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감사할 이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1:12)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한 해 동안 살아온 것을 되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한 해 동안 굶주리지 않고 먹고 살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양식을 주셨기 때문이고, 우리에게 의복을 입혀 추위와 더위를 피하며 건강을 유지하게 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필요한 모든 이 땅의 자원들을 우리의 손의 수고로 혹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받게 하셔서 우리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는 더 많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했습니다. 쓰러질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붙드시고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밝혀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미천한 인간들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해 동안도 생명을 부지하며 살아왔고, 거미줄 같은 신앙이나마 우리 주님을 붙들고 미끄러지지 않고 여기에 서 있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살아온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것들이 분에 넘치는 하나님의 자비였습니다.
II. 영원한 감사의 제목
우리가 만입이 다 있으면 주님의 이 은혜를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서 주님이 이제껏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록한다면 모두 쓸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은 그 모든 것들 위에 뛰어나서 모든 성도들에게 기림을 받아야 할 감사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골로새 교인들만이 아니라 오늘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여러분이 감사하게 되기를 바라는 제목이기도 하였습니다.
A. 기업을 얻음
그 첫 번째는 기업을 얻게 하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라고 말입니다. 희랍어 성경에 보면 성도들의 유산에 대해 참여자가 되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그 유산, 혹은 성도들의 기업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성도들의 기업이라고 할 때 이것은 기업을 누리는 주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것인데 성도들에게 주셔서 성도들이 마음껏 누리게 하신 하나님의 후사들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도 그것을 누릴 수 있어 우리의 소유가 된 것을 가리켜 성도들의 기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원래 이 기업이라고 하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때 미리 제비뽑기해서 얻은 그 땅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신 그 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이제 땅만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하나님의 허락 하에 받은 정당한 분깃 혹은 유산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성경은 성도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누리게 되는 유업을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하나님이 하신 그 모든 자기의 자녀들에게 하신 약속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 우리도 그 약속의 혜택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9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말입니다. 또 히브리서 6장 17절은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받은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유업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전에는 그 약속과 상관이 없는 이방인이었고 하나님 바깥에 있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주님이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주시는 모든 약속이 나의 약속, 나를 위한 하나님의 혜택의 약속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약속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비록 결핍 속에 살지만 풍요의 약속을 믿고 살아갑니다. 지금은 비록 고난을 당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를 지키시겠다고 하는 그 약속을 믿고 살아갑니다. 때때로 이 세상에서 죄와의 싸움에서 지는 것 같지만 결국은 이기게 해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성도들이 받을 또 하나의 유업을 말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릴 수 없는 그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안에서 얻게 하셔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형벌 받을 죄인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의를 대신 힘입어 하나님 앞에 옳은 자, 의로운 자, 하나님의 언약을 정당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게 하였느니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약에 사는 우리들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노아와 아브라함과 같은 구약의 인물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를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굳게 확신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쁨을 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코 의롭지 않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루신 그 의를 덧입혀 주셔서 우리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나님의 법정에서 선언하십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삶을 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노예로 그리고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의 의로운 자녀로 삼아주셔도 의로운 자녀들이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기업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도들로서 하나님이 이미 이루진 그 구원에 참여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 충만한 하나님의 구원은 생명의 은혜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3장 7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이 의를, 혹은 구원의 열매를 생명의 은혜로 말합니다. 하나님은 천사들보다 훨씬 우리를 뛰어나게 만드셔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썩지 않은 영원한 유업을 잇게 하셔서 하나님이 주신 그 하늘나라의 분깃까지 상속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성도들이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유업입니다. 이것들을 마음껏 누리고 이것들을 자원 삼아서 예전에는 없었던 자원을 우리의 것으로 삼으며 살아서 예전에 이길 수 없었던 삶의 승리를 가져오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런 모든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구원, 이 생명의 놀라운 은혜, 이 모든 것들이 바로 머리 되신 그리스도 예수께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음으로 머리되신 그분께로부터 분여 받으며 살아가게끔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한번 오늘 우리의 삶을 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약속이 없기 때문에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의를 덧입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죄와 불순종 가운데서 사망 속에서 죽어갑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자원으로 도저히 자신의 삶을 영위해 갈 수가 없습니다. 이 땅의 자원은 우리의 육체를 보양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사는 우리의 영적인 삶에 있어서는 충만한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모든 자녀들을 그 분의 기업의 참여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유업을 누리며 참여하게 해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이미 이루신 이 위대한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구원을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물려받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과 함께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과 더불어 쏟아진 이 생명의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누리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지난 한해도 우리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시련과 고난과 역경을 통과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조용히 기도를 하면서 올 한 해의 살아온 삶을 생각했습니다. 정말 쉽지 않은 한 해를 살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힘들게 살아온 그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는 다른 어느 해 보다도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인생의 무게를 주실 때에는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주시고, 역경을 주실 때에는 역경을 피할 지혜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해서 우리의 것이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성도 삼으시고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에게만 주시는 그 유업에 지분을 가진 참여자가 되게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모든 것들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 해를 시련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 고난보다 더 큰 하나님의 생명 때문에 이기며 살 수 있었고 이것은 결코 우리의 자격이나 스스로의 공로로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한 해 동안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늘의 신령한 기업 때문에 얼마나 감사했습니까? 매일매일 코 박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현실에 매몰되어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자신이 당하는 시련과 고난에 집중하느라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위해서 무슨 일을 행하고 어떤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는지는 잊고 살았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작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매우 크게 보였습니다. 세상은 드넓어 보였고 하나님의 나라는 손톱 만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허둥지며 살아온 인생의 많은 날들은 목적이 뚜렷치 않으므로 의미를 갖지 못했고 우리의 인생에 더 많은 날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보다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입을지에 의해 소비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님의 찬란한 은혜의 빛이 가득하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언제나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풍성한 기업의 영광에 꽂혀 있었습니다.
(찬양)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마지막 피 한 방울 날 위해 흘리셨네
바람같이 스쳐가는 인생입니다. 20년 혹은 40년의 세월이 살같이 지나가고 언제 올지 예측할 수도 없던 그 미래가 오늘 우리에게는 현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과거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날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옥 속에 갇힌 사도바울이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간절히 편지를 쓸 때 너희의 눈을 열어 하늘의 영광스러운 기업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그 영광스러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노래했습니다. 감옥 속에 갇혀서 순교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인생의 마지막 때에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사도는 하나님이 너희의 사랑을 총명으로, 지식으로 풍성하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였습니다. 성도는 또 다른 기쁨의 이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쓰레기 같은 세상에서 자신의 삶의 보람을 찾지 않습니다. 하늘의 가치에 그 마음이 사무쳐 그 영광스러운 하늘 가치를 이 땅에 구현하면서 사는데서 행복을 누립니다. 그 기업의 풍성함을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B. 빛 안에 살아감
마지막으로는 빛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라고 말입니다. 희랍어 성경에는 ‘엔토포티(ἐν τῷ φωτί)’ ‘그 빛 안에서’라고 말합니다. 일생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빛을 봅니다. 저도 회심하기 전 책을 읽으며 나는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지혜의 빛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 빛이 하나님의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거나 혹은 하나님의 진리의 일부분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 빛이 참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빛이었지 그 빛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을 보여주고 우리로 하여금 힘을 내서 살도록 도와줄 때도 있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은혜는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는 골로새 교회 교인들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빛 안에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 빛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신학적인 의미에서의 빛입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와 성경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는 종교도 있었고 젊음도 있었고 열정도 있었고 그리고 자기를 희생하고자 하는 헌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사용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고 그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왜 종교도 있고 열정도 있고 헌신도 있고 비전도 있었는데 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까? 바로 그 빛이신 그리스도를 못 만났기 때문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은 예전에 유대교에서 발견했던 한 빛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셔서 모든 인류를 그 빛 아래에 살게 하시고 싶어 했던 바로 그 빛,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버리신 자기의 살과 피를 통해 그 빛을 얻게 된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이고 그 빛이 마음속에 심겨진 사람들입니다. 그 빛은 그 사람의 지성과 마음 안에서 때로는 밝아지기도 하고 흐려지기도 합니다. 그가 어떻게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사느냐에 따라서 찬란하게 빛나기도 하고 사위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빛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 빛을 지니고 계십니까? 그 빛에 가슴이 뜁니까? 무지개를 보면서 마음에 고동치는 것을 경험하는 어린 아이들처럼 그렇게 그 빛이신 그리스도를 날마다 만나며 가슴이 뛰는 감동과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그 빛 때문에 모든 어두움을 물리치고 그 빛 때문에 고정된 삶의 목표를 따라서 살 마음을 갖고 계십니까?
이 빛은 또한 윤리적인 빛입니다. 이것은 거룩함의 열매인 도덕입니다. 비록 우리는 우리 원하는 대로 한 해가 전개됐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저도 1월 1일에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과는 다른 삶이 전개되기를 기대했습니다. 많은 것들이 저의 기대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것들은 나의 기대에 현저히 미치지 못해서 현실을 직시할 때에 괴로운 마음도 듭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하나님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삶의 사태들이 전개될 때조차도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지는 않게끔 나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형통할 때만 순종한 것이 아니라 불통할 때도 순종할 마음을 주셨고, 내 마음대로 삶의 사태가 전개될 때만 하나님 의지하게 하지 않으셨고, 내 맘대로 전개되지 않고 때로는 회피하고 싶은 현실을 마주할 때에도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빛이 제 마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빛은 거룩함의 열매로서의 도덕의 빛입니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바가 없을 수가 없고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의 원하는 대로 삶을 전개되는 마음이 없을 수 없고 그것을 가진 것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자기가 바라는 대로 삶의 사태가 전개되지 않을 때에 나타납니다. 마음이 올곧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삶의 상황이 자기 마음대로 전개되지 않을 때 뒤로 물러가 죄에 빠지고 자기의 불순종을 정당화합니다. 심지어 모든 사람들이 합력해서 자기의 뜻을 이루는데 이바지해 주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아부도 받아보고 싶은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인생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칼빈은 자기의 책 속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시련이 오든지 고난이 닥치든지 때로는 잘못된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이 세상의 모든 만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자. 그리고 범사에 그를 의지하며 살자.’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밝히 보여주시는 뜻이 있고, 이것을 계시라고 부릅니다. 또 하나의 뜻은 밝히 보여주시지를 않고 살아봐야지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서서히 알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두루마리를 필치는 것처럼 펼쳐짐으로써 겨우겨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삶의 사태가 자기 원하는 대로 전개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넘어져도 다시 그 빛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한 해 동안 과연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셨습니다. 고난과 시련 속에서 말씀의 빛으로 우리를 깨우셨고 우리 원하는 대로 삶이 전개되지 않을 때에도 아주 물러가 더러운 자들이 되게는 아니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약한 결심과 용기가 그 일을 감당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련 속에서도 여전히 비치는 진리의 빛이 나를 온전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당신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폐할 수 없는 것임을 믿었기 때문에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좋으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설명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모든 시련의 날들을 지나오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고, 그 말씀을 붙들며 살려고 하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찬양)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III. 적용과 결론
이 빛 안에서 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오늘 여러분이 여기에 있으니 이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고난과 시련 우리들의 마음을 쓰라리게 했던 아픔들을 기억하지 말고 그것들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새기십시오.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일들은 물에다가 새기시고 그 가슴 아픈 사건과 고통,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통해서 주님이 보여주셨던 그 무한하고 넓은 사랑은 돌에다 새기십시오. 그렇게 돌에 새기는 것처럼 마음에 아로 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가 은혜인 줄 알 때에만 은혜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은혜인 줄 모를 때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베푸셨습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총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최고의 표현은 주님이 여러분에게 하시는 모든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