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강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3
녹취자 : 오희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이해했다면,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의 핵심적인 요소가 무엇인지를 알아봅시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없이 살던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앎으로써 그 위엄과 영광 앞에서 자기가 정말 미천하고 하찮은 인간인줄을 알고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것입니다. 온 우주의 중심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자기는 이 하나님께 굴복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뜻입니다. 둘째는 신자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불완전한 인간인지, 비참한 존재인지를 깨달아서 하나님처럼 온전한 사랑과 온전한 공의와 온전한 자비와 긍휼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누고, 자기 자신이 실제로 그런 존재가 되며 다른 사람들을 또한 그렇게 대하면서 살고 싶다는 소원을 갖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두려움으로 떨거나 하나님의 완전하심 앞에서 이끌리는 사랑을 느끼며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면서 살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거기에 희망을 갖게 되는 것, 그것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세상에서 주님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미천한 존재인지를 깨달으면서도 그런 미천한 존재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그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거기에서 인간 존재의 진정한 가치와 존엄성을 우리가 발견하게 됩니다.
데카르트(Descartes)라는 철학자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함으로써 근대를 엽니다. 그것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입니다. 이 말의 핵심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물들, 이것을 모두 의심하라. 끝까지 이것들을 의심하고 모든 것에 회의를 품으라. 그러면 마지막에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만 남는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다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이렇게 모든 것과의 관계를 끊고 자기를 내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진리를 알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처음부터 다른 사람을 향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하는 관계 속에 창조된 것입니다. 인간이 처음 이 세상에 창조될 때도 하나님과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창조되었고, 창조된 후에는 인간을 홀로 두신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두심으로써 이 사람들과 서로 관계를 맺는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자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모든 인간은 “자기”라는 존재, “자기가 누구인가?”라는 이 물음을 다른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존엄하다고 하는 것은, 인간 혼자를 들여다 보아서는 알 수 없고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 어거스틴(Augustinus)은 자신의 책 속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당신의 무엇이기에 나 같은 것에게 당신을 사랑하라 명하시고 아니하면 진노하시며 엄청난 비참을 내리실 것처럼 경고하시나이까?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당신에게 작고 작은 비참이라도 되는 것입니까?” (What indeed am I to you, that you should command me to love you, and grow angry with me if I do not, and threaten me with enormous woes? Is not the failure to love you woe enough in itself?)하며 반문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 자체가 인간 존엄성의 기원에 관한 대답입니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 때문에 존엄한 것입니다. 모든 인간과의 관계가 끊어져도 그 인간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는 끊어질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이 세상에 의해서 아무리 짓밟히고 억압되어도 여전히 존엄한 존재이고, 인간의 참된 이상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 아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서 그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서 살아감으로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며, 그런 존귀한 존재로서 또 다른 존귀한 인간 존재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 연결의 망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주 아름답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이유이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입니다.
지금은 비록 이 세상에 죄와 불완전성들이 섞여있지만 결국 역사는 흘러갈 것이고 어느 순간에는 종말이 올 것이며 그때는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완전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거기에서 모든 인간들은 아주 찬란하고 아름다운 존재들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 분인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 일을 위해 세워졌고 이 일이 완성되는 날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으로써 끊임없이 변화되어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이 세상에 보여주고 그 이름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이 주기도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에 앞서서 본문의 첫 번째 관문에서 폭풍처럼 다가오는 하나님의 한 명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것은 “너는 왜 사느냐? 그리고 네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엇 때문에 예수를 믿느냐?”는 것입니다. 그 답으로 “나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행복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을 때 그가 비록 이 세상에서 높은 지위와 많은 소유가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기도문의 첫 번째 기도제목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 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무슨 의미인지를 공부하고자 합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은 신약성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주기도문에 담겨져 있는 두 번째 간구의 뜻을 다음 시간에 같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의에 함께 경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