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얼굴 빛을 내게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시69:17)
기도의 필요성은 늘 강조되지만 커다란 시련, 우리의 힘으로 헤쳐 나갈 수 없는 커다란 시련이 닥쳐올 때에 기도의 필요성은 더 강조될 수밖에 없어요. 언제든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서 살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강조되지만 환난이 크게 닥쳐서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우리들이 봉착하게 될 때에는 하나님과의 화목의 중요성이 새삼 더 많이 강조된다 그런 말씀입니다. 또 우리가 상당히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대단히 슬기롭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서는 판단하기가 쉽지가 않고 또 우리가 판단을 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판단이 정말 정확한지 또 정확하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 판단을 쫓아서 하나님 앞에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들이 우리의 힘에 버겁다고 생각될 때, 그 때마다 우리는 새삼스럽게 강조 받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자기의 얼굴빛을 비추고 계신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얼굴빛을 비춰주시는 그런 축복의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당하는 괴로움이 심하고 어려움이 많이 있어도 그 큰 어려움과 괴로움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시련을 당하면서 정말 그 시련이 크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하면은 환란 속에서 이런 확신이 함께 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환란과 시련은 우리의 신앙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몰라요. 환란을 당하고 시련을 당할 때에는 엄청나게 쓰라리고 아프지만은 그러나 환란과 시련은 우리가 그럴듯하게 생각했던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알량한지를 보여주고, 우리들이 대단히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삶을 아는 지식이 얼마나 엉성한지를 보여 준다구요.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정말 하나님 앞에 순수하다고 믿고 생각되어졌던 그 마음과 생각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가, 그리고 얼마나 불순물들이 많이 썩여 있는가 하는 것들을 아주 분명하게 깨닫게 되고 알게 된다는 말씀이예요.
오늘 여기서 시인은 바로 그런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환란가운데서 그는 어떤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꼈어요. 그 필요성이 뭐냐면은 하나님이 자기를 향해 얼굴빛을 비춰주셔야 할 필요성이었어요. 성경에서 하나님이 얼굴빛을 비추신다는 의미는 인간들을 주목하신다는 의미인데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주목하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죄인을 주목하셔서 심판하셔서 공의를 보이시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당신이 사랑하는 백성을 향해서 얼굴빛을 비추사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얼굴빛을 그들에게 비추시는 이유인 것입니다.
당연히 이 두 가지를 갈라놓는 갈림길은 정말로 그 사람이 하나님과 정말 화목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불화한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사랑하며 진리 안에 거하며 사는 삶에서 비롯되고 하나님께서 슬퍼하시고 미워하시는 삶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삶이 너무 오랫동안 불순종으로 치달았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에게는 유쾌하지 않은 존재가 되어버린 그런 상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할 것 같으면 오늘 시인이 여기서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고 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환난과 시련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환난과 시련을 거두어가지 않으셔도 하나님이 우리가 환란과 시련 가운데 있는 것을 알고 계신다라고 하는 표증만 우리에게 보여주셔도 우리는 그 환란과 시련 속에서 우리가 홀로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예요. 환란의 비바람이 크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더 크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가 환란 속에서 고통을 받지만 그 속에서 아파하는 우리의 아픔을 하나님이 아신다고 우리들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확신하게 될 때 우리는 거기서 아주 매우 분명한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환란보다 더 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면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이해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에게 뭘 의미하느냐? 우리에게 어떤 삶을 요구하느냐? 무언가 인생을 살면서 큰 환란과 어려움이 와 있다고 생각될 때에 그 때에 우리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러한 커다란 환란과 어려움 속에 처하게 되었을 때에 거기서 우리들이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여러분들의 인생의 일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여러분들 뜻대로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이 간구하고 기도하는 대로 무엇인가 분명하게 응답되지 않을 때, 그 때에 여러분들은 무얼 생각하십니까? 그 환란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무얼 하고 싶어 하시는 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와 당신과의 관계를 그 환란을 통해서 고치고 싶어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환란 속에 부딪혔을 때 막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우리 인간을 더 추하게 만들고 그리고 우리를 더 깊은 문제 속으로 몰아넣어요.
그래서 환란과 시련 속에서 우리들이 가져야할 가장 뛰어난, 우리들이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아주 분명하고 선명한 인식이예요. 그래서 그 속에서 하나님이 이 환란을 통해서 나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과 그분과의 관계의 현주소를 아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돼요. 우리한테 급한 거는 우리를 괴롭게 하고 힘겹게 하는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우리의 관계, 그리고 당신을 향한 우리의 충성스러운 삶, 이런 것들이 변화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항상 신앙생활이 갈등을 느끼면서도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오래도록 지루할 정도로 표류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 하면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관점을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항상 관심을 내게 어떤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리고 원하지 않는 괴로움이나 혹은 또 자기가 바라고 원하던 일들이 이루어진 것이나 뜻하지 않은 축복을 받았을 때조차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서 나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자신을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환란에서 벗어나는 비결이예요. 왜?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사람들은 그런 문제를 처리하려고 할 것이며 그런 문제가 처리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얼굴빛을 비추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도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 주셨다고 하는 놀라운 은혜의 감격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 깊이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그 이후의 삶이 하나님이 그런 회개를 통해서 보여주신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깨닫고 그것을 계속 붙들면서 자기를 고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고자 하는 그런 삶의 노력들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에 회개하면서도 하나님이 회개하면서도 눈물이 마르고 나면 정말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는가 하는 의심이 우리들에게 밀려들어오는 거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성경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바와 같이 큰 환란을 만났을 때에는 이 시인이 그런 큰 환란을 만났을 때에 더더욱 하나님이 자기를 향해서 얼굴빛을 비춰주시는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듯이 우리도 내 뜻대로 안되는 어려운 시련이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에게 있어서 소중한 분이신가 하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도움을 구하여야 되지 않겠어요? 그죠? 시련이 오면 보통 때는 보통 신앙생활로 되지만, 특별한 때는 보통 생활로 하면 안돼요. 밤에는 여기와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가서 자야 돼요. 그것이 창조의 섭리예요. 그런데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니까 밤에 나와요. 배고프면 먹고 졸리우면 자야 돼요. 근데 고파도 굶어야하고 졸리워도 살을 꼬집으며 하나님께 매달려야 할 때가 있어요. 부모를 공경하고 가족들을 사랑해요. 그런데 어떤 때는 가족도 팽개치고 부모도 남겨두고 하나님 앞에 결단을 하러 가정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야 하는 때도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특별한 때에는 특별히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에서 이 시인은 하나님이 환란 가운데 있는 자신을 향해서 얼굴을 드시는 방식을 말하고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많은 인자와 진리로 나를 가르치소서. 그러니까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리, 이것이 이 환란과 곤경에 처한 시인을 향해 하나님이 얼굴빛을 드시고 축복해 주시는 방식이다 하는 것이예요. 환란 가운데는 하나님의 인자가 필요해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하게 생각하시는 그것이 필요하다 이거죠. 그럼 하나님께 불쌍한 것을 들면 어떤 거예요? 저는 솔직히 말해서 엄청나게 구제를 하면서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은 구제하러 갔다가 엄청나게 배신감을 느낀 적이 몇 번 있었거든요. 옛날에 어떤 교회에서 막 굶는다고 난리예요. 그래서 쌀을 사가지고 그리고 청년들하고 같이 찾아 갔어요. 굶는 집에 들어갔는데 우리 집에는 하나도 없는 가전제품이 그 집에는 다 있어요. 우리 집이 그 집으로부터 구제를 받아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하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어떻게 이렇게 굶는 집에 이렇게 좋은 것이 많냐고 그러니까 옆에 있는 얘가 귀띔을 해 주는데 그것도 재미있어요. 이게 다 월부래요. 월부. 근데 구제를 해주고 오는데 돌아오는 길에, 구제를 하고 나면 얼마나 기뻐요, 여러분? 경험을 해보신 분은 알지만은 은밀하게 구제하고 나면은 마음속에 충만한 기쁨이 있어요. 왜? 하나님이 나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어려운 지체들을 공급해 주셔서 그들에게 하나님 사랑 생각나게 하셨구나. 그러니까 도움을 받는 처지에 있지 않고 이렇게 사랑으로 섬길 수 있게 해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할까? 또 누구든지 구제할 때는 자기 나름대로 애착이 있는 법 아니예요? 물질에 대해서. 애착이 없는 사람 어디 손들어 봐요. 아무도 없잖아요. 다 있다구요. 다 그런 애착이 누구든지 정도의 차이는 있는 것 아니예요? 그런데 그걸 줄때에는 말이죠, 자기의 땀과 노력, 눈물, 그런 것들을 주는 건데 그런 자기와의 애착의 싸움에서 이기지 않고는 구제가 힘들잖아요. 그죠? 물론 한 10원이나 50원, 100원 정도야 투쟁 없이도 할 수 있겠지만 단위가 올라갈수록 쉽지가 않아요. 그러니 얼마나 기뻐요? 근데 그런 상황에서는 구제하고 올 때 왠지 찝찝하고, 이게 정말 제대로 구제하고 온 건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얘기죠. 하나님 보시기에도 그렇지 않겠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환란에 처했으면 우리가 측은해 보여야 되거든요. 환란에 처했으면 주님 보실 때 좀 측은해 보여야 되거든요. 환란에 처해서 너무 괴로워 한 나머지 얼굴이 좀 여위어졌다든지, 아니면 뭐 큰 환란에 처해서 노심초사하면서 이 환란 속에서 어떡하면 하나님께로 바르게 돌아갈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배가 좀 빠졌다든지, 또 뭐 환란 가운데 처해서 막 몸부림치는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 모습을 하나님이 늘 보실 수밖에 없게 되었다든지, 잠이 들어도 너무나 환란 속에 있어서 교회에서 울부짖다가 눈물로 얼룩진 그런 모습으로 교회의 그 추운 공간에 새우처럼 꼬부리고 잠든 모습을 하나님이 보신다든지, 그래야지만 하나님의 자비심이 더 촉발될 것 아니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잖아요? 그게 환란 속에 있을 때 성도들이 자비를 촉발하는 방법이예요. 환란을 당했는데 하나님은 마음이 급한데 당사자는 만사태평이여. 환란 속에서도 그냥 살이 디룩디룩 찌고 배가 나오고 코를 콜면서 드르렁거리면서 자고 새벽 기도는 물 건너갔고 저녁기도도 물 건너갔고 그저 도살장에 끌려 나오는 것처럼 금요기도회에 나오고. 그렇게 산단 말이죠. 사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우리 자신들이 그런 사람들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면서 이렇게 다 하나님께 염려를 맡겼기 때문에 환란 가운데서도 살도 찌고 배도 나오고 그랬다는 식으로 또 그걸 자랑하는 사람도 말이죠. 나는 걱정 안한다고, 하나님은 걱정하기를 원하시지 않는다고 말이예요. 환란에 처했는데 걱정을 안하는 것이 자랑이에요? 다만 육신적인 걱정이 아니라 신령한 의미의 걱정을 하나님께서는 하기를 원하시는 거죠.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런 삶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릴 때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란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비추시면서 인자를 보여주시는 거요
그리고 그런 환란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얼굴빛을 비춰주시는 또 하나의 방식은 무엇이냐 하면은 진리로 우리들을 인도하시는 거요. 항상 환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핑계 없는 사람이 두 사람 있는데 한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산 사람인데 한 사람은 공동 묘지에 누워있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환란 가운데 있는 사람이예요. 공통점이 무엇이냐 하면 핑계가 많아요. 공동묘지에 누워있는 사람치고 이유 없이 죽은 사람 없고, 핑계 없이 죽은 사람이 없어요. 죽을 때가 되서 죽었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의사를 잘 못 만나서, 자식이 속을 썩여서, 그 인간 때문에, 화병을 얻어서 뭐 나라의 의료혜택이 없어서. 얼마나 이유가 많겠어요? 환란에 처한 사람들이 그래요. 하나님이, 얘야! 이 큰 환란이 누구 때문에 왔느냐? 쟤 때문이예요. 다 그런다고요. 그런 식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니까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신 그런 적절한 음성을 들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환란 속에서는 불순종이 자꾸 일어나고 시험 속에서는 악이 태동되는 거요. 그래서 예수님이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러셨어요. 그런데 거기에 필요한 것이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예요. 그래서 환란에 처해서 상황이 여러분들을 못살게끔 뒤흔들어 놓을 때에 그 때 오히려 여러분들은 상황에서 조금 초연해 지는 사람이 되어야 돼요. 상황 하나를 보고 울고 웃는 경박한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되는 거요. 오히려 그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가르쳐주시고 싶어 하시는 진리가 무엇인가? 하나님! 나에게 이 큰 환란 이 커다란 시련을 통해서 내게 알게 하시고 싶은 진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내가 그 진리를 알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진리로 그 하나님이 그 환란가운데서 자기를 인도해 주시기를 원하는 그런 소원과 기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얼굴빛을 비추어 주시는 거요.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그 환란과 시련에서 벗어나서 광활한 곳으로 그들을 인도해 내게끔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