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양육하라(2)
要养育子女(2)
가족관계 회복시리즈 오늘은 우리 가족관계에서 소외되기 쉬운 형제관계에 대해서 성경이 어떤 가르침을 주는지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형제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에는 형제들이 다투면서 크다가 철이 들면서 그런 다툼들이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좀 잦아들고 그리고 형제들이 서로가 소중한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사형제인데 둘째와 셋째, 셋째와 넷째끼리 잘 다툽니다. 그런데 다른 집안들은 모르겠는데 우리 가정의 경우에는 큰형과 별로 다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동생은 바로 위의 형이나 언니는 만만하게보고 한 단계 넘어가면 약간 좀 높게 보는 모양입니다. 결혼하게 되면 분가해서 나가니까 좁은 의미로 가족에서 이탈되어서 또 다른 가족들을 만들어 갑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면 형제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집니다. 거기에 작용하는 것이 결혼하면서 들어온 각자의 아내들 혹은 결혼한 다음에 여자는 우리나라의 경우에 시집을 가면 당연히 자매들끼리 멀어지게 됩니다. 자기 일에도 매이고 이런 외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결혼하고 나면 형제자매 관계들이 멀어지게 됩니다.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형제들이 관계가 화목하지 않고 자주 만나고 왕래가 없이 사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무엇인가?’ 입니다. 이유는 형제사이에 맺힌 것 때문입니다. 섭섭함 같은 감정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쌓이면서 관계가 멀어지게 되고, 심지어 부모님의 유산문제가 나오게 되면 소송도 불사할 정도로 이익이 개입이 돼서 싸웁니다. 이런 방식으로 멀어집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은 우리 혼자 구축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요? 오늘 이야기 하고 싶은 문제입니다.
家庭关系恢复系列,今天,我们要一同思想在我们家庭关系中,很容易被我们忽略的弟兄关系,圣经是如何教导的。我们都认为弟兄彼此相爱是理所当然的,在儿时,兄弟在吵架中成长,董事之后,那种吵架(每个人都不同)会稍微平静下来,并且懂得了兄弟之间彼此珍视。我是四个兄弟,老二和老三,老三和老四容易吵架。可是,虽然不晓得其他人家如何,在我们家与大哥没怎么吵架,因为,弟弟总是对上面的哥哥或姐姐看起来好对付,更上一个阶段看大哥时,略微看起来有些高的样子。结婚的话, 分家之后,从狭隘的意义来说是脱离了家庭,又与其他人建立了家庭。可是,结婚之后,兄弟间的关系被忽视。事实上结婚之后,进来的各自 的妻子,或者结婚后,在我们国家结婚后,自然与姐妹们疏远了。虽然有自己的事和外部的事,但但结婚之后与弟兄姐妹的关系就都疏远了。今天想与诸位分享“弟兄间关系不和,不总见面,没有来往的其中很多是因为什么呢?”因为,理由存在于弟兄之间。难过的感性不断积累,关系渐渐变得疏远,甚至出现因父母遗产的问题而不惜诉讼的程度,因着利益而争吵。因此而变得疏远。此种现实的状况不是我们独自造成的,但我们作为基督徒该如何生活呢?是今天想和诸位谈论的话题。
부모 슬하에 한 인간이 태어납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성장합니다. 아이는 철저한 사회 속에서 성장합니다. 인생은 한 인간이 태어나서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를 통해서 자기를 형성해 가는 성장의 과정입니다. 제일 먼저, 태어나서 최초로 관계를 맺는 사람은 엄마입니다. 사실 아이들은 아빠의 개념도 잘 없습니다. 그래서 열 명이면 열 명이 ‘엄마’라는 말을 먼저 배우고 ‘아빠’라는 말은 나중에 배우게 됩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도 해당되는 공통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엄마하고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고 아이가 엄마의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엄마에게 어떠한 정신적인 끌림이 아빠보다 훨씬 더 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이가 아빠란 존재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부모로서 아이를 낳아서 갖는 관계라는 점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자기의 출생과는 상관없이 부모 다음으로 만나는 첫 번째 사회가 형제입니다.
一个人是出生于父母膝下,在孩子出生后,在经历许多的事的过程冲成长。孩子是彻底地在社会中成长起来的。人生是一个人自出生后,通过与他人所建立的关系形成自我的成长过程。出生后最先形成关系的人就是妈妈。那时,实际上孩子也没什么爸爸的概念。所以,几乎所有的孩子最先学会的说“妈妈”,后来才学会说“爸爸”。不仅是我们国家,任何国家都是如此。为什么这样呢?理由有很多,但首先最重要的是因为与妈妈一起的时间绝对地多,并且可能因为孩子是从妈妈的腹中出生了缘故,所以与妈妈在精神上的某种联系要比爸爸更大。从严谨的意义上来看,孩子对爸爸的概念是近乎在毫无认识的状态下出生的。与自己如此的出生无关,在与父母的之后形成的社会关系就是弟兄。
물론 자기가 먼저 태어났을 때는 혼자이지만 이어서 동생들이 태어나고 혹은 자기가 나중에 태어나서 형이나 누나가 있습니다. 또한 첫 사회에서 맺은 형제와의 관계가 친구로 확장되고, 이웃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통해 자녀들이 성장해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자녀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은 훈련이 필요한데, 사실상 형제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배워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심리학자와 교육학자들에 의하면 한 사회가 형성되려면 3명이상의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가정에서 홀로 자란 아이들은 그런 사회를 경험을 못해보는 약점이 있고, 둘도 좀 부족하고 셋이 되면 사회를 배운다고 합니다. 형제가 셋이면 그 중에 편을 먹습니다. 그래서 외톨이가 되는 것을 경험하고 외톨이를 면하기 위해서 다시 전략적으로 양보하고 제휴하고, 또 한쪽을 왕따 시키는 법을 배우면서 사회를 학습합니다.
虽然,出生的时候是自己,但接着生了弟弟,或者自己是后来出生的,因此有哥哥或姐姐。还有,从最初的与弟兄姐妹形成社会关系扩张为朋友,邻舍的关系,在这样的过程中,子女们得以成长。因此,我们需要训练我们的子女如何与他人建立关系,实际上是通过兄弟姐妹间的关系来学习的。根据心理学家和教育学家的说法,至少要三人以上,才能形成一个社会。因此,在家庭中,独自成长的孩子,具有无法经历社会的那种缺点。虽然两个孩子有点不足,但如果是三个孩子便可以学习到社会关系。若是弟兄三个,其中会结成一伙,所以会经历到冷落。为了避免被孤立,便会学习战略性地谦让,合作,还有孤立一方的方法,就在这过程中学习到社会。
오늘날 자매들에게 이런 이야기하면 잔인한 이야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 남자아이 두 명, 여자아이 두 명을 나으면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하나만 낳는 것도 힘듭니다. 어쨌든 사회를 배웁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 속 형제들부터 관계가 틀어집니다. 틀어지는 이유를 여기서 낱낱이 예를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틀어지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틀어진 관계를 그대로 방치 할 것인가?’ 와 ‘어떻게 하든지 이것을 복원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나옵니다. 사실 기독교인이 되고나서 제일 힘든 것 가운데 하나는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생활을 보여주는 것은 참 쉬운데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今天若对姐妹们说这样的话,可能很残忍,但实际上若生两个男孩,两个女孩是最理想的。如今生一个都很辛苦。无论如何都能学习到社会。然而,问题是圣经中的弟兄们的关系搞砸了。其理由无需在此一一列举。有关系的破裂。那么,我们正面对着“作为基督徒就那么任凭关系破裂吗?”和“无论如何都应恢复那关系的,给如何是好呢?”的问题。实际上,成为基督徒后,在陌生人面前表现出好的生活样式,那是及其容易的事,最困难的乃是在亲近的人面前。
어느 형제가 대판 싸웠다고 합니다. 형은 되게 못된 사람이었는데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잘해줍니다. 동생이 자기 물건이나 옷에 손대면 펄펄뛰면서 교회 애들은 데리고 와서 옷도 빌려주고 심지어 돈도 빌려주고 그러는 것입니다. 동생이 나중에 열 받아서 “나는 형한테 교회 다니는 애들보다 못하냐? 걔네들한테 해주는 것에 10분의 1만이라도 나한테 해주면 형은 진짜 나한테 존경받은 형이 되었을 거야!” 라고 얘기했습니다.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사람에게 나를 선하게 보이는 것은 쉽습니다. 그런데 내가 살아온 환경과 바닥까지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한테 잘해주는 것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교회 지체에게 잘 해주는 것은 주는 것만 희생하면 됩니다. 그런데 형제들에게 잘해주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양보해야 됩니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죽어서 지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순간마다 울컥울컥 화가 솟아오릅니다. ‘내가 왜 이렇게 부당한 것을 참아야 되나?’ 생각이 들면서 화가 솟아오릅니다. 그래서 그게 어려운 것입니다.
某兄弟俩大干了一场。哥哥是及其恶劣的人,一边去教会,对去教会的人都很好,弟弟若碰了自己的东西或衣服就暴跳如雷,而教会的孩子带来又借衣服,甚至借钱给他们。弟弟后来很生气说“对于哥哥,我连去教会的孩子都不如吗?作在他们身上的十分之一若真的作在我身上,那么,哥哥在我心目中将会受到很大的尊重的!” 对于那些一周见一次的人,表现出良善的样子是很容易的,可是对熟知我一切的人却很难。 例如,我善待教会肢体,只要在给予上帝肯牺牲就行,但为了好好对待弟兄,要在一切的事情上谦让才行。最近常用的话就是“要死了过啊。”可是,每当那时,火就腾得爆发了。认为“我为何要忍受着不合理的事呢?”便火气瞬间爆发。因此,那是很不容易的。
그런데 결혼을 하고나면 실제적인 문제가 생깁니다. 저는 우리 동생을 잘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평생 같이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동생과 결혼한 아내들은 남입니다. 솔직히 그 남자 하나 보고 시집온 것이지 나머지는 전부다 끼워 팔기로 온 사람들입니다. 사실 아닙니까? 솔직히 시부모 좋아서 시집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 남자에게 갔는데 끼워 팔기 식으로 온 것입니다. 그렇듯이 동서들 간에는 서로 이해하는 것을 잘 못합니다. 더군다나 그들도 다른 집안에서 온 사람이고 그들이 만나는 시아주버니나 아니면 시동생도 전혀 생경스러운 사람들입니다. 사랑은 허물을 덮는다고 했습니다. 형이 동생을 사랑하고 동생이 형을 이해하면서 덮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것이 잘 안 보입니다. 그러면서 형제사이가 꽤 괜찮았던 집안이 며느리들이 들어오면서 갈라지게 됩니다. 미묘한 문제입니다. 결혼과 함께 외부적인 영향들을 많이 받게 됩니다.
然而,结婚之后,产生了实际的问题。笔者很能理解我的弟弟。因为,平生都一起过过来的缘故。可是,说实话,与弟弟结婚的是陌生人。说实在的,就是因为一个男的才出嫁的,其他人都是捆绑式销售来的人。事实不是如此吗?说实话,因着喜欢婆家而出嫁的人又有谁呢?嫁给那个男人,是以捆绑式销售的方式而来的。像这样,连襟们无法彼此理解。加上他们也是从其他家庭来的人,他们所遇见的 公公或小叔子也完全是生疏的人。爱是遮掩人的过犯。哥哥爱弟弟,弟弟理解哥哥,以此来彼此遮盖。然而,在这两人的眼中,不容易看不到那些。因此,兄弟之间曾是不错的家庭,但儿媳妇们一进来便分裂了。是个及其微妙的问题。与结婚一同受到许多来自外部的影响。
이와 같이 형제사이가 많이 갈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꼭 혈육의 형제뿐만 아니라 결혼관계를 통해서 맺어지게 된 형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데 사랑은 마음에 막힌 것이 없어야 할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그런 막힌 관계를 해소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형제사이에 이미 맺혀져 있는 것을 풀어야 합니다. 화해와 용서라는 개념이 먼저 들어옵니다. 그러면 남편과 아내사이도 마찬가지이고 부모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를 아무리 공경한다고 하더라도 부모로 부터 상처를 많은 사람은 먼저 부모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부터 출발을 해야 합니다.
许多兄弟就像这样关系破裂了。因此,我们要思考“作为基督徒我能作什么呢?”。不一定只是血缘的兄弟,因着婚姻而形成的兄弟关系也是一样。应该彼此相爱地生活,只有在心里面没有间隙的时候才能相爱。当务之急,要先缓解那些阻挡关系的事情。要先解决已经阻挡兄弟间关系的东西。首先需要和解和饶恕。丈夫和妻子之间也是同样,父母之间也是如此。无论怎么说恭敬父母,但那些受到父母许多伤害的人,首先要从饶恕并与父母和解开始。
이 그림은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판화가의 그림입니다. 에서와 야곱이 뜨겁게 해후하는 장면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야곱과 에서는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태어난 형제이었고 두 사람은 성향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야곱은 가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집에 있으면서 엄마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가하면 에서는 사냥을 좋아했습니다. 활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여성적인 사람이었고, 에서는 그야말로 남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활달하고 씩씩하고, 사냥해서 맛있는 고기를 대접하는 아들이 좋았습니다. 결국 가정 사이가 갈라지게 됩니다. 이것은 편애입니다. 형제사이를 화목하게 하려면 부모가 편애하면 안 됩니다. 사실은 인간이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도 손을 얹고 생각해보십시오. 좀 더 좋아하는 자녀들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당연히 있습니다. 나는 어떨까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는 딸을 훨씬 더 좋아했던 거 같습니다. 자라면서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균형을 잡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집안에서도 보면 뚜렷했습니다. 형제 넷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좋아하는 아들, 할머니가 좋아하는 손자, 고모들이 좋아하는 아이들로 뚜렷하게 다 나뉘어있었습니다. 마음이 가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그런 것을 잘 표현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这幅画是法国著名的版画家古斯塔夫杜雷(Gustave Doré)的画。以扫和雅各邂逅的场面。正如我们所知,雅各和以扫是以撒和利百加所生的两兄弟,但二人在秉性上存在着差别。雅各是比较宅,所以,每天总在家里,就取得了妈妈的喜爱。而以扫却喜欢打猎,是个喜欢活动的人。雅各比较女性化,以扫倒是个比较男人的人。父亲喜欢充满活力,朝气蓬勃,打猎给自己作美味的儿子。结果,家庭产生了分歧。这就是偏爱。若想兄弟间和睦,父母就不能偏爱。实际上,因为是人的缘故,诸位自己也请扪心自问。说没有更好的子女的话,是假的。当然有的! 笔者自省自己的情况,孩子小的时候似乎曾经更很喜欢女儿,但随着成长好像不再那样了。似乎找到了平衡。掌握那样的平衡并不容易。在我们家里也很明显。兄弟四个,有父亲喜欢的儿子,还有奶奶喜欢的孙子,姑姑们喜欢的儿子,等 很清楚地被区分开来。因为各有各的关注所以那样。可是,父母们不能那样清楚地表现出自己的偏爱。并且,要竭力避免那样。
이 그림은 야곱을 떠나보내는 장면입니다. 아무래도 야곱과 에서를 같이 있게 하면 원한이 깊어져서 안 좋다고 봤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어머니가 야곱을 정말 사랑합니다. 편애를 했고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이유는 앞을 잘 볼 수 없고, 분별없는 아버지의 약점을 틈타서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아버지를 떠나서 메소포타미아로 갑니다. 밧단아람입니다. 거기에서 외삼촌 라반을 만나고 그 집의 딸들과 결혼하고 정착합니다. 그 집에 딸이 둘이 있었는데 언니가 레아이고 둘째가 라헬입니다. 어느 날 삼촌이 부르더니 “내가 품삯을 주겠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라헬을 주십시오!” 했더니 “7년을 일하라. 그러면 내가 품삯으로 우리 딸을 주마.” 그랬습니다. 야곱이 7년 동안 일을 합니다. 성경을 보면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창 29:20) 7년 후,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치렀는데 그 당시에 전기불이 없었는지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레아입니다. 누군지도 모르고 첫날밤을 지낸 것입니다. 배신감에 사로잡혀서 삼촌한테 가서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라고 따지니까 “우리 지방에서는 동생이 언니보다 먼저 시집가는 일을 없다.” 라고 합니다.
这幅画是送别雅各的场面。无论如何,雅各和以扫一起生活的话,怨恨可能会加深。有两个理由,其一是妈妈真的爱雅各,就是偏爱。其次,关键性的理由是雅各趁着父亲眼目昏花夺去了长子的祝福。然后,雅各离开了父亲去了米所波大米。就是巴旦亚兰。在那里遇见了舅舅拉班,并与他的女儿结婚成家。他家有两个女儿,姐姐是利亚,老二是拉结。有一天舅舅叫了他来,问“我要给你报酬。你想要什么?”他回答说:“请把拉结许配给我!” “你要服侍我七年,那样我就将他作为报酬给你。”他说。雅各工作了七年。圣经上说:“他因为深爱拉结,就看这七年如同几天。”(创29:20)。七年后,结婚了,但结婚典礼之后,当时没有点灯,早晨起来发现是利亚。连谁都不清楚,就过了洞房之夜。心中充满了被骗的感觉,去见舅舅,质问他说:“你向我做的是什么事呢?”拉班回答说:“大女儿还没有给人,先把小女儿给人,在我们这地方没有这规矩。”
진작 이야기를 해야지 그럼 포기를 했을 텐데 그래서 화를 내니까 “그래. 그럼 라헬도 너에게 주마. 일주일 기다려라. 그 대신 7년 더해야한다.” 결국은 끼워 팔기로 7년짜리 레아를 덤으로 얻고 라헬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머슴처럼 일해 봤자 아무것도 얻는 게 없으니까 야곱이 이제는 가족들 데리고 “내가 떠나야 되겠습니다. 언제나 내가 내 집을 일으킬 수 있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외삼촌과 야곱사이에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유명한 알록달록한 양들의 사건입니다. 외삼촌이 우생학적으로 알록달록한 것 다 제거하고 하얀 것들만 남은상태에서 알록달록한 것이 태어나면 네 것이 된다고 제안했습니다. 우생학적으로 진짜 확률이 낮습니다.
如果说实话的话,可能就会放弃的,因此雅各很生气,拉班说:“你为这个满了七日,我就把那个也给你,你再为她服侍我七年。”结果,被捆绑出售,七年价值的利亚作为赠品附赠给了雅各,并得以与拉结结婚。像奴仆一样干活,可能什么也得不到,雅各如今带着家人问她们,说:“我该离开了。我何时才能建立我的家呢?”舅舅与雅各间形成了嫌隙。那是著名的斑点羊事件。舅舅将优生学上较好的花斑的羊都挑出去,只留下了白色的,就在这种情况下,若生出的花斑的都归你,他这样提议。从优生学上来讲是几率极低的。
경험적으로 라반은 알고 있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그렇게 했을 때 한 마리도 안 태어난다고는 생각은 안 하는데 숫자가 어느 정도 될 것인가 대충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계약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놀랍게 복을 주셔서 엄청나게 많은 양을 얻게 됩니다. 야곱이 불편해지니까 도망가게 됩니다. 그런 속에서 한편 큰 아들은 점점 더 원한이 깊어져 왔던 것입니다. 야곱은 이미 부모의 집을 떠나서 밧단아람으로 갈 때에 벧엘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나중에 거기서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이 되어주실 것이라고 하는 개인적인 약속을 받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거부가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올 때 야곱의 제일 커다란 염려는 원한에 사무친 자기 형이 자기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람에 의해서 소식이 들어왔는데 형이 약 400명의 종들을 거느리고 (사실은 종이 아니라 무사입니다.) 동생을 맞으러 온다고 합니다. 이것은 동생을 칼로 정리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왜 그런지 무사들을 고용하고, 그런 일은 포기하고, 형과의 화해를 간절히 바라면서 많은 선물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형을 만나서 일곱 번을 굽혀서 절을 하는데 거의 왕에 대한 신하의 예의 정도에 해당됩니다.
从经验上拉班知道,简单的说,那样的时候,一只羊也生不出来的,是不用想都能在脑子里计算出来的。然而,上帝赐下了奇妙的祝福,得到了极多的羊。雅各感到不舒服便逃跑了。在那中间,一方面大儿子的怨恨渐渐地变得更深。雅各已经离开了父母,去巴旦亚兰的时候,在伯特利深深地遇见了主。后再在那里领受了上帝将是他的上帝的应许。并且,雅各成了富豪回来。回到家乡时,雅各的第一巨大的担忧的就是深深怨恨自己的哥哥不会放过自己的事实。听说哥哥带着大约400名仆人(实际上不是仆人,乃是武士)迎着自己而来。那是要用刀处理自己弟弟的意思。可是,雅各恳切地希望他哥哥能放弃勇士,与他和好,所以准备了许多礼物。并在与哥哥相遇的时候,七次俯伏叩拜,几乎是臣仆对待王的礼仪。
그러면서 형과의 화해를 도모하게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 그 밤에 종들을 보내고 일진을 보내고 이진을 보내고 가족들을 보냈는데 가족들 보낸 순서가 자기가 약간 덜 사랑한 사람은 앞에 보내고 진짜 사랑한 사람은 맨 뒤에 보냈습니다. 맨 뒤에 라헬과 그의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여기를 치면 도망가고 여기를 치면 도망하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얍복강가 (나중에는 그곳이 브니엘이라는 이름으로 바뀝니다. ‘브니엘’이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에서 하나님 앞에 정말 목숨을 건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그것은 형과 화해하고 싶다는 것만 아니라 자신이 살아야겠다는 절박함이 함께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납니다. 여기에서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이 보입니다. 창세기만 읽어보면 천사하고 씨름하다가 천사가 도저히 이길 수가 없으니까 야곱한테 항복 비슷하게 하고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묻습니다. “나룰 복주시지 않으면 당신을 놓지 않겠습니다.” 라고 답하는 야곱의 스토리로만 나옵니다.
一边那样做一边谋求与哥哥的和解。然而,令人吃惊的是在那夜,他打发仆人们,第一队,第二队,家人先走,打发自己不太爱的家人先行,真正爱的人在最后。在最后面的是拉结和他的子女们。一边这样一边想如果攻击这边,就逃跑,不管怎么想,仅靠这些也无法解决似的。所以,在雅博渡口(后来那地方改名为毗努伊勒。意思是“上帝的面”),在上帝面前拼命祷告。那不仅是想和哥哥和解,也包含了自己想活命的迫切。同时,深深地遇见了上帝。在此,看到了与天使摔跤的雅各。只要读过创世记便会出现雅各与天使摔跤,连天使似乎都无法得胜而降服于他,问他说:“你要什么?” 雅各回答说:“你若不给我祝福,我就不让你走。”的故事。
그런데 우리가 가만히 생각할 때 좀 이상합니다. 천사는 뭐든 인간보다 훨씬 월등하게 뛰어난데 아무리 이 사람이 목축을 하면서 근력을 키웠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매달려서 씨름을 할 때 거기에 무릎을 꿇을 정도의 천사는 좀 아닌 것 같지 않습니까? 이것에 대해 호세아가 우리에게 답합니다.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호 12:4) 라고 나옵니다. 호세아서는 창세기에서 일어난 이 일에 대한 해석을 보여줍니다. 그럼 이 두 개를 같이 결합하면 처음에는 야곱이 천사가 나타나니까 천사를 붙들고 자기에게 복을 달라고 합니다. 천사가 뿌리치니까 강하게 붙들고 씨름하고 경기를 한 것이 아니라 천사를 붙들고 “제발, 제발”하며 매달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워낙 힘이 세니까 천사하고 씨름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좀처럼 안 해주는 것입니다. 너무 매달리니까 천사가 허벅지아래 부분을 쳤습니다. 허리아래 있는 뼈가 어긋났습니다. 남자들에게 있어서 그 부분은 결정적인 부분입니다. 허리아래 골반하고 다리뼈하고 만나는 지점에 이상이 왔습니다. 뼈가 어긋나서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깨지지는 안았다고 하더라도 어긋나서 힘을 못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야곱은 비로소 이 천사에게서 축복을 받는 것이 자기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이구나 하면서 거기서 회개를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힘이 세서 굴복한 것이 아니라 그 회개하는 그 모습이 하나님께 감동을 드려서 이 야곱이 이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하는 문제를 해결 받는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然而,我们若仔细思想一下的时候,便会觉得异常。天使无论哪方面都比人很卓越,无论人如何畜牧培养力气,人在摔跤的时候,似乎不是那人见了都屈膝敬拜的天使吧?对此,何西阿回答我们说:“与天使较力,并且得胜,哭泣恳求,在伯特利遇见耶和华。”(何12:4)。何西阿书试着对发生在创世记中的事加以解释。那么,将这两个结合在一起的话,最初雅各抓住出现的天使要求祝福自己。因为天使拒绝的缘故,他就紧紧地抓住天使,不是比赛摔跤,而是抓住天使纠缠着说“拜托了!拜托了!”。可是,这人力气非常大,与天使较劲。可是天使似乎不给祝福,但太纠缠了,天使就碰了他的大腿根。结果股骨头脱臼了。对于男人,那部位是关键的部位。在大腿骨和骨盆相汇的地方异常了。脱臼的缘故,大腿无法用力了。即便没有骨折,但脱臼了,所以无法用力。那时,雅各才明白过来要从他那里的祝福是不能依靠自己的力量啊,就在那里悔改。所以,不是因为力量大而屈服,而是那悔改的样子感动了上帝,于是出现了解决雅各人生最大的问题的场面。
두 번째는 하나님께 울며 회개했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 겸비함을 주셨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만나주셔서 인생의 이 난관을 극복하게 만들고, 그곳 이름을 ‘브니엘’ 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야곱의 생애에서 잊을 수 없는 중요한 한 가지 일을 해주십니다.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 로 지어주셨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이라는 말은 ‘이겼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이겼다’ 라고 하는 것인데 ‘내가 가진 힘으로 하나님을 이겼다.’ 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하면 ‘야곱이 가지고 있는 믿음과 간구가 회개가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준 방식으로 하나님을 이겼다.’ 라는 뜻입니다.
第二,上帝赐给他向上帝苦着悔改,寻求上帝饶恕的谦卑,所以上帝与他会面,使他克服了人生的难关,叫那地方为“毗努伊勒”。此时,上帝在行了一件在雅各的一生中都无法忘记的事,就是给雅各取名叫“以色列”。原来“以色列”是“得胜”的意思,就是“胜过上帝”的意思,并非“我用我的力量胜过了上帝”的意思,用我们易懂的话来表达的话,就是“雅各用信心和恳求,悔改感动上帝的心的方式,胜过了上帝”的意思。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겨주셨다는 이야기를 ‘이스라엘’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이름이 이 이후에도 선택된 개인뿐만 아니라 민족 전체가 ‘이스라엘’ 로 불리는 영예를 얻게 됩니다. 여기서 야곱은 원한으로 일생동안 칼을 갈아 왔던 형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놀라운 화해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겸비하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형으로부터 받을지 모르는 보복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를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치는 것은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야곱은 자신의 잔꾀를 의지하며 살던 사람이었는데 이 사건을 통해서 생리적으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것을 배우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희박했던 사람이 벧엘에서의 사건 후에 얍복강가에서의 사건 (같은 장소인 브니엘에서의) 축복을 통해서 그의 신앙이 점점 성장하게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여기에서 깊이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몸부림치지만 내 인생을 움직이시는 것은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所以,上帝怜悯他的话,用“以色列”来表达。此名字以后也不仅是 被拣选的个人,也获得了整个民族都被称为“以色列”的荣誉。此处,雅各经历了与因着怨恨一生中带着刀而活的哥哥的关系,重修于好的奇妙的和解。可是,使其可能的是上帝的恩典。上帝使雅各谦卑下来。雅各惧怕来自哥哥的报复。所以说:“求你救我脱离我哥哥以扫的手;因为我怕他来杀我,连妻子带儿女一同杀了。” 杀就是消灭的意思。所以,最终上帝使雅各这个以自己的小诡计而活的人,通过这此事件得以学习从生理上全心地依赖上帝。所以,认识上帝的知识浅薄的人,通过在伯特利事件,之后在雅博渡口的事件(相同的地方毗努伊勒)的祝福,他的信仰得以渐渐的成长。在此,深刻觉悟到一个事实,就是上帝对自己的人生具有主权。觉悟到“虽然挣扎,但主宰我人生的是上帝啊!”的事实。
한편 하나님은 에서의 마음을 바꿔놓으셨습니다. 아버지에게 받을 장자의 축복을 빼앗고 부자가 된 야곱을 보며 배가 아팠지만 다리를 절면서 오는 동생을 보면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도록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바꿔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화해하는데 서로를 용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을 에서도 깊이 경험하면서 형제와 화해할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一方面,上帝改变了以扫的心。见到夺取父亲对长子的祝福,而成为富人的雅各,虽然有点嫉妒,但见到瘸着腿来的弟弟,上帝改变了他的心使其对雅各产生了怜悯之心。并且,赐给他抱着雅各与其亲嘴而和解,彼此饶恕之心。所以,以扫也深深地经历到了上帝的主权,同时有了与兄弟和解之心。
보십시오. 오늘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보여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거리가 멀어지고 관계가 나빠졌어도 하나님이 이 관계를 좋게 하고자 역사하시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부부가 함께 사랑합니다. 십자가의 정신으로 삽니다. 그러면 이렇게 형제들이 그 사랑의 영향을 받으면서 화해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런데 부부가 그런 사랑이 없습니다. 이미 이 두 사람 사이가 깨져갑니다. 고통스러운 눈물을 흘립니다. 이런 상태에서 한번 원한이 맺히거나 깊은 상처로 관계가 깨어졌을 때 형제가 화해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으로서 우리가 무장되고 그 사랑으로서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라는 주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원래 사랑은 A와 B사이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다가 보면 A와 B와의 관계는 얼마든지 깨지는 때가 나옵니다. 만약에 사랑이 참된 사랑이라고 하면 이 관계가 복원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다시 사랑으로 복원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용서’입니다. 용서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용서받는 때도 있고 용서를 해야 될 때도 있는 것입니다.
请看,今天,通过此事件告诉我们上帝彻底地改变人的心。所以,无论有多么疏远,关系变得多么坏,上帝若要想使这关系变好的话,一定会发生改变的。这样夫妇一起相爱,以十字架的精神生活。那么,弟兄如此受到那爱的影响,而开启了和解之路。可是,夫妇若没有那样的爱,两人之间已经破裂了。流下痛苦的眼泪。在这种状态下,由于一次的怨恨或深刻的伤害关系破裂的时候,兄弟和解是不容易的。因此,需要的是我们要以基督十字架的爱来武装我们,遵行主要我们以那爱来饶恕并爱所有的人的话语。原来爱形成了A和 B间的关系,可是过着过着A和 B间的关系会出现某种程度的破裂。若说爱是真爱的话,这关系应该复原的。为了重新恢复爱的关系,必不可缺的是饶恕。不能没有饶恕。所以,因为我们不是完美的人的缘故,所以会有需要被饶恕的时候,也有要饶恕别人的时候。
마지막에 형제사이가 깨어 졌을 때에 그것은 제일 먼저 부모에게 고통을 줍니다. 부모의 가장 큰 기쁨은 자기의 자녀들이 서로를 깊이 사랑하며 화목하게 사는 것입니다. 관계가 깨지면 부모의 마음에 고통을 주게 되고, 그 관계가 깨져서 부모가 고통을 받을 때 개인이 주는 효도의 행위는 큰 위로가 안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형제와의 관계가 깨지면 부모에게 불효를 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그렇게 관계가 깨진 채 살아가면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우리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명령을 받고 그렇게 살아가야 되는데 그런데 실질적으로 원수보다는 훨씬 나쁘지 않은 형제들의 과거의 관계에서 깨어진 것 때문에 관계를 버리고 산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 불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해해야하는데 이기심을 버리고 희생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양보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본적으로 희생의 삶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그리스도를 통해 배웁니다. 그러니까 자잘한 것을 늘 양보하도록 노력하고 큰 것, 예를 들어서 나의 신앙을 방해 받지 않고 지키는 것 또 복음을 전하는 것 그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 가족들 간의 화목을 도모하는 것이 큰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간에 작은 것으로 죽어도 지지 않으려고 하고 경제적인 작은 것들 때문에 다툼이 계속 많습니다. 그런 속에서 어느 한순간에 ‘예수를 믿어라’ 아니면 ‘내가 형이니까 이 모든 문제를 조정하겠다.’ 이런 것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크게 어필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 신자로서 사랑의 모본을 보임으로 우리가 믿는 종교가 정말 매력적인 기독교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最后,弟兄关系破裂时,首先最痛苦的是父母。父母最大的喜乐就是自己的子女彼此深爱并和睦相处。若关系破裂,也会令父母心痛。那关系破裂时,父母所承受的痛苦,可能使个人的孝道也不能带来多大的安慰。所以,与弟兄的关系劈裂的话,便是对父母的不孝。第二,若活在那种关系破裂的状态中,也令上帝伤心。我们被命令要过爱仇敌的生活。可是,实际上,因为在比仇敌并不怎么坏的兄弟过去的关系中,关系破裂的缘故,而放弃关系而活是错误的。换言之,是对上帝的不孝。所以,要和解,需丢掉私心,并要有牺牲的姿态。第二,为了更大的,要能谦让小事才是。基督徒的人生基本上是牺牲的人生。并且,我们通过基督来学习牺牲。所以,每天努力在细小的事上学习牺牲,大的,例如不妨碍我的信仰,坚守的,还有传福音,拯救灵魂的,谋求家庭间的和睦都是大的。然而,许多人弟兄间,在小事上都到死也不想支持,因着经济上的小利不断地吵架。在其中,在某一瞬间,不是“相信耶稣吧”,或者“我是哥哥,所以调节这一切问题。”这些在人的心里,并不会提出很大的异议。作为一个信徒,以显而易见的爱的模范,教导人们我们所信仰的宗教是真有魅力的基督教。
따라서 오늘 배운 내용 다섯 가지는 형제관계는 세상에 태어나서 인간이 겪는 사실 첫 번째 사회이다. 두 번째 하나님의 뜻은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다. 세 번째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갈등이 있을 때에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그 일이 어려울 때마다 우리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도록 부름을 받은 부르심을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나의 신앙이 가족들과의 관계 안에서 입증되어야한다. 하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어려울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형제의 화목이 부모에 대한 진정한 효도입니다.
所以,今天所学的内容的五点,兄弟关系是人出生在这世上经历的第一个社会。第二,上帝的旨意是爱家人。第三,为了恢复关系,当存在矛盾时,要积极地饶恕。每当那事困难的时候,一边思想呼召我们爱仇敌的那呼召,那样我的信仰应在与家庭的关系里面得以验证。应带着这样的心态。每当艰难的时候,请您思想耶稣基督的牺牲。并且兄弟间的和睦是对父母真正的孝道。
<질문>
저는 무뚝뚝하고 가족 간에 소통이 없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저의 남동생은 그런 아버지로 인해서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남동생이 아버지에 대해서 불만을 저에게 토로를 할 때면 ‘우리가 그래도 아빠를 바꿀 수는 없다. 이해를 해드리자. 그리고 동생 너 또한 개선해야 될 점이 많이 있다.’라고 하면서 조언을 해주는데 동생은 그런 저를 보고 오히려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하고 실망스러운 표정도 짓고 해서 제가 할 말을 잃게 됩니다. 동생에게 어떻게 제가 어떻게 대응을 해줘야 할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问> 我是在生硬而与家庭之间没有沟通的父亲之下长大 的,我弟弟因为我父亲这样受了许多的伤害。所以,弟弟向我抱怨对父亲的不满时,我就劝他:“即便那样,我们也换不了父亲。理解他吧。弟弟你也有许多要改的地方。”弟弟反倒对我表现出抵触心理,露出一副失望的表情,我不知道该说设么是好。请告诉我,我该如何面对我的弟弟。
<답변>
그러지 말고 동생이 와서 그러면 함께 아버지 흉을 보십시오. 중요한 것은 누나를 만나서 쉽게 이야기하면 자기가 아버지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너무 힘든 것들을 동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를 동생도 모르는 아버지의 나쁜 점들을 들춰내서 욕 하고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냥 동생의 이야기에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지냈으면 저렇게 아파할까, 동생의 마음에도 아버지를 향해서 내가 이런 마음을 오래 품으면 나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너무 힘드니까 누나한테 와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나가 계속 교과서로 답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 가면서 ‘아이 그래 너 잘났다.’라고 그러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고 그것을 누나한테도 못 털어놓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공감해주라는 것이 아니라 한번 깊이 동생의 입장에 대해서 나는 어느 정도로 성숙하고 혹은 신앙으로 이렇게 철이 들어서 극복을 했더라고 하더라도 얘는 이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얼마나 아팠을까 그러면서 귀를 기울이면서 사실 너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사실 나도 그랬다, 그렇게 공감을 해주는 것입니다. 어느 청소년 상담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하여튼 얘가 가출을 했는데 엄마한테 대해서 미워하는 감정이 아니라 험한 욕을 할 정도로 한이 주저리주저리 맺힌 아이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찾아가봐야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네가 참아야한다. 엄마도 너를 사랑할거야.’ 그런데 이 상담사는 ‘그래.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러니까 그 다음에 이 아이가 악살을 받은 것처럼 엄마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건 인간도 아니다. 너는 진짜 생각 없이 착한 애다. 나 같으면 중2때 가출했겠다! 넌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이 되도록 있지 않냐.’ 그러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열을 받아가지고 이 아이에게 공감해주면서 더 엄마를 야단을 하니까 나중엔 “근데 아저씨 왜 우리 엄마 욕해요?” 하는 것입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깊이 공감을 해줘야합니다. ‘나도 힘들었다. 진짜 그 점에 있어서는 아버지가 잘못한 거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만 돌아가도 가면서 ‘아. 어떻게 하든지 관계를 개선해야지.’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 번을 들어주다가 ‘사실은 아버지가 이런 면도 있어.’ 하면 듣지만 하나도 안 듣고 교과서를 이야기할 때 ‘아버지가 이렇게 했다.’ 그러면 뭐라고 생각 하냐면 ‘아이고 누나만 편애했네.’ ‘아이고. 두 분 다 잘나셨네.’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기술입니다. 담에 오면 얘기를 해주십시오. 그리고 찾아보십시오. 아버지의 단점이 무엇이었는지 찾아가지고 ‘사실은 나도 이때 되게 힘들었다.’ 진짜 우리 아버지 못 됐다 하면서 이해를 해주는 것입니다. 이열치열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동생이 돌아옵니다.
<答>请不要那样,弟弟来了就与他一起说父亲的坏话吧。重要的是,他来找姐姐说,是期望从你那里获得自己对父亲的艰难的同意。因此,没必要揭露父亲不懂弟弟的坏处并骂他,就那样弟弟度过了多么艰难的儿时,那么痛苦啊,我若像弟弟的内心中怀着向父亲那样的心,我也会不幸福的。因为太难了所以来姐姐那里倾诉。但姐姐总是照本宣科地答复。那么,他就会说“啊,是啊,就你出生的好!”然后就走了。那么,他也无法向姐姐倾诉。不是表面上给他同感,以弟弟的立场深刻地思考,倘若我会有多少成熟,或者以信仰来开窍克服,但也能想孩子这样也是正常的,他该有多么难受啊。那样,一边倾听,一边劝他,实际上不进你自己那样,实际上我也那样,这样给他同感。有一位青少年商谈师,如今已经不在世了,孩子离家出走,不是因为恨妈妈, 而是因为被凶恶地谩骂。找到别人,却无法解决。“你要忍受。妈妈也是爱你的!” 可是,这辅导员“是啊,怎么会那样呢?”然后,这孩子就像被扼杀了似的,说了妈妈的错误。“那哪里是人做的事?你这是一个单纯的孩子。换我的话,初二时就离家出走了!你现在不是快高一了吗?”一边那样,一边说,对生气的孩子表示同感,即便不大骂妈妈的程度,免得以后他会说:“可是,你怎么能骂我妈妈呢?”,也要向孩子表示深深的同感。“我也曾和艰难。那点爸爸真的错了。”那样彼此分享,离开时,就会产生“啊, 这样的话关系该改善吧?” 之心。 并且,总是说“事实上爸爸也有这一面。” 听是听,但一点也听不进去,背教科书的时候,他会想“爸爸这样作了。”那么,想什么呢? “哎呦,只偏爱姐姐啊!”“哎呦,两位都过得挺好啊!” 这是个技术。下次来的话再给说说吧。并且请找一下看看。找到爸爸的缺点,“实际上,我那时也很艰难。” 我爸爸的确错了,但同时会理解他。这是“以毒攻毒”,那样的话弟弟以后会回转过来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