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하는 마음과 기도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 42:1-2)
녹취자: 정은숙B
모든 신앙생활이 다 그렇지요. 안 그런 게 없지요. 그렇지만 기도는 특별히 마음으로 하는 신앙적인 행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으면 그의 모든 것이 기도하기 위한 몸부림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위적으로 큰소리를 내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성경의 정신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묵상기도 하다가 성령님의 불을 받은 체험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허식, 가식과 허위를 벗어버리고 정직한 마음으로 진실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실해지는 것도 그저 평범한 감정의 진실이 있고 간절한 진실이 있습니다. 진실한 그 토대 위에서 간절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 없이는 누구도 기도의 깊이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정말 기도에 외식의 멋이 들어있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만 시작하면 목소리가 변하는 사람들, 습관적으로 무엇인가를 막 흔들면서 기도하는 사람들, 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만 기도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정반대로 그런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부 다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결하고 정직한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마음으로 기도 하러 나오는지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오래 해야 될 이유는 어디에 있느냐 하면 기도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여러분, 기도 하는 것이 어렵습니까?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기도라는 배가 떴는데 기도를 하게 하시는 그 기도의 바람을 기도라고 하는 배에다가 불어 보내실 때에 우리가 기도 제목을 손으로 꼽고 메모를 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바다를 하나님이 불어주시는 기도의 바람을 타고 항진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기도가 잘 될 때는 그렇게 기도가 바람을 받으면서 노 저을 필요도 없이 쭈욱 어디론가 미끄러지듯이 가는 배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몇 시간씩 기도하고 밤새도록 기도하고 하는 것입니다.
원래 철야기도라는 것이 왜 나왔는지 아십니까? 철야기도가 밤잠 설치는 사람들이 모이는 기도회가 아닙니다. 낮에는 자꾸 기도가 끊어지니까 밤에 방해 받지 않는 시간에 연달아서 쭉 기도하려고 철야기도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식이 있어도 그 사람의 영성이 그 형식을 채울 수 있는 내용이 없으면 그 형식을 지탱하기가 너무 힘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의 영이 교회에 함께 하면 기도회가 쉬운데 기도의 영이 가득해서 모인 사람들이 기도를 해도 순풍에 돛배가 미끄러져 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기도의 항진이 기도 속에 없으면 기도해야 하는 시간을 무언가 다른 것으로 채우고 싶어 합니다. 율동도 하고 드럼도 두드리면서 실컷 노래도 불러보고 커피도 마시고 또 교제의 시간도 있습니다. 야밤에 올빼미인가 무슨 교제를 하는지 교제의 시간도 갖고 기도는 10분인데 기도 제목 나누는 것이 두 시간이나 걸립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내용이 없기 때문에 형식을 채우지 못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순풍에 돛단 것처럼 미실 때에는 기도가 너무 쉽습니다.
지금도 저는 지체들과 기도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기도 제목 몇 개 나누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자주 기도 제목을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같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할 필요도 물론 있지만 그냥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하고 각자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인도자가 시시콜콜 얘기를 안 해도 각자 밀면서 기도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서너 개 정도 기도 제목 올리면 밤 열한시에 시작해서 대 여섯 시까지 가고 했습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기도에 참석할 만한 사람들이 기도의 불씨를 가지고 왔을 때는 그 불씨를 함께 보탤 때 횃불이 일어나는데 어디서 다 꺼진 화로, 꺼졌을 뿐만 아니라 비까지 흠뻑 맞고 와서 남의 불까지 끕니다.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와서 옆의 사람 신세를 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으면서 기도의 불씨를 마련해서 가야지 또 가서 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기도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그때 하나님이 기도의 바람을 보내셔서 기도라는 배가 그 은혜의 바다위에 떠서 어디론가 하나님이 기도하게 하고 싶은 곳을 향하여 미끄러지듯이 나아갈 때 그땐 언제부터 그것이 시작되느냐 하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정결해지고 하나님을 향해 집중되고 하나님도 우리의 마음에 가득 찰 때 그런 기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깊은 기도로 사람들이 못 들어가는 이유는 물론 죄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죄 때문이라기보다는 인내심이 너무 부족합니다. 지식이 부족하고 그 다음에는 인내가 부족합니다. 여러분, 죄가 있다고 칩시다. 확실히 죄는 우리의 기도의 영을 말려버립니다. 아삽(정확히 안 들림)은 그랬지요. 기도는 죄를 잡아먹고 죄는 기도를 말려버립니다. 그런데 죄가 있다고 칩시다. 실패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죄가 생겼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 밖에 희망이 없지 않습니까?
(찬양)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주님이 그렇게 친히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그럼 주님이 죄 있는 사람 나와서 끝까지 기도 안 되면 ‘죄 있는 사람 나한테 나아오라’ 고 말씀하신 것은 결국은 죄를 지으면 얼마나 골탕을 먹는지 하나님이 보여주시려고 당신 앞에 나아오라고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리고 죄인이 하나님 앞에 돌아간다, 돌아간다고 하는데 그것도 결국은 어떻게 시작이 되느냐하면 막혔던 기도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죄에 매여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죄가 더러워 보이고 갑자기 그 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내가 죄가 있든 없든 기도 속으로 나아와야 하고 그래서 기도할 때 ‘그래 넌 참 착하다 내가 네 마음을 받았다’ 히스기야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그런 말씀을 듣던지 ‘꼴에 무슨 기도냐’ 이런 말씀을 듣던지 무슨 말씀이라도 들어야지만 그 다음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러 나왔다가 패배감을 느끼고 돌아가는 이유가 거절감입니다. 나는 기도하러 나왔는데 하나님이 안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절망하고 낙심하고 돌아갑니다. 그런데 그것을 몇 시간 하나님 앞에 매달리다가 낙심하면 신앙적으로는 이해가 안 가지만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갑니다. 자기가 막 돌아다니면서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몇 년 동안 돌아다니며 하고 와서 무릎 꿇고 15분도 안 지나서 ‘하나님은 나를 버렸나? 하나님의 은혜가 다 됐나봐, 나는 이제 가망 없어’. 주님이 여러분들을 하나님을 떠나서 막 산 것들을 그렇게 아픈 가슴을 부여안으시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참으신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할 때 거절감이 느껴지고 차갑게 느껴지면 ‘주님이 제가 이렇게 기도해도 상종 안 해주시는 것 당연합니다. 그러나 주님’,
(찬양)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ᅟ그러면서 하나님, 나를 그렇게 차갑게 대하시고 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못하고 그래서 기도는 막혀있고 그럴 때 누구를 바라보고
(찬양)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신 이 곧 뵈게 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차마, 차마 오래도록 한 시간, 두 시간, 혹은 세 시간, 네 시간, 혹은 다섯 시간 흘러가면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무엇인가 강하게 밀고 들어오는 어떤 힘에 판자나 철판 같은 것들이 우지직 찢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찢어지면서 기도라는 그릇을 향해서 우리의 마음이 쏟아져 나갑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 못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날 안 되면 그 다음날, 약속은 있지 않습니까?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할 것이며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할 것이라 하고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마음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기도의 영이 메말라서 기도가 되지 않는 것, 몇 시간 동안, 며칠 동안에 그것 하나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뭉개버리면 그것이 믿음입니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약속을 꽉 붙들고 상황을 뭉개면서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서 사는 게 믿음입니다. 자기 잘못한 것은 생각 안 하고 하나님이 기도의 은혜를 안 부어주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만 하면 마음이 물같이 녹아서 하나님 앞에 기도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신 적 없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 사람은 정신 차리고 하나님 앞에 깊은 기도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시면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실 때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을 연단하고 깨끗케 하고 정결케 하고 다듬고 다듬어서 주시는데 가다가 팽개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잃어버리고 나면 그제서야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자기 자신을 보아야 하는데 그러니까 기도가 안 되면 두 번 범죄 하는 것입니다. 자꾸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술수나 속임수나 얼렁뚱땅, 이런 것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진실한 사람, 막 흔들고 고래고래 그런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하나님이 기도의 문을 열어주시려면 화끈하게 딱 왔을 때 그래 밀어준다 기왕 줄 것 왜 그러시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에 보니까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목마른 것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목마릅니다’.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팔레스타인에서 가을철 교미기가 되면 사슴이 타는 것 같은 목마름에 사로잡혀서 짝 찾으러 나왔다가 짝이 문제가 아니라 목이 마르니까 들판을 가로지르면서 눈에 보이는 헛것, 그 신기루에는 나무도 물고 있으니까 팔레스타인에는 물이 없지 않습니까? 그것 찾아서 줄달음을 치다가 눈을 부릅뜨고 죽는 것입니다. 거기서. 땡볕 아래서. 그러니까 사슴이 맨 처음엔 별생각을 다 했겠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목마름이 느껴졌을 때 목마름을 견딜 수 없을 때 온 의식이 물, 물 한 모금에 집중되어 있어서 그 들판을 가로지르면서 죽을 때까지 달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이런 과정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된다고 해서 여러분 죄가 청산되어지고 우리가 청결케 되는 줄 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과 자기가 그 죄에서 떠나는 것은 별개입니다. 또 죄에서 떠났다고 할지라고 그 사람이 죄를 버린 것인지 죄가 그 사람을 버린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누구를 죽이고 돈을 뺏으려 했습니다. 그것을 계속 꿈꾸면서 칼까지 갈았습니다. 가보니까 그 사람이 며칠 전에 벌써 죽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자기가 죄를 버린 것이 아니라 죄가 자기를 버린 것입니다. 젊었을 때 나쁜 짓 많이 하고 바람도 피고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늙어졌습니다. 병도 걸렸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방탕하게 옛날에 방탕하게 살 던 것처럼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죄를 버린 것입니까? 죄가 그 사람을 버린 것입니까? 죄가 우리를 버리는 것 정도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우리를 정결케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하나님께서 어떤 것들을 통해서 우리 내면의 세계를 청소하시는가 하면 하나님 앞에 딱 시선을 고정시키고 주님을 기도 속에서 만나야 되겠다고 집중하면서 그 하나님만 바라보며 계속 나가려고 몸부림치면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의 무서움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넣어주시고 그래서 세탁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죄가 왜 생깁니까?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집중해서 바라보면서 거기를 오랫동안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통해 흘러들어오면서 우리의 영혼 속에 뭔가 더러운 오물들을 묻혀놓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한 시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루어졌기 때문에 역으로 그것이 정결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더러운 것들로부터 끊어버리고 하나님만을 향하여 주목하고 거기서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바라는 회개의 눈물로 세탁되어지는 그런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일 예배 시간에 계속 설교되었던 죄를 회개하는 것과 죄 가운데 있는 생활이 우리의 영혼 속에 심어놓은 악한 경향.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의 차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 속에 있는 잘못된 것들을 고치고 청소하려고 하실 때 시련이 필요한 것이 너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낙망치 말고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할 것을 비유로 가르쳐 가라사대 하시면서 악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드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그런 마음으로 나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많은 기도회에 참석해보았지만 의지들이 너무 없습니다. 내가 이 기도회를 통해서 내가 개인적인 기도를 통해서 오늘은 내가 이 기도 속에서 정말 하나님 뵈고 만약 뵙지 못했을 때는 오늘 여기서 일어서지만 내일은 반드시 하나님 만나야 되겠다 그렇지 않고는 내가 살 수가 없다 이런 결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안 되면 말지 하고 털고 일어서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보시냐하면 난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어 아직까지는 이런 고백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 그럼 나 없이 살아 보렴 진심으로 네가 나를 필요로 하는 시간까지 살아봐라 살아봐야 더 깨지고 더 넘어지고 하나님 마음 아프게 해드리는 것 밖에 남는 것이 있습니까? 우리가 왜 이런 식의 삶을 살아야합니까? 이건 짐승들의 삶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면 안 됩니다. 그 하나님 앞에 기도의 영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안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지금도 강원도인가 어디 가니까 불씨, 불씨 아십니까? 옛날에 조상들이 성냥이 없던 시절에 불씨를 담아서 물려주고 물려주지 않았습니까? 430년 동안 내려온 불씨가 있었습니다. 그 집은 그 불씨를 간직하기 위해서 문명을 마다한 것입니다. 가스 불을 쓰면 불씨가 필요 없지 않습니까? 불씨 갖다가 가스 불 붙이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아궁이를 남겨둔 것입니다. 그 할머니가 이것이 지금 자기 살았을 때는 전해질 것 같은데 아무래도 곧 끊어질 것 같은 위기감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 불씨를 꺼트리면 어떻게 됩니까? 불씨를 꺼트리면 시집에서 쫒겨 난다는 것입니다. 그 불씨를 꺼트렸다는 이유만으로. 그러니까 그것을 저녁 늦게 채집해가지고 많은 부드러운 잿 속에다 꽁꽁 묻어놨다가 며느리가 시집오면 그 불을 물려 준다고 합니다. 그 며느리가 할머니가 되면 또 며느리에게 물려줍니다.
그것을 보면서 기도가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가 만약 그런 식으로 기도의 영을 유지하고 산다면 얼마나 많이 변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얻고 회복하기가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을 처음 받았을 때 아주 이것을 떡 같이 생각합니다. 떡 같은 것 갖다 버려도 또 주님 사랑 많으신 분이니까 주여 한 덩어리 보내주소서 하면 숯불 한 덩어리 날아올 줄 아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eke는 것은 잃어버리고 나서 고통 가운데 들어가고 나서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첫째는 그렇게 인내를 가지고 기도의 영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주시면 잃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세상에 그것, 아궁이에 불 땔 것, 그 불씨야 다시 키면 되지 성냥까지 나왔는데 그것을 고이고이 간직해서 항아리에 넣어서 사진을 찍고 430년 된 불씨라고 보여주는데 세상 사람은 그것 하나 가지고도, 430년이면 20년씩 치면 22대입니다. 22대 내려온 불을 안 꺼트리고 간직하는 집안이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주님이 누구 위해서 기도의 영을 간직하라는 것입니까?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기도 없이 살 수 없으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희는 기로도 살아라 그것을 알려주시려고 그렇게 하시려고 기도하게 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번에 하나님 앞에 많은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회복한 다음에는 참 잃어버리지 않으리라 다시는 내가 잃어버리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이 기도의 불씨를 잃어버리고 그렇게 곤고하고 허하고 고통하고 어찌할 수 없었던 무기력했던 나날들을 늘 떠올리세요. 그리고 풍성한 삶을 누리고 있는 현재와 비교하세요. 그러면서 무엇과도 누구와도 바꿀 수 없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사는 여러분이 되셔야 합니다. 믿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