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슬픈 자의 기도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삼하 1:15-16)
녹취자: 백지영
I. 본문해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한나라는 여자가 성소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엘리라고 하는 제사장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엘가나라는 사람에게 두 아내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한나 정실이었고 브닌나라는 사람은 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한나는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아이가 없었고 그래도 남편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브닌나가 아이를 갖고 그렇게 되니까 자기 분수를 잊어버리고 한나를 아주 심하게 예의없이 구박하고 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한나가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식음을 전폐하다가 고통을 하고 있을 때에 이 엘가나가 위로했습니다. “그대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이런 남편의 위로는 참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것이지만 그러나 그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남편의 위로가 이 여자에게 충분했더라면 아마 이 여자는 일평생 그런 삶을 살다가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에게는 남편의 이러한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여호와께 간절히 통곡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에 쌓였던 모든 슬픈 심정을 하나님 앞에 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슨 원대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나 위대한 경륜을 위해 기도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아들 하나만 낳게 해 달라는 소원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서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 앞에 세우시려고 할 때 언제나 남들이 보기에 위대하고 놀라워 보이는 커다란 영광스러운 기도의 제목들만 가지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가장 흔히 일어나는 일, 가장 연약한 일, 이런 것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하나님 앞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 성경본문을 가지고 설교하면서 ‘마음이 슬픈 자의 기도’라고 제목을 붙여 보았습니다.
I. 본문해설
A. 절망 가운데 기도함
이 여인의 기도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는 데 제일 먼저 절망 가운데 기도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만 얼마나 아이가 낳고 싶었겠습니까? 아마 민간의 비방이라는 비방은 다 해보았을 것이고 아마 하나님께 기도도 올려보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라헬처럼 나에게 아들을 낳게 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난 죽어버리고 싶다고 남편에게 앙탈을 부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으로도 해결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절망 가운데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고 슬픈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열 아들보다 내가 더 낫지 않느냐는 남편의 지극한 사랑이 이 여자에게 위로가 되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이 여자에게 좋은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인생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 받을 수 있는 길을 찾는데 하나님이 절망을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 날도 남편이 주는 떡이나 좋은 음식을 받으면서 이 남편의 위로에 마음이 가라앉았더라면 그래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았더라면 이 여자는 사무엘의 어머니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도 의지할 수 없도록 우리를 절망 가운데 두시거나 혹은 소외 가운데 두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 어떤 사람도 내 마음에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정말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때로는 외롭게 하시고 정말 당신이 도와주고 싶은 사람들을 절망의 벼랑 끝에 서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거기서 이 세상의 다른 것들을 의지하던 마음을 모두 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을 전심으로 의지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마음을 고쳐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펼쳐지는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를 절망 가운데 짓밟히는 것 같습니까? 누구에게도 나의 마음을 쏟아 놓을 수 없는 그런 처지에 있습니까? 이것은 여러분들이 정말 외롭기 때문에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나를 아무리 많이 이해해 주는 사람도, 나와 한 피를 나눈 형제도, 심지어는 나를 위해서 당신의 생명까지도 주실 수 있는 나의 부모도, 내 자식도, 아내도, 남편도 함께 가지 못하고 나 혼자 가야 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버리셨고 포기하셨기 때문에 그런 절망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당신을 찾으라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망과 그리고 큰 두려움이 밀려올 때마다 여러분들은 그 슬픈 마음을 안고 주님을 등지게 되면 반드시 시험에 들게 되고 범죄 하게 됩니다. 그때 오히려 그 슬픈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오고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마음을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난 신앙생활을 생각해 보십시오. 절망 중에 있을 때말고 하나님께 뜨겁게 부르짖은 적이 언제입니까?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간절하고 열렬했는지요.
B. 하나님께 심정을 통함
이 여인의 기도의 두 번째 특징은 하나님께 심정을 통한 기도였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오래도록 기도했습니다. “아들을 주시면 내가 일평생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 즉 머리를 깍는 칼을 그의 머리카락에 대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나실인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구별된 나실인으로서 서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니까 이제 기운이 탈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데 입술은 움직이고 말은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그가 술을 먹고 취한 줄로 생각을 하면서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그 때에 한나가 대답합니다.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입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많이 마신 사람은 현실감이 없지요. 왜? 상상 속에서 자기 자신 속에 몰두하니까 현실감이 없는 것처럼 이 여자는 오랫동안 침묵 속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에게 온전히 집중했기 때문에 이 여자의 간절한 마음의 기도는 이 여자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한 모든 시간이 하나님 앞에 심정을 통한 시간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주저리 주저리 하나님 앞에 기도는 했지만 감히 심정까지도 통하였다고 말 할 수는 없을 때가 많지 않습니까?
(찬양)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내 심사를 통촉하시고 부르짖는 소리 들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
그것이지요. 기도를 한참 하고 나니까 두 가지 확신이 드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 쏟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나의 이 아픈 마음을 통촉하셨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도 없으나 내가 아버지께 마음을 토했고 주님이 내 마음을 통촉하셨으니 나는 감사합니다. 이런 기도를 한나가 드렸습니다.
얼마나 많은 우리의 기도가 심정의 통함이 없이 형식적으로 드려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의 능력은 큰 소리로 부르짖는 것이나 육신적으로 열렬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은 집중에서 오는 것입니다. 실제 여러분들이 금식을 해 보면 그렇게 많이 기도하지 못하잖아요? 너무 기운이 없어요. 그런데 이 기도는 영혼으로 하여금 곡기를 끊고 하나님 한 분을 앙망하도록 만들어줍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심정을 통하는 기도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 한 분만을 앙망하고 있는 이 한나의 기도를 보고 우리는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하나님은 사면을 두루 살피며 전심으로 당신을 찾는 자들을 찾으시고 갈망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능력 있는 기도의 가장 커다란 방해물은 마음의 분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의존해 있는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높은 곳에서 부은 물이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것처럼 기도는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아닌 것들을 사랑하거나 교만해지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분산되고 정신을 찢어지고 우리의 기도는 아래에 있는 물을 위로 퍼 올리는 것처럼 힘겹게 힘겹게 기도가 행해집니다. 가장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기도하기 위해 앉았을 때 언제든지 입을 열면 폭포수처럼 마음이 쏟아지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통이 즉시 시작되는 사람, 그 사람은 기도하기 전까지 하나님의 임재 아래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실제로 기도회를 시작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문이 열리지 않아서 기도를 못하는지 모릅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그 기도의 문을 못 열고 기도회를 마칩니다. 어떤 사람은 한동안 시간이 흐른 후에야 기도가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어떤 사람을 기l도의 문이 열리자마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는 상태의 삶이 기도 속에서 한 번에 확 자신의 마음이 쏟아져 나오는 이 기도의 실천은 평소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며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살고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는 그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하나님께 심정을 통하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C. 기도로 승화된 원통과 격분
마지막으로 기도로 승화된 원통과 격분입니다. 이 여자는 절망 가운데서 기도했고 하나님께 심정을 통한 사람이었는데 사실은 이 사람은 기도하기에 적합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온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원통과 격분을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그는 브닌나로부터 부당한 대접을 받으며 격분하였는데 울기 때문에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슬픈 여자가 되었습니다. 이 여자도 그저 평범한 여자 중 한 사람이었으니 다른 이유도 아니고 첩이 낳은 아이를 못 낳아서 멸시를 당한다고 할 때에 이 여자의 마음이 얼마나 통분에 가득차고 그리고 원통하고 분노가 치솟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원통하고 격분하게 될 때 자기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사람을 응징하거나 복수하려는 마음을 품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신앙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래서 원통하고 격분하는 마음을 품고 범죄 하는 대신 하나님 앞에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을 가진 사람의 행동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간절히 이 여자는 마음에 일어나는 원통함과 격분을 기도로 승화시켰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여자와는 다른 이유 때문에 우리는 매일매일 원통한 일을 당하고 분노할 만한 일을 만나고 고통을 경험합니다. 그 때에 우리들이 만약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죄를 짓게 됩니다. 원통한 일이 있는데 어찌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으며 분노가 격해졌는데 어찌 마음으로라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이 모든 삶에 대한 믿음의 반응이 바로 기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은 원통하고 격분하지만 이 한나는 브닌나에게 찾아가서 머리끄덩이를 잡아 댕기고 발로 짓밟는 행동을 하는 대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모든 것을 아시는 그 분께 쏟아 놓으리라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마음을 하나님 앞에 모두 쏟아 놓으며 주님을 의지하게 될 때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할 심정이 살아나게 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나니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취하시는 이도 여호와시니”, 그렇게 생사 간에 주님의 주권을 의지할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실은 바로 그러한 마음을 가지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때로는 시련을 주시고 누구도 우리를 도울 수 없는 지경에 우리를 홀로 두셔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도록 매달리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러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모두 살피고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누군가에게 나쁜 일을 당하였을 때 그에게 원통한 마음을 품고 그에게 분노하게 되면 제일 먼저 손해를 입는 사람이 그렇게 분노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자기 자신입니다. 그 마음으로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니까 절대로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무조건 원통하고 마음에 분노가 일어날 때조차도 우리의 인생 모두를 주관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면서 내가 그분께 아뢰리라, 욥이 말한 대로 “내가 내 육체 바깥에서 중보자를 보리라” 했던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야지 그 원통하고 격분한 마음을 가슴에 꽉 품으면 마치 사람이 불덩어리를 끌어안은 것처럼 자신이 타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내게 일어난 일들을 모두 고하며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나에게 악을 행하고 나를 원통하게 하고 격분하게 하는 사람의 인생을 하나님이 아울러 붙들고 계시오니 하나님께서 은혜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때 이 원통한 마음과 격분은 기도로 승화되게 되고 그러면서 우리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와 죄를 남길 이 미움과 원망들이 사라져 오히려 이 세상을 적당히 경멸하고 땅에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바라볼 마음을 갖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고 의지하게끔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언제나 거기 계셔서 당신의 자녀들의 이 원통함과 격분을 지켜보시고 그들이 기도로 승화시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원통하고 격분한 마음을 품고 범죄 하거나 혹은 근심과 염려로 마음을 모두 썩여 하나님께 매달릴 이 은혜조차도 소멸시키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높은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구속하시고 완성하실 하나님의 그 큰 섭리 속에 나의 죄와 그리고 나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나의 인생과 이웃의 인생과 모든 미래들이 그분의 주권 안에 있습니다. 그러면 승리하는 사람은 그 위대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그 원통한 마음과 격분을 기도로 승화시킨 사람들일 것입니다. 사람이 기쁜 일이 생기거나 원통한 일 그리고 감동을 크게 받거나 혹은 분노하게 될 때 수많은 언어들이 끓어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하고 싸울 때면 말 못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청산유수로 나옵니다. 밤새도록 솟아나도 언어가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쓰레기 같은 언어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은 그 속에 있는 그런 언어 중 단 하나도 받으시는 것이 없습니다. 분노한 마음에서 솟아나는 언어 중 기도에 사용될 수 있는 언어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그래서 “하나님은 온 땅과 만물 위에 뛰어나셔서 홀로 내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내 인생이 역경을 만났을 때도 주님의 주권 아래 있고 순적한 환경을 만났을 때도 주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내가 이러한 원통한 일을 만났습니다.” 그것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모두 쏟아 놓으며 우리의 원통한 마음과 격분을 기도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리고 마음이 슬픈 상태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래서 한나처럼 놀라운 은혜를 입게 하시는 것입니다. “엘리가 대답하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 그 다음 말이 재미있어요. “그리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하는 빛이 없었더라” 이게 뭐지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오는 하늘 평안인 것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평안이 충만하게 내렸을 때 그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큰 기쁨들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신자의 삶이 우리의 일생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III.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시련과 절망 속에서 하나님 앞에 심정을 통하게 하시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역경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로 승화되는 믿음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마음에 있는 모든 염려와 근심과 고통을 오늘 이 한나처럼 마음을 모두 주님께 쏟아 술 취한 여자처럼 하나님 한 분만을 구했던 것처럼 그렇게 주님께 매달려 이 여자처럼 응답을 받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의 빛이 없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