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를 회심케 하소서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리라”(잠20:11)
I. 본문해설
오늘부터 매 수요일, 9일, 16일, 23일 세 번에 걸쳐서 제가 한 번, 외부에서 오신 훌륭하신 목사님이 두 번을 아이들의 회심을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와 도대체 회심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 그리고 25일 금요일에는 제가 금요기도회를 인도하며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26일에는 아이들의 회심을 위한 집회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잠언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잠언은 짤막짤막한 구절로 되어 있지만 우리의 인생과 신앙에 있어서 결정적인 교훈들을 주옥과 같이 모아놓은 구절들입니다. 잠언은 여러 곳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문제에 대해서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이 신앙은 자신들만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은 언젠가는 늙고 힘없어지게 되고 자녀들은 새로운 세대를 이루게 되고, 그때에는 그들이 자녀들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도 신앙의 사람으로 자라게 해야지만 미래가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똑같습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에는 부모들이 착각에 빠지는데 언제든지 이 아이들을 내 마음 먹은 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때까지는 어떻게 좀 되는 거 같은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절대로 아이는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아이들이 더 자라서 이제 충분히 성인으로 활동하는 세대가 되면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이제 뒤편으로 물러나게 되고, 역사 위에 우리들이 앉았던 의자를 자녀들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더더욱 자녀들을 통제하거나 그들을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신앙입니다. 아이들이 아무리 자라도, 그리고 우리는 늙어서 아이들을 통솔할 수 없어도, 심지어는 우리는 죽고 없어져서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을 때에도 그 아이들이 우리의 신앙을 계승하면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믿음이,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참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주님을 깊이 의지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텐데 그렇게 만들 힘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자녀들을 향한 우리들의 영향력은 사라지니까 어찌하든지 그들에게 신앙을 넣어주어서 우리가 사라져도 하나님에 의해 다루어지는 자녀들을 만들되, 우리가 자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어도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셨던 것처럼 주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아이들에게 신앙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린아이 때에는 신앙을 넣어주려고 노력을 하지 않고 아이들을 내버려 둡니다. 그러던 아이들이 유치부, 초등학교를 지나고 중학생이 됩니다.
요즘은 초등학교 5, 6학년만 되도 우리 때처럼 동요를 부르지 않습니다. 한번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귀에 이어폰을 끼고 즐겨 듣는 음악이 뭔지 들어보십시오. 정신적인 성장 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그런데 이것이 좋은 방면으로 빠른 것이 아니라 감각적이고 육욕적인 것으로 아주 발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됩니다. 집안에서 잘 단속한다고 해도 사실 부모가 그 아이들을 모두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나온 통계를 보면 자녀들이 얼마나 심각한 음란한 문화에 노출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는 교육이라는 것이 인간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고, 잘은 모르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는 그런 종류의 교육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철저히 성경을 믿고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 것이 굉장히 어리석은 것이라고 반감을 가지도록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현실입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이야기들은 쓸데없는 구닥다리로 여겨지게 되고 아이들은 변해갑니다. 죄에 대한 유혹이 들어오면서 아이들의 마음이 점점 더 굳어지게 되고 복음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대학을 가고, 졸업을 하고, 시집 장가를 가고, 취직을 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 어려웠던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도 똑같이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 많이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더 이상 기대하는 것이 없어서 신앙을 갖기가 더 어려워지는 역현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에게 신앙을 가르쳐주고, 주님을 영접하게 하고, 그들로 진실로 회심하고 거듭나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듭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만 어떻게 하든지 우리 아이들이 거듭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다루어주시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과 독자적인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자녀들을 위해 그 일을 해야 됩니다.
저는 유치부부터 시작해서 주일학교의 모든 부서들을 다 해봤습니다. 그런데 아주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복음을 전할 때 유치부 아이들이 주님을 받아들이기가 제일 쉽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우리나라 나이로 만 3살 정도가 되면 충분히 주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고 펑펑 울면서 회개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아이들의 지성을 얕잡어 보고, 복음을 마치 굉장히 성숙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인 것처럼 취급합니다. 어차피 이 복음은 이해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전해질 때 성령이 역사하셔서 그 마음에 빛이 들어와야 합니다. 어린아이들도 회심하고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 것들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쓴 <놀라운 회심 이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4년 6개월 된, 우리나라 나이로 5살이겠네요. 피비 바틀렛이라는 어린아이의 회심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 아이가 어느 날부터 집안에서 규칙적으로 한 30분 정도씩 사라져요. 그래서 엄마가 찾아보니까 놀랍게도 이 아이가 헛간에 가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의 기도하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몇 문장을 계속 반복을 하더랍니다. “Oh, Lord, I am sinner. I am sinner. Please forgive me. Please save me." 이런 기도를 반복해서 하고 있어요. 부모가 신기한 느낌을 받아서 이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하면서 지켜보는데 어느 날 헛간에서 막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해서 가보니까 4년 6개월 밖에 안 된 아이가 통회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기록에 나옵니다.
이런 것과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유사한 경험들을 어린이 사역을 하면서 많이 봤습니다. 5살 밖에 안 된 아이들이 똑 부러지게 회개하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들을 그대로 회개하고 받아들입니다. 이 피비 바틀렛이라는 아이는 회개하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의 책이 번역되어 있는데 대학생들도 읽기 어려워하는 설교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매일 엄마에게 교회에 언제 가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교회에 가기를 손꼽아 기다리는지 물어보니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싶어서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거듭나게 되면 어른들이 경험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 일어납니다.
우리 교회에서 그런 경우는 못 봤지만, 아빠가 은혜를 못 받고 간 예배에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오후예배에 와서 은혜를 받고 간 경우가 있습니다. 어른과 똑같습니다. 어른도 회심하고 변화 받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루하고 짜증이 날 정도로 답답하게 들리는데 변화 받고 나면 꿀송이처럼 달게 느껴지듯이 이 아이도 그렇게 느겼던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의 설교가 보통 2~3시간 정도인 것처럼 여겨지는데 그 엄청난 사변적인 설교를 5살 정도 밖에 안 된 아이가 들었던 것입니다. 그 아이가 설교를 이해하면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II. 본성과 생활
이제 잠언의 본성과 생활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아이는 그 동작으로 말미암아 그 품성의 청결한 것과 품행의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고 했습니다.
A. 행위로 나타나는 성품
여기서 우리들이 먼저 생각해볼 것은, ‘반드시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품은 행위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숨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됨됨이가 신중하면 행동하는 것도 신중하고, 사람 됨됨이가 인색하면 매우 인색하고 이기적입니다. 사람 됨됨이가 너그럽고 많은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면 늘 베풀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합니다. 성품이 자존감이 강하면 수치스러운 일은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성품이 급하면 그가 하는 일이 늘 급하기 짝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변함이 없습니다. 인간은 달리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생각해볼 것은 이처럼 어떤 행위든지 그것이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거꾸로 어떤 행위를 통해서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겠죠! 한번만 봐서 안다고 판단하는 것은 조금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의도는 없는데 실수로 하는 경우도 있고 또 마음속에는 없는데 짐짓 다른 목적을 위해 지어낸 행동, 위선도 있을 테니까 그것에 속지 않으려면 반복되는 행동을 여러 번에 걸쳐서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됩니다. 꽃이 핀 것을 보며 나무의 종류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처럼 맺힌 열매를 보면서 그 나무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게 되듯이 반복되어 흘러나오는 어떤 행동을 보면서 그 사람의 성품이 어떤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됩니다. 이것이 어른들에게도 해당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놀랍게도 어린아이에게도 이것이 적용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B. 자연적 성품과 신령한 성품
그러면 이렇게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성품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오늘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를 살펴보기 위해서 성품을 둘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연적인 성품과 신령한 성품입니다. 자연적인 성품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거듭남의 역사 없이도 인간이 교육이나 환경에 의해서 개발되고 고쳐짐으로서 형성되고 촉진될 수 있는 종류의 자연적 본성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본성 그 자체는 근본적으로는 자연적 본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자연적 본성
자연적 본성도 그냥 내버려두면 그 본성이 좋은 쪽으로도 갈 수 있고, 나쁜 쪽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본성이 있습니다. 한 집안에서도 보면, 아버지가 아주 까탈스럽고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는 성격이면 그 집안에 태어나는 자식도 그러기가 쉽습니다. 다행히 엄마는 성격이 널널하고 털털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교적인 성격을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집안에서 아들이든, 딸이든 태어나면 하나는 엄마를 닮고, 하나는 아빠를 닮아서 균형을 이루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행히도 만약에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성품이 까탈스럽고 다른 사람과 사교적인 성격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만나서 결혼을 했더라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부분의 경우에 엄마, 아빠를 닮은 아이들이 나오게 됩니다. 이런 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오는 자연적인 본성입니다.
자연적인 본성은 후에 두 가지 요건을 만나게 됩니다. 본성과 환경 그리고 교육 등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또 다른 자연적 성품으로 변화됩니다. 털털하고 늘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이 엄청난 정확성을 요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면 덜렁거리는 자연적인 본성을 드러내면 큰 일을 낼 수 있는 환경에 처하게 된 겁니다. 그러면 스스로 억제할 수밖에 없고, 엄격하고 꼼꼼하게 숫자 하나도 틀리지 않도록 철저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원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본성, 즉 덜렁덜렁하고 아무렇게나 일을 처리하며 살아가는 본성은 계속해서 퇴화되고, 원래는 없었던 본성이었는데 그렇게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확하고 꼼꼼하게 변화됩니다. 이것이 바로 후천적 성품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녀들을 기를 때에 오늘날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가정교육이라고 하는 것, 학교에서의 인성교육이라고 하는 것, 또 좋은 집안에 태어나서 좋은 부모 밑에 자란 아이에게 장가를 들고 시집을 가려고 하는 것 등은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하면,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랐다면 자연적인 성품이 참 좋겠구나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주위를 보면, 사람들이 결혼을 했는데 가정이 깨뜨려지고, 가족들 간에 분열하고 분쟁을 일으키고 그러는데, 이런 것들을 가만히 보면 자연적인 성품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많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원래 부모로부터 원만한 성품을 물려받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참된 사람의 길을 걸어가는 부모를 만났을 때, 그들이 자녀를 잘 가르쳐서, 자녀가 바람직하지 못하고 못된 성품을 물려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부모가 엄격하게 교육을 시키고, 이 아이에겐 별로 없지만 행사하도록 책임감과 성실성, 청결함 등을 계속 교육시키고 반복해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이 아이를 둔다면 부모로부터는 잘 못 물려받았지만 그것들이 계속 발휘되면서 이 아이는 자연적 성품에 있어서 선한 부분을 많이 가진 아이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고, 주님을 만나 변화되어, 이런 좋은 자연적 성품을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고 자신이 큰 죄가 없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정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사람이 된다면 아름다운 신앙의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발전하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이런 사람은 성화의 길을 걸어가기에 아주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격이 굽고 잘못되지 않고 올바르고 평범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면 더욱 순종하고 온전하게 살기를 원하게 됩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한 분이 외국에서 목회를 했는데 거기에는 유학생들이 많이 모여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 분이 자신은 거기에서 목회를 하면서 참 편리한 게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유학생들이 은혜는 좀 덜 받아도 말은 참 잘 듣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와서 유학을 할 정도면 고등학교 때 술이나 퍼먹고 싸움질이나 하고 돌아다녀서는 못 오는 곳이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모범생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한 은혜가 없어도 예배 시간에 늦지 말라고 하면 통회 자복을 안 해도 잘 고쳐지는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적인 성품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런 좋은 자연적인 성품을 가정교육이나 혹은 학교교육, 성장해서는 스스로 자기 개혁을 통해서도 제대로 갖지 못할 경우에는 신앙이 들어올 때에는 뒤집어지고 깨지는 소리가 납니다. 대개 엄청난 회심과 함께 감격적으로 주님을 붙듭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은혜의 지배 아래 있을 때에는 괜찮은데 죄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 보면 막판까지 다 가봤던 사람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막 살아보기도 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성질나는 대로 살아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가 충만할 때는 인간성을 잘 모르지만 은혜가 떨어지면 다 드러나게 됩니다. 은혜 떨어져서 나타나는 행동 속에 적나라한 인간성이 드러납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교양이 없는 것입니다. 교양은 은혜가 떨어져도 남습니다. 원래부터 교양이 없으면 은혜가 떨어질 때 더 야비하고 더러운 행동들을 합니다. 그러니 이런 행동들이 교회에 얼마나 큰 고통들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자녀들 결혼시킬 때 신앙만 좋으면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 신앙을 보증합니까? 신앙이 물론 귀합니다. 신앙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신앙만 좋으면 자연적인 성품은 형편없어도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매일 철야기도하고 월급 타서 교회에 다 갖다 바치는 신앙 좋다는 사람에게 딸을 시집보냈는데 은혜가 떨어지니 딸을 막 패기 시작하는 거예요.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러면 되겠느냐 하니까 자신이 죄의 지배 아래 있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런 인간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 교육을 다 잘 시켜야 합니다. 자연적인 성품의 교육도 잘 시켜야 합니다. 책임감, 성실성, 부지런함, 다른 사람을 향한 배려 등을 철저히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오늘 여기에도 보면, “아이는 그 동작을 통해서 그의 품성을 나타내느니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어디를 갔는데 아주 신중해요. 그리고 예의 바른 행동을 합니다. 그것이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을 보면 아이의 품성 속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예의바름이나 올바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발 교육을 잘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교양 있는 아이로 자라게 해야 합니다. 신앙이 있을 때나 떨어졌을 때나 항상 그 교양은 남습니다. 자녀들을 상스럽게 키우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교양 있고, 신중하고, 책임감 있고, 성실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신사적이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길러내야 합니다. 그런데 비겁하고 야비하고 상처투성이이고 남을 헐뜯기나 잘하는 것은 그냥 내버려두고 신앙만 집어넣으면 된다하면 안됩니다. 물론 신앙은 당연히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것이 아무리 잘되어 있어도 신앙이 안 들어가면 아무 소용이 없지만, 자연적인 성품에 대한 교육도 중요합니다.
2. 신령한 성품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신령한 성품입니다. 신령한 성품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의해서 중생을 통해 변화된 성품입니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 하나님처럼 순결해지고자 하는 순결한 마음, 하나님처럼 사랑하고 싶어하는 사랑의 마음, 주님을 닮고자 하는 거룩하고 진실한 마음, 주님을 닮아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자 하는 희생의 마음, 이런 것들은 모두 자연적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데서 비롯되는 신령한 성품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로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어린아이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아무리 말을 잘 듣는 아이라고 할지라도 그 아이가 거듭나지 않았는데 많은 종교적인 의무를 부과해 보십시오. 매일 가정예배 드려야 된다, 하루에 15분 이상씩 무릎 꿇고 기도해야 된다, 성경 5장씩 읽어야 된다, 밥 먹을 때마다 기도해야 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해야 된다...... 등의 종교적 의무를 부과한다면 5, 6세 밖에 안 된 아이들도 반발합니다.
이 속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저항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성령님이 오셔서 회개하고 거듭나게 하실 때에 하나님이 새롭게 심어주시는 성품이 신령한 성품입니다. 이것이 신령한 성품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품, 거룩한 것을 좋아하는 성품,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좋아하는 성품입니다. 이런 성품은 아이들이 회심하지 않고는 절대로 생길 수 없는 성품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아이를 데려다 놓고 슈바이처를 본받아라, 안중근 의사를 본받아라, 빌 게이츠를 본받아라, 세종대왕을 본받아라... 하면서 별 이야기를 다해줘서 이 아이가 엄청난 감동을 받아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쓴다고 할지라도 그것의 한계는, 그렇게 되어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수는 없습니다. 머리 속으로 교육을 잘 받으면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은 할지 몰라도, 그렇지만 그가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회심하지 않는 한은 불가능합니다.
III. 회심의 길
회심이 뭡니까? 회심은 둘로 나뉩니다. 회심은 넓은 의미의 회심, 좁은 의미의 회심으로 나뉩니다. 좁은 의미의 회심은 고유한 의미의 회심인데,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깊이 깨닫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데에는 목적이 있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데에도 이유와 목적이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이 하나님의 목적을 거스르며 살았기에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에 대해 뉘우치게 됩니다. 그 죄는 한 가지, 한 가지 행동을 한 것들로 시작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을 통해서 인간이 이 모든 불순종하고 죄 된 행동을 하게 했던 원뿌리를 보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였음을 깨달으면서 깊이 뉘우치는 것인데, 이것이 회심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예수님이 나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음을 보면서 그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자신이 의지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십자가 아래로 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회심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죄의 회개와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의뢰하는 믿음입니다. 그런 회심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그리스도를 전폭적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를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와 함께 일어나게 하십니다.
이런 좁은 의미의 회심은 일생에 구원받을 때 딱 한 번 일어납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하나님께 대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느끼는 철저한 회개, 피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는 예수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 이런 것들이 항상 똑같은 정도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에 빠지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면 흐려지게 됩니다. 머릿속으로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생각, 자신이 회개한 것들이 남아있어도 지금은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매달렸을 때 예수님이 사랑해주시고 용서해주신 것을 기억은 하지만 지금은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죄에 가까워지게 되면 이런 것들이 모두 흐려지게 됩니다. 그 때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고, 변화를 받게 되면 그것이 다시 새로워집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가 또 생각이 나고,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고, 피할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좁은 의미의 고유한 회심이 새롭게 경험됨을 말합니다.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회심이라고 집어넣습니다. 우리가 어른으로서 하나님 믿다가 뒤로 미끄러질 때가 있는데, 그냥 돌아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항상 회개를 한 어느 지점이 있고, 거기에서 하나님께 대한 뉘우침과 그리스도께 대한 전폭적인 믿음이 생겨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 회심을 통하지 않고는 신령한 성품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A. 전심으로 기도함
자녀들에게 자연적인 성품 교육도 못시켰습니다. 그야말로 자기 욕심에 이끌려서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았지만 부모가 못된 인간이에요. 애는 낳았는데 근본적으로 아이를 기를 수 있는 능력이 안 되고, 자기 자신도 똑바른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갈 의지도 없고, 능력도 안 되는 인간이에요. 그러면 자기도 못 가르치는 데 어떻게 자식들을 가르칩니까? 자식들을 방치하는 겁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상처와 잘못된 환경, 오염된 주변 여건들의 반복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형편없는 인간이 되어갑니다. 자연적인 성품조차도 잘 발육이 되지 못하고 못된 인간이 되어 갑니다.
사람이 다 똑같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빛으로 보면 다 똑같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절대로 똑같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도 은혜가 떨어지면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 형편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상스럽고, 교양이 없고, 경우가 없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만났으니까 용서하면서 살지 내 마음대로라면 이 세상에서 한번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신앙의 세계에서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자연적인 성품이 망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제일 나쁜 것은 자연적인 성품도 제대로 양육을 못 받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인생들은 희망이 없습니다.
B. 전심으로 가르침
그런데 그거보다 좀 나은 경우가 무엇이죠? 부모가 예수 믿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안 믿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자녀들을 보니까 저렇게 살아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자녀들에게 더 열심히 살라, 책임감을 가져라,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며 부모들도 그렇게 똑바로 삽니다. 그럼 자녀들이 잘 다듬어진 사람들이 됩니다. 그러면 어디가든지 환영을 받습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고 모두들 좋아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더 편하겠죠! 주위의 사람들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고, 남편이나 아내로부터 상처를 받았다고 하지만, 깊은 신앙은 그만두고라도 상식선에서만 살아도 그렇게 형편없이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엊그제 신문을 보니 부인한테 맞아죽은 남자가 나왔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여자는 결혼만 하면 남편이 죽는 거예요. 알고 보니 그렇게 해서 보험금을 엄청나게 탔다고 합니다. 나이도 29살 정도밖에 안된 여자인데 몇 번 결혼해서 남자를 그렇게 희생시켰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맞고 사는 남편들이 많습니다. 거짓말 같죠? 남자들이 자기들이 맞은 상처까지 보여줘요. 다 상식 밖의 행동들, 정신병자들인 거죠. 그러니 자연적인 성품에 대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잘 가르치고 부부가 구순하게 살고 모든 것을 잘한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안주고 잘 살겠죠!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지옥에 갈 운명입니다. 인간의 선행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은 아니죠! 사람이 잘 다듬어지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려고 하는 이 마음은 누그러뜨려진 게 아닙니다. 자연적인 성품의 변화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뭐가 필요합니까? 그래서 세 번째 그런 정도만 가지고 안 되고 제일 좋은 것은 자연적 성품에 대한 교육도 잘 시키고, 그래서 사회에서도 잘 다듬어지고 교양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간절한 심정으로 간곡히 이야기 하겠습니다.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신앙을 가진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신앙이 떨어져도 교양은 남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없으면 신앙이 떨어지면 형편없이 되고 말죠! 그런 행동을 직장에서 하면 왕따를 당할 거고, 학교에서 그런 행동을 하면 손가락질을 당할 거고, 아파트에서 그런 행동들을 하면 반상회에 부르지도 않을 그런 행동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이니까 그런 것들을 참고 넘어가고 아파도 돌아서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용서하지만, 그렇게 사는 그 사람은 매우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추루하고 불결한 인간으로 보이겠습니까?
옛날에 저와 함께 학교에 계신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친구 목사하고 호텔에 갔는데 그가 갑자기 휴지에다 커피 프림을 따라서 그것을 가지고 카펫 위에서 구두에 대고 막 문지르면서, “이걸로 구두를 닦으면 한참동안 구두가 빛나고 이뻐.”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분이 좀처럼 그러시지 않는 분인데 아주 뭐라 그랬대요. “자네, 어디 가서 목사라고 얘기하지 말아라. 여기 이 넓은 호텔 카펫에서 당신 같은 짓거리하는 사람이 있나 봐라.” 왜 그럽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달라야 되잖아요! 아까도 열린 공간에서 나오는데 하드 껍질을 아무렇게나 버려두고, 우유도 쏟은 채로 그냥 갔는데... 누가 치우라는 겁니까? 틀림없이 교인들이 그랬을 가능성이 많은데 왜 그렇게 교양들이 없어요? 교양이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받기 싫은 대우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고, 내가 받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겁니다. 자기가 흘렸으면 티슈 가지고 깨끗이 닦고, 그리고 의자도 제 자리에 놓고, 맨 처음에 자기가 앉았을 때의 모습으로 똑같이 해놓고 일어나는 것이 교양입니다. 자기가 먹던 하드 껍질, 심지어는 우유까지 쏟아놓고 그냥 가버리는 것은 너무 교양 없는 행동들입니다. 그런 것들은 신앙을 떠나 교육을 잘 못 받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들에게 두 손 모아 간곡히 말합니다. 제발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안 믿는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보면서 심오한 영성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볼 것입니다. 자녀들도 그렇게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C. 전심으로 사랑함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그 아이를 그렇게 교육을 시킨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가 절대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정말 예절바르고 올바르게 아이를 길렀는데 이 아이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느냐하면, 그건 회심이 없이는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자녀를 헌신적으로 잘 길렀다, 우리 아이들만큼 착한 애들이 있나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그럼 제가 묻고 싶습니까? “아이들이 회심했습니까?” “회심이야 아직 안했지만 애들이 워낙 착해서!” 그것이 복음입니까? 차라리 그렇게 착하고 회심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상처받은 가정에서 쓰레기같이 사는 사람이라도 회심한 사람이 낫습니다. 회심한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다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다루어진다는 거죠. 말씀을 들으면 가책을 느끼고 회개를 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뭐냐면, 자녀들을 그렇게만 교육시키는 것이 다가 아니라 그의 영혼이 정말로 거듭나고 변화되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회심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자연적인 성품을 개발하는 이것은 부모가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부모가 그 자녀를 그렇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좋은 부모를 만나서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아이들은 틀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집가고 장가갈 때 집안을 자꾸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에 돈을 많이 벌어서 졸부가 되었어도 그 부모의 인품이나 가정의 가풍을 보면서 사람을 고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럼 뭐가 필요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죄를 미워하는 것, 그래서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소원을 불러일으켜야 됩니다.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 부모가 교육을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성령의 강력한 은혜의 역사가 아니면 본성은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부모가 그렇게 되기 위해 애쓰고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를 그렇게 바꿔놓는 것은 부모가 아닙니다. 자연적인 성품은 부모가 교육을 통해서 만들 수 있지만 신령한 성품은 만들 수가 없습니다. 신령한 성품을 만드시는 분은 성령님만이 만들 수가 있습니다. 언제 성령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우리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회심의 길이 있습니다. 부모로서 자녀가 회심의 길에 이르도록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들의 마음이 강퍅해서 회개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사실은 부모의 기도가 부족해서 자녀가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혼을 위한 중보기도의 힘은 정말 놀랍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도 경험을 했는데, 작년에 LA에 집회를 갔습니다. 첫날 집회를 끝마치고 나오는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안가고 서서 족보를 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과 관계있는 사람들이 열린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저와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국으로 집회를 간다고 하니까 우리 교회 집사님 한 분이 미국에서 곤고하게 사는 자기 친구가 생각이 나서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집회에 가서 은혜를 받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상황이 어려운데도 새벽예배에 나왔습니다. 사실은 설교 계획이 있잖아요. 안식교 교회를 빌려서 예배를 드리는데, 토요일이 그 사람들 예배를 드리는 날이라서 빨리빨리 하고 돌려줘야 합니다. 예배당을 빌려주지 않고 유치부실 같은 조그만 예배당을 빌려주는데 시간이 없어서 빨리 끝내야 된다고 해서 새벽에는 말씀을 간단히 전하고 열렬히 기도하다 저녁 때 만나 본편에 승부를 해야지 하고 성경 본문을 폈습니다. 한 3~40분이나 하고 마쳐야지 했는데, 참 놀라운 것은 5~60십 명 정도가 나왔는데 그 새벽에 하나님이 예기치 않은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새벽기도 설교를 30분 정도 하려다가 1시간을 넘게 했는데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만큼 은혜가 임하지 않았습니다. 다 끝나고 한참 기도하고 나오는데 어떤 자매가 눈에 이슬이 맺혀 저에게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가 정말 올 상황이 아니었지만, 자기 친구가 가보라고 강력히 권고를 해서 오게 되었는데 정말 하나님 만나고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것은 중보기도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설교를 잘 준비했어도 불이 언제 떨어질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을 다 쏟아 붓는 중보기도입니다.
우리 아이가 둘이 있는데, 사내아이는 6학년 때 회심을 하고, 딸아이는 중학교 1학년 때 회심을 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전부 이야기를 못하지만, 아들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뭐를 해도 100점, 올 수, 성적표 받아오면 발표력이 훌륭하다고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5학년부터 얘가 이상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먹는지 살이 찌기 시작하고 공부도 안하는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참 미안해요. 그때가 개척교회 시절이어서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겁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다시 개척을 하면 그러지 않을텐데...... 사실 우리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모르고, 의무들은 막 주워지는데 아이들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랐습니다. 지금 같으면 훨씬 잘 균형을 이룰 수 있을텐데!
그리고 아이가 망가지기 시작하는데,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아이를 많이 야단치고 타이르는데 아이가 안 따라오니까 아빠로서 그러면 안 되는데 아이가 막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자녀만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너무 답답했습니다. 열린교회 교역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아이가 회심을 하지 않은 게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더 늦기 전에 아이를 아이들의 회심이 많이 일어나는 선교단체의 캠프에 보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부가 열심히 기도하면서 별로 내켜하지 않는 아이를 캠프에 보냈습니다. 마침 그 곳에 가서 임시 담임선생님을 만났는데 이 자매가 불꽃 시리즈를 읽으면서 은혜를 많이 받은 자매였습니다. 얘가 우리 아들이라고 하니까 이 자매가 정말 신경을 많이 쓰면서 이번 캠프에서 꼭 예수님을 만나고 가라고 집중적으로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때 이 아이가 거기 가서 깨뜨려지면서 회심을 경험을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얘를 위한 수련회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4박 5일 만에 돌아왔는데 다른 사람이 되서 돌아온 거예요.
엉망으로 살다가 깊이 주님을 만나고 회심한 지체들을 보면 마치 폭탄 맞은 사람처럼 멍해 보이잖아요! 그러면서도 간간히 기쁨이 솟아나고, 몇 주 지나고 나면 정리가 되면서 성도의 기품이 풍기기 시작하는데, 이 아이가 똑같은 과정을 밟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아이가 조금씩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후에 이야기를 들으니까 나는 아이한테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아이는 제게 상처를 많이 받은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당연하지 않겠어요? “어떻게 그렇게 생활을 하냐? 정리도 안하고, 먹긴 얼마나 먹었길래 비만이 되고...” 도저히 제가 마음속에 그리던 그런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쾅, 쾅 아이의 가슴속에 꽂힌 거였어요. 그게 아직까지 남아있어요. 아이는 아빠를 생각하면서 자꾸 열등감을 느끼고 경쟁상대로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잔존물입니다.
그 후 제가 깊이 회개하고 하나 깨달은 것이 간절히 기도할 때에 아이가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2~3학년 때 일어났다면 이 아이가 얼마나 달라진 인생을 살았을까? 아마 훨씬 공부도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고,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고, 아마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더욱 자라갈 수 있었을 것이고, 훨씬 더 좋은 대학에도 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들이 떠오르는 겁니다. 6학년 때 회심했는데도 그런 아쉬움이 드는데 아이가 대학에 가서도 회심을 안했다면 부모의 억장이 무너지겠죠! 억장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부모도 아니죠! 삯꾼이죠! 피와 살이 섞였으면 그럴 수 없죠. 기도해야 합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 여사의 기도는 유명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 온전히 기도를 합니다. 제가 설교에 한 번 인용을 했지만 언제나 은혜가 되는 예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방부 장관을 지내던 김성원 장군이 26살에 스타가 되었습니다. 별을 달고, 부관을 데리고, 좋은 차를 타고, 동네에 와서 엄마한테 폼 잡으려고 왔는데 엄마가 별 달고 온 아들을 보고 문을 닫고 들어가더래요. “내가 언제 너보고 군인이 되라고 그랬니? 너는 주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머니, 제가 왔습니다.” 어머니가 잠시 있다 다시 나오면서 아들에게 치마를 들어 무릎을 보여주었습니다. 무릎이 약대 무릎처럼 다 굳어졌어요.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기도했는데! 언제 내가 너보고 군인 되라고 그랬냐? 주님의 종이 되라고 그랬지!”
IV. 결론과 적용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제일 회개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절대로 자녀들이 강퍅해서 회심을 안 하는 게 아니고, 선생을 잘못 만나서 회심 안 하는 게 아니고, 교역자들이 사랑을 안 해주어서 회심 안 하는 게 아닙니다. 기도 안 해서 그렇습니다. 전에도 얘기 했지만, 부인이 와서 “목사님, 저희 남편이 영 적응을 못해서 교회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목숨을 걸어보셨습니까?’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남편에게 맞는 교회를 찾아가면 회심이 일어날까요? 물론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정면 승부를 해야지요. 자녀를 위해 일평생 3일 금식 기도를 해보신 분이 있으시면 마음속으로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러나 사업이 안 되서 금식기도 한 분은 많잖아요! 그런데 자녀를 위해 그렇게 해보셨습니까? 자녀를 위해 기도하다 밤을 새보신 분이 있으십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시간이 더 흐르면 여러분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도 회개 안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기회 있는 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얘야, 하나님 잘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빠는 너에게 아무 소원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양보할 수 없는 게 있다.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너는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사람이다. 네가 이 세상에서 박사가 되고 장군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빠의 꿈이다. 그리고 우리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을 얻을 수 없고, 그분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해서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를 주신단다.” 자녀들에게 매일 쉬지 않고 가르칠 수는 없어도 틈 날 때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얘야,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단다. 하나님이 너를 정말 훌륭한 지도자로 쓰실 거야.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죄를 회개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부모가 본을 보이는 것도 포함됩니다.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생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여러분이 죽고 나면 자녀들이 여러분이 썼던 돋보기를 만지작거리면서, ‘우리 엄마가 이 돋보기 쓰고 성경을 읽으며 참 많이 우셨지!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생 보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을 읽을 때마다 어머님이 이 돋보기 사이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시고, 무릎을 꿇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지! 우리가 잠잘 때 우리를 축복하셨지! 내가 이제는 너희들 곁을 떠나가지만, 너희들은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한다.’ 그런 어머니로 아이들 마음에 남겠습니까?
전에 우리 유년 주일학교 숙제로, 매일 아이들이 자기 전에 아빠가 안고 기도해주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단순해서 아빠께 기도해 달라고 하니까 아빠가 피곤하다고 그냥 자자고 하는데 아이가 매일 따라다니는 거예요. “아빠는 왜 나를 위해 기도도 안 해주는 거예요? 아빠는 나쁜 사람이야!” 하고 닦달을 하니까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하려고 하는데 기도를 해줄 자격이 없어요. 생각을 해보니 한 번도 아이를 위해 기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위해 매일 저녁 기도하다 아빠가 펑펑 울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도 가르침 속에 포함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많이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신앙이 아이들에게 기쁨이 되어야지 스트레스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네가 순종할 때만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랑하시지만 그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는 너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그러면서 아이를 사랑해줍니다. 아이가 침체에 빠질 때마다 “걱정하지마.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꼭 지켜주실 거야. 그 대신 너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아빠는 너를 사랑한단다. 왜냐하면 너는 내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또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너를 사랑한단다.” 그렇게 많이 사랑하는 거예요. ‘내가 신앙생활 열심히 할 때뿐만 아니라 침체에 빠졌을 때에도 내가 회심하지 못한 때에도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그 사랑이 어디서 왔을까? 아!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랑이구나!’ 하고 아이들이 느끼게 해줘야 합니다. 기도하고, 가르치고, 뜨겁게 사랑하는 것, 이 세 가지! 여러분이 죽고 난 후에도 이 아이가 ‘난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제일 큰 선물이 우리 엄마, 아빠 만난 것입니다. 우리 엄마, 아빠처럼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나를 사랑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고 내가 은혜 가운데 살기를 손 모아 기도하셨습니다.’ 그런 부모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