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자로 부르심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녹취자: 김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삶은 예배의 정신을 따라서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삶의 예배를 잘 드린 사람들만이 공적인 예배에서 하나님 만날 수 있고 또 예배 생활을 잘 한 사람들만이 삶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여러분 죽을 때까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가 태어난 목적이고 그리고 예배는 우리의 영혼의 위로입니다.
어제 저녁에 뉴스를 들으니까 이제 우리나라 원전을 모두 점검한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참 걱정이 많습니다. 안전하다고는 계속 그러지만, 정말 그런 큰 지진이 오거나 적군으로부터 미사일을 공격 받았을 때 안전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예배는 우리의 삶과 마음에 성벽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우리의 삶 속에 곧게 살아 있으면 공격을 막아줍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힘들고 고단하고 낙담하고 괴로울 때에도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 드려서 예배를 드리면 그 많은 공격들을 예배가 막아 줍니다. 그러나 예배가 없는 삶은 성벽이 모두 무너지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적군에게 그대로 노출된 것과 같은 그런 집입니다. 그만큼 예배는 우리의 삶에 보호자 역할을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예배가 다 그러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는 정말 하나님을 만나는 생생한 진리와 은혜의 감격이 있을 그 때에 우리의 삶에 방파제가 되어 줍니다. 어차피 우리의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시련의 파도와 고난의 물결이 가득한 속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언제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예화) 오늘 아침에 신문을 보니까 센다이 지역에 14m의 쓰나미가 몰려와서 완전히 다 파괴되었습니다. 정말로 끔찍했습니다. 여러분이 보면 바닷물이 시커멓게 올라오는데 바닷물이 왜 이렇게 시커멀까 이러는데 지진이 일어나면 지각이 흔들리면서, 풍랑은 바다 위만 출렁거리게 하지만 이것은 바닷물 전체를 솟구치게 만들어서 밀어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시커먼 물이 된답니다. 그런데 맨 처음 진원지에서 황! 하고 지각이 뜯어지면서 쏟아져 나오는 그 물이, 밀리는 물이 시속 700km 랍니다. 상상이 안 가는 속도입니다. 비행기와 같은 로 물이 밑바닥부터 위에까지 솟구치면서 일직선으로 벽처럼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힘이라고 하는 것은 어마어마합니다. 그래서 싹쓸이를 당했는데, 44년 전에 어느 마을에 아주 정신이 투철하고 뚝심이 있는 촌장이 있었는데 하여튼 고집을 쓰면서 요구를 해서 15m의 제방을 쌓았답니다. 뭣하러 15m까지 쌓아야 됩니까 했더니, 1880 몇 년, 1900 몇 년 두 번에 걸쳐 14m 50cm 쓰나미가 밀려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15m로 쌓아야 한다고 했답니다. 아마 그 당시에는 그 촌장 때문에 그 현에서는 혹은 그 도에서는 아마 꼴통 때문에 생고생한다고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그 방파제를 쌓았는데 그 쓰나미가 그 제방둑 바로 아래 딱 걸린 겁니다. 14m 였잖습니까 그 위에 있는 8000명이 사는 주민이 털끝 하나 안 다치고 그렇게 방파제가 소중한 보호의 역할을 합니다.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지금은 이름도 잊혀진 수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미끄러지는 순서는 항상 똑같습니다. 제일 먼저 예배의 은혜를 못 받기 시작하고, 첫 번째 제방이 무너지고 나면 두 번째 개인 경건의 생활의 제방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영혼만 남습니다. 그까짓 것 공격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가 나를 아프게 하고, 주님을 섬기다가 힘든 일이 일어나면, 그런데 예배에서 은혜를 받고 개인의 경건이 살아 있으면 오히려 그 고난을 통해 주님을 더 묵상합니다. 그러나 첫 번째, 두 번째 둑이 무너지고 나면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예화) 여러분 희귀병에 걸리게 되면 무균실에서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루에 지금은 아마 60만원 가까이 할 겁니다. 면회 오는 사람도 모두 다 우주복 같은 것을 쓰고 들어와서 마이크로 면회를 합니다. 티끌만한 병균도 이길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 무너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예배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고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이기면서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오늘 사도는 우리에게 이러 이러한 삶이 너희의 드릴 영적인 예배니라 하고 말합니다. 그 얘기는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의 삶과 예배가 나누어지지 않고 함께 흐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수준과 한 사람의 삶의 수준은 잠시 잠깐 동안은 차이가 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결국은 삼투압 현상처럼 서로를 낮추고 높혀서 결국은 동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을 능가하는 예배도 없고 예배를 능가하는 삶도 없는 것입니다. 예배 속에서 은혜를 못 받고 졸고 태만하고 그렇게 되면 그것은 자신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시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이 성경이 기록된 때와 똑같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쓰러진 자를 일으켜 세우고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을 뉘우치게 만들고 뉘우친 자들에게 사죄의 은총을 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마음을 깊이 가다듬고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고 예배의 은혜를 받도록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