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돌아온 사람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 19:34)
녹취자: 김경애
우리가 오늘 읽은 이 본문은 사복음서중 오직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성경구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생생한 광경이 요한복음에 가장 풍부하게 묘사되어 있고 마지막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에 로마 병정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창으로 찔러 피와 물이 쏟아진 광경까지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유독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의 현장을 아주 크게 확대해서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남기신 세 번째 말씀이 이 질문에 대한 빛을 던져줍니다. 세 번째 말씀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신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아래 있던 요한을 가리키며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6절에 보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실 때에 제자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편에 베드로가 멀찌감치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되시는지를 뒤따라가면서 보았던 기록들이 나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예수님이 심문을 받으실 때 그는 모닥불을 쬐며 사람들과 함께 있었고 거기서 그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마지막에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면 결국 베드로가 멀찌감치 에서나마 예수님을 따라왔던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갈 때까지 따라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만약에 그랬더라면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니라고 한 마태복음 26장 56절의 기록은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실 때 예수님의 예언이 응했습니다.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 없이 홀로 심문과 처형을 당하시고 그리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그때에도 아무 제자들도 예수님께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 요한이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제자들과 함께 도망친 이 요한이 어떻게 마지막 십자가 아래서 예수님께로부터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하는 음성을 듣게 되었는지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물과 피를 흘리신 그 모든 광경을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기록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유추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요한도 다른 모든 제자들과 함께 두려워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늦게 잡아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세 번째 말씀하시기 직전까지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다시 돌아왔던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이제 이 요한이 결국은 마음의 깊은 가책을 느끼며 자기 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돌아온 것을 의미합니다. 서슬 퍼런 로마의 박해가 눈앞에 있고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며 따르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었고 성난 수많은 군중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욕을 하고 침을 뱉었습니다. 폭동이 일어날 것 같은 기세로 빌라도를 겁박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조롱하며 그 길을 내려올 때 이 요한은 그 많은 인파를 헤치며 거꾸로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군가가 그를 기억하고 붙들어 ‘너도 예수와 한패지?’ 물었으면 아마 그도 예수님과 함께 처형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아마도 그런 모든 박해가 두렵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잠시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도망갔지만 그러나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죽음의 의미를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알 수는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에 이끌려 핍박과는 상관없이 위험과는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십자가를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요한은 아마 상당한 시간동안 그 십자가 아래서 마리아와 그리고 많은 다른 여인들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남기신 일곱 마디 말씀을 모두 들었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부터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다섯 마디의 말씀을 그는 모두 들었을 것입니다. 제자들 중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광경을 끝까지 목격한 단 한사람의 유일한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고 나오는 이 3인칭의 묘사는 겸손하게 자기를 감추는 묘사입니다. 그러니까 이를 본 자는 곧 요한이었으니 이를 본 내가 증언하였음이니 그 증언이 참이라 내가 나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받고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믿음의 길로만 걸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 앞에 상한 갈대와 같이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그렇게 연약한 존재로서 때로는 주님을 충성스럽게 따르기도 하고 때로는 그렇지 못하고 주님께로부터 미끄러지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던 12제자들, 예수님이 행하시는 그 큰 기적을 보고 이적의 떡을 먹고 물고기로 배불렀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의 따뜻한 가르침을 듣고 그분의 훌륭한 모본을 보았던 그 사람들조차도 이렇게 미끄러질 수 있었다면 그것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입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알다시피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 다시 돌아왔습니다. 잠시 주님을 버렸지만 아마도 예수님을 버렸던 모든 사도들 가운데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돌아왔습니다. 권세를 잡고 임금 된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고 영광스러운 큰 명예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온 것이 아니라 죄인중의 괴수라 일컬음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그와 한패라고 인정이 되면 함께 고난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왜 그렇게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하는지 여러분처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를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지만 성령이 강림하시기 전까지는 그 가르침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며 부활의 소망 같은 것을 갖는 것은 요한에게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 죽고 나면 그 어떠한 부활의 소망이나 영광스러운 복음의 약속들에 대한 기대도 없었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우리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구원방법을 몰라도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저 수치스러운 죽음 이후에 부활의 영광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도 요한은 그리스도 예수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실 때 홀로 남겨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하신 말씀은 나오는데 요한이 예수님께 말한 내용들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보아서 그는 아마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돌아가서 한때 자기를 그렇게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렸던 자신의 과오와 수치 때문에 차마 그리스도를 향해 얼굴을 들지 못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찬양)
새벽닭 울 때 나는 괴로웠어 풍랑이 일면 나는 무서웠어
하지만 이제 두렵지 않아 이 세상 끝까지 주님을 위하여 죽을 텐데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에 날 위해 바친 고귀한 사랑
주님과 함께 있고파서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가네
그래서 우리의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우리 중 아무도 하나님의 은혜의 도우심 없이 그리스도의 용서 없이 견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끄러진 그곳에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지팡이로 짚고 일어섭니다. 그리고 한때 잠시 버렸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다 버릴 것을 예고하시면서도 결코 그 일 때문에 상처를 받으시거나 제자들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께 나오는 요한을 기쁘게 받으셨고 당신을 버리고 도망 간 제자들에게 책망과 저주의 말씀대신 ‘너희들이 돌이킨 후에는 형제들을 굳세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미끄러져 예수 그리스도를 버린 제자들에게도 예수님께서는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시 감당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지금도 서있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십자가에는 오늘도 그리스도께서 매달려 계십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에서 당하신 그 모든 고난 때문에 오늘도 당신이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사람들을 당신의 품으로 부르십니다. 오늘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성 금요일입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십자가의 고난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영어로 성 금요일을 'Good Friday'라고 말합니다. 'Good Friday'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에게 Good이 아니라 그 혜택을 입은 우리에게 Good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 흘리고 죽으신 그 큰 고난과 형벌 당하심 때문에 사단의 권세가 꺾이고, 무장 해제되고, 영적인 하늘의 세계에 큰 변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로써 그 구원의 혜택을 우리들이 누리기 때문에 이 금요일은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형벌을 받은 날이지만 우리에게는 그 은택을 입는 좋은 금요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지금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요한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그 위에서 떨어지는 피를 맞으며 있습니까? 아니면 잠시 주님보다는 목숨을 더 사랑하고 혹은 두려움 속에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주님의 품을 멀리 떠났습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주님의 품을 멀리 떠났다면 속히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돌아와 하나님 앞에 다시 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언제나 거기에 계셔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잠시 주님을 버리기 전에 이미 주님은 그 모든 일들을 아셨고 그리고 여러분이 당신의 품으로 돌아올 때 주님이 여러분을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미끄러졌던 사람들이 다시 주님께로 돌아와 믿음으로 그 십자가를 사랑하는 길을 걸어가도록 주님이 부르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돌아와 주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빕니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