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지혜와 능력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1:22-23)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는 출발이 중요하고 기초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디로부터 출발했는지 우리의 신앙이 어떤 기초위에 서있는지 이런 것들을 늘 점검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믿는 이 십자가의 도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늘날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으려고 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어느 시대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어느 시대이든지 언제든지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안 믿는 이유는 어느 시대든 똑같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는 초라하고 십자가는 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오늘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이 편지를 쓰면서도 사도는 똑같은 사실들을 경험했습니다. 그 중에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 대표적인 부류들은 선택된 이스라엘인가, 선택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인가 하는 것입니다. 로마 이전에 헬라세계가 지배를 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헬라나라의 고도로 발달된 철학과 사상에 푹 젖어있었습니다. 그리고 흠모했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헬라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되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삶이 변화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매어서 노예가 되기 싫어하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결코 존귀한 칭호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에게 묶인 노예와 같은 그런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추종하면서 노예와 같이 그리스도에게 매인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도대체 그렇게 매이게 하는 무슨 요소가 거기에 있는가 하고 가보니까 십자가 하나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헬라인들이 물어보았습니다. 이 십자가가 무엇인가? 이 십자가가 왜 너희에게 신앙의 중심이 되는가 물었더니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이 못 박혀 죽으셨는데 그 예수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내가 그를 믿기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십자가에 매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이 헬라인에게는 미련하게 보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거기에는 논리적인 철학도 없고 질서정연한 논리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천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이 오늘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흘린 피는 다 말라고 못 박혔던 나무 십자가는 치워졌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살아가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천년 전에 십자가에 매달린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고 사람들은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나 사람들에게는 이 십자가가 미련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천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죽음을 만약에 이 세상의 평화와 그리고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바라는 선구자의 죽음이었다면 모든 사람들은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이 세상에는 신념을 따라 죽어간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흔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선한 과거와 그리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뜻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조금도 아깝지 않은 것으로 버리고 많은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서 고난을 받고 죽어간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못 박힌 그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자기의 시대의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십자가가 모함을 받아서 비참하게 최후를 마친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에 못 박힌 정신을 본받아서 오늘도 우리가 고통 받는 자를 위해서 우리의 유익을 포기하고 우리의 자랑거리를 버리고 우리의 사욕을 버리고 그러면서 살아가자고 부르짖는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십자가가 미련한 것이 될 이유가 없습니다.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언제든지 이 십자가의 의미를 벗기고 벗겨서 이렇게 사람들에게 오히려 지혜로운 것으로 드러내보고 싶었던 때들이 언제나 있었고 교회는 언제나 이런 유혹을 받았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분이 다시 살아났던지 그의 피가 오늘 우리의 죄를 구속하든지 말든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가든지 그런 것들이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이천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것처럼 또한 오늘도 우리는 제 이의 예수그리스도가 되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삶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런 말들이 세상에 지혜로운 말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문익환 목사님이 이북에 가서 김일성 주석을 만났을 때 “남한에는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가 많다.” 그랬습니다. 어떤 예수 그리스도는 노동자의 복지를 위해 분신하여 빌딩에서 뛰어내리고, 어떤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다가 최루탄에 맞아서 쓰러졌다. 그 얘기입니다. 여러분, 이런 복음은 이 세상에 의해서 미련하다고 그렇게 거부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여러분, 복음은 언제든지 이 세상에 미련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다는 예언을 누가 받아들였습니까? 제자들조차도 십자가를 끌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고 그것이 어떻게 나의 인생과 그리고 하나님 앞에 형벌을 받아 마땅한 나의 죄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아무도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마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던 요한조차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시는 것이 자기의 죄 사함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지 이 세상에 평화를 주기 위해 온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고 십자가를 믿으라고 전할 때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않는 것을 인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그러했습니다. 낙담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그 십자가를 미련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무 하나에 인생이 붙잡힌바 되고, 십자가 하나에 자기의 모든 삶이 붙잡힌바 되어서 가치도 변화고, 삶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고, 인생의 목표도 변한다고 하는 이런 일들이 이 세상에서는 언제나 어리석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세상이 지금 그런 게 아니라 우리들도 이전에 그랬습니다. 도대체 이천년 전에 그리스도는 죽었고 이제는 그는 계시지도 않고 십자가도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그가 그렇게 십자가에 죽은 정신, 그 감화력이 오늘 우리에게 관계가 있다면 우리는 거기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가 나를 저주 아래 있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인의 자리에서 나를 건져서 의인의 자리로 옮긴다는 것입니까? 이렇게 죄 가운데 태어나서 죄 가운데 살면서 죄를 위해서 일하다가 죄 때문에 사망할 수밖에 없는 이 비참한 존재를 그리스도 그 십자가 사건이 나를 구속한다. 여러분,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가 이 편지를 쓸 때도 사도는 수많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사도는 배척받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어디서든지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십자가를 이런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야말로 정말 미련하구나.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사람들을 다 똑같은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신문지상에서 최근에 아버지를 죽인 대학교수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저는 혀를 차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고 반문했습니다. 그렇게 반문하는 이야기들이 신문에 실렸고 어떤 사람 대 여섯 사람의 이야기가 실렸는데 ‘놀라운 일이다. 충격적인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또 어떤 사람은 ‘대학교수가 이렇다니 참 충격이다. 이것은 우리가 정말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 어떤 사람은 ‘어려서부터 교육을 잘못 받아서 그렇다. 우리가 각성해야지 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조금도 놀라지 마라. 그것이 너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죄악들을 신문에서 읽을 때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과 같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똑같다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모두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 형벌 받아 마땅한 진노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가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희는 다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 십자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이 십자가는 모든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경건하게 살아가고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무리 도덕적으로 노력을 해서 성자에 가까운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그는 스스로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그 죄로부터 자신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그럴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기 위해서 하늘에 계셨지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이유가 없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십자가를 미련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오늘 말합니다. 헬라인들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그 유대인들은 이 십자가를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야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못 박힐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최고의 관심은 모세같이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카리스마적인 권능을 가지고 백성들을 그 정치적인 압박과 고난 속에서 건져낼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진 이런 사람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이 기다리고 고대하던 메시야였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주기 위해서 오신 메시야가 자기조차도 구원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유대인들이 그 십자가를 바라볼 때 예수를 믿을 수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다시 한 번 그 다윗의 별이 그려진 왕국이 이 세상에 우뚝 서는 일이 메시야를 통해서 일어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가 와서 싸움에 능하고 하늘에 놀라운 권능을 가지고 와서 다윗과 같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승리하게 하심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연약한 모든 것들을 파하고 정치적인 압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할 수 있는 이런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해도 유대인들에게는 이 십자가가 걸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 위대한 하나님의 메시야가 이렇게 십자가에 매달려서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고 죽을 수 있는가. 수많은 사람이 십자가 아래서 소리쳤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내려 와 보라. 너 자신을 구원해보라.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구원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구원이여 너 자체를 한번 구원해보라. 사람들은 이렇게 조롱한 것입니다. 네 이름이 구원이라며 너 자신도 한번 구해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가 메시야인 것을 우리가 믿겠노라.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는 고요히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왜 하나님은 한번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 십자가의 형벌을 깨트릴 수 있는 권능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대로 열두 영이 넘는 천군천사들을 이 땅에 불러 내려서 그래서 사망에서 건짐을 받는 위대한 모습을 유대인들에게 드러내서 표적을 구하는 그 사람들에게 표적을 주시고 그래서 표적을 통해서 그들 가운데 믿음을 창조하시지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실 동안 그렇게 많이 행하시던 놀라운 이적, 놀라운 기적, 병 고치는 능력, 그리고 죽은 자를 살리신 위대한 권능을 마치 모두 반납하신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도록 끌려가시고 마지막에는 나무에 매달려 저항도 없이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와 침 뱉음과 그리고 조롱받음을 다 당하시고도 아무런 대답이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신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십자가에 고요히 매달리셨습니까?
여러분,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그 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마귀도 속았습니다. 여러분, 마귀도 속고 사탄도 속은 그 지혜를 어떻게 신앙을 갖지 않은 유대인들이 그 십자가의 지혜를 알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듭나지 못한 인생이 마귀보다 지혜롭습니까? 사단보다 지혜롭습니까? 사단은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가만히 보니까 자기가 온 땅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범죄할 때 이 공중에 모든 권세를 (?)그의 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상한 일이 하나 일어났는데 그것은 아이가 하나 태어난 것입니다. 마귀는 직감적으로 이 아이가 보통 문제가 있는 아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비추고 그 별빛을 따라서 동방박사들이 경배하기 위해서 아기 예수를 따라 왔습니다. 그리고 아이 위에 오자, 별은 멈추고 빛은 찬란한 빛을 발했습니다. 그때 마귀는 직감적으로 이 아이가 그토록 자신의 왕국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이 보내신 아이로서 이 아이가 어찌하든지 간에 아이가 자신의 왕국에 도전할 아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를 죽이고자 하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제일 처음 그의 손에 붙잡힌바 된 도구는 헤롯이었습니다. 헤롯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를 죽여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를 죽이고자 창칼을 휘둘렀습니다. 수많은 어린아이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시기에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라마에서 곡하는 소리와 같은 그 통곡소리가 라헬의 곡소리가 팔레스타인 땅에 가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도 마귀는 계속 집요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를 감추셨습니다. 결국은 그가 마지막으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나오게 되었을 때 성령으로 무장된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와 더불어서 한판 전쟁을 벌이고 이기셨습니다. 그때서부터 이제는 밀리는 싸움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셨습니다. 분명히 내가 병들게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나음을 얻으리라. 나았습니다. 귀신들이 가서 마귀의 명령을 듣고 그 사람 속에 거하면서 진을 치며 살고 있었는데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나가라. 한마디로 쫓겨났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제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왕국이 무너져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무너져버린 것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것은 예수를 믿은 모든 사람들은 성령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을 소유하고 그 다음에 단지 자기의 백성들이 다른 나라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서 깃발을 들고 이제는 마귀를 대적하는 사람들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단의 왕국에서 보면 이 사건은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마귀가 내린 결단은 예수를 죽이자.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고대의 어떤 교부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뭐라고 묘사했는가 하면 아주 재미있게 묘사했는데 하나님은 마귀가 좋아하는 떡 속에다가 날카로운 낚시 바늘을 넣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단에게 주매 사단이 받아먹었는데 그것은 사단 최고의 실패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도록 내버려두신 것은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마귀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이전과 같은 자신의 왕국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단의 지혜의 한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 더 큰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지혜는 무엇인가 하니 예수 그리스도를 사단에게 조종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죽도록 내버려두심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인류의 죄 값을 치루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한 자는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하는데 그 죄를 범한 자가 피를 흘리고 죽는 일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함으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사건이 지혜였습니다. 이 지혜는 가려진 것이었습니다. 헬라인에게는 가려졌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만 보였지만 그러나 이전에도 바울이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니까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사랑하신 그리스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신 그리스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라한 죽음 뒤에서 지금도 흘린 그 피를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으로 부활해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고 어두움의 자녀들이 빛의 자녀들로 새롭게 태어나는 놀라운 능력이 발휘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 고난이야말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불러들이는 도구였다는 사실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피 묻은 십자가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 십자가는 죽음의 십자가가 아니라 부활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는 단지 자기의 정열을 다 바쳐서 죽어간 한 선지자의 죽음이 아니라 그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을 위해 화해의 길을 열고 그가 못박혀죽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지혜가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철학이 따라올 수 없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는 오직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죽으시고 거기서 피흘려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위해서 자기의 몸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멘 하고 단순히 믿을 때 우리는 놀라고 충격을 받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의 지혜로 이해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믿지 않을 때 우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나본 사람은 모두 압니다.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이 십자가가 나와는 상관없는 교회에 붙은 한 종교의 표징이었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고 그 십자가를 지향하게 되니까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나를 위해 흘린 그리스도 예수의 보배 피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저는 75년도에 거듭났습니다. 그전에 교회를 다녔지만 별로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해 가을에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믿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사건이 거짓말이라고 해도 나는 믿을 수밖에 없다는 불같은 확신이 어린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천년 전에 나를 위해 죽었는데 내가 그것을 믿고 나니까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것이 이천년 전의 일로 느껴지지 않고 지금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 같은 일이 생생하게 전해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천년 전에 죽고 나는 여기 있으며 그렇게 자기의 죄 때문에 옛날에 누가 죽었다는 것 같고 그렇게 애통할 수 있겠습니까? 다 끝난 일인데, 그렇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을 때는 이천년 전에 일어난 사건인데 이천년 전의 일로 여겨지지 않고 지금 내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셨다는 느낌이 현재적으로 다가오니까 그 고통이 나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쓰라린 고통이 바로 나의 죄를 위하였다는 사실이 전해옵니다 그러니까 삶이 변하고 가치가 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지 미래의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신앙생활의 경우가 많은데 그런데 사실은 미래에 일어난 일보다 옛날에 일어난 일이 더 크고 위대한 일입니다. 그 놀라운 일들을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기적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리고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제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는 정말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현재 신앙이 태만하고 게으른 모든 이유는 이전에 신앙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이 사건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거듭나고 보면,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면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십자가 사건을 볼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십자가 사건을 보게 하시니까 그 십자가가 이전에는 앞에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그러나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의 보고였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뭘 발견하는가 하면 심하게 얘기하면 하나님도 이 십자가가 아니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는 필연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게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도 지혜 있는 사람, 자기의 지혜를 의뢰하고 자기의 지혜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이 십자가의 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도가 거치는 것들이 되는 것입니다. 능력을 바라보면서, 성공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서 위대한 일들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신앙의 증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야말로 할 말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멸시와 천대를 다 당하시고 매달려죽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으로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니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거기까지 밖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거기까지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가 태어나서 우리를 위해서 일했고 그러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거기까지 보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은 신앙의 눈을 가지고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과 모든 자들로 그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주라 시인하게 한 이 놀라운 사건, 구속의 지혜, 이것은 신앙의 눈으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을 떠나고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선포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왜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지를 듣는 것입니다. 신앙은 강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강요하면 안 됩니다. 안 믿어지는 것을 어떻게 믿어지겠습니까. 교회는 데리고 나올 수 있습니다. 그것도 쉽지 않지만. 그러나 믿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알아야 됩니다. 깨달아야지 됩니다. 그리고 뉘우쳐야지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구원하시는 사명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사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면 너희 인생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가. 그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그렇게 전하는 그 일 위해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도무지 믿어지지 않고, 세상에 유대인들처럼 믿어지지 않고, 헬라인처럼 믿어지지 않다가 어느 한순간에 예수께서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셨습니다. 그 말이 매일 듣고 거절하던 말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가슴을 후비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회개했던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첫 번째 그 말을 듣고 회개했던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옛날에 늘 듣는 이야기였는데 어느 한순간에 복음을 제시받자 그 십자가 앞에서 깊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오늘 열린 하늘 3월 호에 김희철 집사님 간증 쓰신 것을 읽어보십시오.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형제, 그렇게 살다가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한순간에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야 할 필요가 절박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신 그 사건이 깊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했던 지혜입니다.
지금도 사도의 시대뿐만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은 세상의 지혜를 가지고 십자가를 잽니다. 세상에 있는 지혜와 세상에 있는 지식을 가지고 그 십자가의 부당함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잣대로 어림도 없는 십자가의 위대한 논리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지혜 있기 때문에 그 십자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을 싫어하는 것, 그리스도를 원하지 않는 신앙이 그들로 하여금 인간의 지혜에 호소하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향하여 눈을 돌리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사도는 분명히 말합니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고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지만 그러나 참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의 지혜다. 그리고 참 하나님의 능력이다. 누구에게?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요,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속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놀라운 사랑과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혀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이 놀라운 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조잡하게 보였던 그 십자가가 믿고 피 묻은 그 십자가 아래로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게 되자 그 십자가의 지혜는 우리를 압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그 놀라운 십자가의 사건 앞에 압도당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깊이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뉘우치고 반성하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위해 살았던 이런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는 기도해야지 됩니다. 이 십자가의 도가 먼저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밝히 드러나고 그 도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우리는 기도해야지 되는 것입니다. 사도는 나중에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다짐했다.” 왜? 그것이외에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그것보다 더 큰 하나님의 지혜가 없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말하면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요, 그것을 말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사도는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십자가의 도가 언제나 우리의 삶을 주장해서 하나님의 지혜로 우리의 인생을 보고 그 하나님의 지혜로 우리의 신앙을 바라볼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이 되도록 기도해야지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한때 우리에게 미련하게 받아들여지고 능력이 없는 초라한 도로 여김을 받았던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가 이제는 구원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소망이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줄달음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모든 사람들은 바로 이 십자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고통 하는 이 세상에 대한 유일한 답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것도 십자가에서 못 박혀 자기들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지혜인 이 십자가, 그리고 우리를 구원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인 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이 십자가가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 믿지 않는 이 세상 가운데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지혜의 장엄함을 보여주고 구원하시는 폭발적인 능력을 온 땅에 베푸심으로 말미암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그래서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깨닫고 주를 위해 사는 사람들로 만들어달라고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