오. 두 번째는 뭐에 대해서 회개하는가 하면 돈을 빌려준 사람의 영혼을 곤경에 처하게 한것에 대하여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빌려 주었기 때문에 그 지체는 계속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다리 건너서 두다리 담임 목사인 나에게 까지 들어올 정도이니까 감히 나에게 직접 와서 이야기는 못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들을지는 자기가 너무 잘 아니까... 두다리 세다리 건너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으니 있다고 하는 이야기는 실제로는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2주일 동안 잠을 못잤습니다. 내가 목회하는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구나...
그러니 그때가 언제 였는가 하면 배교적 예배에서 돌이키라 그때 였습니다. 제가 얼마나 오래 참았는지 기억이 나죠... 그러니 예배를 그꼴 밖에 못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혼나야 합니다. 왜 빌려 줍니까? 그렇게 여유 있는 사람이 헌금은 왜 그렇게 안합니까? 하지 말라고 이야기 했는데...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는 회개할 것이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잘 들으십시오. 포기 하십시오. 오늘 찿아가서 안 갚아도 된다고 진심으로 이야기 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들이 사는 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제가 분명히 이야기 했습니다. 줄 수 있다. 그런데 받을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만 줘라. 그리고 줄때 돌아 올 생각을 하지 말고 전혀 되돌려 받지 못해도 줄때는 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구제하는 마음으로 주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있으니까 하셨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오늘 저녁에 만나서 안 갚으셔도 됩니다 제가 감당할 여유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제가 당신을 섬긴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고 포기하십시오. 그리고 더더욱 여러분들중 어떤 사람은 자기가 그렇게 돈을 빌려 주었는데 돈을 안 갚는 다고 소문을 내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세 번 잘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면 그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영혼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불신하게 만들고 성도의 교통을 얏잡아 보게 만들고 심지어는 교회의 직분 집사나 구역장이나 영적인 지도자들을 하챦게 알고 돈이나 빌려가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 번 죄를 짓고 그렇게 다니는 동안에 당신 자신의 영혼은 돈 빌려가서 안 갚는 사람보다 더 나쁘게 망가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 하시겠습니까? 왜 여러분의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합니까? 제가 이것을 몇 달을 참았다가 하는 설교입니다.
이것이 인터넷에 다 뜰텐데... 전 세계에서 클릭해서 보고 있습니다. 가르침이 부족해서 그렇게 행동을 했습니까? 포기 하십시오. 깨끗이 포기 하십시오. 그것도 에이씨 하고 포기하면 하나님 앞에 또 벌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저녁에 깊이 회개하고 돈 빌려간 사람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십시오. 하나님과 교회와 목회자의 가르침을 거절하고 제가 잘못 했습니다. 그 동안에는 당신이 내 돈을 꾸어 가서 안 갚아서 마음으로 한풀 접고 당신을 꼬나보고 했는데 그것도 하나님 앞에 죄 지은 것이었습니다. 기쁘게 아주 기쁘게 당신을 위해서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에는 감당하기 너무 큰 액수이면 가로를 치고 한줄을 더 쓰십시오. 이 다음에 점 찍고 다시 아주 이 다음에 그래도 여유가 있으면 우리 자식대에라도 갚아 주십시오. 그리고 머릿속에서 지우십시오. 오늘부로 싹 지워 버리십시오. 그것이 그나마 덧난 상처에 소독약을 뿌리고 포도주를 붇고 붕대를 붙이는 길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원망하며 다닌다는 소리가 들리면 그 다음에는 제가 직접 부르겠습니다. 그래서 수십개의 테이프를 가져다 놓고 이렇게 충고 했는데도 왜 그렇게 했는지 사유서를 쓰라고 하겠습니다. 이번에 제가 보고 나서 결심한 바가 있습니다. 이제 이후로 부터는 교회에서 이 문제를 엄격하게 다룰 것입니다. 둘 다 처벌하겠습니다. 빌려 준 사람, 빌려 간 사람... 제가 이정도로 까지 이야기 하면 얼마나 안타까워서 이야기 하는지 이해가 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진리를 먹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면 여러분 가운데 90%는 무릎을 꿇습니다. 그런데 왜 그 진리를 붙들고 살지 않고 상식을 붙들고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세우신 영광스러운 교회에서 그렇게 마음이 갈라지고 헬라파 과부와 히브리파 과부 사람들이 그렇게 사랑으로 연합하고 함께 땀 흘리고 함께 기도하며 섬기던 사람들이 채권 채무 관계가 되어서 이익의 문제와 얽혀서 교회에서 마주보면 원망으로 가득차고 또 어떤 사람은 그런 광경을 보는 사람은 실족을 하고 왜 그런 일들을 만들어 냅니까? 여러분들이 만약에 집사로서 그런 일들을 했다고 하면 그렇게 해서 손해를 본 사람들이 집사 알기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 집사에게 직분을 준 교회 알기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우습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왜 그런 잘못을 하는 것입니까? 깨끗이 잊어 버리십시오. 그리고 뜻을 세우십시오. 받지 않겠다고... 성도로서 돈을 빌려가서 갚지 못하는 그 성도의 눈물나는 사정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아마 내가 모르지만 당사자들 개인적으로 불러서 이야기 하면 저도 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이해 되는것은 이해 되는 것이고 신앙적으로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차피 갚지도 못하는데 계속 미워하고 마음속에 계속 원망을 품고 하면 결국은 돈도 잃어 버리고 사람도 잃어 버리고 교회와의 관계도 깨지고 그러다 시름시름 병들어서 교회를 떠나면 그것을 또 뒤에서 바라보는 목회자의 마음은 또 어떻겠습니까? 더군다나 그것이 얼마 안되는 얼마 안되는 것도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그렇지만 접으십시오. 구제 했다고 하고 그리고 깨끗하게 접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새출발 하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아주 가벼워질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섭리 속에서 내가 고액의 과외비를 지급했구나. 그렇다. 그러나 나는 믿음으로 살아야지 그리고 그렇게 빌려주고 빌려간 관계로 얽힌 사람을 다시 안 보면 그것은 네 번째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설교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너무나 큰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용서 할 수 없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어려우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지체들에게 손을 내밀겠습니까? 그 지체에게 손을 내밀때 당당한 구역원이 구역장에게 손을 내밀어서 채무자가 될 때 권사가 손을 내밀어서 집사에게 돈을 빌릴때 그때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왠만하면 안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차라리 이러면 어떻습니까? 천만원을 빌려 갔다고 칩시다. 나는 여유가 좀 있습니다. 어느날 불쑥 전화해서 안 갚아도 되어 하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습니까? 오백만원을 싸들고 가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가서 천만원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오백만원은 보태드릴테니까 급한대로 쓰십시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와 예수 안에서 내가 사랑으로 당신에게 도와 드리는 것입니다. 쑥쓰러우면 헌금통에 집어 넣으십시오. 제가 전달해 줄테니...
그리고 마음속에서 깨끗이 지워 버리십시오. 주님 앞에 구제 헌금 했다고 생각하고 꺠끗이 지워 버리고 예전보다 더 많이 용서하고 더 많이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하고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렷을 때는 부모속을 많이 썩이다가 나이가 점점 들면 철이 들어서 부모 마음을 편하게 해 줍니다. 여러분들은 반대인것 같습니다. 어려서는 말을 잘 듣고 했는데 자라면서 마음도 많이 아프게 하고 그렇습니다. 그래도 참아야죠. 세끼인데... 여러분도 참고 진심으로 탕감해 주고 인격적으로... 할 수 있으면 더 도와 주십시오. 구김이 없이 이 일을 통해서 돈을 빌려간 사람이나 빌려 준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 깊이 자기를 돌아보고 다시 진리의 빛 안으로 돌아와서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오늘 밤에 해결하면 내일 새벽부터 은혜가 쏟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결정적일때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싹 정리하고 우리 같이 은혜 받고 새 출발 합시다. 언젠가는 지금이 당신이 내 도움을 받았지만 언젠가는 내가 당신의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내가 어려움에 처하면 잊지말고 당신이 가장 어려울때 내가 섬겼던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면서 서로 의지 하면서 살아 가는 것입니다. 성도가 누구 입니까? 이 세상에서 아무대도 의지 할 때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친구들이 그렇게 많습니까? 없습니다. 교회에서 웃고 교회에서 울고 교회에서 마음 아파하고 교회에서 행복해 하고 지체들이 예수를 믿고 우리 구역에 많은 영혼들이 변화 되었다고 하면 기뻐하고 그러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 얼마 안되는 물질 때문에 마음이 갈려지고 나뉘고 미워하고 한다면 어리석게도 우리 삶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다 없어도 셋만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주님,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목양, 함께 사슴처럼 기대며 살 수 있는 나의 사랑하는 지체들... 이 세상 풍파 심하고 또 환란 많으나 내 영혼이 쉴곳 은혜의 보좌 쉬은 소,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내 영혼을 돌보는 목자의 목양을 받고 슬픔과 아픔을 함께 나눌수 있는 사랑하는 지체들이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가장 최악의 일이 일어나야 죽는 것입니다. 거기서 성도들의 전송을 받으며 목회자의 품에 안겨 죽을 수가 있다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잃어 버리고 나면 나머지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일 새벽기도 하기 전에 오늘 다 해결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더 많은 것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하나님이 확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일을 통해서 교회가 사랑으로 모두 하나 되어서 이제는 돈 꾸어가서 안 갚는다고 마음을 접고 살았던것 회개하고 그의 영혼을 보듬고 진심으로 축복하고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랑해 줄 수 있는 그런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