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십자가를 지셨나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무리가 따라오는지라 (눅23:27)
녹취자:이경순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신지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그래서 하늘에 오르시니 이 사건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부활승천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에서 이 부활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므로서 우리의 모든 인간에게 육체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생에 소망이 있다고 하는것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 하신 것이 하나님이 살리셨기 때문에 부활 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셨는데 하나님이 부활하게 하신것은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 바로 당신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으신 십자가의 죽음 이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인정하사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그 죽음에서 살리시고 그러므로 그를 믿는 우리 모두도 죽어도 다시 살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를 올바로 알기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무엇 때문에 부활하시지 않으면 안되리만치 십자가에서 죽으셨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 보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시는 이광경은 재판을 받은 판결대로 사형을 집행하기 위하여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예수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 가시기전 예수님은 사형에 해당하는 분이시라고하는 재판의 절차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읽은 성경 그 앞부분에 보면 예수님이 빌라도의 뜰에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법을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이 재판은 아주 잘못된 재판 이었습니다.왜냐하면 재판은 죄 있는 사람을 불러 죄의 실상을 밝히고 이에 응분한 형벌을 내리는 것이 재판 인데,예수님은 처음부터 죄 없으신 분으로 그 법정에 섰기 때문에 이 재판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또 혹시 사람이 잘 몰라서 죄 없는 사람을 법정에 세웠으면 심리의 과정을 통해서 그 사람의 무죄를 밝히고 그를 석방하는 것이 법의 정신이고 이는 백 명의 죄인을 형벌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장조차도 예수님 죄가 없으신 분이라고 확신하였는데 이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도록 사형언도 하였다는 점에서 이 재판은 잘못 된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유월절의 관례를 따라서 한사람의 죄수를 풀어주는 규례가 있었는데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한 바라바는 놓아주고 죄 없으신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었으니 이 재판은 대단히 잘못된 재판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리고 형이 집행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시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는 광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죄인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 규례가 있었습니다. 즉 십자가의 형벌을 당할 사람은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스스로 짊어지고 형장까지 가야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는 자기가 매달릴 이 나무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더욱이 예수그리스도는 이 십자가를 지시기전 브라이도리언이란 왕궁수비대가 있는 곳에 끌려가셔서 심하게 매질을 당하시고 그 후에 옷을 모두 벗긴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실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십자가의 행 열을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때가 바로 유대인의 유월절 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였고 그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관심사는 이 예수그리스도가 과연 십자가에 매달려 순순히 죽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을 때 많은 사람은 실망했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바다 위를 걸어가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기까지 하시던 그 큰 능력을 보여주시기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신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의 사형언도를 받으신 후 그것이 명백하게 불법한 재판이고 잘못된 판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순종하시며 그 잘못된 재판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평소 가리치신것이 공법과 그리고 정의였습니다. 그런데 이 악한자들의 불법한 재판의 결과를 그대로 순복하시며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신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이것은 바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예수님은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눈에는 유대인종교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충동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꾸민 음모에 지나지 않았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 사람들의 음모를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자기를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 하기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 홀로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기 위하여 오신 게 아니라 죽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고 그 죄로 말미암아 도저히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는 비참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육체는 이 세상에서 흙으로 지어졌고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창조되었기에 하나님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영혼을 위한 생명을 성령 안에서 공급받으면서 살도록 그렇게 인간이 창조되었는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자원들이 단절되게 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서 이인간은 모두 그 죄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고통 받고 신음하는 모양은 아주 다양해도 그 모든 것들의 근본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를 지을 능력은 있지만 자신을 이 죄에서 구원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모든 구원받을 인간들의 죄를 대신해 죽으시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형벌을 온전히 감당하시고 율법의 요구대로 그 죄에 대한 형벌로서의 죽음을 감당 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형벌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간악하고 더러운 꾀를 아시면서도 그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자기를 죽이시므로 많은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해하셨기에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유월절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였고 이사람 들은 줄을 지어서 예수를 따라 가는 것도 아닌데 이 사람들을 오늘 이 성경 기록자는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누고 있습니다.
백성이라는 사람들과 또 한 부류는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들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백성들이누군가 했더니 35절과 48절에 보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구경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뱃세다 광야에서 나누어 주는 두 마리의 물고기와 다섯 개의 보리떡을 축사하셔서 먹이신 그 떡과 고기를 먹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팔복산에서 들려오는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던 사람들, 병든 자를 고치는 하나님의 능력이 행사되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실 때 구경하며 예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 줍니까? 우리가 말로만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의 고난이 자기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깊이 깨닫게 될 때, 그때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 고난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될 때 그 흠 없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더러운 죄인들과 함께 십자가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끔직한 고난을 당하고 죽으신 그 큰 고통이 바로 나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시작입니다. 바로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 앞에 형벌 받을 수 없는 죄인인 나의 비참한 죄를 발견하게 되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 비참하고 더러운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한 죄를 예수님이 짊어지시고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당신을 믿을 때 하나님이 그 아들이 피를 보시고 우리를 용서하시는 구원의 길을 여셨다는 사실들을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시작 햇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한때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시라고 굳게 믿고 이 온 우주의 중심이 자신이고 자기의 행복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를 믿을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발견하게 됩니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이 세상을 헤쳐갈 힘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의 불행이 돈 때문인줄 알았는데 인생의 벼랑끝에 서보니까 돈 때문이 아니라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내 인생의 불행이 나를 이렇게 불행하게한 어떤 사람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모든 인생의 불행의 원인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내가 이 우주의 온 주인인것처럼 하나님없이 살았던 나의 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큰 고난을 보면서 바로 그분이 죽으신 그 끔찍한 죽음이 나 한사람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찬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깊이 깨닫곤 합니다. 그러면 그때 비로서 하나님의 이렇게 자기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이 내가 지은 죄 때문 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죄는 내가 지었지만 하나님이 예수를 대신 십자가에 못 박고 나를 용서해주시기 위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때 비로소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받아 본적이 없는 사랑, 유한하고 언젠가 배반하는 사랑이 아니라 무한하고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 십자가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그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하고 말입니다. 그 십자가 사랑을 깨닫는 그 순간 우리는 이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를 사랑할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구경하기 위해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는 것이 어떻게 구경거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 믿고 기적을 체험했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응답을 한두 번 받았다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죄 없으신 분으로서 왜 십자가에서 마지막 피한방울까지 흘리시도록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셨는지 그 의미를 알고 그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나를 중심에 놓고 나를 사랑하다 죄를 짓고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게 되었으나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자기가 지은 많은 죄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기같이 더러운 죄인을 구하여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구경하며 따라가는 이 사람들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오늘날 예수는 믿는다고 말하였지만 십자가의 의미는 모르고 무엇인가 재미난 일, 기적적인 일이 있을까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예수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가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를 대충 믿으면 인생 사는데 도움이 안되요. 오히려 더 갈등이 많아요. 정말 행복해지려면 참 신앙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되요. 그래서 건성으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가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이렇게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으니 내가 이제는 예수님앞에 옵니다.
(찬양)
오 예수님 내가 옵니다. 못박히신 십자가 앞에 그 큰 사랑 눈물에 겨워 울며 울며 돌아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돌아가서 이제는 이제 것 내가 나를 주인 삼으면서 살아온 이 삶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 비참한 죄인이 되었으니 이제는 내가 나를 버리고 주님께 순종하겠습니다. 이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대신 죽으시고 나의 인생을 사셨으니 이제는 나의 인생이 예수님 것입니다. 고백을 하는 그 신앙, 그리고 매일 매일 그런 고백 속에서 살아가는 신앙,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이기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멀리 갈릴리로부터 온 여인들까지 있었고 이 여인들은 가슴을 치고 슬피 울며 예수의 뒤를 따랐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딴 사람들은 구경하고 놀면서 예수그리스도를 따라가는데 왜 이여자들은 가슴을 치고 슬피 울며 통곡을 하면서 예수그리스도를 따라 갈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도 아니고 오직 한가지 이유 때문이었고 구경하러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백성들에게는 없는 그 무엇이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실때에 이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저렇게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 죽으시면 그 피로 우리가 속죄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다만 예수그리스도께서 죄 없고 불쌍한 자들을 위하여 자기를 다 버리신 생애를 사신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은 잘못된것이고 그분은 죄 없으신 의로운 분으로서 억울하게 사형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뿐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들의 마음속에는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서른세해동안 사시면서 특별히 삼년동안 사시면서 예수님은 자기의 행복을 위하여 사신분이 아니라 불쌍한 죄인들을 위하여 자기를 다 버리며 온전히 희생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가정도 없이 가난하고 병든 자를 위하여 자기를 모두 버리며 발을 씻기고 헌데를 어루만지고 주린자를 먹이시고 외로운자의 친구여 이웃이 되어 주시고 무지한 자를 위하여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그들을 하나님 앞에 깨닫게 하셨고 간음하다가 잡혀온 끔찍하게 더러운 여자도 돌로 치시는 대신 그를 깨닫게 해주시며 죄를 짓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도록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 큰 고난과 그리고 그 놀라운 사랑을 이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여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섬겼던 많은 날들을 기억하며 눈물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뒤를 따랐던 것입니다. 창녀요 기생이요 귀신이 들려 아무 희망이 없는 자기와 같은 인간을 찾아 오셔서 치료하시고 고쳐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더럽다고 상종도 안하고 자신을 짓밟았으나 오히려 예수그리스도는 그들보다 비교 할 수없이 완전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이심에도 그를 용납하사 고쳐주시고 주님을 믿겠금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인격과 그 모습을 통해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들이 정말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정말 이 후에 여러분들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 복 받은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십자가에서 여러분들의 죄를 위해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끔찍한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브라이도리언 이라는 왕궁수비대에서 로마의 병정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옷을 벗기고 죽도록 채찍으로 내리쳤습니다. 예수님당시의 채찍을 연구한 어떤 사람들의 기록을 보니까 당시의 채찍은 가죽으로 되고 그 끝에 아홉가닥 으로 만들어져서 그 끝에 뼈나 혹은 금속을 깍은 도구들을 달아서 죄수의 몸을 내리치면 살점이 후두둑 뜯어지게 만든 무서운 채찍이었습니다.
어쩌면 예수그리스도도 그런 채찍에 맞으시면서 아주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던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셔서 무슨 나쁜일을 하셨습니까? 누구한사람 때리신적이 없고 모함하신적이 없고 자기를 온전히 다 버려 죄인들을 고쳐주시고 주린자를 먹여주셨습니다. 당신은 배가 고파도 당신 자신의 몸을 위해서는 기적을 행하신적이 없지만 굶주리고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서 기적의 밥상을 베푸시고 그들을 먹이고 그들을 마시우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에게 수치를 더하기 위하여 끔찍한 강도들과 함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끌고가고 있었으나 이 여자들 마음속에서는 예수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관을 쓰신 채 골고다 언덕에 나타나셨을 때 그를 잘 알고 그분의 사랑을 입었던 이 여자들은 예수그리스도의 그 모습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아마 이 울고 있는 이 여자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렇게 고난을 당하고 죽으셔야한다면 내가 대신 예수님을 위해서 그 자리에 죽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던 여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며 끊임없이 쓰러지셨고 구레네 시몬이 그 십자가를 대신 지고 따라갔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 가까이 다가가기를 애썼을 것이지만 로마병정들이 그것을 허락 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사랑하는 여자들에게'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가실때에 이 여자들이 보였던 반응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러분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때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천년전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여전히 사랑하게 되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지신 그 십자가 때문에 여전히 가슴 아파 하고, 그분이 나를 위해 이 천년전에 죽은 십자가의 고통이 이천년의 간격을 뛰어 넘어서 오늘 내 마음속에 밀려와 나에게 아픔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처럼 지금 이 세상에 남아있는 그 십자가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질수 없지만 예수 친히 말씀하신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아올것이니라' 고 말씀하셨던 예수그리스도의 그 십자가를 지고 가신 그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나는 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아닙니다. 이것은 정신적인 십자가이고 영적인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 사람다운 사람 만드시기 위해서 정말 하나님의 자녀다운 하나님의 자녀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짊어지게 하신 모든 고난과 시련, 이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여러분들도 자녀가 있으시겠죠. 아이를 낳는것은 순간의 육체관계를 통하여 아이가 생겨나지만 태어난 그 아이를 사람답게 키우는 그 일은 산고의 고통보다 훨씬 큰 것 입니다. 낳은 자식을 사람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교육하고 매질을 하고 가르치고 모본을 보여줘야 하지만, 아무렇게나 사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가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내버려두면 막 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우리를 예수 믿고 구원한 다음에 그 구원받은 것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끊임없이 십자가를 보여주셔서 이 십자가를 보면서 네가 누구인지 알거라. 바로 너는 나에게 지금 사랑받고 있지만 원래의 너의 모습은 너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진노를 받아야할 형벌의 대상이었다. 그 형벌이 얼마나 큰 형벌이었는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신 그 고난을 통해서 너희가 알게 되었노라. 라고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라고 불러주셨지만 우리는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를 용서 해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를 당신의 의로운 자녀로 불러주시지만 나는 하나님 앞에 용서받은 죄인일 뿐이다 라고 고백을 하며 주님의 그 사랑에 눈물을 흘리고 감격하며 당신 앞에 나아가니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 이예요. 이것이 바로 신앙이고 이것이 바로 믿음인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당하고 있는 많은 괴로움과 시련 그리고 인내하지 않으면 안되는 고통스러운 모든 짐들이 십자가라고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 십자가가 여러분의 잘못 때문에 온 것인지 여러분의 잘못과는 상관이 없이 타의에 의해 짊어지게 된 것이던지 상관하지 않고 그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처럼 묵묵히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듯이 여러분들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해달라고 힘쓰고 애 쓸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여러분들이 당한 고난과 시련을 오히려 여러분들에게 더 큰 은혜를 가져다주는 수단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1990년대 초에 서대문 교도소에 설교하러 갔었어요. 그때도 예배드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천명도 넘는데 예배당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이것 보다 더 작아요 한 150명 정도 밖에 못 들어와요.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막 데모를 하고 뚜드리고 난리가 났어요. 그런데 거기에 있는 교도관 어떤 분이 저한테 그런 말을 해요. 얼마 전까지 김헌양이라는 청년이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1992년도에 그 유명한 지존파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끔찍하게 살인하고 불에 태우고 그랬던 주모자였어요. 이 사람은 죽음을 정말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이 가서 정말 간절히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했어요. 그 청년이 복음을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마지막 쓴 편지를 나에게 읽어주었어요. 그것이 뭐냐면 내가 전부다 기억은 못하는데 그런 내용 이었어요, 내가 이렇게 밝은 진리의 빛이 있는 줄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막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렇지만 내가 여기에서라도 주님을 만나서 하나님이 나 같은 인간을 이렇게 사랑해주셨다는 사실을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납니다. 그가 제일 좋아하던 찬송이 바로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하나님 은혜였습니다.
(찬양)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러면서 사형당하기 몇 주 동안은 거의 얼굴이 천사처럼 빛났데요. 자신의 장기를 모두 기증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감사기도를 올리고 형장에서 사라졌어요. 그것을 보면서 거기모인 모든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은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런 고백을 했다 그래요. 주님께서는 이세상은 우리들이 지은 죄 때문에 낙인을 찍고 그리고 우리를 따돌리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렇게 죄 가운데서 자신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같은 죄인을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예수를 보내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배반하시는 적이 없고 그 하나님은 심지어 우리가 당신을 버릴 때조차도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며 오늘도 하나님 한분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늘에 당하고 있는 이 고난과 모든 시련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은 오늘도 도와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스스로 의롭다고 믿는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죄인이라고 믿는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는 너무 불쌍한 인간이고 희망이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예수께 나오는 모든 사람들을 오늘도 불러서 한 영혼 한 영혼을 구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이 받지 못하는 사랑을 받게 하시고 남이 알지 못하는 은혜의 세계를 보여주셔서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이 더러운 세상에서 하늘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에 있는것은 여기에 없는 것보다 나쁜 것입니다. 사람은 좋은 것을 통해서만 좋은것을 받을줄 알지만 하나님은 매우 나빠 보이는것을 통해서도 아주 좋은것을 주시고 매우 고통스러워 보이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커다란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이곳에서도 주님을 잘 믿으며 여러분들의 인생의 갈 길을 주님께 부탁하고 도움과 은혜를 간절히 구하며 십자가 은혜로 살려고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큰 고난과 시련을 사용하셔서 여러분들에게 더 커다란 은혜를 입혀 주셔서 그래서 하늘가는 밝은 길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서 시인이 고백 했던 것처럼 고난당하는 것이 나에게는 유익입니다. 왜냐하면 고난당하기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지만 고난당한 후에는 내가 주님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 고백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처지 속에서도 이 예수님 꼭 붙들고 신앙으로 승리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