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땅에서 주를 찾으라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시 63:1-5)
이 시는 표제에 기록된 대로 다윗의 시입니다. 그는 일생 가운데서 많은 시를 지었고 각 시기마다 그 시가 쓰여진 배경이 있습니다. 오늘 읽으면 우리의 마음을 적셔오는 이 은혜로운 63편의 말씀을 하나님을 향한 다윗 특유의 간절함이 배어있는 그런 시입니다.
다윗이 이 시를 쓸때에는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받아서 도망을 가던 때입니다. 아비인 다윗이 비록 지략이 뛰어났고 하나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지만,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에 의해서 자기의 왕국이 도전을 받으리라고 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랬으니 대배했을 리가 없지요. 벌써 여러해 전부터 이 압살롬이 성문 앞에서 오가는 사람들, 특히 재판을 받기 위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용의주도하게 그는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은 뜻밖의 사건이 되었고, 다윗은 재를 무릎쓰고 도망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여러 다윗을 쫓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러나 다윗은 도망 나오며 많은 사람들에 비난을 받게 됩니다. 일평생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지만, 이 뜻밖의 재앙을 만나게 되자, 많은 백성들이 자기에게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시므이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끝까지 따라오면서 물을 뿌리고 저주하면서 그를 욕했습니다. 사울의 집을 네가 망가뜨리고 왕위를 빼앗았으니 네가 행한대로 하나님이 지금 너에게 갚으시는 것이 아니냐......차마 입에 담기 힘든 험악한 말을 하며 이제 죄인 다윗이 도망 가는 이 길에 모욕을 더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인은 그런 모욕을 모두 뒤집어쓰고, 그렇게 자기가 사랑하던 백성들에게 비난을 받으면서 따라온 몇몇 종자들과 함께 그는 이제 요단강 건너편으로 망명길을 떠납니다. 요단강 건너기 전, 광야에 나와 있을 때 이 시를 지었을 것이다, 라고 추정됩니다.
이 다윗은 갈망한다는 고백으로부터 이 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주만을 바라보고 주만을 갈망하니, 그 헌신으로 고백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저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물이 없어 곤핍한 땅에서 그렇게 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과 같이 자기도 하나님을 찾는다는 그런 고백을 하나님앞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욕망들이 있지만은, 그러나 가장 철저하게 오는 욕망이 바로 목마름입니다. 그리고 그 목마름은 우리에게 물만 생각나게 만듭니다. 다윗이 바로 그러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다윗이 인생의 커다란 위기와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그런 커다란 위기와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 다윗이 이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어려움을 만나고 또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사람들로 말미암아 배신을 당하고, 또 그 사람들로 고통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에 오히려 그 고통스러운 형편 때문에 이 다윗의 신앙은 더욱더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순결함,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삶, 우리의 육체, 우리의 마음, 우리의 모든 삶의 순결함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그 도우심을 받고 하나님 한 분을 향해서 우리의 마음을 고정시킬 때에 그런 일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잘 못한다, 어려움이 있기에 우리의 믿음생활이 온전하지 못하다, 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해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윗이 당했던 그 끔찍한 고난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왕이 되고 싶어서 꿈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집에 목동으로 있으면서 뭔가 한번 이 세상을 엎어 봐야 한다라고 하는 혁명적인 마음에 들떠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일개 목동으로서 자기 집에서도 인정 받지 못하는 아들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향해 진심으로 찬양하고, 그 하나님을 깊이 기뻐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너무도 만족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이 그를 기뻐하셔서 그를 왕 삼아 주셨습니다. 다윗이 언제 나라를 달라 하셨습니까? 다윗이 자기를 왕 삼아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나라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세움을 받은 그 왕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었고,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나라가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다윗이 이 어려움 속에서 얼마나 하나님을 바라보았나 하는 것은 이 두 지 사건을 통해 아주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이제 도망을 갈 때에 신하들이 말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법궤는 가져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법궤는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처지였습니다. 그렇죠? 왜 그러냐하면 성전이 있고, 그 땐 성막이었겠죠. 그리고 성막 안에는 성소에 지성소가 있고,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있었다는 거죠. 그게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좀 과장해 말하자면, 법궤만 있으면 성전이 성립한다 이겁니다. 그런데 법궤를 빼앗겼다라고 하는 것은 결국 왕권의 정통성을 반역하는 무리들에게 부여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이 뭐라 말합니까? 놔 둬라. 하나님이 혹시 은혜를 베푸시면 내가 와서 다시 뵈오리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이 고난을 허락하시고, 하나님이 만약에 주신 고난이라면, 내가 이 고난 속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인정을 받고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시면, 내가 이 고난을 이기고 다시 돌아올 것임을.......하나님이 내가 싫어서 나를 폐하시면, 내가 다시 하나님을 뵈옵지 못할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내가 이 왕국으로 돌아오거나,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그런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신앙입니까? 하나님 만을 바라보고 의뢰하는 신앙이었죠. 뿐만 아닙니다. 시므이라는 작자가 다윗을 향해 욕했을 때, 다윗의 종자들이 저놈을 당장 처치할까요? 했을 때도 뇌 둬라, 버려둬라. 왜냐하면 혹시 저가 욕하는 것이 하나님이 저를 시켜서 나를 욕하는 것인지 누가 알겠느냐. 그러니까 이미 다윗이 그런 뜻밖의 커다란 인생의 역경을 만나고 커다란 시련을 만났을 때 다윗의 마음 속에 누가 이 일을 일으켰고, 어느 놈이 반란을 주도 하였으며, 누가 이 일에 협조하였고, 무슨 일 때문에 내가 이 고통을 당한다 그러한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은 다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시고, 자기의 왕국을 움직이시는 더 큰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뵈옵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의 인생에 일어나는 일들이 사람을 통해 우연히 발생하는 것같고, 내 실수로 내가 어려움에 처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움직이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통하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는 그 형통하게 움직이는 순조로운 우리의 인생속에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도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봅니다. 고난이 겹치고 어려움이 겹칠 때는 우리가 우리 힘으로 그 고난과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하는 마음으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인생의 최대 고비를 당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왕국에 대한 반역과 도전이 일어난 것은 악마의 짓이었습니다. 마귀가 격동케 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주목하는 대신 역사의 주관자 되시고 자기 인생의 주인 되신 여호화 하나님 한 분 만을 의뢰하고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악마는 이 시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커다란 이런 반란을 일으켰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이것을 사용하셔서 다윗으로 하여금 더 순결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이전에 이런 징계를 받지 않았을 때 지었던 간음의 죄 그리고 인구조사를 한 죄, 이런 대표적인 죄로 더러워진 그의 심령을 하나님이 오히려 깨끗이 씻으시는, 그래서 시련과 환란을 통해서 오히려 다윗의 영혼을 순결하고 정결하게 하시는 그런 놀라운 역사를 다윗에게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새벽의 시간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놓여있고, 어떤 형편에 놓여 있든지 우리는 다윗이 도망온 광야에서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고백했던 것처럼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우리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어려움이 오기 때문에 신앙생활도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 시련과 환란 속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도움을 힘입고, 그 하나님을 주목하면서 자신의 영혼이 순결해지는 것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곧 그의 인생을 형통하게 해 주실 때 또한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아침의 상황에 여태껏 우리의 환경 때문이고 우리가 처한 어려움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을 돌아보며, 우리가 그런 속에서도 메마른 땅에 있어 물없이 건조하고 고통하는 땅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라 고백 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그런 고백을 유지하고 있는지, 하나님 앞에 우리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에 주님이 자기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의 편에 서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를 의뢰하는 사람들을 메마른 땅에서 건져내어 풍부한 물이 있는 곳으로 들이시고, 고통하는 그 사람들의 환경과 처지를 변화시키셔서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에 우리 같이 기도할 때 주님, 오늘 이시산에도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로 주님 찬송하게 도와주시고, 우리로 메마른 땅을 지나는 것 같은 우리 인생을 환경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백하는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이 시간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리옵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물이 없어 메마른 땅 건조하고 마음 붙일 수 없는 고통하는 땅에서 쫓겨나던 다윗이 주는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했던 것처럼 오늘 이 새벽의 시간에도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의 심령을 적시어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마음이 광야와 같이 메마르고 우리의 마음 속의 환경과 우리의 처지를 향한 불평과 고통과 원망이 하나님, 우리의 생명의 가운을 가로막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오니 아버지여 우리를 도우시고 굽어 살피사 우리로 하나님께 긍휼과 은혜를 얻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의 사랑하는 종들이 잠시 기도할 때 은혜를 주옵시고 변화와 넘치는 사랑을 주옵소서. 주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