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내재하는 죄
I. 본문 주해: 롬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4) 이 부분을 희랍어 성경에서 직역을 하면 다음과 같다. “왜냐하면 죄가 너희의 주인이 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니라.”
사도는 로마서 5장에서 시작하여 본문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영적 생명에 이르게 된 것과 그 생명이 어떻게 신자로 하여금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살게 하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는 생명을 얻는 신자의 영광스러운 구원에도 불구하고 지상에서의 그의 삶이 더 이상 긴장할 필요가 없으리만치 낙관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긴장을 말한다.
그것은 바로 거듭났음에 불구하고,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살아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그를 구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자 안에 남아서 역사하고 있는 죄 때문이다. 거듭남과 함께 성령으로 말미암아 심겨진 생명의 원리와 함께 죄가 살아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II. 신자의 삶: 은혜의 통치 아래 있음
우리는 개혁주의 성화론에 있어서 결정적인 유산인,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이 영광스러운 교리를 탐구하기 전에 먼저 서론적으로 살펴볼 내용들이 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정체를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감격적인 어조로 피력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사도에 의하면, 신자는 죄를 영원히 단 번에 용서 받은 자이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시켜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이런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신자에게 있어서 죄는 무엇인가? 과연 신자 안에 죄가 거할 수 있는가? 만약 죄가 신자 안에도 거한다고 하면 그것은 신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또 그 죄가 신장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을 훼방한다면 그것은 곧 해방된 죄와 사망의 법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만약 죄와 은혜가 신자 안에 함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신자가 받은 구원의 실재는 무엇인가?
원리적으로 거듭난 신자는 죄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 여기서 은혜란 신자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 방법이다. 즉, 죄인을 용서해주시는 객관적인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거룩한 영향력이다. 예를 들어 보자. 신자가 죄 가운데 살다가도 어느 순간, 깊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속에 다시 부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은혜를 받게 되면, 그의 마음은 은혜가 없었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마음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렇게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된 마음은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한다. 그것은 외적인 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혼과 마음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그에게는 은혜 받기 전이나 은혜 받은 후에나 상황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집안도 그대로이고, 다니던 회사도 그대로이며, 갑자기 승진을 하거나 돈을 많이 벌게 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자기를 괴롭게 하던 삶의 상황들이 변함없이 그대로인데도 은혜를 받고 나면 신기하게 마음속에 기쁨과 평강이 넘친다. 매일 원망과 불평 속에서 살았던 사람인데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사랑과 감사 속에서 살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다. 은혜를 받고 나면, 예전에는 멀리 하늘에 게신 분으로만 느껴지던 하나님이 이제는 자신 곁에, 자신 안에 살아계신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강권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은혜 받기 전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던 사람이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말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이처럼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은혜란 상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영향력이다.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런 은혜가 심겨진다. 그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 순간 생명의 성령의 법이 심겨지면서 이러한 은혜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비록 여전히 부패한 성품이 남아 있고, 그것이 죄로서 잔존하고 있고 영향을 받지만, 그 사람 안에는 그 보다 더 큰 지배력을 가진 생명의 성령의 법이 존재한다. 그는 이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죄의 다스림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의 통치 아래 있다. 그는 그 은혜를 따라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기에 필요한 하늘 자원을 공급 받으며 살게 되는 것이다.
III. 불신자의 삶 : 죄의 절대적 지배 아래 있음
그러나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들은 여전히 죄가 그 사람 안에서 주인 노릇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상태를 본문은 ‘법 아래 있다’라고 말한다.
신자는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죄의 영향을 받거나 지배 아래 놓이게 될지라도 은혜를 통해 그 상태를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불신자는 그럴 수가 없다. 그가 율법 아래 있기 때문이다. 율법은 그가 지은 죄와 또한 그의 죄인 된 상태를 보여주고 정죄할 뿐이다. 율법은 그 이상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불신자는 죄의 지배 아래 있다. 그것은 상대적인 지배가 아니다. 불신자는 죄의 절대적인 지배 아래 있다. 당연한 이치지만, 여기서 말하는 불신자는 사실상의 불신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거듭나지 못한 채 단지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들이 포함된다. 비록 기독교적인 문화와 종교 환경 속에서 살아가지만, 실질적으로 거듭나지 아니한 모든 형식적인 교인들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지금은 신자가 된 여러분들도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기 전에는 모두 은혜가 아닌 죄의 지배 아래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반항하고 인간의 창조의 목적에 반항하는 죄의 경향성을 대항할 어떤 통제력도 소유하지 못한 채, 그렇게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자신들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궁극적인 원인이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얻으면 그것이 곧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욕망을 가장 우선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려고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고통스럽게 생각하고 적대시한다.
이러한 사고의 경향은 인간을 모든 우주의 중심에 있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가진 커다란 가치로 여기는 것인데, 이것이야 말고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대신 갖다놓은 우상숭배적인 자기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죄이다.
우리가 흔히 죄라고 하면 구체적인 실행죄를 생각한다.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며 시기하는 등 마음으로 짓는 죄와 도둑질과 간음, 살인과 거짓말하는 것과 같은 악행을 생각한다. 그러나 죄의 본질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모든 옳지 않은 태도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죄는 단순히 실행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이 세상의 중심이 인간인 것처럼 생각하고 하나님 없이도 넉넉히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곳에 인간을 두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그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게 하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기대하신 삶은 하나님을 온 우주의 중심으로 생각하며, 인생의 참된 가치를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데서 찾는 삶이다. 그러한 삶이야말로 하나님께 만족이며, 인간에게 행복이요 보람이다. 이러한 삶을 사는 것 이외에는 인간을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아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러한 창조의 목적을 외면한 채, 자신을 우주의 중심이라 믿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향한 멸시이자 반역이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는 것 자체가 죄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한다. 온 우주의 중심은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를 의존하고 순종하며 경배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라고 가르친다. 이 목적을 떠나는 모든 것이 곧 죄이다.
IV. 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의 세력
A. 지배는 불가, 영향은 가능
신자가 거듭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그 사람 안에 심으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그 생명은 사라지는 법이 없다.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생명의 원리는 신자의 안에서 존재하던 죄와 사망의 법을 타파하시는 것과 함께 역사하기 시작한다. 이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죄의 지배 아래서 종노릇하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한 죄의 통치는 거듭남과 함께 종식되었다. 오히려 마음과 영혼에는 새로운 주도적인 성향이 심겨졌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순종하며 살려는 성향이다. 그것은 마치 나무처럼 심겨져서 점점 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심겨진 하나님의 은혜의 생명은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마음과 성경한 생활 속에서 자라난다. 나무가 양분이 충분히 공급되고 비가 내리고 햇빛이 비치고 적정 온도가 유지되어야만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 가지 뻗어 성장하게 되는 것과 같이, 거듭남과 함께 겨진 하나님의 생명도 순결한 마음과 죄를 죽이는 생활 속에서 아름다운 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따라서 신자의 경건은 그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 생명이 풍성히 자라게 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이러한 진리를 적용시켜 보라. 그가 오래도록 교회를 다녔다고 해서 반드시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서 심겨진 하나님의 은혜의 생명은 성화의 이치를 잘 깨닫고 죄를 죽이는 경건한 생활과 거룩한 삶의 실천을 통하여 풍성해 질 수 있고, 영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 비록 커다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고 회심하였다고 할지라도, 자신 안에 있는 죄를 죽이는 삶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그를 실천함에 있어서 게으른 삶을 산다면 그는 결코 영적인 생명력을 지닌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결코 참 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B. 죄의 영향력의 극대는 지배와 방불함
그리스도의 구속은 우리에게 죄와 그 죄의 결과인 비참으로부터의 구원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단지 영혼만의 구원이 아니라 전인적인 구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영혼의 구원 여부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구한다. 그리고 그 도우심으로 날마다 살아간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하여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구원 받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부패한 본성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구속 받아야 할 죄인이라고 할 때에 그것은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와 우리가 지은 자범죄, 혹은 실행죄(actual sin)이다. 아담의 타락은 언약적으로 그와 하나로 연대되어 있는 우리에게 두 가지 악한 효과를 가져다준다. 첫째는 원죄의 죄책의 전가이고 둘째는 타고난 부패성이었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책의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선천적이고 내적인 부패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비록 예수 안에서 거듭남으로 우리에게 심겨진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이전처럼 우리에게 대한 절대적인 지배력을 파괴되었지만, 여전히 잔존하는 죄의 세력으로 남아있다. 타락으로 인한 원죄의 죄책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 칭의를 통하여 해결되지만, 잔존하는 부패성은 구원 받은 이후에 성화의 삶을 통하여 성령의 은혜로 거룩해져 갈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원과 함께 신자 안에 심겨진 생명의 성령의 법은 성화의 삶을 통하여 성장이 촉진되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신자 안에서 예전과 같은 절대적인 통치력은 상실했지만, 여전히 잔존하는 죄의 잔존 세력은 신자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리고 그 죄는 은혜처럼 생명을 가지고 신자 안에서 견고하게 자리 잡고 성장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신자가 이러한 원리를 무시하고 정욕을 따라 살면서 수시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은혜로부터 멀어지면 신자 안에 있는 악의 경향성인 죄는 더욱 강한 힘으로 가지고 자라게 된다. 비록 신잔 안에서 치명적인 해를 입고 거의 궤멸되었으나 다시 신자 안에서 견고하게 자리 잡을 채비를 갖추게 되고 세력을 얻게 된다.
필리핀에는 민다나오라는 커다란 섬이 있다. 합법적으로 정부가 엄연히 존재하는 필리핀임에도 불구하고 민다나오섬에는 반군들에 의하여 세워진 또 다른 정부가 있어서, 합법적인 정부의 통치를 거절하고 자기들끼리 세금을 거두고 그 지역을 다스려 간다. 필리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불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났다. 신자 안에 잔존하는 죄의 세력도 또한 그렇다. 그것은 불법이다. 이제 신자는 하나님의 생명과 성령의 법이 다스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시 죄의 지배를 받지 않도록 신분의 자유와 마음과 영혼의 자유를 아울러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신자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믿음의 원리를 따라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면, 비록 그 안에 죄가 잔존한다할지라도 하찮은 존재로서 신자 안에 제대로 거할 자리를 얻지 못한 채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 할턴데, 신자의 불순종과 죄를 죽이지 않는 삶, 성화의 삶을 살지 않는 죄악 된 삶이 죄에 힘을 더해주고 융성하게 만들어서 신자 안에 민다나오섬의 예처럼 불법한 세력들을 구축하게 하는 것이다. 신자에게 있어서 죄의 지배는 분명히 종식되었고, 그는 이제 죄의 통치 아래 사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신자가 자기 안에 있는 잔존하는 죄의 실재와 계획을 알고 그것을 적절히 죽이는 성화의 삶을 살지 아니하면, 죄의 영향이 극대화되어 죄의 지배 받으며 살아가는 이상한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거듭난 신자에게서 이렇게 심겨진 하나님의 은혜는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적으로 사라질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불순종하고, 말씀을 멀리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은혜의 힘은 약회되고 죄의 세력은 강해진다. 자신의 육체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부지런하고, 거룩한 삶과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는 게으른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정욕을 먹으며 자라는 죄가 힘을 얻으며 성장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죄의 나무는 그 마음과 영혼 안에 울창한 숲을 이루며 자라게 되고 마음에 있는 정욕을 통하여 자양분을 공급 받으며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신자에게는 이러한 일이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원칙적으로 신자는 죄가 통치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은혜의 우군이 소수가 되고, 죄의 반군들이 절대 다수가 되는 것 같은 상황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결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는 죄의 세력에 지배를 받는 상황이 되고 만다. 그럴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신자 안에 생명의 성령의 원리를 심으셨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은혜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야 할 신자의 내면을 죄가 불법으로 지배하는 상황이 되었다. 더욱 정도가 심해져서 불신자로서 죄의 지배를 받으며 살던 때와 유사한 상황이 되었다. 이처럼 거듭난 신자가, 도덕적인 삶에 있어서 불신자보다 더 악하게 사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신자가 오랫동안 죄를 멀리하고 경건한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죄를 짓고자하는 부패한 본성까지 사멸된 것은 아니다. 그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고 죄가 세력을 얻게 되는 상항으로 들어가 보라. 오히려 그는 오랫동안 경건하게 살면서 저지르지 못한 죄에 대한 욕망이 한 번에 고개를 들면서 융성해지는 정욕을 경험할 것이다. 성경이 만물보다 심히 악하고 거짓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고 죄의 맛에 길들여지고 나면 무서운 속도로 그 죄에 빠져들어 갈 수 있다.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그 죄의 세력을 약화시켜 주시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죄의 궁극적인 계획은 신자를 죄 가운데 사로잡아 두어서 하나님을 거스르는 배교에 가까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신자가 죄의 지배를 받게 될 때에 그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한 죄의 영향력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불신자였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종류의 것이다. 불신자는 죄 아래 살아가기 때문에, 마치 인간이 만유인력의 법칙 속에서 살아가면서 중력의 힘을 거의 느끼지 못하듯이, 거의 죄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따라서 그 때에는 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도 그것을 죽이고자 몸부림치지도 않는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다르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살아 보았기 때문에 죄 아래서는 그러한 은혜가 끊어진 삶의 비참함을 안나. 따라서 본성적으로 죄에 대항하고자 하는 성품이 있다. 그리고 어느 대에는 그 죄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하고 죄를 죽이고자 몸부림친다.
우리가 흐르는 강물을 따라 헤엄을 칠 때에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의 힘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그 강물을 거슬러 수영하고자 하면 비로소 그는 흐르는 물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이것은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바이다. 신자가 자신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고갈되고 죄가 장성할 때에 얼마나 괴로워하게 되는지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 사도 바울 역시 죄를 따라 살지 아니하고 항거하려고 하는 분투하는 가운데서 죄의 힘을 느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그에게 영적 생활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영적생활이란 그의 영혼 안에 새롭게 심겨진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를 따라 사는 삶이다. 호시탐탐 우리 마음 안에서 자기의 세력을 키우고 지배권 확보하려고 노리는 잔존하는 죄의 세력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건강한 영적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영적생활이란 복음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신자 안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심으신 하나님께서는 어떨 때 그 은혜와 생명이 무성하게 자라고, 또 어떨 때 죄와 정욕이 급속히 자라는지에 대한 법칙도 정해 놓으셨다. 그래서 그 법칙을 따라서 살면 풍부한 영적 생명을 누리며 승리하는 삶을 살고, 그렇지 않으면 예외 없이 핍절하고 가난한 영적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영혼과 마음은 죄의 지배로 가득 차게 되고 삶은 불순종과 악으로 뒤덮인다.
만약 신자의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생각들이 이처럼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방식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신자 안의 주신 은혜와 영적 생명력은 점점 쇠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죄와 벗하여 지낼 때는 잠시 즐거울지 모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하거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갈증을 느낄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에 따르는 영적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데도 불만족이나 고통 없다면 그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니다. 신자가 진지하고 부지런한 경견 생활을 잃어버리고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될 때에는 반드시 마음에 고통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떠한 회심을 경험을 하였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지금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기 위하여 힘쓰며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다.
V. 은혜 아래 있는 신자의 의무
하나님께서 정하신 은혜의 원리를 따르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가 예전에 아무리 죄를 많이 짓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용서와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 사도는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많다고 했습니다.(롬 5:20). 그러나 거기서 사도가 말하는 죄는 신자가 지금 사랑하며 붙들고 있는 죄가 아니다. 오히려 그 죄는 예전에 그것을 저지른 자는 자신이었다고 할지라도 지금은 미워하고 있고, 맞서 사우고 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죄이다. 따라서 죄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 위해서는 단지 죄만 많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죄 가운데 있던 사람이 어느 한순간 결단하고 은혜의 원리로 돌아와서 다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들이 필요한다. 그에게는 은혜의 원리를 따라 죄를 대적하고 죽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신자는 이제 더 이상 죄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미 주신 은혜 아래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힘써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 안에 있는 죄를 살피며, 하나님의 은혜를 거슬러 살게 하는 죄를 죽임으로써 자신에 주님이 충만히 사시도록 하여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실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우리 안에도 잔존하는 죄가 있음을 깊이 깨달아 하나님 앞에 겸비하여야 한다. 우리가 알면서도 비호하거나 무지로 인하여 우리 안에 안전히 거하고 있는 죄는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죄에 대하여 진실한 참회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여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가 이미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은 우리에게 여전히 죄가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정하고 경건한 슬픔과 거룩한 자기 비하 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만을 소망하기를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