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주시기를 기도하라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우리 하나님 말씀은 누가복음 11장 13절입니다. 같이 읽읍시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는야 하시니라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문제를 만난다고 해서 문제도 아니고 또 문제가 없다고해서 문제가 없는것도 아닙니다. 잘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이 살아가다가 혹은 사역을 하다가 어려움과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떤때는 그 어려움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앞에 매달리게 되요. 그러고 나서 나중에 생각해 보면은 그 어려움이 생긴게 참 하나님에 놀라운 은혜예요. 왜?
그 어려움 때문에 나태해졌던 마음을 하나님께 모으고 아버지께 간구하게 되었던 것이죠. 어렸을때 아이들이 까불고 장난을 치다가 부러지잖아요? 그죠? 우리 저기 교역자들도 저기 교역자 수련회가서 축구하다가 발이 부러지고 몇사람 그랬는데....그 부러진 자리는 절대 다시 안부러져요. 왜냐하면은 부러진 자리는 붙으면서 아교질이 나와 가지고 뼈가 쪼개진 그 부분이 불룩 뛰어나와서 크게 뼈가 형성이되요. 그러니까는 절대 안부러져.
어디갔어? 김선구 전도사. 휴가야? 휴가갔어? 김선구? 발가락이 부러졌잖아 다시 붙잖아 그러면 그 발가락은 절대 안부러져 딴데 부러지겠지. 그러니까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어려움이 생기고 그러면은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들이 하나님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은 그게 나쁜것처럼 보였는데 오히려 우리에게 좋은것을 주시잖아요 그쵸? 그거예요.
그런가 하면 우리에게 모든것이 부족한것이 없이 평안하고 다 좋았는데 그렇게 모든것이 좋고 편안했는데 그것때문에 사실은 나쁘게 되는 경우도 있단말이죠. 문제는뭐냐하면은 나쁜것이 왔을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있는 어떤 힘이 우리에게 있으면 나쁜것이 좋은것이 되지만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없을때에는 그 나쁜것이 그냥 나쁜것이 되는거죠. 그래서 예방주사에 따라서 어떤 예방주사는 그 사람에 건강상태를 충분히 고려해서 놔주는 그런게 있어요 그죠? BCG같은거. 몸에 기운이 없어가지고 빌빌한 사람에게 그걸 놔줘가지고 진짜 결핵이 될 가능성도 있잖아요? 그런거예요.
그럼 그렇게 나쁜것들도 우리 몸에 받아들여서 좋은것으로 바꿔줄 수 있는것이 우리에 면역력 혹은 우리에 체력이라고 한다면 우리에 삶속에서 일어나는 그런 나빠보이는 것들을 그렇게 나빠보이고 그런 것들을 바꾸는게 체력인 것처럼 동일하게 그 우리에 마음안에서 그렇게 면역력과같이 우리를 바꿔놀수 있도록 작용할 수 있는 요소가 뭐냐하면 성령으로 충만한거예요. 그러면 그 나쁜것을 좋은것으로 바꿔놀수 있는 힘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은혜 충만하고 성령 충만했을 때에는 능히 이겼었는데 그렇지 못할때에는 우리들이 못이기잖아요? 그런것도 바로 이런데서 원인이 생겨나는 거란 말이죠.
근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유명한 비유, 말씀하시면서 그러면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예수님 이 가르침을 주시면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고 했던것이 뭐냐하면 성령을 구하라 그 가르침이었어요. 성령을 구하라. 그게 가르침이었어요. 성령을 구하라. 그것이 가르침이었어요. 그러면 그것이 얼마나 절실한 그 기도에 제목이 되어야 하는것을 보여주죠. 공교롭게도 그 앞에는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는 문맥이 나와요. 그럼 생각해 보십시요. 비참한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에 이름과 그 영광을 위해서 살고, 그 나라를 위해서 살게하는 힘이 어디서 나올까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용할 양식이 주님께로 부터 나온다는 그 겸손한 마음은 어디서 올까? 자신에 먹을것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하나님앞에 모든 이웃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여기고 하나님앞에 그 동일한 양식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적인 마음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또, 자기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을 용서해주는 그 관용이 어디에서 나오겠어요?
악에 빠지는 위기속에서 그것들을 분별하고 죄의 계획을 헤아릴 수 있는 그 모든 힘들이 어디에서 나오겠어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는 그 소명으로써의 삶이 어디서 나오겠어요? 그게 성령이 아니면은 불가능한거예요. 그 성령은 곧 하나님에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삼위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예요. 본질이예요. 그것을 통해서 하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고 구원하신 계획들을 성취해가시는 거죠. 그거에 의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거죠.
그래서 신자의 삶이라고 하는것은 결국 성령과 함께하는 삶이예요. 불신자에 삶도 좁은 의미에선 성령과 관계가 없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결국은 성령에 함께 하심이 있기때문에 선악도 깨닫고 그리고 진리에 이치들도 발견하게 되는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결국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해져야될 그것은 우리에 피할 수 없는 불옷입니다 이런 이야기예요.
우리에 기도생활은 대부분 우리가 무엇인가를 바라고 원하는 것들에 대한 청구로 가득차기 쉬워요. 그런데 사실은 정말 필요한 것은 주님 자신이 아니겠어요? 주님 자신이 우리와 충만히 교제해 주실때, 수 많은 기도에 제목들은 사라져요. 아빠가 멀리 장사나가고 가족들이 모여서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고민을 하다가도 돈 많이 번 아버지가 돌아오면 문제가 한번에 해결이 되는것 처럼 역시 우리에 인생에 많은 문제도 그런 것이죠. 그래서 주님에 충만한 은혜와 성령에 역사가 우리 내면에 세계에 깃들어서 우리를 정화하고 순결하게 하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에 섬김과 사역 속에 충만하게 넘쳐서 그래서 주님에 계획을 이루는데 우리에 섬김이 헛되지 않도록 그렇게 해야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큰 차이예요. 우리도 이제 회심집회를 앞두고 있지만 성령이 함께하시는 회심집회와 함께 하시지 않는 회심집회는 비교할 수 가 없어요. 아무리 좋은 말로 아이들을 타일러도 성령이 그 아이들에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켜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그런 종류의 집회와 그것이 없는 가르침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차이가 있는거죠.
그런데 우리에 삶속에서 사실 많은 시간을 기도해도 이렇게 우리 자신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지길 그렇게 기도하는적이 얼마나 드문지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에 마음이 성취와 성공에 들뜨기는 쉽지만, 성령에 역사가 없이는 본질적인 사역과 섬김에 있어서 진전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그 성령에 충만한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소수인지 생각해 보십시요.
은혜로 충만한 신자에게는 나쁜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에 큰뜻을 이루는 역할들을 하기 때문이죠. 하루 반 만에 필리핀을 가서 집회를 하고 왔는데, 뭐 정말인지 거짓말인진 모르겠습니다만 필리핀에서 세계에서 제일 큰 진주가 발견이 됐는데, 직경이 27센티라네. 도데체 그거를 품었던 조개는 몇미터짜린지 좀 궁금한데, 미국에 보관돼 있답니다.
근데 그게 630억원에 팔렸다고 그래요. 근데 이제 진짜 진주와 가까 진주를 구별할 수 있는 법을 하나 가르쳐주자면은 진주를 돋보기로 보아서 숨구멍이 있어야지만 그게 진짜 진주랍니다.
숨구멍이 없으면 화학제품이예요. 아주 미세한 숨구멍. 근데 그게 또 너무 많으면 상품가치가 떨어지고, 단 하나라도 숨구멍이 있게 마련이란 거죠. 그거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냐면은 그것도 어쨌든 몸에 조개몸에 일부가 되어서 그래서 붙어있으니까 그것도 결국은 숨구멍이 생겨서 생명과 접촉했던 흔적을 남기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주님에 은혜 안에서 살게되면은 우리에 모든 고통과 괴로움 그 속에도 숨구멍이 있어요.
그래서 주님과 교통하고 그 은혜안에서 산 흔적들이 거기에 묻어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에 고통의 비밀이예요. 그래서 은혜 가운데 살고 충만한 성령의 은혜 가운데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쁜일이 일어날 수 없어요. 왜냐하면은 바로 그 충만한 은혜와 사랑안에서 우리들이 놀라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들을 발견하기 때문이예요.
그렇게 우리에 고통이 우리를 헤치는 고통으로 남지 않고, 우리에 숨이 들어가서 그것들이 우리에 인생에 일부가 될뿐만 아니라 가장 나쁜것들이 가장 좋은것으로 변하게 되는 그런 일들을 풍만한 은혜는 가능하게 한단 말이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고, 가슴 아픈 일이 있을때에는 주님 매달리다가 평탄하고 어려운일이 없을때 그렇게 우리가 부패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것 아니예요?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간절히 성령주시기를 기도하도록 우리에게 가르친것이예요. 그것이 세례로 표현되던 아니면 그것이 충만으로 표현되던, 그것이 초월적 사랑으로 표현되던 내재적으로 싸워이긴 설복이 되던지 간에 용어는 어찌하던지 간에 우리가 그런 성령으로 우리 자신에 인격과 마음이 깊이 젖어서 녹아들어서 그래서 아버지 앞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된다고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거죠. 그래서 마음을 다해서 여러분들이 이제 여름이 꺽어지는데, 주님에 성령에 은혜로 나를 충만히 채워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서 금년에 남은 동안도 성화에 그리고 우리에 삶속에 많은 열매를 맺게되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