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눅 22:44)
녹취자: 이 솔
우리는 흔히 시험에 든다는 것은 은혜에서 충분히 미끄러지고 그 다음에 죄를 짓고 그리고 침묵에 빠져있는 상태를 시험에 들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그건 시험에 든 것이 아니라 악에 빠진 것 입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서서.” 시험이 발전해서 악에 빠진 것이 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시험은 대부분 고유한 의미의 시험이 아니라 악에 빠지는 것을 시험이라 부릅니다.
그러면 시험에 든다는 것이 무엇인가? 좁은 의미에서는 우리들이 은혜에서 미끄러져 죄로 가까이 이끌려가는 것이 시험이겠지만 그러나 좀 더 넓은 의미에서 그리고 정확한 의미에서 보면 오이네의 지적에 따르면 하나님께 즉각적으로 순종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모든 것이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 새번역 성경에 유혹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저는 오히려 옛날 번역이 더 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시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바라셨던 것은 언제든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주님의 뜻이 주어지면 즉각적으로 순종하며 살 준비가 되어 있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어떻게 그런 시험에 들지 않는 준비를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주 분명한 지식의 빛을 가지고 동시에 기도에 깨어있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어서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지만 시험에 들 위험이 있을 때 거기에서 자기를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깨어 있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에게 다가오는 환경이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주는 의미를 아는 것 그것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 있는 사람은 항상 사물과 사태를 만나면서 그 사태의 뜻이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묻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보내신 뜻. 그 외 나의 목회가 어려움을 만나는 뜻. 뜻하지 않은 불행이나 가슴 아픈 일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그런 상처를 통해서도 하나님이 거기에 무슨 뜻이 있을 거다 생각하게 하는데 하나님 말씀 꼭 붙들고 은혜를 받고 열렬히 기도하지 않으면 그런 사고방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님을 섬기라고 주신 물질을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 사용해서 결국은 자신의 신앙을 망가트려 버리거나 혹은 주님이 주신 좋은 재능을 오히려 저런 재능이 없었으면 불행해지지 않았을 텐데 할 정도로 잘못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기와 명성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깨어 있기 위해서는 밝은 말씀의 빛이 필요하다 사실을 알았습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특히 교역자가 되면 제일 어려운 점은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주관적으로 듣지 않고 객관적으로 듣는 것입니다. 좋은 말씀을 들리면 저걸 내가 어떻게 가르쳐야 되겠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결국은 모든 말씀이 자신을 빗겨갑니다. 마치 마늘을 절구에 놓고 나무로 찧으면 마늘이 수없이 도망가서 튀듯이 그것이 정통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면서 영혼이 깊이 변화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심하게 과장하면 목회 시작하기 전에 가졌던 신앙을 갖고 평생 목회를 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부단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려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말씀은 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지식의 나부랭이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한번 가슴깊이 물어봐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깊이 하나님 앞에 깨드려지고 그리고 지식의 어떤 빛들이 확실하게 내 맘속에 들어와서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경험들이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계속 이일을 하면 나아집니다. 워낙 무능한 사람들이 오래할수록 오히려 더 못해지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같은 일을 되풀이 하면 나아집니다. 그냥 나아질 뿐이지 근본적이 나의 한마디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어떤 지식을 전달해주었을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 뜨거운 감동이 일어나고 하는 것들은 자신의 온 몸으로 채득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과 함께 깨어있기 위해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시험에 들지 않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그 중에 한 의견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 그 말을 뒤집으면 기도 안하면 반드시 시험에 든다는 뜻 입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어서 오늘 하루 기도 안한다고 오늘밤에 가서 커다란 죄를 짓겠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자꾸 나이가 들면서 체중이 늘어나서 몸이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체중이 늘면 에너지는 생기는데 몸이 무거워집니다. 그러면 조금만 걸으면 아주 급히 피곤해집니다. 운동량이 부족합니다. 체중이 늘어납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를 하지 않으면 영혼이 묵직해집니다. 그래서 무엇을 시키면 빨리 일어나야 하는데 털썩 앉아서 뱅글뱅글 돕니다. 무얼 주서야 하는데 빨딱 일어서 주서야 하는데 엉덩이로 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삶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사역에 있어서 얼마나 큰 차이가 나겠습니까? 왜 회사에서 나이든 사람을 싫어하는 줄 아십니까? 업무의 경험, 좋아합니다. 경험이 많을수록 노련합니다. 그런데 왜? ADD에 있는 친구 이야기의 의하면 60세가 넘어 정년퇴직하고 추가 계약직으로 근무하는데 20대 30대 박사들이 와서 같이 일을 하면 자기가 그만할 때 2시간이면 할 수 있는 일을 지금은 6시간을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더 비상하지만 순발력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생각은 많고 경험은 많은데 발딱 일어나서 얼른 주서야 하는데 힘이 없습니다. 어제는 3시간을 자고 나오고 오늘은 4시간을 자고 새벽기도를 나왔습니다. 나와 보니 쓰러져도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교역자들이 새벽기도를 소홀히 해서 어떻게 합니까? 오늘 새벽기도 하루 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이 쌓입니다. 지방층처럼. 그래서 이것을 주서와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빨딱 못 일어나고 엉덩이를 밀면서 가는 겁니다. 사역에 어떤 차이가 날지 생각을 해봅니다. 이건 야단을 치는 것이 아니라 팩트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우리가 나이가 들고 체중이 늘어서 육체를 못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별도로 노력을 해야 되고 어떤 면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저도 무엇을 해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무언가 기계가 망가져서 안 돌아가면 집중해서 그것을 뜯고 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내가 교회에서 교역자들 중에 기계에 관심이 제일 많은 사람이였습니다. 그런데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이유는 이 속에 있는 정신적인 논리와 지적인 회로의 에너지들이 뚝 떨어지기 때문에 연결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기계 작동법을 한번에 알았는데 예전에는 한번만 알고 알 필요도 없이 스위치를 눌러보면 알았는데 이제는 옆에 누가 가르쳐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계입니다.
근데 육신적으로는 어쩔 수 없지만 기도하는 영적인 순발력은 생겨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말씀의 은혜를 못받고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을 엄청나게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아는 사람은 한번에 합니다. 나이든 사람은 하다 하다 눌러보다 안되면 팔아버리든 치워버리든 새걸 사든지 아니면 망가졌나보다 합니다. 그러나 망가진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작동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빛이 있고 기도를 하면 즉각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데 둘 다 안되니까 빙빙 도는 것입니다. 사역을 해도 본질은 못 건드립니다. 주변에 것들은 됩니다. 경험도 있고 인간성도 좋으면 사람도 잘 만나고 그런데 본질을 파고들어서 우리의 임무는 적진을 시찰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특수부대로써 적진에 들어가서 그 심장부에다 진지의 심장부에 폭약을 설치하고 거기서 자폭하라는 것이 아니라 폭약을 설치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여기서 리모콘을 누르면 장엄하게 진지가 폭발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런 폭발적인 에너지가 나올 수 없습니다. 지식이 좀 모자라고 그래도 뜨거운 열정이 있고 열렬하게 기도하면서 눈물로 매달리는 사람들에 항상 본질에 접근하는 신앙의 능력이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설교를 사용해서 하나님이 이상하게 은혜를 받게 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사랑하게 하고 그 영양가 없는 설교하는 목사님을 세상에 없는 주의 종인 줄 알고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게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언제 그 본질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메이첸이 이야기한 것처럼 어느 날 학교에 떨어지는 불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성격도 있으나 그것이 주님과의 깊은 만남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온몸으로 온 맘으로 주님을 갈망하는 사람들 자기 자신의 신앙에 본질에 계속 타격을 받는 사람이 남의 신앙의 본질에도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중에 어떤 분들은 아직까지 여기에 있고 어떤 분들은 다 나중에 들어왔지만 우리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한 달에 월급 오십만원 받으면서 아니 더 뒤로 올라가면 한 달에 월급 오만원 받으면서 일했습니다. 사경회가 끝나면 나도 유별났지만 목요일 날에 사경회가 끝났는데 정리본이 주일날 나와야 했습니다. 최소한 100, 200세트의 테입이 제작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어떻게 했겠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하는 좋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교회를 집처럼 생각하면서 미친 듯이 일했고 열린교회 개척하고 6년 동안은 교역자들에게 휴가를 주어도 아무도 일주일 휴가를 다 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휴가를 가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은 칭찬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후손들도 잘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그래서 내가 옛날에 영적군사입니까 에서 복음의 신발을 이야기 하다가 이런 예화를 했습니다.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파도, 폭풍을 만나 난파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판자를 붙잡고 간신히 간신히 헤엄쳐서 다 죽고 두 세명이 간신히 살았습니다. 눈을 떠보니 어느 섬의 해변이였습니다. 살펴보니 다 죽었습니다. 자기 세명만 산 것입니다. 세명이서 생각했습니다. 어디 돌아 갈 곳도 없고 완전히 덤으로 받은 인생이다. 거기서 수많은 배들이 난파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다가 그 횃불을 밤마다 켜고 배들을 안전하게 인도하는 역할을 하자 그런데도 조난을 당합니다. 그래서 미친 듯이 작은 배를 타고 가서 사람들을 건지고 그렇게 건진 받은 사람들은 또 자기가 살아난 것에 감사하고 맘이 한뜻이 되어서 거기에 등대를 세우고 그리고 파산당하는 배들이 있으면 가서 구조대 역할을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니까 조를 짜기 시작했습니다. 이 많은 사람이 다갈 필요가 있나 그리고 우리가 구조 활동을 잘 하려면 평소에 친교를 든든히 해야 한다. 연애실을 지었습니다. 평소에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사우나실을 짓고 (지음)도 지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진짜 폭풍이 일어난 밤에 배가 파선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밤바다에서 울부짓는데 모여서 파티를 하면서 이 어두운 밤 폭풍이 있는 때에 저 바다에 나가기에는 너무 위험하고 무모하다 생각하며 그 바닷가의 밤이 깊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처음 마음을 늘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다시 돌아가기입니다. 그래서 간절히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만약에 그냥 일을 하는 것이면 우리는 정말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명이라 생각하고 주님 앞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좀 일찍 나와서 새벽기도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좀 일찍 교회 나와서 허덕거리며 9시에 뛰지 말고 이분 전에 터치하지 말고 좀 일찍 나와서 예배당에 나와서 간절히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하고 그리고 일이 끝나도 좀 간절히 기도하고 그렇게 하고 좋은 예배자가 되고 기도자가 되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보실 때에 “아 너는 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였구나”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