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강 우리의 죄를 사하소서 2
녹취자: 조경훈
매일 매일 베푸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통해서 영혼의 생명을 얻게 만드시는데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어지는 은총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도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 우리에게 손해를 끼치고 나쁜 일을 한 사람들을 용서하며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뜻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기도문 속에 넣어서 우리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용서란 무엇입니까? 용서는 관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있는데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런데 용서를 통해서 이 관계가 다시 맺어지는 것입니다. 보복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어, 그래 알았어. 내가 용서할게. 그런데 우리 다시는 보지말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용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용서를 가르쳐 주시는 이유는 복수를 못하게 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관계가 끊어졌던 사람들이 그 관계가 다시 이어져서 사랑으로 함께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 용서했으니까 더 이상 우리는 이야기하지 말자. 관계를 끝내자.” 라는 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누군지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는 말하기를 이 세상에는 죄인들 밖에 없다고 합니다. 아직 용서 못 받은 죄인들과 이미 용서받은 죄인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신자인 우리가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면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모든 덕스러운 삶의 기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죄 사함과 용서의 관계를 보면, 죄 사함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용서와 인간이 인간을 용서하는 상대적인 용서가 있습니다. 절대적인 용서는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사랑의 속성으로써 우리를 모든 죄에서 용서해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이며 한번 용서한 것은 다시 그 문제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절대적인 용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인간을 용서하는 것은 상대적입니다. 용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서로 사랑하며 살라는 삶에 대한 요구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끊임없이 용서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용서를 현재적으로 경험하면서 살 때에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은혜의 힘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정말 얼마나 죄인인지, 자기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주님의 은혜가 얼마가 값진 것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할 충분한 힘과 능력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용서에 있어서 요건과 오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은 손해를 입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학교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교수님과 교무과 직원 사이에 말다툼이 일어났습니다. 학교 앞에 있는 도로가 아주 좁았는데 교수님이 그곳에 주차를 했습니다. 골목이 좁으니까 어쩔 수 없이 차를 댔던 것입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돌아와서 화를 내시는 것입니다. 어느 학생이 자신의 차를 찌그러트리고 도망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신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화를 내는데 가만히 있었으면 그걸로 끝났을 텐데 옆에 있던 직원이 “용서해 주시지 그래요. 학생들이 지나다니다가 한번 찌그러트릴 수가 있지. 이해를 하고 용서해 주셔야죠.” 라고 말했습니다. 이 직원은 다른 사람이 남에게 지은 죄를 자기가 용서해 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기도문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이런 관용을 실천하려면 자기 차가 찌그러졌을 때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를 많이 봅니다. 성경이 분명히 얘기하는 것은 용서의 권한을 가진 사람은 손해를 입은 당사자이고 이것은 제한적으로 인정된 권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한사람이 죄를 짓고 두 사람 간의 관계가 깨졌을 때에 다시 용서를 통해서 관계를 회복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화를 입은 사람이 용서를 하고 그 용서를 받은 사람의 마음속에 “이 사람이 나를 용서해 주었구나. 감사하다. 나도 다른 사람을 이렇게 용서해 주어야지.” 라는 마음을 갖게끔 만들어서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랑 안에서 살기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용서를 가르쳐주신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키는 두 단어가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이 십자가를 통해서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인 ‘아가페’(agape) 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면 하나님께 돌아올 때는 자신도 하나님을 사랑해야겠다는 반응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반응을 까리따스(caritas)라고 부릅니다. 저는 이것을 “더 이상 순수해 질 수 없는 사랑” 이라는 뜻에서 지순애(至純愛) 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지만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 은혜가 사라지면 용서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고 나면 내 힘으로 용서했다고 말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입고 그 은혜의 힘 때문에 용서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누군가 나에게 잘못했을 때 그 인간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를 갖게 될 때 가장 큰 피해자는 자기 자신의 영혼입니다. 왜냐하면 미워하는 마음을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끊임없이 그 사람의 영혼에 파괴를 가져옵니다. 용서는 우리의 영혼에 진정한 자유를 줍니다. 용서하는 마음 안에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이 시작되게 만듭니다. 내가 피해자인데 내게 죄를 지은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에 그 사람의 마음은 커다란 고통을 통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누군가 나에게 죄를 지음으로 내가 살면서 힘들어 질 때에 내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복수를 꿈꾸거나 원한을 삼키는 것인데 그렇게 용서하는 맘을 버린다면 나는 영원한 손해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줄 때에 우리에겐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영혼의 자유가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용서하기 힘들 때마다 우리를 용서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때마다 주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커다란 형벌을 당하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그 용서에 빚진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최근에 살아오면서 누구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미워한 적은 많이 있지만 나를 너무 가슴 아프게 했는데 그 사람을 흔쾌하게 용서한 적이 최근에 우리에게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공동체는 끊임없이 물질적으로 나누어 주어서 육체를 공궤하고,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지은 죄를 용서하므로 각자가 부족한 존재이지만 사랑이 계속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이상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우리를 위한 마지막 간구” 라고 할 수 있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내용을 가지고 차례대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 주간 여러분들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용서하시면서 주기도문의 은혜를 체험하는 생활들을 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