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하는 자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마2:1~12)
녹취자: 김경애
Ⅰ. 본문배경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게 된 경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에게 묻습니다. 너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한사람 예수에 대해서 그렇게 집착하느냐고 말입니다. 역사상 있었던 모든 종교들이 각기 강조하는 사람, 영향을 받은 어떤 사람들을 이야기하지 않는 종교는 거의 없습니다. 무슬림들은 마호메트를, 유교에서는 공자와 맹자를 그리고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를 그렇게 꼽습니다. 그러나 어떤 종교도 기독교만큼 그 종교의 모든 기반이 한사람의 존재와 인격에 달려있는 그런 종류의 종교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바로 그렇게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한사람에 그렇게 의존된 종교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분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도 한 사람을 통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한사람을 가리켜서 우리들은 중보자라고 부르고 그 유일의 중보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을 통해서 삼위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그분을 통해서 인간들의 모든 섬김을 하나님께서 받으시며 또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하나님과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신자들이 관계를 맺게 됩니다. 창조 자체가 그 성자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종말도 그 성자를 통해서 이루어지듯이 영원과 시간 세계를 연결하는 모든 일들이 바로 성자의 중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주님을 믿고 심지어 주님을 섬기는 것도 모두 그분을 통해서 주님께 이르게 되고 또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곧 삼위 하나님과 나아가서 그분이 창조하신 세계와 사람을 아는 지식과 일치된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Ⅱ. 별빛을 따라온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을 때에 그분을 위한 첫 경배자들로서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주 영원하고 그리고 불변하는 어떤 진리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동방의 박사들은 빛을 따라온 사람들로 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별빛이 어떤 빛이었는지에 대해서도 학설이 구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본 관측자들의 착각이고 환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어떤 과학자는 정확하게 혜성의 주기를 계산해서 바로 그때 그 베들레헴 상공으로 혜성이 지나갔다고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과는 상관없는 제3의 빛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그 사람들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도 정설은 없지만 교회에 내려오는 전승에 의하면 이 사람들은 멜키오르, 바르다사르, 그리고 카스파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원래 넷이 출발했지만 그러나 세 사람이 예수께 당도하게 되었다는 그런 전승도 내려오고 있고 또 심지어 가톨릭에서는 이 사람들의 유골이 세인트헬레나에 있는 어떤 성당에 보관되어있다고 하지만 무엇 하나도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여기에 박사라고 번역된 이 이름은 희랍어에서는 ‘마고스’라고 되어있는 단어인데 사실은 박사가 아니라 이 ‘마고스’는 신약성경에서 마술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여기에서 쓰인 ‘마고스’는 사실은 마술사를 의미한다기보다는 뭔가 인생의 이치와 그 다음에 관련이 있는 우주의 현상들을 연결 지어서 탐구하는 일종의 철학자들을 가리키는 단어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영어성경에서 이 ‘마고스’를 ‘Wise man’ 즉 현자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동방의 박사들도 아마 무엇인가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들이 인도에서 온 철학자들이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파르티아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에서 온 철학자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 하나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바는 이 사람들은 무엇인가 인생에 있어서 이 자연의 이치와 철학의 도리들을 탐구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런 탐구의 일환으로 별을 관측하는 일도 하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우리들이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별의 신비한 현상을 보고 그리고 거기에 인류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 태어날 것을 예고 받았다고 하는데서 우리들은 그러한 사실들을 정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매우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A. 동방 박사들에게 먼저 알리심
우선 첫째는 메시아의 오심이 이방의 동방박사들에게 계시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의 백성들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에게 먼저 메시아의 오심이 계시되고 그들이 감격에 찬 언어로 이방의 백성들에게 메시아가 오셨다는 사실을 선포했어야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고 오히려 이방의 사람들인 이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너희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계시냐고 묻는 이상한 현상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예수께서 오신 이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이 언약백성들에게가 아니라 이 동방에 있는 박사들에게 먼저 계시해주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엄격히 말하면 동방에 있는 박사들에게만 계시해주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목동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이제 다윗의 동리 베들레헴에 구주가 나신 사실을 가르쳐준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일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철저히 이 예수께서 나신 것을 은폐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오늘 헤롯은 만약에 그 아기 예수를 찾으면 나도 가서 경배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이 사람이 바로 그 후에 베들레헴에 있는 그 두 살 미만의 모든 아이들을 죽이는 그런 살육자로 등장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에서 하나님께서는 아기 예수의 오신 것을 동방의 박사들에게 먼저 계시해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동방의 박사들의 방문을 받았을 때에 이 메시아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이라는 것까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아기 예수로 오신 기쁨의 소식이 이방의 동방의 박사들에게 먼저 알려졌고 그들에게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오늘날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합니다만 신앙생활의 참된 행복과 특권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면서 사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평화안에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향하여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하여 가지고 있는 음성을 듣고 그 뜻을 분별하는데 신앙의 가치와 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고난을 당하거나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길이 고난스럽고 역경으로 가득한 가시밭길이어도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어렵고 그리고 시련과 고난이 있어도 그 사람이 주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고 기도 속에서 주님과 교통할 수 있다면 그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들고 그 말씀의 빛을 따라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오늘 이 예루살렘을 생각해보십시오. 이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고 그리고 구주가 이 세상에 오실 약속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풍부한 계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에는 그 예수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과의 평화를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처지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것이 주는 메시지들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주님을 믿고 교회를 다녀도 주님의 마음과는 상관이 없는 신앙생활을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들의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지 못하고 그리고 주님이 우리의 인생을 향해 외치고 부르짖어도 하나님의 그 음성을 듣지 못하고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한 모든 일들의 거울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예루살렘이 제일 먼저 그리스도 예수의 오신 소식에 대해서 듣고 그것을 온 도시에 전파하여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눈먼 소경이 되어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한 사람의 몸을 입고 말구유에 오셨을 때 유일한 소원은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화목 하는 것이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절단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복원되고 그리고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깨진 화목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그분이 대신 죄 때문에 징계를 당하시고 우리가 죄와 불순종 때문에 망가지게 되었던 영혼의 상태에서 회복되어 나음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시는 고난의 길을 가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 오신 이 성탄에 우리가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야 될 것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성탄에 우리의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가 정말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고 있는지 물어야하고 그리고 우리가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면서 살아서 아기 예수가 오신 이 성탄의 목적에 부응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평화하여 그분의 뜻을 언제나 알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B. 길을 잃은 경배자들
두 번째는 길을 잃은 경배자들입니다. 이제 이 사람들이 별빛의 인도를 따라 왔다고 했으니까 낮에는 여행길을 쉬고 밤에 모두 잠들어있는 시간에 별빛을 따라 가야했을 것입니다. 사실 밤 시간은 여행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두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었지만 이들은 캄캄한 밤길에 함께 별빛의 인도를 따라 걸어가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그리고 이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 인간의 불행한 처지에서 인간들을 구원하실 메시아와의 알현을 꿈꾸면서 그 밤길을 걸어갔을 것입니다. 한번 조용히 생각해보십시오. 맨 처음에 하늘에 기이한 빛이 나타나고 그들이 이 빛이야말로 이 땅의 중요한 왕 중의 왕이 탄생하신 조짐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급히 행장을 꾸릴 때 이들이 결혼한 사람이라면 아내가 있었을 것이고 아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 그들이 모두 일치한 의견을 가지고 이제 왕으로 오실 그 위대한 이에게 경배하러 가자고 그렇게 행장을 꾸릴 때 아내가 나와서 어디를 가냐고 물으면 그들이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가면 그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냐고 물을 때 그들이 무엇이라고 대답했겠습니까? 그리고 언제쯤이면 돌아올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이 답변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고 얼마나 많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들판을 가로질러야할지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그들이 아는 것은 한 가지 저 별빛은 왕의 왕이 태어나신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고 우리는 마땅히 그분을 경배하여야한다고 하는 경배의 염원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일상을 팽개치고 그 별빛 하나를 의존하여 불확실성이 기다리고 있는 그 끝없는 길에 들어서야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그들이 그 별빛의 인도를 따라 아기 예수 있는 곳까지 걸어왔을지 우리는 아무도 단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하지 않은 별빛 하나만의 인도를 따라서 걸어가는 그런 걸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무슨 사심이 있었겠습니까? 그들의 소원이란 바로 그 왕 중의 왕을 만나서 그분께 경배하는 것 이외에 아무 사심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만나서 큰 복을 받겠다든지 높은 지위나 아니면 많은 재물을 얻겠다는 욕망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빛의 인도를 따라서 이제 거의 다 왔을 때 그 별빛이 사라지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예루살렘에 당도했을 때에 그래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계신 곳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그 시간은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밤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낮에는 별빛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별빛이 사라진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밤중이 되어 다시 별빛의 인도가 있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밤이 되었으나 별빛은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틀림없이 이들은 유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있느냐고 묻고 너희들의 왕으로 나신이니까 너희는 알고 있겠지 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 하나가 저 미가서에 있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의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한 목자가 나타나리라 했으니 베들레헴일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이렇게 하나님의 모든 인도가 사라진 그리고 캄캄한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 인생의 어두운 밤길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매순간 우리의 인생의 배를 항해하여 우리는 안전한 포구에 도달하고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인생의 풍랑 대신에 순풍을 주시고 그리고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는 선장 대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인생 앞에서 방향타를 이끄시고 그래서 우리의 갈 길을 책임져주십니다. 그러나 이렇게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걸어가는 인생의 길에도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종종 인생의 아무런 빛이 보이지 않고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도 못하는 인생의 어두운 밤을 맞이하는 것은 많은 경우에 우리의 죄와 불순종 때문입니다. 그런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서 우리는 인생의 어두운 밤길을 들어서게 되고 때로는 별빛조차 사라지고 나침반 하나도 없는 어두운 그 인생의 바다위에 홀로 서야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요, 재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회개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나타나서 우리에게 들리지 않던 주님의 음성을 들리게 해주시고 깨달을 수 없었던 주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장난감이나 오락기구들이 없어서 아이들이 별것을 다가지고 놀았습니다. 언젠가 한번 골목에 나갔더니 어떤 애가 손바닥에 무엇을 예쁜 것을 들고 왔는데 이렇게 보니까 쥐새끼입니다. 이게 뭐냐고 그랬더니 밤중에 자는데 천장이 찢어지면서 무엇이 쿵하고 떨어지더라는 것입니다. 쥐하고 새끼하고 같이 우르르 떨어졌는데 막 난리를 치니까 쥐의 엄마는 도망가고 새끼들만 네댓 마리 남아서 이불위에서 옴실옴실하는데 너무 예쁘니까 얘가 실로 목에 매어서 강아지처럼 해서 손바닥에 서너 마리를 놓고 그리고 들고 다니면서 주머니에 넣다가 꺼냈다고 하면서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 꼬물꼬물하게 노는데 나는 그렇게까지 장난스럽지는 않았지만 가을이 되면 친구들하고 귀뚜라미를 가지고 장난을 했습니다. 귀뚜라미는 알다시피 눈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더듬이가 이렇게 긴 더듬이가 있습니다. 그것을 잡아놓고 가위로 귀뚜라미 더듬이 두 개를 잘라버리면 그러면 이 귀뚜라미가 그때부터 혼란이 오기 시작합니다. 어딜 가야할지 더듬이를 막 더듬는데 더듬이가 없어져서 이게 방향을 못 잡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껑충 뛰면 비틀거리면서 뜁니다. 방향을 잃어버린 메뚜기에게는 튀어오를 수 있는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불행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고 영적인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넘치는 활기가 원수가 됩니다. 그게 결국은 그 사람을 파멸로 몰아넣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넘치는 원기와 활력, 그리고 자원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분별력이 있는 것이 그 모든 자원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게 되면 이런 분별력이 사라지게 되고 그래서 우리는 환경적인 어두움과 영혼의 깊음 속으로 들어가서 이렇게 별빛의 인도조차 없는 캄캄한 밤하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자원이 많으면 무엇을 합니까?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내려주면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안타까운 사연을 느낄 수 없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수받을 수 없는데 그의 인생이 어두운 밤길에 서있는 인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가는 사람들마다 붙들고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겠느냐고 묻지만 그러나 누구의 충고를 받고 자신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죄에 빠지게 될 때에 영혼의 어두운 밤이 찾아오게 되고 언제나 선명했던 하나님의 인도가 사라지는 것 같은 그런 위기를 닥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의 어려움은 항상 죄 때문에 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늘 이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무엇을 원해서 그 고향과 그리고 가족들이 있는 안락한 집을 떠나서 그 먼 길을 걸어 이 예루살렘에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무슨 재물을 원했습니까? 지위를 원했습니까? 자신의 육체의 행복을 원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의 소원은 오직 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셔서 인류의 역사와 관계를 맺고 계신 그 왕 중의 왕을 경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밤하늘의 별빛조차 사라진 가운데 갈 길을 몰라 헤매고 방황하는 때가 있었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위해 우리의 인생의 항해를 해도 항상 순풍에 돛을 단것과 같은 그런 태평한 환경만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좋고 선한 뜻을 가지고 주님 앞에 살아가는데도 시련과 고난이 오고 인생의 어두운 별빛조차 사라져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는 어두움 속에 있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우리가 순수한 뜻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지만 때때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시기 위해서 이러한 인생의 어두운 밤도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자신의 인생에 매우 분명한 사명이 있고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통해서 이루어야할 하나님의 뜻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평탄한 인생을 살다가 간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메섹에서 젊은 나이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뒤 사울의 인생은 오직 주님만을 위해서 산 바울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린도후서 1장에서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만물의 찌끼와 같이 여김을 당했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음의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는 그런 처지에까지 자신이 이르게 되었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무엇을 원해서였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분명한 사명, 어떻게 살든 지간에 그분을 경배하며 살아야겠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걸어가는 길인데 항상 형통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시련과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오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때때로 우리들이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며 경배하고자 하는데도 때로는 시련도 주시고 어려움도 주시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그분에게 무슨 사심이 있었겠습니까? 그분에게 무슨 개인적인 욕망이 있었겠습니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아버지의 일을 섬기고자 하는 경배의 마음 이외에 무엇이 예수님 속에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고아처럼 이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때가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십자가를 질 때 제자들로부터도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도 그를 고아와 같이 버리신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것의 참다운 가치는 얼마나 안락하고 행복하게 사느냐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행복이 최고의 가치지만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얼마나 이 세상에서 거룩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려는 사람들에게도 때로는 어두운 밤바다에 버려져 그렇게 고통 하는 것과 같은 때가 있습니다. 돛대도 부러지고 삿대도 잃어버린 채 뒤웅 치는 파도에 휩쓸리며 하늘을 향해 부르짖지만 캄캄한 밤하늘에 나침반도 없고 그리고 별빛조차 하나 보이지 않는 인생의 어두운 밤바다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어두운 밤바다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경배하고자하는 마음을 그들이 지니고 있는지를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오히려 주님을 섬기노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깃들기 쉬운 교만과 그리고 영혼의 묵은 때들을 벗겨내어 영혼의 아름다움을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읽은 성경에 보면 다시 경배하는 자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이 신비한 섭리가 나타납니다. 경배하는 자들, 끝까지 경배하려고하는 사람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조짐이 새롭게 나타난 별과 함께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바로 이들이 예루살렘을 떠난 후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과 헤어지고 난 다음의 일이었습니다. 다시 문득 나타나는 그 별빛을 보면서 그들은 경배하고자하는 자들을 버리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그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며 자신들의 갈 길을 걸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주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경배의 정신을 가지고 살고 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고난이 올 수 있습니다. 별빛조차 없고 그리고 자신 혼자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의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잠시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가지고 있는 경배의 마음이 진실한 것인지를 시험하시고 그리고 진실한 것이라면 그것들을 강화하여서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도 변함없이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사람들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단련하십니다. 그러나 영원히 그들을 그 어두운 밤하늘 아래 홀로 있게 하신적은 없습니다. 잠시 그런 일들이 있지만 오늘 이 동방박사들에게 문득 그들이 생각하지 않은 때에 다시 하나님의 별들의 인도가 시작된 것처럼 또한 우리들에게도 다시 그런 별빛이 떠올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새롭게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Ⅲ. 경배하는 자를 인도하심
그러므로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재산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질이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재산 그리고 지위나 재능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의 가장 큰 자산은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손을 꼭 붙들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 때 어떻게 항상 맑은 날만 있겠습니까? 뜻을 품지 않고 이 세상의 물결을 따라 지조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도 고생이 있는데 뜻을 정하고 이 시류를 거슬러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왜 별빛조차 사라진 어두운 밤하늘을 혼자 항해하여야 하는 것 같은 어려움의 때 그리고 외로움의 때가 없겠습니까? 주님이 걸어가신 길이 바로 우리에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오직 경배하고자 하는 일념 하나만을 가지고 별빛의 인도를 따라 모든 것을 희생하고 따라온 이들도 잠시 별빛이 사라지는 것 같은 위기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더 많이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경배하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영원히 인생의 어두운 밤하늘에 홀로 별빛도 없이 홀로 있게 하시는 법은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새롭게 그들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두움 가운데서 언제나 별빛과 같은 말씀을 주셔서 우리로 끊어진 인도를 다시 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길을 걸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때로는 죄와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고 때로는 세상에 대한 염려와 근심으로 주님을 섬길 겨를이 없는 마음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마음 깊은 곳을 파헤치면 중생한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섬기고 싶다는 분명한 소원이 있습니다.
(찬양)
나 주님만을 섬기리. 헛된 마음 버리고 성령이여 내 영혼 충만하게 하소서 내 생명 주님 앞에 드립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정욕과 함께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보석과 같은 날들은 부귀와 영화와 쾌락을 누리던 날들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섬겼던 날들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주님의 그 크신 은혜 때문에 억제할 수 없는 그 사랑의 시킴을 받아서 나 비록 많은 재물과 모든 사람들에 비해 뛰어난 재능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지위가 없고 권력은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원과 나의 젊음과 생명의 기운을 가지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 세상의 한 모퉁이에서 나 아니면 섬길 사람이 없는 그 어떤 일들을 위해서 그것을 내 마음에 깊이 품고 사랑하고 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때 그때에 정말 하나님 앞에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경배의 마음을 여러분들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살았던 모든 날들은 의미 없이 흘러가버리는 날들입니다. 지나온 날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즐거웠던 날들, 그리고 이 세상의 기쁨에 탐닉했던 날들, 먹고 마시고 만족했던 수많은 날들이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남겨주었습니까?
그렇게 우리의 인생의 소명은 어떻게 해서든지 나같이 쓸모없는 죄인을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구속해 주셨다는 사실을 가슴에 깊이 새기면서 그러면서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있게 하고 그리고 주님이 내게 주신 가장 작은 섬김 하나라도 그것을 가슴에 깊이 끌어안고 고통이 오거나 마음이 산란하여 걱정과 근심이 휘몰아칠 때나 그리고 시련의 어두운 밤하늘에 하나님의 인도가 끊어진 것 같은 때나 언제나 그것을 꼭 붙들고 자신의 존재의 가치가 하나님을 경배하는데 있다고 믿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영원한 밤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반드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젊은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에 길이 무엇인가 보이지 않고 어두움이 가득하면 좀 생애적인 결단을 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말고 생애적인 결단을 하십시오. 내가 나의 진로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한번 매어달리리라. ‘내가 이렇게 젊었는데 내 인생의 아무 뜻도 없고 나를 시키실 일도 없다면 나도 여기에 있을 일이 없으니까 데려가십시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결단을 해서 여러분 모두 보람 있는 일들에 자신이 쓰임을 받을 수 있어야합니다. 잠시 이런 어두움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을 매달리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무엇을 벌어먹고 살까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시집 장가를 갈까를 고민하지 말고 내가 일평생 무엇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고 하나님이 이 쓸데없어 보이는 아무 좋은 것이 없어 보이는 이 지푸라기와 같은 나의 인생을 창조하시고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시는데 무엇이 그렇게 좋으셨을까?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어디에 두고 싶으셨을까? 그리고 내가 어떻게 인생을 사는 날 동안에 작용을 하고 활동을 해서 하나님이 나를 이 시대에 여기에 살게 하신 그 뜻을 따라서 경배하면서 살까를 생각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밤하늘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다시 그 별빛을 보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인도해주십니다.
(찬양)
그 소망 더욱 굳세라. 주가 지켜주신다. 어둔 밤에도 주의 밝은 빛 인도하여 주신다.
약하고 그리고 곤해도 우리의 고사리 같은 손이 주님의 손에 꼭 잡혀있을 때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을 것입니다. 경배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은 사람들 잠시는 별빛이 사라진 밤하늘 아래 두셔서 당신을 의지할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그러나 영원히 버려두시지는 않습니다. 다시 주님의 인도를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아기 예수와 모친 마리아를 만났을 때 그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그 예수 앞에 내놓았습니다. 당시에 최고로 값진 그런 보물들이었습니다. 긴 여행길을 걸어오는 동안 양식과 바꿀 유혹도 있었을 것이고 안락하고 좋은 숙소에서 잠을 자기 위해 그것을 팔 유혹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유혹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섬김을 받으시는 이분이 가장 소중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을 때 우리가 목숨을 주님 앞에 바치면 주님은 그것 말고 더 소중한 것을 달라고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있는 최선의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누구에게도 줄 수 없도록 보자기로 잘 싸서 길고 고단한 여행길에서도 누구에게도 풀어 보여준 적이 없는 보물이 여러분 속에 있기는 있습니까? 주님! 이것은 제 인생을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도 주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의 품속에 있기는 있습니까? 그것을 드리며 이들은 아기 예수를 경배했습니다.
Ⅳ. 결론: 경배자로 삽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인생의 가치는 성공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경배자로 사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일생동안을 주님을 높이며 예수를 경배하며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며 사는 사람의 인생은 세상에서는 작은 인생이나 주님의 눈앞에는 큰 인생입니다. 주님이 오신 이 성탄의 계절에 가슴으로 다짐합시다. 주님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낮고 천한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화목을 이룬 우리가 일생을 사는 동안에 경배자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주님만을 높이며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우리 하나님 앞에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하겠습니다.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