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며 깨어있으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눅 21:34-36)
녹취자 : 장주은
지난 시간에는 어떻게 우리의 기도의 문이 막히도록 그렇게 사단과 이 세상이 역사하는지를 여러분에게 보여드렸습니다. 방탕함과 술취함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을 적극적으로 쾌락으로 이끌어서 기도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생활의 염려는 소극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어서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관건은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면서 항상 즐거운 일만 있지는 않습니다. 괴로운 일이 있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생각을 하고 염려를 하지 않는다는 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다. 아무 염려가 없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해야겠다는 일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늘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자신의 서신서에서 늘 고백하기를 자기에게 싸움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영혼의 자유입니다. 그런 싸움이 있고 고통이 있고 때로는 염려를 하고 이래도 자유로운 영혼으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십시오. 한때 뜨겁게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해놓던 때에 아무것도 괴로운 일이 없는 사람이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열렬히 기도할 수가 있겠습니까? 뭔가 마음에 갈등이 있고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이것과 그것이 어떻게 다른가. 염려하면서도 영혼의 자유를 잃지 않게 해주는 염려가 있고 영혼의 자유를 잃어버리게 해주는 염려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생활의 염려는 우리의 영혼의 자유를 잃게 하는 염려입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앗아가고 하나님을 향하여 날아오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의 관심사는, 그래서 하나님이 이 모든 일에 대한 처방을 어떻게 내리셨느냐하면 그것이 바로 36절입니다.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 그 앞에는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임하리라’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날인데 더 넓게 말하면 말세입니다. 말세는 아주 넓게 말하면 예수 오신 다음부터 종말이 올 그때까지 그 긴 시간입니다. 그 때에 바로 인간들에게 방탕함과 술 취함,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 지는 이런 일은, 이렇게 되는 날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임하게 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에 대한 대비책을 주님이 말씀하시는데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런 일들을 피해야한다. 이것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방탕함과 술취함, 생활의 염려, 예수님은 이렇게 세 가지만을 말씀하셨지만 마지막 때에 인간이 그냥 이 세상 속에서 자신이 휩쓸리고 이 세상 풍조 자체가 하나님을 버리고 물질적인 것에 몰입해 있는 그런 사회가 된다는 것, 그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중동지역을 가보았습니다. 물론 요르단에 성지순례 때 갔었지만. 말로만 듣던 두바이를 한나절을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서 쭉 구경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없고 물질만 있습니다. 물질문명의 극치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내세울만한 도서관 하나 없는 도시. 그리고 쉼터라고는 별로 없는 도시. 뭔가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그 무엇이 단 하나도 없는 그 어마어마하게 높은 마천루들의 행진. 어느 곳에 들어가든지 어마어마한 입장료와 비싼 물가, 그런 것을 보면서 인간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도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물질문명 속에서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을 상실합니다. 그리고 주체성있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강요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그런 물질문명 속에서 인간이 방탕하고 술취하고 생활의 염려로 그렇게 살아가는 그것들을 피할 수 있다고 성경이 오늘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성이 지었다는 부르즈 할리파를 갔더니 너무 놀랐습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데만 15만원입니다. 15만원을 주면 엘리베이터를 태워서 부르즈 할리파 높이가 850미터짜리인데 460미터에다 내려줍니다. 몇 층인지를 모르겠지만 내려줍니다. 다입니다. 테라스가 이만큼 있어서 그냥 돌아다닐 수 있고. 커피 한 잔도 안줍니다. 그리고 거기서 좀 더 올라가겠느냐고 물어봐서 더 올라가고 싶다고 하면 7만원을 또 냅니다. 그러면 650미터에다가 올려줍니다. 그곳도 똑같은 곳입니다. 올라가면 사방이 사막이고 도시가 그냥 빼곡하게 서 있는 그것이 다입니다. 4인 가족이 거기에 올라가려면 입장료가 백만원입니다. 미친 세상입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안 올라갔지, 올라가고 나니까 그렇습니다. 그만 올라가자고 했더니 선교사가 아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끝까지 올라가 봅시다, 올라가도 그 위에는 850미터까지는 못 올라간다고 개인주택과 사무실로 되어있어서. 삼성이 지었다는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파이프로 그 집을 지었는데 그 파이프를 쭉 펼치면 지구의 1/4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무엇입니까?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온통 유리와 쇳덩어리로 온 도시가 다 에워싸여 있습니다. 나무도 별로 없습니다. 도서관도 없고 유적지도 없고 하다못해 박물관 하나 제대로 된 곳이 없는 그런 도시에서 무슨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겠습니까. 그런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미친 듯이 일해야 됩니다. 자신의 영혼을 돌아볼 시간이 없이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보편적인 사회의 트렌드입니다.
오늘 주님은 그것을 피해라, 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절대로 사회에 시류의 흐름에 모두 휩쓸려가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다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지만 이 마지막 시대에 올 일들을 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자 앞에 서도록. 여기서 선다, 라고 하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심판을 견딘다, 그런 뜻입니다. 무엇인가 가해지는 어떤 힘을 버텨내며 이긴다, 라고 하는 뜻입니다. 시편에서 하나님 앞에 누가 서리요, 할 때 그것이 감당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인자 앞에 서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하라고 요구하시는데 기도하며 깨어있으라, 두 가지가 항상, 항상이라는 말이 나오고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 두 가지입니다. 기도한다는 말과 깨어있는 다는 말이 동등하게 나옵니다.
그럼 여기서 깨어있다 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오웬 목사님은 ‘깨어있다’ 라고 하는 말의 의미를 자기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자기에게 주는 영적인 의미를 자각하며 사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내게 일어나는 좋은 일, 나쁜 일, 바뀐 환경, 아니면 지금 그대로 있는 환경, 이것이 자신의 영혼과 신앙에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매우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 있을 수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나빠 보이지만 거기에는 매우 좋은 그 무엇이 숨어있는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인생과 신앙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고 내게 일어나는 어떤 일들이 그것에 대한 나의 마음의 작용이 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미리 예측하는 것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것 없이는 무엇으로도 우리가 깨어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는 바입니다. 깨어있으라고 하는 이야기는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잠들어 있다고 하는 것은 결국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그것들이 우리 속에 가져다주는 결과 같은 것들을 그냥 모른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바둑을 썩 잘 두지는 않습니다. 한때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잘 두지는 못합니다. 직장 다닐 때 우리 후배 중에 바둑 4단인가 5단인가가 있었는데 바둑을 둘 때 어느 정도를 두냐 그랬더니 진짜 바둑을 잘 두는 사람들은 이십 수를 본다고 합니다. 내가 이렇게 놓으면 이 사람이 이렇게 놓을 것이고, 그 사람이 이렇게 놓을 것이고 이렇게 이렇게 판이 되어 갈 것이다, 하는 이십 수를 본다고 합니다. 9단 정도 되는 사람들은 몇 점을 놓으면 판이 어떻게 펼쳐질 것을 훤히 안다고 합니다. 바둑을 한참 두고 나서 싹 쓸어버린 다음에 다시 바둑알이 원래 어디부터 시작했는지를 다시 탁탁탁, 복기라고 하는데, 그것이 고수입니다.
똑같이 우리들이 육신적으로도 마찬가지이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있으니까 먹습니다. 먹고 싶으니까 먹습니다. 그러니까 다이어트가 안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것이 몸에 들어가서 무슨 작용을 일으킬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결과를 남길 것인가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몸에 들어가서 어떤 작용을 할 것인가를 더 상세히 알면 그것이 의사입니다. 음식이 약이 우리 몸에 들어가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것을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의사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나님 앞에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변화되는 상황, 그리고 바뀌는 우리의 그 처지, 이런 것들을 해석하면서 우리에게 이것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새기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하라 입니다. 기도하는 것과 깨어있는 것이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잘못된 판단력, 때로는 자연적으로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를 우리는 봅니다. 결국은 잠들어있는 신앙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판단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우리의 인생에 너무 중요합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데 수칙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잘못 시공하면 세 배가 된답니다. 잘못 시공하면 시공한 것 한 배, 뜯어놓는 것 한 배, 다시 시공하는 것 세 배, 시간 낭비하는 것 또 하나 붙이면 네 배의 비용이 드는 것입니다. 한 번에 정확하게 설계를 하고 설계한 대로 완벽하게 끝내는 것, 그것이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하며 깨어있지 못하면 잘못된 판단을 합니다. 한번 그르치면 인테리어는 세 배면 끝나지만 어떤 때 인생은 도저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은 엄청난 손해입니다. 조금만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모으고 조금만 덜 육신이 쉬고 조금만 덜 흐트러져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했다면 그렇지 않을 상황들을 우리들이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항상 기도하는 것과 깨어있는 것은 밀접하게 연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히 남을 위해서,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쏟고 주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야기도 충분히 동의가 됩니다. 하도 기도를 안 하니까 목사님이 너무너무 화가 나서 교역자들을 교회에 불러서 야단을 친 다음에 새벽기도 나와서 무조건 두 시간동안 무릎 꿇고 있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교역자들이 죽을 맛일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런 기회를 만들어 주니까 사람들이 기도가 터지기 시작하더랍니다.
제일 좋은 것은 그런 틀 없이도 자신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가 필요할 때 기도하고 말씀이 필요할 때 말씀의 은혜를 받는 것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연약합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자리가 그것을 저절로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자리가 만들어지고 환경이 만들어지면 왠지 인간이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드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해도 끝까지 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어찌합니까, 그건 할 수 없는 것이고 대부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노는 애들하고 어울리면 놀고 싶고, 공부하는 애들하고 아무리 어울려도 죽어도 공부하기 싫은 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하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야 합니다. 진짜 먹기 싫어도 잘 먹는 사람과 함께 어울리면 먹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그렇게 딱 두 시간 동안을 절대 무릎을 못 풀고 무릎을 꿇고 있게 했답니다. 얼마나 열 받았으면. 기도 안하면 벌이라도 받고 가라, 하고 무릎을 꿇려 놓았습니다. 거기서 기도가 터져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지도자는 그런 것들을 만들어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게는 못합니다. 만들어주는 사람. 그리고 마음을 모으게 만들어주고,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의 삶을 살아갈 때 그 때 피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이 안 붙들어 주실 때에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정말 피할 수 없고 이것들에게 우리가 지지만,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동안에는 무한히 강한 사람입니다. 용기와 힘에 넘치는 사람입니다. 왜? 생사를 내놓고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교역자들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옛날에는 출근 시간이 7시 45분인가 그랬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왜 그랬냐하면 한 시간 동안 기도하고 8시 45분에 업무에 들어가라고. 기도하십시오. 열심히. 그리고 그 기도에는, 깨어있어서 기도하는 일에는 형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언제 어느 시간에 얼마큼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기도하겠다, 그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간절히 찾으면서 살려고 형식을 회복할 때 그 때 진짜 기도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기도의 삶을 살며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