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용서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눅 23:33-35)
녹취자: 김연희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일어난 광경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땀이 피가 되도록 주님께 간구하셨고 주님은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당신에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육신의 죽음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진노를 한 몸에 받으며 죽임을 당하는 그것이 육신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잠깐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바치는 기도를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렸습니다.
요한복은 17장은 많은 주석가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올리신 기도였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대부분 당신 자신의 안녕에 대한 기도가 아니라 남겨두고 가는 사랑하는 제자들과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로 가득 차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주어진 그 십자가를 지기로 결단하고 간절히 기도하셨을 때에 자신을 다 드려 기도하셨고, 이것이 땀이 피 같이 되어 떨어지는 육체의 현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비상한 육체의 힘과 그리고 정신의 힘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브라이도리온(Praetorium)이라고 하는 왕궁 수비대에서 채찍에 맞으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고 십자가에 매달리시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은 바로 이렇게 십자가상에서 남기신 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남긴 첫 번째 말씀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라는 기도였습니다. 저들이 누구일까요? 가깝게는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악한 병정들이었을 것이고 또 예수를 체포하고 심문하고 처형하도록 간교한 꾀를 써서 로마의 관리들과 총독을 압박했던 유대인 종교지도자들과 그 하수인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더 넓게 보면 당신이 그리스도 예수로서 십자가에 못 박힐 수밖에 없었던 그 모든 죄지은 인류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십자가에 못 박혀 온 몸에 피를 흘리고 죽어가고 계셨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피로 물든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관심사가 당신의 죽어가는 육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분의 관심사는 이렇게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먼 훗날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될 그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이 분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분이 당신의 대한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으시고 거룩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일체의 죄도 없고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티끌만한 소외감도 없으셨던 분이 부르는 이 “아버지”라는 호칭은 가족관계에서 부르는 아버지에 대한 호칭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아버지를 향해 친절하고도 다정다감하게 부르는 “아빠~” 하는 호칭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최초의 소원을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아뢰십니다. 그것은 둘도 아니고 하나였습니다. “아버지, 저희의 죄를 용서해주시옵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용서가 무엇입니까? 용서는 그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 것입니다. 그 죄를 지었기 때문에 멀어졌던 거리감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다시 사랑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죄가 과연 용서받을 만한 죄였습니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을 잘못하셨습니까? 이 세상에 오셔서 무지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쳐 깨웠고, 주린 자들은 먹이셨고, 외로운 자들에게는 친구가 되어주셨고, 죄 있는 자들은 주님의 아들의 권세로 용서해주셨고, 육신이 비참하여 질병에 든 사람들은 당신이 친히 그들을 고쳐 낫게 하셨습니다. 무엇을 잘못하셨습니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왜 예수 그리스도를 굳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해야 했습니까? 그것은 결국 그들이 어둠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사랑했기 때문에 진리가 미웠고, 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선하신 예수님이 불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였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들에게 어떤 죄가 있다고 그들이 착각했다고 칩시다. 그러나 그 죄가 과연 십자가에 매달려 죽일 정도의 큰 죄였습니까. 세상엔 그 보다 더 큰 죄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텐데 착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 이르는 죄를 지은 분이라고 그들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렇게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그리고 그렇게 문란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몰아넣었던 바라바는 놓아달라고 소리치고, 사람을 오히려 살리고 생명을 주시고 일생동안 자신의 몸을 들여 헌신하고 영혼들을 섬기셨던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한 사람들입니다. 이 죄가 과연 용서 받을 만합니까? 이 죄가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용서를 빌어야할 정도로 사소한 죄입니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런 죄인들을 위해서 용서해달라고 아버지께 간절히 비셨습니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들을 대신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변명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무지는 자기 책임입니다. 무지는 스스로 알지 않을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무지는 ‘거의 죄’입니다. ‘악’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그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선과 악을 묻고 의미를 찾고 그걸 자신의 인생과 연결시키고 그래서 자신의 삶을 하나님 향하고록 사람에게 영혼을 주신 것입니다. 그걸 예수님이 모르셨을 리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그들을 위해 아주 마른 행주를 짜 내듯이 핑계 거리가 되지 않을 것 같은 것까지 찾아내어서 그들을 옹호하신 것입니다.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 이다. 그러니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달라는 저의 기도가 주님께 상달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런 의미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도가 자기들 위에서 울려 퍼지는 동안에 이 기도를 받고 있는 그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들은 어떤 일이었습니까? 아무리 옷감이 귀한 때라고는 하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고 있는 죄수의 단 한 벌의 옷이었습니다. 그 옷은 팔과 다리가 들어가는 오늘날의 옷 모양이 아니라 커다란 천으로 온 몸을 감싸서 의복 형태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깐 사실은 활용성이 높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자르거나 깁거나 해서 다른 물건을 만들 수도 있고 옷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옷감이 매우 귀하던 때였으니깐 그럴 수도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제비 뽑아서 나누고 있었습니다. 위에서는 피 흘리며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죽어가시던 예수님이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저들의 영혼의 운명을 놓고 아버지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계실 때에 이 사람들은 그 옷을 제비 뽑아서 누가 가질까를 결정하고 있었습니다.
또 어땠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타는 목마름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자신의 아픔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저희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잘 모르기 때문에 저러는 것이니 하나님이 용서해달라고 비실 때 그 기도를 받고 있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 의미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관리들은 또 어땠습니까? 그들은 예수를 비웃으면서 조롱하기를 “남을 구원하였으니 하나님이 너를 택하셨다면 한 번 너 자신을 구원해 보라.”고 조롱을 하였습니다. 군인들도 똑같이 그렇게 희롱하면서 마취성분이 들어있는 신 포도주를 주면서 “네가 자칭 유대인의 왕이냐? 그러면 한번 너 자신을 구원해보라.”고 조롱하였습니다.
사랑받는 사람은 상처를 받아도 사랑하는 사람은 상처받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적으로 보면 얼마나 가련한 처지입니까? 삼 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제자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쳐 사람이 되게 하였고 전도자로 세우셨는며, 또 그들에게 온갖 기적도 보였건만 그들은 인간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배반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자신들의 목숨을 위해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 많던 군중들은 어디에 갔을까요? 불과 며칠 전 의복을 벗어서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다윗의 자손 예수여”, “호산나”라고 노래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철저하게 버림받고 외로운 분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렇게 악랄한 방법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고 무시하고 그리고 자기를 구경하고 있는 이 냉담한 사람들을 보면서 예수님은 상처를 받는 대신 그들이 곧 심판받을 것을 생각하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비시기를 간절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것에 대해서 어떤 기도도 드리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계시며 우리를 위해 복음을 전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실 때만 본을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분이 십자가에 매달린 광경 자체가 우리에게는 커다란 존재의 울림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려서 기도하시는 광경을 보며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훈은 오늘 같은 십자가 고난 주간에 우리의 마음을 깊이 파고들어도 너무나 좋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 마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고 있었으나 당신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였기 때문에 당신을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로마의 병정들을 미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조롱하기를 그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 안에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그야 예수님이니까 그랬지.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완전하셨으니 그분 안에 있는 사랑도 무한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 잠시 후에 일어나게 됩니다. 그 때 예수님의 화신처럼 똑같이 죽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스데반 집사였습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그에게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며 돌을 던졌고 그의 온 몸을 으깨어 결국은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에 그가 마지막 남긴 기도가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바로 이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이어 저희의 죄를 용서해주시옵소서. 저희가 알지 못 함이니 이다.”라는 기도였습니다.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우리의 사랑은 비교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은 우리 유한한 인간에서 자가 발전된 사랑이 아니라 어차피 예수님 안에 있는 그 사랑처럼 우리에게 부어지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하면 예수의 사랑을 능가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충만하면 우리도 이렇게 우리에게 무한히 죄를 짓고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한 이 사람들 위에서도 그들이 용서 받도록 주님 앞에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 것이 바로 우리가 여기에서 배우는 교훈입니다.
그러니 내가 미워하는 사람,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의 악이 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이 부족한 것입니다. 칠흑 같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불꽃은 더욱 찬란하게 빛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이 가까이에 있어서 여러분들에게 고통을 준다면 나는 단언컨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중요하게 인정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쩌다 내 인생이 꼬여서 이 원수 같은 사람을 만나 지옥과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할까’ 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여러분들이 당신이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그 관계를 극복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님이 아시기 때문에 그런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감당할 시험 밖에는 우리에게 당한 것이 없고 또 시험을 당할 때에는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주신다고 주님이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문제는 내게 미치는 그 고통의 크기, 그가 내게 끼치는 악함의 크기가 내 인생을 뒤흔들어 놓는 것이 아니라 내게 사랑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주님을 멀리 떠나 살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자원을 의지하며 그럭저럭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젠 이 세상에 있는 자원도 다 떨어지고 이 세상에 있는 자원을 가지고 해봐도 극복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니 이제는 죽든지 살든지 두 길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선택한 사람들에게 불같은 시련을 주셔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그 하나님이 모든 악을 능가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보여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죄가 깊으면 깊을수록 구역질나는 인간이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자녀가 된 후에는 놀랍게도 그렇게도 하나님을 멀리 떠나 살던 죄에 깊이 빠진 삶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를 구원하여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악이 너무 커서 내 인생이 견딜 수 없다.’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 속에 충만히 넘쳐 내게 돌을 던지는 사람에게도 “하나님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이 몰라서 그럽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의 달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우리 식구 중 한 분이 저희 아버님입니다. 정말 미워했고 그리고 제 인생을 너무 힘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확 밀려올 때에 주셨던, 지금도 생생하게 제 마음에 들린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였습니다. “너도 나를 모를 때 그랬다.” 그러곤 한 순간에 이런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빛에서 멀리 떨어져 주님을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사실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가엾은 영혼이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습니다. ‘내가 그런 아버지의 영혼을 위해서, 심지어 예수 믿고 난 이후에도 내가 해드린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 라는 후회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강물처럼 흐르는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단 한 번도 그분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위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상처와 고통, 악, 현실 등 이런 것을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많이 생각한다고 없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너무 힘겹고 어려우며, 듣는 사람이 마음이 쓰라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 하나는 살아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면 내가 이길 수 없는 것이 없다.” 하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비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모든 불행과 비참, 앞으로 도래하게 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셨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그리던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냥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주셔서 벌만 안 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셨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과 이 사람들 사이에 막힌 관계가 다시 회복되고, 그 무너진 담장 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이 쓰레기 같은 죄인들이 화해하며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 속에서 살게 하심이 아니고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러면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주님을 모르고 이 세상에 있을 때에 여러분들을 생각하며 주님이 하셨던 기도가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보십시오. 요즘 은혜 충만한 여러분들이 구원받지 못한 여러분의 가족을 위해서 비는 기도와 똑같은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예수 믿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방황하는 우리의 아들, 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면, 우리 남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술을 끊고 폭력을 버리고 진정한 아이의 아버지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나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왜 그런 기도를 올립니까?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인생에 가장 큰 문제가 죄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인간 안에 영혼 안에 부어지는 일들이 불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불신자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겠습니까? 구원받은 신자가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충만한 생명을 온몸에 받으며 아버지 앞에 살아갑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금년 들어서 두 번째 <영적 침체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그런 사실을 너무 또렷이 느꼈습니다. 도저히 혼자 일어서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매일매일 벽으로 돌아누워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어떻게 생각이 바뀐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를 주님이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운명처럼 생각하며 살아왔던 깊은 좌절과 어두움, 그리고 절망의 터널은 그 많은 세월이 흘러야지만 헤쳐 나오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는 속삭입니다. “안 된다. 불가능하다. 그리고 너는 상처투성이다. 네가 이렇게 된 것은 사람 때문이고 심지어 하나님이 너를 버리신 것이다.” 라고 속삭이며 그 어두움 속에서 끝까지 그렇게 죄의 사슬에 묶여서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마지막에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깨지고 그들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닙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가시면류관을 쓰게 하고 돌을 던지고 채찍으로 후려쳤던 이 사람들, 그리고 입에 거품을 물고 손가락으로 예수님을 욕하며 조롱했던 사람들을 위해서 주님이 하나님을 우러러보시며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잘 모르고 하는 일이오니 하나님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면, 또 그렇게 사랑하셨다면, 신앙 안에서 비록 넘어지지만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앞에 살려고 발버둥치는 여러분들은 얼마나 더 사랑하실지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불행하게 되고 언제 헤어 나올지 모르는 깊은 시련과 고통 속에 있게 되었다고 칩시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고통은 나만 겪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사는 목회자였던 저도 인생의 한 때에 저녁에 눈을 감으면 아침에는 이 세상에서 눈을 뜨고 싶지 않았던 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이 언제 다시 올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언제나 그 죄를 진실로 용서받게 하심으로써 다시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과 생명으로 현실을 극복하며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비록 이 세상에서 머리 둘 곳 없는 생애를 사셨지만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히 있으셨기 때문에 제자들이 버려도 상처받지 않으셨고, 홀로 십자가에 매달려 계셔도 외롭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 안에 충만히 계셨기 때문에 다른 그 무엇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일들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고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어떤 성도들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어젯밤에는 벽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 잠들었으나 오늘은 소망 속에서 눈 뜰 수 있으니 이는 우리가 그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어떤 사랑을 여러분들에게 베푸셔서 여러분들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받게 하셨는지 살아왔던 과거를 기억해보십시오. 그 쓰레기 같은 더러운 죄인들을 위해 우리가 보기에는 추호도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들을 위해서 주님이 하늘을 향해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자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않으시고 저희들이 받을 심판을 가슴아파하며 용서를 비는 것을 기억해보십시오. 이 기도는 바로 여러분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며 여러분들이 심지어 어떤 소문난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끊어놓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진실로 하나님 앞에 다시 살고 싶다고 고백하기만 하면 “나의 많은 죄를 버리고 당신께 돌아가고 싶습니다.”라고 빌기만 하면 주님은 다시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죄를 용서해주시고 하늘의 놀라운 생명으로 이기며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내 마음을 찔렀던 피 묻은 칼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가여울 수 없고, 내가 아니면 저들을 위해 기도할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들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을 극복하게 하고 이기게 하고 승리하게 함으로써 복음이 살아있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충만한 사랑으로 이미 여러분들을 사랑하셨으니 죄를 회개하고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 큰 능력을 충만히 받아서 새로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쓰시기를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 기도할 때에, 하나님 우리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주님이 그렇게 십자가에 매달려 살을 찢기고 피를 흘리며 죽어 가시는 동안에 자신의 육신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죄짓는 사람들이 받을 심판을 마음 아파하며 아버지께 중보의 기도를 드리셨나이다. 주님의 사랑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사랑을 예수에게만 주셨을 뿐 아니라 스데반에게 주셨고 또 사울과 많은 성도들에게 부어주셔서 연약한 인간이 훌륭한 예수의 모본을 드러내게 하셨으니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 저희들을 용서해주시옵소서. 받은 상처 때문에 스스로 자기연민에 빠지고 고통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고 하나님 원망하기만 했지 하나님 사랑이 내 마음에 없기 때문에 이렇게 고통 받는 줄을 몰랐나이다. 아버지 우리의 많은 죄가 우리와 당신 사이를 갈라놓았사오니 오늘 이 시간 십자가 앞에 엎드려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오니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그 충만한 사랑의 은혜를 부어주셔서 이길 수 없는 현실을 이기며 살아가도록 은혜를 달라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 아픔을 내 고통보다 더 깊이 느끼며 이기게 해달라고 우리 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