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영혼과 영원 (2)
녹취자: 김경애
7. 진리로 말미암아 정화되고 성령 안에서 영원 자체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는 순일성을 간직함으로써 물상의 작용으로 혼란스러운 마음에 좌우되지 않고 오히려 그 마음을 이끌 수 있으며 이 안에서 인간의 마음은 단일성을 갖는다. 그러한 단일성 안에서 흘러나오는 인간의 모든 삶은 영혼이 바라보고 있는 진리를 향하여 지배받는 삶이 되고 궁극적으로 그 영혼이 바라보고 있는 하나님의 선과 아름다움으로 통합된다.
7번 진리로 말미암아 정화되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함으로써 물상의 작용으로 혼란스러운 마음에 좌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마음을 이끌 수 있다. 이 안에서 인간의 마음은 단일성을 갖는다. Singleness 아까 설명했습니다. 이런 단일성 안에서 흘러나오는 인간의 모든 삶은 영혼이 바라보고 있는 진리를 향하여 지배받는 삶이 되고 궁극적으로 그 영혼이 바라보는 하나님의 선과 아름다움으로 통합된다.
8.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고 마음으로 그 하나님의 영향을 받는 상태가 자신의 모든 삶 속에 스며들기는 마치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연 세계의 모든 사물들이 하나님의 힘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스며드는 것이다. 그 때에 인간의 모든 삶과 마음의 생각은 씨줄과 날줄로 엮여 인간 생활의 옷감을 짜고 그 올 하나하나에 하나님 창조주의 위대한 아름다움이 배여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개개인의 삶들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안에서 연합을 이루므로 온 세계안에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찬연히 보여주며 그 도덕적 질서의 아름다움은 자연 세계를 통해 발견하는 아름다움과 함께 인간이 하나님을 알게 하는 두 개의 책이 된다. 다만 전자는 보다 더 주된 책이며, 후자는 전자의 증언에 의해 그 의미가 실제화 되는 그런 종류의 책이다. 그러므로 신자 안에 있는 영혼은 날마다 신자에게 소리친다. “나를 내가 온 고향을 향하여 살도록 영원한 세계를 향하여 창문을 열어 달라.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로서는 나의 양식을 삼을 수 없으니 내가 온 고향인 하나님 자신을 보여 달라.”
8번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향을 받는 상태가 자신의 모든 삶속에 스며들기를 마치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연 세계 속에 사물들이 하나님의 힘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스며드는 것이다. 이때 인간의 모든 삶과 마음의 생각은 씨줄과 날줄로 얽혀 인간생활이라는 옷감을 짜내고 그 올 하나하나에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배이게 한다.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개개인의 삶들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안에서 연합을 이룸으로 온 세계 안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개개인의 덕이 온 세계 안에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찬연히 보여주며 그 도덕적 질서의 아름다움은 자연세계를 통해 발견되는 아름다움과 함께 인간이 하나님을 알게 해주는 두 개의 책이 된다. 즉 자연의 책, 도덕의 책 그런데 그 도덕은 종교와 관련을 맺고 있고 계시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전자는 후자보다 더 주된 책이며 후자는 전자의 증언에 의해 그 의미가 실제화 되는 그런 종류의 책이다. 그러므로 신자 안에 있는 영혼은 날마다 신자에게 소리친다. 나를 내가 온 고향을 향하여 살도록 영원한 세계를 향해 창문을 열어달라고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로써는 나의 양식을 삼을 수 없으니 내가 떠나온 고향인 하나님 자신을 보여 달라고 말이다.
9. 신자 안에 있는 영혼은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영혼이 성령과 진리로써 온전히 정화되어 영원을 향하여 온전한 교통을 누리게 될 때까지 끊임없이 고통을 받으며 그런 고통스런 영혼의 상태는 부분적으로 인간의 마음 안에서 의식 세계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정결케 된 영혼은 가장 행복한 상태가 되고 또한 그러한 상태는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신자 안에 있는 영혼은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영혼이 성령과 진리로써 온전히 정화되어 영원을 향하여 온전한 교통을 이룰 때까지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다. 그런 고통스러운 영혼의 상태는 부분적으로 인간의 마음 안에서 의식의 세계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정결하게 된 영혼은 가장 행복한 상태가 된다. 그런 상태는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10. 영혼의 상태는 마음으로 나타나고 또한 마음 안에 일어나는 작용들은 궁극적으로 영혼을 향하여 영향을 미친다. 짧은 기간으로 보면 영혼의 상태와 마음의 상태는 다를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두 개의 경향성이 일치를 이루게 되어 인간의 마음은 영혼의 미추를 그대로 반영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지상에서뿐 아니라 영원한 세계에서까지 인간은 자신의 영혼과 결별할 수 없으니 영혼 안에 자신이 있지 육체 안에 자신이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 영혼이 깨끗케 되는 일은 진리와 성령으로 말미암는다.
영혼의 상태는 마음으로 나타나고 또한 마음 안에 일어나는 작용들은 궁극적으로 영혼을 향하여 영향을 미친다. 짧은 기간으로 보면 영혼의 상태와 마음의 상태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두 개의 경향성은 일치를 이루게 되어 인간의 마음은 영혼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그대로 반영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상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한 세계에서까지 인간은 자신의 영혼과 결별할 수 없으니...
그렇죠? 그래서 어거스틴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 내가 나를 떠나 어디로 가리이까?’ 그래서 인간의 영혼의 존재는 결국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이 아무리 싫어도 자신과는 작별할 수 없습니다. 그 자기를 떠나서 자기가 살 수 없으며 자기를 직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이렇게 생각이 없이 살면서 자기와 직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반드시 주체성이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그냥 생각 없이 따라가고, 남들이 행하는 대로 살고, 남들이 이것이 행복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설득하면 자기도 생각 없이 따라가고 그렇게 하면서 살게 되면 진짜 인생의 어려움이 와서 자기 독자적으로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판단해야 할 때 그때에 자기가 그것을 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삶은 매우 크게 요동치게 되는 것이고 자기의 삶이 마치 바다위에 던져진 작은 쪽배가 그 평안을 온전히 파도에 의지하는 것처럼 그렇게 다른 사람에 의해서 자기의 운명이 결정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노예에 가까운 삶입니다. 그런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한순간을 살아도 의미가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나 자신의 인생에 주체가 되는 삶 그래서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느끼고, 주체적으로 판단해서 요동치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가치를 따라 사는 것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영혼과 마음의 관계가 나오는데 설명을 해야 여러분들이 고생을 덜 할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존재가 있으면 당연히 영혼이 있고 육체로 이루어집니다. 육체는 감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접촉을 하고 하는 오관입니다. 이 외에는 인간에게 들어오는 정보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감관은 당연히 육체의 기능입니다. 그래서 늙거나 사고를 당하면 보지 못할 수도 있고 듣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육체에 속해 있는 기능으로써 감관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오관을 통해서 사물들을 봅니다. 이런 사물들을 보거나 혹은 만지고 접촉합니다. 그러면 이것들은 당연히 인간의 육체를 통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색맹이 아닌 한 내 손에 들려있는 파란 펜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 봅니다. 그것은 눈이 좋은 사람을 뚜렷하게 보일 것이고 눈이 나쁜 사람은 그냥 퍼렇게 보일 것이지만 어차피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육체를 통해서 들어오는데 이 정보는 인간의 마음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들어오면서 각자 해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들어온 것을 보면서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보면서 ‘오늘 입고 올걸!’ 하는 파란 코트가 생각 날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이것을 보면서 목이 마르니까 무슨 음료인지는 모르지만 에너자이저 잉크물 같은 퍼런 그것이 마시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상상력이 더 뛰어난 사람은 이것을 보면서 ‘이봄에 파란 파도가 치는 푸른 바다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서 거기서 연장해서 ‘나는 아직까지도 애인 없어!’ 하면서 심란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 그런 것을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글을 어떻게 잘 쓰느냐고 나에게 질문하는 사람이 있는데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다독, 다사입니다. 다작도 있을 수 있는데 작보다는 다독 즉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연습해야 하느냐 하면 아무 단어나 하나 선택하면 그 선택한 단어를 가지고 그 뒤에 계속 수십 개의 다른 단어들을 쓰면서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 단어와 단어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이 속에서 자기가 조합을 통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글쓰기를 발전시키는 아주 좋은 훈련입니다. 마지막으로 그것을 실제로 실감나게 글로 옮기는 것입니다. 아까 이야기했던 ‘파란 펜, 에너자이저드링크, 푸른 바다, 애인, 홀로 있음. 시집가고 싶다.’ 이렇게 연결됩니다. 그렇게 단어만 연결하면 글이 안 되니까 하나하나 단어를 아주 실감나게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쭉 이어가면서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상력입니다.
이런 사물들의 인상이 들어오면 들어갈 때 여기서 무엇이 일어납니까?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지만 어떤 것들은 아주 심하게 정동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속에서 어떤 틀이 생기게 됩니다. Frame이 생기는데 이 Frame은 다시 여기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똑같은 것을 보았는데 이 Frame을 가지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는 만물을 보는 유리창이 되는 것입니다. 그 유리창을 통해서 보는 것입니다. 제가 눈이 계속 나빴는데 지금은 조금 좋아졌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검사를 한다고 하더니 정맥에 주사를 놓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주사를 놓더니 조금 토할 것 같을 것이라고 하더니 진짜 구토가 나는데 미치겠습니다. 몇 번을 웩웩거리다가 잠시 시간이 지나니 온 세상만물이 빨갛게 보입니다. 다 빨갛게 보입니다. 빨간데 각각 농도만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무서운 경험이었습니다. 다시는 그 주사를 안 맞을 것입니다. 그것이 형광제인데 그리고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정말 두려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생각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상과 세계관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를 딱 주입을 하고 나니까 모든 것이 다 빨갛게 보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틀이 형성 되고 나면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국 여기에서 이 마음이 수많은 행동들을 산출하게 됩니다. 영원은 어떤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은 이것 사이에는 굉장히 많은 심리학적인 연구결과들이 이루어지지만 사실 이것 사이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도 지극히 한정적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영혼이 아름다운 영혼이 있고 추한 영혼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록하십시오. ‘인간의 아름다움은 영혼의 아름다움이고 한 인간의 가치는 선한 의지의 크기에 달려 있다.’ 설명을 해보면 첫째 ‘인간의 아름다움은 영혼의 아름다움이고’ 무슨 뜻이냐 하면 인간의 영혼이 아름다울 수도 있고 추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름다운과 추함의 이야기로 들어가는데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요즘에 미학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런 책들을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추(醜)의 역사’ 아름다움의 역사는 많이 거론되는데 추함의 역사는 무엇일까? 아름다움과 추함은 이런 것입니다. 무엇이냐 하면 아름답다는 것은 결국은 조화와 비율과 균형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눈, 세상에서 제일 예쁜 코, 세사에서 제일 예쁜 귀, 제일 예쁜 입, 제일 예쁜 눈썹, 머리 이것을 모두 따다가 어떤 사람의 얼굴에 붙이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정확하게 비율을 맞추어서 심어야합니다. 비율이 맞지 않으면 하나하나는 예뻐도 전체가 예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인터넷에서 제일 값지고 좋은 한복을 샀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제일 비싼 돌체앤가바나 청바지 150만 원짜리를 샀습니다. 신성일 씨가 입고 다녔다는데 그것을 샀습니다. 그 다음에 제일 비싼 신발을 샀습니다. 그런데 그 제일 비싼 저고리에 돌체앤가바나 청바지, 프랑스제 구두를 신었다면 그것이 예쁘냐고 묻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어, 정말 독창적이다! 예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결국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조화와 균형의 문제입니다. 아름다움의 두 요소가 있는데 첫째는 개별적이 사물이 완전해야 합니다. 흠이 없고 완전히 좋은 것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보편적으로 볼 때 그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들과 잘 어울릴 때 그것을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래서 콘크리트 도로 위에 심겨진 소나무는 별로 감동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있는 소나무는 멋있습니다. 물론 소나무도 기품이 있는 소나무여야지만 멋있지만 해송이 서있으면 너무 멋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울림입니다. 우주 전체는 그런 어울림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어떻게 보느냐 하면 이렇게 과녁이 있는데 여기서 사람이 이렇게 활을 쏩니다. 딱 맞습니다. 10점입니다. 이것이 아름다움입니다. 그렇다면 추함은 무엇입니까? 아름다움은 조건이 있는데 추함은 조건이 없습니다. 이 과녁에서 빗나간 것은 다 추한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무슨 뜻이냐 하면 아름답게 위해서는 엄격한 조건이 필요하지만 추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이런 조건을 갖지 않으면 까딱 잘못하다가 예뻐진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과 관련되느냐 하면 선악이론과 관련됩니다. 선은 엄격한 조건 그리고 말하자면 질서, 조합, 목적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악은 거기에서 빗나가면 모두 악입니다. 악을 위해서는 갖추어야할 조건 ‘까딱하다가는 선이 된다. 조금 잘못되면 악이 선이 된다.’ 이런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아름다운 세상을 가꾸기 위해서는 인간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회나 자연세계나 자꾸 이탈됩니다. 요즘 슬픈 보고서들이 계속 나오는데 한강이 많이 정화되었다고 자랑했는데 지금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들이 하류에서 수없이 많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기형물고기들입니다. 그 이야기는 그만큼 생태계가 어려워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아름다운 자연의 세계와 아름다운 도덕사회를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조건 그리고 인간의 노력이 필요한데 악한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별로 노력할 필요 없이 그냥 놔두면 각자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면 개판인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도 인간이 실제론적으로는 이것이 실제라는 측면에서 Reality 즉 실제 있는 측면에서 보면 사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나뉩니다. 마음은 무엇이냐 하면 Function기능입니다. 그러니까 영혼이 없는 마음을 생각할 수 없고 육체가 없는 마음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육체와 영혼이 만나면서 인간은 마음이라는 것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마음 안에서 인간은 사랑하고, 미워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추한 것을 느끼는 다양한 생각을 하는데 문제는 이 마음 안에 하나님을 향한 신앙도 마음 안에 있고 죄도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영혼을 통해서 마음 안에서 인간과 만나주시는 만남도 인간의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육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이 마음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간은 이 마음 안에서 세계를 품고 자기를 세계의 질서 속에서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의 단순한 삶을 이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유의 힘이 인간의 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 영혼의 본질은 나는 힘과 경향성으로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는데 그 영혼을 부여받고 인간이 태어났을 때 하나님의 어떤 특별한 은혜로운 작용이 영혼에 행해지지 않으면 이 영혼은 결국 마음에 자각이 생기면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를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놓는 삶을 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영혼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때 힘과 경향성에 변화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 없이 살던 사람들의 영혼에 변화가 오면서 결국은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고 사랑하지 않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이런 변화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런 영혼의 경향성의 변화가 인간의 마음 안에서는 성향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하나의 행동은 마음의 반영입니다. 그래서 행동은 여기에 마음이 있고 당연히 여기에는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인격이 되고, 인격은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여기에서 인간의 행동이 재생산이 되면서 계속해서 반복해서 이것들이 순환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인간에게 있어서는 거의 운명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마음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그런 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중간고사 마지막 문제입니다.
B. 영혼과 마음
11. 영혼과 마음의 관계이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창조되었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은 이 영혼의 기능이며, 여기에서 육체의 작용과 만난다. 인간은 이 마음 안에서 기억하고 생각하며 사랑하고 의지한다. 이 마음은 스스로 사랑하는 주체가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으며 사랑자체이신 하나님과 교통한다. 마음은 끊임없이 기억을 통해 확장되는 것이며 그 크기는 인간의 추측을 넘어선다. 그래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결코 좁지 않다고 하였다. 영혼은 스스로 하나님과 영원한 것들을 보는 지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육체에 매여 있는 우리들에게는 상당 부분 비밀스런 것이다.
그 다음 뒤에 있는 부분도 지금 설명한 이야기를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11번을 읽어보겠습니다. 영혼과 마음의 관계이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창조되었다. 그래서 마음은 영혼의 기능이며 육체의 작용과 만난다. 마음 안에서 기억하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의지한다. 마음은 스스로 사랑하는 주체가 되기도 하고 사랑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과 교통하기도 한다. 마음은 기억을 통해 확장되는 것이며 그 크기는 인간의 추측을 넘어선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마음은 하나님이 거하시기에도 결코 좁지 않다고 했다. 영혼은 스스로 하나님과 영원한 것들을 보는 지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육체에 매여 있는 우리들에게는 상당부분 비밀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언젠가 시간이 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생각을 기계로 다운받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용량이 얼마나 될까? 는 궁금합니다. 그런데 아마 어마어마한 용량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사실 스스로 이 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의 1/10도 안됩니다. 뇌의 활용도 측면에서도 얼마 안 됩니다. 그래서 계발하면 계발할수록 엄청난 힘이 뇌에서 나온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소위 이야기하는 과학에서 Singularity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특이점입니다. 이것은 원래 천문학용어인데 이것을 현대 사회학에서 이것을 사용하는데 이 특이점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그 시점을 특이점이라고 합니다. 그럴 때 스스로 Deep Learning을 하면서 단순히 지금은 인간이 입력한 것에 한해서 판단하는데 그 정도가 아니라 인간이 내릴 수 있는 도덕적인 판단까지도 대신 할 수 있을 정도로 Deep Learning 이 되고 그 다음에 자가 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때 인간의 한계점을 능가하는 지점이 특이점인데 그것을 빨리 보는 사람은 2045년 아주 늦게 보는 사람은 2075년 정도를 보는데 한 30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 이후에 전개될 세상은 어떻게 될지 아는 사람은 Nobody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300년 전에는 300년 후를 대충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30년 후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빌게이츠조차도 자기가 틀린 것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시인하는데 30년 후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과학기술이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그런 책들의 유작과 최근에 나오는 ‘유발 하라리’가 함께 들어간 ‘초예측’이라는 책들은 미래 4차 산업 혁명 이후에 일어날 세계가 어떤 세계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전문가들이 보여주는 답문들로 이루어졌는데 ‘유발 하라리’의 이야기는 귀담아 들을 만합니다. 굉장히 심각한 어떤 의미에서 경고일 수 있고 그런 것들이 단순히 사회와 세계의 문제이며 나는 시골에 혼자 틀어박혀 살겠다고 하면 상관이 없는데 그것이 나의 삶과 직접적인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확실하게 이야기해서 지금 여러분들이 20대 초반이라고 하면 여러분들이 사회에 나아가서 취업을 하지만 취업한지 얼마 안 되어서 대량 실직사태가 일어납니다. 50년 후에는 지금 인간이 하고 있는 직업 중 70%가 AI에 의해서 대체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될 경우에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나 이제 역사학을 열심히 해서 아이들을 가르쳐서 좋은 선생님이 돼야지!’ 하는데 아직 정년도 안 되었는데 교사퇴출이 시작될 때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나의 삶의 의미는 어떻게 찾아야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실제로 지금 보면 의사보다는 AI가 처방을 정확하게 내린다는 통계가 나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의사직업도 없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문학가들도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요즘 AI가 쓴 소설도 나옵니다. 그래도 끝까지 없어지지 않을 것이 그래도 성직자라고 하는데 굉장히 다행입니다. 얼마나 썰렁하겠습니까? 어느 날 AI가 ‘새로 Update된 AI목사님의 설교를 듣겠습니다.’ ‘오늘은 우리 모두 요청에 의해서 역사이야기를 하면서 설교를 진행하겠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실행되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책을 이미 습득했으니까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우습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의 의미를 규정짓습니다.
그 다음에 영혼은 스스로 하나님과 영원한 것들을 보는 지각을 가지고 있으며 육체에 매여 있는 우리에게는 비밀스러운 것이다.
12. 영혼은 인간 마음 없이도 그 자체 안에 아름다운 것을 보고 기뻐하며 행복해하는 사랑의 정동을 지닐 수 있으니 이는 이 땅에 육체를 벗어버린 영혼만이 거하는 중간상태에서도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추론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에 있는 동안 이러한 영혼 자체가 가지는 신비한 정동의 작용들은 대부분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으니 신자의 경험은 마음 안에서 영원을 찾고 존재와 선, 그리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영혼의 작용을 경험할 뿐이다. 이러한 영혼의 정동도 또한 신자의 마음 안에서 지각된다. 그러므로 영혼이 자기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향해 갈망을 가지는 것도 마음을 통해서 경험되며, 따라서 신자의 마음에 대해 하나님 자신은 진리의 빛이시며 사랑의 음성이며 생명의 양식이시다.
영혼은 인간마음 없이도 그 자체 안에 아름다운 것을 보고 기뻐하며 행복해하는 사랑의 정동을 지닐 수 있으니 이는 이 땅에 육체를 저버린 영혼만이 거하는 상태에서도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추론해보면 알 수 있다. 굉장히 신비한 것입니다. 마음이 정동을 느끼는 것인데도 우리가 몸이 없이 영혼만 천국에 가서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가 죽은 이후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을 때까지 그 사이에 인간의 영혼이 수면상태에 있거나, 멸절상태에 있거나, 무감각상태에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즉시 기쁨을 누리는데 그런 기쁨은 마음이 없는데 영혼이 어떻게 누릴 수 있겠느냐? 이런 것들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의 사고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그것이 사실이라고 우리는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비스러운 부분들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영혼 자체가 갖는 신비적 작용들은 대부분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으니 신자의 경험은 마음 안에서 영혼을 찾고 존재와 선, 그리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영혼의 작용을 경험할 뿐이다. 인간의 마음 안에서 지각된다.
그 다음 13페이지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자기 주인인 하나님을 향해 갈망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도 마음을 통해서 경험되며 신자의 마음에 대해 하나님은 진리의 빛이며 사랑의 음성이며 생명의 양식이다.
13. 인간 존재는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그리고 이 둘은 인간의 마음 안에서 만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영혼을 당신 닮은 영혼으로 창조하셨으나 획일적으로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개별적인 독특성을 지닌 존재로 창조하셨다. 인간이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소유하는 본성은 전자와 관련되고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본성은 후자와 관련된다. 여기서 우리는 본질과 본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간략히 말하자면 본질은 어떤 물체를 바로 그 존재이게 만들어주는 필수적인 요소를 가리킨다. 따라서 본질은 존재와 관계된다. 반면에 본성은 어떤 사물이 그렇게 기능하고 작용할 수밖에 없는 내적인 성질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본성은 존재라기 보다는 그 기능과 작용에 관계된다. 본성은 어떤 사물이 그 작용과 기능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필연적인 원천으로 이해된다. 인간존재의 본질이 지성적 영혼에 있다면 인간 존재의 본성은 마음 안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본성이란 마음의 선호와 혐오를 결정짓는 방향에 다름이 아니다. 인간 존재는 마음 안에 존재하는 공통적이고 개별적인 본성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형상과 같은 생각들을 자신 밖의 세계에 구현하도록 작용한다. 그리하여 백 사람의 존재 안에는 백의 마음이 있는 것이다.
10장 인간존재는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다. 둘은 인간의 마음 안에서 만난다. 하나님은 영혼을 당신 닮은 존재로 창조했으나 똑같이 창조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독특한 존재로 창조하셨다. 사람마다 다르게 창조하신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갖는 본성은 전자와 관련되고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독특한 본성은 후자와 관련된다. 여기서 우리는 본질과 본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철학에서는 본질과 본성을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영화에서도 특별히 차이가 없습니다. Nature 라는 단어를 쓰는데 나는 이런 단어가 서로 다른 것으로 정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본질을 어떻게 보느냐하면 본질은 존재와 관련됩니다. 간략하게 말하면 줄치십시오. 본질은 어떤 물질을 바로 그 존재이게 만들어주는 필수적인 요소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본질은 존재와 관련된다. 반면에 본성은 어떤 사물이 그렇게 기능하고 작용할 수밖에 없는 성질이다. 그러므로 인간 존재의 본성은 마음 안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본성이란 마음의 좋아함과 싫어함을 결정짓는 방향이다. 인간 존재는 마음 안에 존재하는 공통적이고 개별적 본성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형상과 같은 생각들을 자신 밖의 세계에 구현하도록 작용한다. 그래서 100사람의 마음 안에는 100의 마음이 있다.
그러니까 본질은 그 자체의 구성과 관련된 것이고 본성은 그것이 다른 사물과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본질에서 본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14. 하나님은 인간을 이처럼 서로 다르게 창조하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창조목적을 따름에 있어서는 일치하지만 각자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자기 안에 있는 생각과 의지를 구현하게 하셨으니 인간이 타락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창조된 세계 안에 드러날 그들의 다양한 본성의 나타남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을까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의 반짝임과 밝은 태양 아래 존재하는 수많은 피조세계의 어울림을 능가하는 다양성과 아름다움이 충만하였을 것이다.
14. 하나님은 인간을 이렇게 다르게 창조하심으로 사랑하고 창조의 목적을 따름에 있어서 일치하지만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자기 안에 있는 생각과 의지를 구현하게 하셨으니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창조는 세계 안에 드러날 그들의 다양한 본성의 나타남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을까?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의 반짝임과 밝은 태양 아래 존재하는 수많은 피조세계의 어울림을 능가하는 다양성과 아름다움으로 충만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서로 다른 것을 생각할 때마다 밤하늘의 별을 생각합니다. 밤하늘의 별이 만약에 똑같은 색깔에 똑같은 크기였다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것은 밝고 어느 것은 흐리고 또 어느 것은 붉고 어느 것은 파랗고 그런 색깔의 차이를 보이면서 밤하늘이 신비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인간을 모두 획일적으로 만들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다르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미의 기준이 사실은 사회학적으로 인간에게 폭력적인 방식으로 강요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지금도 북한에서는 예쁜 여자의 기준이 동그란 얼굴에 보조개가 있고 약간 살이 찐 여자입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전혀 아닙니다. 마치 기다란 쌀처럼 얼굴이 계란형으로 생긴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를 들자면 캄보디아를 가면 캄보디아에서 최고의 미인으로 치는 사람의 얼굴형은 북한이 이런 형이라면 남한은 이런 형의 사람을 좋아하고 캄보디아에서 좋아하는 형은 이런 형입니다. 그래서 이 턱이 옆으로 퍼지고 책상에 올려놨을 때 안정적으로 놓일 것 같은 그런 형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은 아주 불길한 상으로 취급합니다. 남자들을 보면 한국과 일본이 거의 비슷한데 꽃남자 같은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피부 톤이 여자 같고, 얼굴은 깎아놓은 것 같고, 너무 근육질의 남자는 싫어합니다. 한국의 여성들은 그렇습니다. 너무 비실비실하면 안 되지만 비교적 마른체형으로써 골격이 옷을 입었을 때 Fit이 딱 떨어지는 그런 남자를 좋아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러시아에 가면 사람들이 다 밥맛이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못생겨도 좋으니까 ‘남자가 아니면 저렇게 생길 수 없을걸!’ 하는 정도의 사람을 좋아합니다. 상남자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얼굴이 아기자기한 것이 아니고 근육이 뚱돼지처럼 그렇고 능히 한 여자를 지켜줄 수 있는 완력을 가지고 있고 별로 친절하지도 않고 거칠게 대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러시아 여자들은 너무 좋아합니다. 수입, 사회적인 지위, 물론 그런 것을 따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매력을 뿜어내는 사람으로 보고 여자들이 좋아합니다. 그리고 결혼을 합니다. 러시아 여자들이 한국의 조선 여자들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조선 여자들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좋아해서 결혼을 하는데 만약에 바람을 피울 경우 한국 여자들은 참는데 러시아 여자들은 그 남자를 죽여 버립니다. 그래서 아주 빈번하게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살인범이 아내입니다. 한 번에 찔러서 죽여 버립니다. 끝장내는 것입니다. 러시아 여자들과 결혼하려면 심사숙고해서 결혼해야 합니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런 것을 각 나라의 특성들을 살펴보면 한 나라에서 생각하는 미의 기준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데 사회학적인 기준이 어떤 때는 폭압적으로 작동해서 그렇게 해서 우리를 미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한 시대적인 기준에 너무 지배를 받으면서 사는 삶도 사실은 주체성이 없는 삶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유롭게 자유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당연합니다. 주체성이 있는 삶이 필요합니다.
15. 따라서 인간의 영혼은 마음의 작용과 나뉘지 않으며 영혼 안에 있는 힘과 경향성들은 인간의 마음안에서 본성으로 작용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마음 또한 거기에 어울리는 힘과 경향성들을 갖게 되는 것이니 이로써 인간은 그 마음과 합치하는 수많은 삶들을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혼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러므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하며 마음이 온전해지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도 또한 자신의 영혼이 진리의 영향 아래 있기를 갈망하여야 하고 또한 성령의 은혜로운 작용아래 있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다.
5분 남았는데 마지막 15번까지 마치겠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영혼은 마음의 작용과 나뉘지 않으며 영혼 안에 있는 힘과 경향성들은 인간의 마음 안에서 본성적으로 작용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마음 또한 거기에 어울리는 힘과 경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니 이로써 인간은 그 마음과 합치하는 수많은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은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며 중심을 보신다. 그런데 사람은 외모도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자신의 영혼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아야 하며 온전해지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진리의 영향 아래 있기를 갈망해야 한다. 성령의 은혜로운 작용을 기대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