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절망의 끝에서 만난 하나님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그 의자에 앉았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 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그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 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삼상 1:9-20).
I. 본문의 배경
이 사무엘상서는 매우 중요한 성경책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이 사무엘서에서 다루고 있는 사무엘이라는 선지자의 시대에 와서 그 복잡한 사사시대가 끝나고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세우신 왕이 세워지는 시대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모세와 함께 가장 중요한 선지자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왕국이 없던 사사 시대와 왕이 세워져서 왕국의 시대로 접어드는 그 격동기에 두 역사의 줄을 함께 붙들고 있는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사무엘 시대에 와서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사연 끝에 왕을 세우기로 결심을 하시고, 그 왕을 세워 이스라엘 나라를 통치하게 하셨습니다. 이 사무엘은 바로 처음 두 왕, 사울과 다윗을 기름부어 세운 장본인이었습니다. 특별히 다윗은 선지자로서 사무엘이 중요한 사람이었던 것 못지않게 왕정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그렇게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던 위대한 하나님의 도구인 사무엘이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매우 큽니다. 그것은 바로 이 사무엘의 출생이 믿음의 어머니, 한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상당히 많은 장을 하례해서, 부분을 하례해서 사무엘이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다루면서 그러면서 우리에게 믿음의 중요성,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한나의 삶의 모본을 통해서 사무엘이 받은 하나님의 주권적 사상에 대한 영향까지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이 한나는 그저 믿음은 훌륭한 여인이었을지 모르지만, 비범한 여인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냥, 평범한 집안에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옛날로 말하면 칠거지악중 하나인 자식을 생산하지 못했어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나 우리나라에게 있어서나 자녀를 생산하지 못하면 의학적으로는 그것은 남성의 책임일 수도 있는데, 모두 여자가 뒤집어쓰던 그러한 시대가 아니었습니까. 그러니까 남편인 엘가나는 이 한나를 지극히 사랑했지만, 첩으로 들어온 브닌나가 이제 그를 잉태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리고 그를 구박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첩이 자녀를 낳고, 본처인 자기는 자녀가 없었을 때에 이 여자의 마음은 깊은 고통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II. 절망의 끝에서 하나님을 찾음
히브리말로 아들이라는 말을 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옛날에 벤허라는 영화를 보셨죠? 허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훌의 아들이라는 그러한 뜻입니다. 그래서 이 벤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면 집을 세우다라는 의미를 가진 바나 동사에서 왔어요. 그러니까 여자가 시집을 가서 아들을 낳아야지만, 자기의 집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여자는 아직까지도 집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가 한없이 고통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착한 엘가나는 이 아내를 지극히 사랑했고 그래서 이 아내 마음에 위로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여자의 마음은 아들이 없어서 당한 깊은 상처와 고통은 남편의 지극한 사랑으로도 채워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생활을 하다가 결국은 본처의 자리를 빼앗기고 물러나서 쓸모없는 여자가 되어 퇴출되는 경우를 아마 이 한나도 자신들의 조상과 주변의 역사에서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의 입장에서는 이 일이 대단한 것 같지 않았지만, 당시로 돌아가서 이 사실을 생각하면 그것은 정말로 절망 끝에 서 있는 그러한 여자의 심정이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 한나를 보면서 이제 그가 그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가 될 때까지 그가 이 바로 큰 절망의 끝에서 하나님을 찾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사무엘은 믿음으로 태어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에 버스를 많이 타고 다니잖아요. 요즘은 그러한 것을 안 하는데. 그 버스 운전수들이 어떠한 소녀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장면, 사진을 하나 촌스러운 것을 그려놓고 그 옆에다가 오늘도 무사히. 교통사고가 참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난 그래서 어느 소녀인 줄 알았어요. 그랬더니 그게 바로 사무엘이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유명한 성화에요. 그 그림에 나오는 걔가 바로 오늘 이야기 하려는 걔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여자가 그 남편이 그렇게 위로를 하고 사랑을 해주었는데도, 결국은 그것으로서 이 여자는 위로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 여자는 결국 오늘 읽은 성경을 보면, 그는 결국 한나가 일어나서 결국은 성소에 올라가게 되었고 옛날로 말하면 성막이죠. 거기에 올라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마음이 너무나 괴로워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A. 문제해결의 길 : 하나님
결국 이것은 이 여자가 문제 해결의 길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정말 복받은 마음이 어떠한 마음이냐 하면, 하나님 앞에 상하고 깨어진 마음입니다. 정말 상하고 깨어진 마음은 하나님 이외에 아무것에서도 위로를 찾을 수 없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 한나는 남편의 정말 친절한 위로가 있었습니다. 오죽 했으면 이 남편, 엘가나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그대 마음이 슬픕니까.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않습니까. 이게 사실 보통 남자가 할 수 있는 말이에요? 지극한 아내를 향한 사랑이 없으면, 이러한 식의 기가 막힌 그 묘사가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열 아들보다. 열 아들보다 내가 훨씬 더 낫지 않습니까. 아마 구약 성경에서 이렇게 남편에게 사랑을 받은 여자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랬는데, 한나는 남편의 이 말이 진심이라는 것도 알았고,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끝까지 사내아이를 출산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남편이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놀랍게 이 여자의 마음은 그 엘가나의 그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간곡한 위로의 말도 그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참 복된 거라 이것입니다. 이게 참 복된 거라 이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하나님을 만날 때가 되면 아무 것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어요. 물론 남편의 이러한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것으로 위로가 되지 않아요. 이 한나는 왜 남편을 그렇게 따뜻한 말로도 위로 받을 수 없었을까요. 왜냐하면 그것은 정말 고마운 배려였지만 자신의 인생의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일 수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인 해결은 결국은 하나님을 독대하고 하나님 앞에 약속의 말씀을 받고 간구해서 주님께 응답을 받는 그것에서 자신의 인생의 문제가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작용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러한 남편의 말이 위로가 되던 적도 있었지만 그러나 이번에는 그 말이 그에게는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한분께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 문제 해결의 길이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당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많은 문제들, 그것들 중에는 쓰리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문제들도 있지만, 그 모든 쓰리고 아프고 괴로운 모든 문제들 까지도 우리는 하나님이 그 아픈 문제들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그 문제의 해결의 길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보여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오히려 그것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등지고 살아가는 우리를 깨우쳐 당신께로 부르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정말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많이 주신 시간들은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프게 가시밭길에서 헤매고 하나님이 우리를 때리시고 그리고 우리를 아프게 하시던 그때가 오히려 우리에게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보여주시는 기회가 되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게 됩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모든 것을 넘치게 주실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고마운지 추어도 모르던 사람들이 오히려 인생의 가시밭길에서 가시에 찔리고 피를 흘리면서 주님이 때리시는 그 매질에 종아리가 피가 흐르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그 큰 사랑, 자기 같은 인간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어머니 같은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큰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찬양) 때리시고 어루만져 위로해 주시는 우리 주의 넓은 품으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우리의 인생의 많은 문제들은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기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믿음없이 살고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당하게 된 문제들입니다. 일은 우리가 저질렀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저지른 나쁜 일 때문에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게 만드셔서 우리의 악을 선으로 바꾸시고 우리의 잘못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정말 크고 놀라운 사랑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이 한나가 결국은 그 큰 고통이 매일 매일 깊어져 가면서 마음에 견딜 수 없는 격동을 경험하면서 급기야는 사랑하는 남편의 친절함이 위로로서도 돌봄을 받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한분께 곧바로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만히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사람들이 참 신앙생활의 유형이 다양합니다. 어떠한 사람은 늘 말이 많은 것 같고, 수다스러운 것 같아도 일단 하나님 앞에 해결해야 될 문제라고 하는 것이 발생하면 사람 앞에 입을 꾹 다물고 하나님께 가서 엎드려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떠한 사람은 그저 과묵하고 평소에는 말이 없는 것 같다가도 인생의 문제가 생겨서 하나님 앞에 해결해야 될 차례인데,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속에 있는 사연을 쏟아 놓기를 기도하는 것보다 열배나 더 열심을 내게 됩니다. 그때에 그 마지막 돌아오는 결과는 매우 씁쓸한 배신, 그리고 결국은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홀로 내동댕이쳐진 그러한 마음 밖에는 되돌아오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정말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추한 행동입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특별히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받아서 열심히 교회에서 섬기다 보면, 이러한 저러한 일들이 왜 안 일어나겠습니까. 늘 말씀을 드리지만, 주일날 예배 시작한 다음에 들어왔다가 축도 끝나기 전에 가는 사람은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킬 기력도 없어요. 그것도 무슨 마음의 기운이 있어야지 문제를 일으키지, 그러한 사람들은 그 사람 존재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킬 것도 없어요. 그런데 은혜를 받고 주님을 위해 교회에서 봉사를 해 보십시오. 그러면 또 시샘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그렇다고 너가 한번 해봐라 하면 하지도 않으면서 그러는 사람, 그리고 또 심사가 꼬이고 은혜가 떨어지면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지체들의 흉을 보고 그리고 또 언감생심 목회자들에 대해서도 그러한 이야기들을 하고 이러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정말 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때에 조금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그래서 늘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너가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그만두면 너는 사람의 사람이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주님 섬기고자 길 들어섰을 때, 사람들이 박수 쳐서 이 자리에 선 적이 있느냐.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날 위해 자기의 아들까지도 주신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섬기기를 기뻐하셔서 그 사랑이 나를 감화해서 여기에 세웠으니 이게 바로 사명이고 소명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넌 그만 둬라 하실 때까지는 거기를 떠나면 그것은 불순종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말씀드리죠. 순종하는 자리에 서서 투덜거리는 게, 불순종하는 자리에서 찬송부르는 것보다 하나님께는 더 영광입니다. 감동이 안돼? 감동이 안돼? 생각을 해봐요. 여러분도 한번 예수님도 그러한 비유 하셨잖아요. 생각해 보세요. 자식이 둘이 있는데, 얘야 너 가서 이것도 사고, 저것도 해오고 심부름도 해오너라 하니까 네 엄마 걱정 마세요. 내가 금방 갔다 올게요. 그리고 가서 다른 데로 도망 간 녀석이 이뻐요? 아니면 얘야 너 엄마 심부름좀 해와라 하면, 아이씨 맨날 나만 시켜. 나만 밥이야. 동생도 있고 형도 있는데 왜 맨날 나만 시켜. 엄마 미워 그러면서 갔는데, 결국은 심부름을 한 그 자식이 이뻐요? 왜 대답을 못해. 첫째에요? 둘째에요? 물론 또 한 녀석이 있어서 아,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게 되어서 영광이옵나이다. 하고 가서 그렇게 방긋방긋 웃으며 가서 방긋방긋 웃으며 해 가지고 오면 그것이 바로 최고이지. 그런 애들 없잖아. 그럴 바에야 둘째가 낫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참 많이 시험해 봤어요.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 주신 사명이 있을 때, 거기에서 항상 방긋방긋 웃으며 충성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이지만, 안될 때 많잖아요. 그렇죠. 안될 때 많잖아요. 그럴 때에도 보면 하나님이 있으라 그러는 자리에 있으면서 가끔 하나님, 난 정말 못하겠어요. 아니면 세상에 왜 나한테만 이러한 무거운 짐을 지게 해주세요? 그리고 투덜거리면서도 거기에 있으면 하나님이 기쁨도 주시고 소망도 주시고 필요한 자원도 주시고 해서 결국 오늘은 은혜가 떨어져서 투덜거리지만 내일은 은혜 받으면 되잖아요. 그런데 고무신 거꾸로 신고 가버리고 나면 거기에서 방긋방긋 웃으면서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노래를 해도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에요.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모든 문제가 생겨날 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당신 자신에게로 우리를 이끌어서 모든 문제는 이 세상에서 생겨났지만, 그 문제의 해결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와서 간절히 매달려요.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말씀을 비춰 보십시오. 정말 재밌는 게 뭐냐 하면, 한나 왜 그렇게 슬퍼하고 먹지도 않아?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않아? 그런데 이상하게 한나의 대답이 없어요. 대답이 안 나와. 빈말이라도 아이고 애쓴다 그러면 얼마나 좋아요? 대답이 없어요. 그 이야기는 남편을 무시했던 것이 아니라 당신은 나를 많이 사랑해 주지만, 내 인생의 이 문제는 당신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과 독대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인생의 문제가 많고 여러분이 인생의 문제에서 고통을 받고 괴로워하는 문제가 많아서 그것이 때로는 우리의 심령을 썩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여러분의 인생의 문제가 여러분에게 있어서 중차대한 문제인 것처럼 그 비례한 만큼 하나님 앞에 하나님 한분만이 문제 해결의 근원이시다 그러한 무게를 가지고 매달린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그러면 우리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많이 고민하고 괴로워 하는 것과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별개이기 때문이죠.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제일 먼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세월이 약이 아닙니다. 결국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문제를 풀지 않으면 그것은 5년 후에도 숙제로 자신 앞에 다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 나아가서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찬양) 우리 죄와 강팍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 하시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세요. 주님, 문제는 내가 일으켰지만 해결은 주님이 하십니다 하면서 주님 앞에 무릎 꿇는 것입니다. 그게 해결의 길이죠.
(예화) 여러분 학교 가가지고, 요즘은 안 그러지만 옛날에 학교에서 까불다가 유리창 깨뜨리면 꼭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합니다. 부모님한테 직접 변상을 받았어요. 참 고약했어요. 그러한 사고 쳤을 때, 무지하게 고민하잖아요. 결국은 울면서 가서 엄마 내가 잘못해서 유리창 세장 깨뜨렸어요. 선생님이 엄마 모시고 오래요. 죽싸게 혼나죠. 그래서 가서 엄마가 선생님을 만나서 미안하다고 그러고 유리창 다시 껴주고 그리고 방긋방긋 웃고 오시면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사고는 우리들이 쳤는데, 문제는 우리 엄마가 해결을 해줘요. 참 그때 엄마, 아빠가 참 위대해보이죠.
여러분이 사고를 쳤지만, 여러분 자신이 문제 해결은 못합니다. 결국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문제의 해결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인생의 벼랑 끝이다. 벼랑 끝이다, 그랬는데 사실 그 벼랑 끝이 어떠한 끝인지 생각해 보세요. 한번 눈을 조용히 감고 묵상을 해보세요. 천해만해한 벼랑 끝에 딱 서있어요. 30센치만 나가면 아래로 떨어져서 으악 하면 그 다음에 뭐 저 세상에서 눈을 뜨겠죠. 그런데 혼자 이렇게 벼랑에 서 있으면 인생의 벼랑 끝 아니야. 그 자연을 감상하는 거지, 그게 벼랑 끝이야? 그런데 저기에서 쳐들어오는 거야. 그런데 벼랑 끝에 서 보는 것은 얼마나 멋있어요? 나도 서 보니까 멋있더라고요. 설악산가서 벼랑 끝에 딱 서서 자연 경관이 한 눈에 딱 들어와요. 언제든지 마음먹어서 돌아서 가면 됩니다. 그런데 적군이 쳐들어오는 거야. 이리로 갈 수가 없어요. 이리로 뛰어 내릴 수도 없고. 대적을 해서 싸워보자니 이길 기운이 없고 그게 인생의 벼랑 끝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뭘 생각해요? 선택할 여지가 없잖아요.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투신을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맨날 아침이면 나와서, 난 아침에 TV본 적이 없지만 신문에 보니까 아침에 나와서 그렇게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으니까 자살을 거꾸로 읽어보라 했다잖아요. 살자잖아. 그렇게 익살을 떨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던 사람이 자기 자신은 그냥 자살을 해 버렸어요. 루프스라는 병이 무서운 병입니다. 그런데 자살 한 것입니다. 남편은 또 혼자 보내기 싫다고 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가족 둘 부부 둘이서 자살을 합니다. 그게 희망이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선택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누가 있어요? 그렇죠.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너는 어느 곳에 있던지 주를 바라고 주만 바라볼찌라 그게 신앙이죠. 그러면 결국 하나님 한분 앞에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당신 찾으라고 그러한 벼랑 끝에 세워 주신 것입니다. 밑에 내려다보면서 죽을 결심 하지 말고 뒤돌아보면서 겊먹지 말고 하늘을 향하여 구원의 하나님을 노래하는 사람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문제 해결의 길이 있습니다.
B. 마음을 쏟음
두 번째, 이 절망 끝에 하나님을 찾은 이 여자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중요한 일에 몰두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남편에게 앙탈을 버렸더라. 한나가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언니를 찾아가서 하소연을 하였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운 나머지 마실을 떠났더라. 그러지 않았어요. 그런데 대부분이 그러한 식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였는데, 그 기도는 통곡을 동반한 기도였어요. 통곡을 동반한 기도.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마음을 자신의 마음을 물같이 쏟아 놓았어요. 이게 정말 놀라운 경험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우리들이 마음을 확 쏟아 놓고 내 마음을 주님 앞에 모두 쏟아 놓고 나면, 그러면 어떠한 놀라운 경험이 일어나는가 하면 자기 마음을 다 쏟아 놓고 나면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일 마음이 생겨나게 되어요.
그래서 보면 누가 자기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이 찾아오잖아요. 그러면 한 마디로 꺾어서 그 사람을 바꾸어 놓으려고 하면 거기에서는 항상 커다란 부딪힘이 생기고 오해가 생겨나요. 가만히 들어주면서 아 정말 그러시겠네요. 맞장구를 잘 쳐주셔야 합니다. 어머나, 어쩜, 그럴 수가. 정말이요? 계속해서 계속 쏟아내요. 아, 어떻게 지내셨어요? 나 같으면 그렇게 못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 쏟아 놓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에 그 사람의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이야기 하면 그 사람이 아주 놀랍게 받아 들여요. 그리고 그렇게 억울하고 고통스러울 때 눈물을 막 쏟잖아요. 그러면 거기에 온갖 나쁜 게 눈물 속에 쏟아져 나온다고 하더만. 그게 그렇게 몸에 좋대요. 건강에도 좋대요, 그게. 온갖 중금속과 온갖 나쁜 체액이 그 속에 쏟아져 나온대요. 그래서 눈물을 절대 먹으면 안됩니다. 흐르면서 먹잖아요. 그렇게 쏟아 놓는 것.
그때에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놓는다라고 하는 것, 성경에서 보면 너의 마음을 토할지니라. 또한 마음을 물같이 쏟아 놓는다라고 하는 표현이 나오잖아요. 그것은 결국 무엇을 보여주는가 하면, 진짜 다른 사람에게 수다떨 듯이 하나님 앞에 쏟아 놓는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는다고 하는 것은 그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존한다는 뜻입니다. 의존한다는 뜻. 그때 자신의 마음을 확 쏟아 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오만과 고집, 교만, 자기 판단, 상식 이러한 것으로서 막 버티고 있던 그러한 구조물 같은 것이 마음을 쏟아 내면서 함께 와르르르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떠한 고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찬양)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 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면 그냥 아등바등하고 목숨을 걸 것처럼 몸부림치던 일들이 생각을 좀 바꾸고 나면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일인 경우가 많아요. 나의 집착과 욕망이 그것을 강하게 사로잡기 때문에 결국엔 깊이 고통을 받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찌 그럴 수가 이렇게 되면 혈압이 오르고, 그리고 건강에도 해로워요. 그럴 수도 있지 하면 자꾸 그렇게 말하다보면, 진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 여자는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그리고는 그 하나님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으면서 그분께 자신의 마음을 다 쏟아 놓았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그렇게 모두 쏟아 놓을 때에 틀림없이 이 여자의 마음속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뒤에 보니까 근심이 사라졌다라는 표현이 나와요.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첩이 자식을 낳았다고 눈꼴시게 뭐 자기를 구박하고 그러한 것을 보았을 때 그때에 어쨌든 죽을 것처럼 괴로웠다고 하는 이야기는 브닌나 첩을 향한 어떠한 분노나 억눌림 감정들이 있었다고 하는 것 아니에요? 그런 게 없었다면 이렇게 격동 받을 일이 없지. 한나가 믿음의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 사람도 그저 아담과 하와의 자손인 부패한 인간일 따름이지 뭐 그렇게 유별난 사람이었겠어요? 그러니까 그 나름대로 아니 뭐 솔직히 이야기해서, 한나가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지만 그까짓 하나님이 애를 안주시면 그것도 하나님의 주권 아니에요? 그러면 하나님, 나는 주님만 있으면 남편이고 애고 상관없습니다. 나는 주님이 계시고, 나를 주님이 이렇게 살게 하셨으면 남편이 있고, 새끼가 있고 이러한 것들은 삶의 양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 한분으로 충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그렇게 하고 살았으면 더 훌륭한 사람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더 훌륭한 사람이잖아요. 자식에 그렇게 집착을 하고 그래요. 독신으로도 훌륭하게 살수도 있는데, 시집 간 것만 해도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지. 처녀로 안 죽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 아니에요. 우리가 한나를 보면서. 얼마든지 이 한나보다 훨씬 믿음이 좋은 여자의 상황을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렇잖아요. 또 하나님, 브닌나가 나를 욕해도 나는 브닌나 때문에 이 집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를 엘가나에게 짝지어 주셔서 그래서 그의 갈비뼈로 나를 삼으셨으니 하나님, 나는 이 여자가 나를 박해하고 그래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주님, 저를 싱글로 늙지 않고, 시집이라도 오게 하셔서 너무 감사하고 백골난망이옵나이다 하며 방긋방긋 웃고 중간에서 브닌나 때문에 남편이 괴로워 할 때에도 여보, 난 괜찮으니까 상관하지마. 당신이 우리 두 여자 사이에서 얼마나 괴롭겠어? 이렇게 위로 해 주었다면, 더 훌륭한 사람이잖아요. 그 정도까지는 안된 것입니다. 누가 또 그 정도 까지 될 수 있겠어요? 이 여자는 그렇게 하면서 말하자면 격동을 당했다는 것은 브닌나처럼 못되지는 않았어도 이름 자체가 틀리잖아요. 브닌나, 한나 틀리잖아요. 그래서 우리 여러분이 아이를 낳을 때에 한나라고 이름지은 것은 굉장히 많이 보았어요. 믿음의 가정에서. 그런데 브닌나라고 이름 짓는 것은 하나도 못 보았어요. 그렇잖아요. 한나. 한나 많잖아요. 그렇게 그러한 여자였지만 어쨌든 격동 될 때에는 이 상황 속에서는 분노와 이러한 것들이 있었고 그러한 것들이 구조물처럼 그를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계속 버티면서 버티고 있는 가운데 자꾸 상처를 받게 되면 자기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이 아주 악해지는 것입니다. 악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어떠한 생각을 하는가 하면, 밖에서 부는 수많은 바람과 시련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모든 책임을 환경에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들으세요. 어떠한 시련과 고난, 상처, 이러한 것들이 내게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내게 없는 것으로 나를 나쁘게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세요?
그래서 의학자들이 그러한 이야기들을 합니다. 세 개의 삼각형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그 다음에 환경,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 환경, 생활의 태도 이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게 근본적으로 이 밑에 깔려 있는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어떠한 사람이 암에 걸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러잖아요. 그러면 환경도 아주 좋고, 스트레스도 안 받고 경치 좋은 곳에서 조용히 살고 자신도 건강을 위해 노력을 해. 그러면 암에 안 걸리다가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속에 있는 유전자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 두 가지가 나쁘면 확하고 발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있을 뿐이지, 결국엔 모든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상처, 시련, 고통스러운 상황 맞이하고 경험할 때 악한 구조물들이 자라잖아요. 이렇게 버티고 있잖아요. 이 사람은 그러면 다 외부적인 원인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라 하는데, 내게 그러한 인자가 있었기 때문에. 물론 그 사람이 그렇게 상처뿐인 상황 속에서 안 태어나고 진짜 좋은 상황에서 태어나고 아니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러한 부모하고는 결별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훌륭한 집안으로 갓난 아기 때에 입양을 해가지고 부모의 사랑을 받았다면 이러한 것들이 안 생겼겠지. 그런데 결국 속에 있는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부패성과 연결을 지으며 폭발적으로 자라나는 거야. 결국은 우리가 항상 무슨 문제이든지 간에 우리의 인생을 바라볼 때, 사람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마지막에는 신앙적인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항상 자신의 인생의 문제를 바라볼 때 인정하기 힘들더라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면서 이게 판단을 하게 될 때 그때에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의 입장이 관점이 어느 것이구나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죠? 시련과 고난과 막 이러한 것들, 상처뿐인 가정 이러한 속에서 생겨나면서 자기가 막 이렇게 악한 구조물 같은 것들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엔 사람을 원망하고 낙심하는 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 번 죄를 짓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자신을 그렇게 만드는데 이바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항상 내가 잘못했다고 말해야지 하나님 앞에서 기도가 되지, 그리고 항상 하나님이 정말 나같은 죄인을 살려 주신 것이 정말 놀라운 은혜다 그래야지, 너 같은 죄인 살리신 것이 놀랍다고 하면 그게 기도가 되겠어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도할 때 그때에 하나님은 거기로부터 시작이 되어서 문제를 풀어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 아셔요. 우리가 말 안해도, 어느 부분까지는 너가 잘못해서 그렇고 어느 부분까지는 다른 사람의 잘못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모두 알고 계셔요. 말 안해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셔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간절히 기도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한나가 그러한 것들이 막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자면 이 한나도 나쁜 여자는 아니었는데, 마지막에는 자신도 자기를 감당할 수 없게끔 고통스럽고 괴로워하게 될 때에 브닌나를 향한 미움이나 질투의 감정이 없었다면 그 사람도 여자가 아니죠. 완전히 초탈한 성인이든지. 그러나 마음을 쏟아 버리면서 그러한 것들이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확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쏟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존 오웬 목사님이 자기의 책속에서 그 당시엔 가톨릭에서 사람들이 막 기도를 모든 사람이 달달달 암송해서 기도를 하는 것이 아주 유행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러한 것들을 아주 통렬하게 공박을 하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도의 중요성을 말했던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도의 중요성을, 왜냐하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만이 자신의 마음을 고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기도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쏟아 놓는 기도에요.
자, 우리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지금 만큼 교리를 알지 못하고 성경 지식이 부족했을 때에도 빨리빨리 내가 변화된 적이 있었어요. 언제였습니까.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잘 쏟아지던 때. 조금만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나면 막 마음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가 이만큼 밖에 못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조금 더 잘 살고 싶은데, 왜 나는 이만큼 밖에 안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내가 나 인 것이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너무나 큰데, 나는 이 만큼 밖에 안 됩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막 쏟을 때, 놀라운 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나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나요. 그러한 것을 6개월만 하고 옛날에 만나던 사람들을 만나면 새 사람을 만났다고 하죠. 괄목상대라는 말이 있잖아요. 눈을 비비는 것입니다. 저 인간이 그 인간이 맞아? 아니, 저 인간이 그 인간이 맞아. 그러면서 괄목상대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막 비비는 것입니다. 아, 정말 놀랍구나.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오래 예수 믿은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말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지는 않아요. 세월이 흘러가야지 새 사람이 되지. 옛날에 내가 아는 목사님이 전화를 했어요. 목사님. 왜 그러니까 우리 교회에 오신지 2년인가 되는 어느 분이 있는데 신앙생활을 너무 잘하고 훌륭하셔서 장로를 시켜 드리려 하는데, 어떨까요 그러는 것입니다. 얼마 됐다고? 2년 됐는데요. 기다려. 5년 정도는 두고 봐. 이분은 틀려요. 그러니까 틀리니까 더 두고 봐. 그러니까 3년 있다가 전화 왔어요. 형님, 형님, 그때 형님 말씀 듣기를 너무 잘했어요. 이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니야. 큰 일 날 뻔 했어요. 신앙의 연단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것들이 나올 만큼 다 나온 다음에 신앙으로 다듬어지고, 다듬어지고, 다듬어지면서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오래 신앙생활 했어도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쏟아 놓아서 자신이 무너지는 경험이 없이 자신의 신앙생활을 길게 하는 사람들은 고집과 아집이 보통이 아니에요. 오랫동안 교회 다녔다고 하는 고집, 우리 교회는 그러한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는데, 이게 내 교회라는 자부심. 이러한 거지같은 것들이 뒤엉켜 가지고 얼마나 웃기는 신앙생활을 만드는지요. 그것은 신앙생활도 아니에요. 그러한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그렇게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아 본 적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마음을 쏟아 놓고 보면, 그때 비로소 자신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자기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어떠한 때에는 여러분 거울로 이렇게 보면서, 직장 다닐 때인데, 주민등록증을 만든다고 사진을 촬영했어요. 그런데 주민등록증이 나왔는데, 어느 여직원이 훌쩍 거리면서 계속 울고 있는 것입니다. 왜 우냐 그러니까, 이게 내 얼굴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 믿어지지가 않는데요. 우리가 보기에는 그 얼굴이 봤는데, 사진이 인정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가 너무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이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약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쏟아 놓으면, 말씀을 조금 깨달아도 그 말씀이 마음을 녹여서 마음을 확확 쏟아 놓게 만들면, 이 말씀을 깨달은 양은 작아도 그 말씀 전체가 그 사람 속에 스며들어가니까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놀라운 인격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너절하던 사람이 아주 단정한 사람이, 야비하던 사람이 아주 잰틀한 사람으로. 치사하기 짝이 없던 그 쪼잔하던 사람이 아주 너그러운 사람으로. 그것도 뭐 구두쇠 이러하던 사람이 변해서 아주 너그러운 사람으로. 그렇게 그렇게 사람이 막 인격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조용히 생각해 보세요. 이 기도했지요? 누가 안하겠습니까. 마음을 쏟아 놓은 적은 얼마나 되어요, 최근에? 아, 정말 내 마음을 주님께 다 쏟아 놓으면서.
(찬양)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 밖에 없네
그렇게 마음을 확 쏟아 놓고 기도 자리에서 일어나면 어떠한 마음이 들어요? 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구나 마음이 들어요. 왜, 우리 이야기 할 때에도 어떠한 사람이 울면서 자기 이야기 막 쏟아 놓을 때, 시계나 계속 보고 핸드폰이나 계속 울리고 아이고 미안해, 혼자 울고 있어 나 가야해. 이러면 이게 그 사람이 자기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다 필요 없고, 전화가 오면 안돼 지금은 시간이 없어 탁탁 끊고,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다 들어주면 아무 말 안하고 가만히 있어주기만 해도 이 사람이 뭐라 그러는가 하면, 아, 세상에 너 밖에 없다고 그런다고. 아무것도 해준 것 없이 가만히 앉았는데, 그렇게 주님 앞에 마음을 다 쏟아 놓고 나면 어떠한 마음이 드는가 하면, 시원한 마음이 들어요. 단지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자기가 움켜 놓은 것들을 내려놓으면서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쏟아 놓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뭐가 없으시겠어요. 천하를 만드신 분이신데. 또 뭐가 여러분에게 아까우시겠어요. 여러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히시게 하기까지 여러분을 사랑하셨는데. 뭐가 아까우시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가지셨는데도 없으신 것처럼 인색하실 때, 또 모든 것을 주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에게 무엇인가를 안주시고 시간을 끌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내놓아야죠. 그것은 뭐냐 하면 난 너의 마음을 고치고 싶다. 이게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시는 것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주시기에는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두드리시려고 여러분을 벼랑에 세우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못해서 벼랑에 왔지만, 아마 다리만 있었어도 아마 여기에 안 나왔을지 몰라요. 다리 따라 건너가지. 그런데 하나님이 거기에서 여러분을 세우시면서 너 마음을 나에게 다오. 난 너의 마음을 고치고 싶어 한단다. 하나님은 마음을 쏟아 놓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쏟아 놓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정말 가까이 계시다는 사실이 믿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벼랑 끝에서 주님께 마음을 쏟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C. 소원을 간구함
마지막 세 번째는 그가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소원을 간구 했습니다. 이 여자는 직선적이었어요. 뭐, 하나님 브닌나의 다리 모가지를 부러뜨려 주십시오. 아니면, 남편이 그 여자를 절대 싫어하게 해주십시오. 아니면 브닌나를 쫓아내실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옵소서라고 그렇게 기도하지 않아요. 문제의 정곡으로 들어갔어요. 그게 뭐였어요? 그런데 사실은 그 문제의 정곡으로 들어갔을 때, 그 기도의 제목은 너무나도 유치한 거였어요. 뭐였어요? 아들 하나만 점지해 주시옵소서. 그게 기도 제목이었어요. 뭐라고 그래요? 주의 여종을 잊지 않고 아들을 주시면. 아들들도 아니에요. 그냥 하나에요. 하나.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한 아들을 주시면, 내가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겠습니다. 삭도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이 머리 깎는 칼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옛날에 율법에 의한 나실인들, 하나님 앞에서 서원하고 하나님 앞에 바쳐진 사람들은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어요. 그리고 포도주와 포도가 그 당시에 그들에게 음료였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안 먹습니다. 심지어 포도 씨도 안 먹고 부모가 죽어도 그 시체 가까이 갈 수가 없어요. 그 사람들은 뭐냐 하면 하나님께로만 바쳐진 사람입니다. 이 여자는 하나님 앞에 아들 하나를 달라고 그러면서 하나님이 만약 그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내가 갖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 바치겠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신학교 보내겠다라고 하는 뜻이라고 그러는데, 신학교 보내는 것과는 좀 다르죠. 왜냐하면 신학교 보내도 데리고 살잖아요. 맨날 보고. 그런데 얘는 젖 떨어지자마자 얘는 바로 와서 그게 사실 보통 믿음이 아니요. 여러분 보고 젖살 올라가지고 방긋방긋 웃고 젖꼭지 물고 장난할 때 얼마나 이쁘겠어요. 그것을 이제 성소에 바치고 빈 포대기를 들고 돌아서는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 보라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를 구하였을 때, 자기를 위해서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간절히 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어떠한 문제가 있으면 그 소원을 하나님 앞에 직접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말이 좀 안되어 보여도 그냥 기도를 하십시오. 그러면 마음을 쏟고 간절히 기도하면, 그 기도가 말이 안 되면 하나님이 마음에서 지워 버리시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기도였는데, 말이 되면 하나님이 기도할수록 그 기도 제목을 마음 가운데 새기셔요. 그래서 기도가 열렬이 나오게 만들어 주신다고요. 어떠한 때는 뭘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고 기도하다가 마지막 결론은 그러한 기도를 한 나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끝날 때 아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도를 끝날 때 하는 것입니다. 그게 마음을 쏟는 기도의 유익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사도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뭐라 그래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릴 것이라고 말씀하잖아요. 그것입니다. 무엇인가를 하나님 앞에 기도했는데, 마지막에 정말 간절히 기도하다 보니까 마지막에 하나님, 그러한 기도한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 앞에 그러한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워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끄러워 보여도, 말이 좀 안되어 보여도 직접적으로 말을 빙빙 돌리지 말고 직접적으로 딱 핵심에 들어가서 하나님, 나에게 이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주십시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이 그랬어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정식으로 간절히 구체적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기도가 이루어지기에 적합한 마음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이렇게 해. 차례대로 차례대로 순서를 따라 갔어요. 제일 먼저 자신의 문제의 해결의 길이 하나님께로만 있다고 믿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 한분 앞에서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모두 토하며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 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쏟아 놓았더니 이 여자의 어떻게 보면 정말 유치해 보이는 기도제목이었는데, 이 기도는 간구하는 소원하는, 이 소원이 간구의 능력을 가진 소원이 되었어요. 그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붕 뛰어 넘어요. 문제의 해결이 하나님께만 있다고 생각하네요. 입으로만 덜렁덜렁 하나님, 이렇게 해주십시오. 저렇게 해주십시오. 그런데 이상하게 응답이 없어요. 그러니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쏟지 않아요. 하나님은 마음에 정함이 없는 사람들의 기도는 바람에 나는 검불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굳고 심지가 견고한 사람들을 평강에서 평강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이 위기를 만났을 때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뜻을 세우는 일이었어요. 나는 이렇게 이렇게 하나님께 매달리리라. 뜻을 세운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한나는 간절히, 오늘 뭐라 그랬는가 하면,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 즉,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였다. 얼마간의 시간인지 알 수 없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을 이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으며 간구의 소원을 아버지께 간절히 올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간절히 기도한 이것이 절망의 벼랑 끝에서 하나님을 찾는 이 여자의 태도였던 것입니다.
III. 하나님이 생각하심
이 여자의 애처로운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은 두 가지 위로를 주셨습니다. 한 가지는 이 여자의 처지가 주의 종 엘리에게 이해되고 용납되도록 만들어 주신 것이었어요. 이 당시 엘리는 이미 영적인 총명이 다 사라진 어떻게 보면 하나님 앞에 거의 버림받은 주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의 됨됨이와 이 모든 사연을 들은 후에 엘리의 마음속에는 이 여자를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거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고 구한 것을 허락하기를 원하노라 하면서 이 엘리의 축복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 한나의 마음에 위로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 기도하면 참, 놀랍게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만 위로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더 중요한 위로는 하나님이 이 여자 한나를 생각해 주신 것이었어요. 성경에서 생각하다. 생각하다. 생각하다라고 말이 많이 나오거든요. 특별히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거나 하나님이 사람들을 생각한다라고 할 때에, 그것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시인이 노래하죠.
(찬양)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저를 권고 하시나이까
IV. 결론
그러잖아요. 여기서도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사. 고백을 하고 또 신약시대에 와서는 십자가에서 함께 못박혀 죽어가던 강도가 낙원에 이를 때에 나를 생각하옵소서. 그러잖아요.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라 깊은 애정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깊이 사랑할 때, 제일 먼저 그 사랑에 의해서 지배 받는 곳은 어디에요? 여기보다도 여기에요. 머리가, 머리에서 항상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슴으로 내려와 출렁거리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렸다. 누가 누구를 버렸다고 하는 표현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 뭐냐 하면, 잊었노라. 잊었다. 생각에서 잘려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생각하셨다라고 하는 것, 그래서 뭐라 그랬는가 하면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그랬잖아요. 그전에도 수없이 동침했을 것입니다. 아이가 안 생겼어요. 하나님이 생각하셨어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꿈에도 그리던 자녀를 이 한나가 잉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들, 벼랑 끝에서 주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이 한나는 그렇게 마음에 깊은 고통을 가졌을 때, 아버지 앞에 나아가서 간절히 마음을 쏟으며 하나님 앞에 간구하였고 문제의 해결이 오직 하나님 앞에만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일찍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여기에 올라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날들을 괴로워하고 격동을 받으면서 고통을 겪었겠어요. 아마 브닌나의 버릇을 고쳐보고자 몇 가지 시도도 하지 않았겠어요. 그러나 아무것도 그의 인생에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마음을 쏟으며 간구의 소원을 올리며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하나님이 이 한나를 생각하셨습니다. 예전부터 하나님은 이 영원한 작정 속에서 한나의 몸에서 불세출의 선지자 사무엘을 나게 하시려는 영원한 작정이 하나님 안에 있었어요. 그런데 이것은 아무 때나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나가 자신의 문제의 해결이 하님께만 있다라고 하는 믿음으로 그분께 마음을 쏟으며 온 심령으로 간구할 때 하나님이 이 여자의 믿음을 사용하셔서 그래서 그를 생각하셔서 그래서 믿음의 아들을 태어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생각하시기만 하니까 이러한 놀라운 일들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여자의 가슴의 한이 되고 심정이 찢어 질 것 같은 고통스러운 인생의 수많은 사연들이 그날 하나님 앞에서 해결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인생의 벼랑 끝에 오게 하신 것이 하나님입니까. 거기에서 여러분을 건져내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무능때문입니까. 여러분이 거기에 서서 벼랑 끝을 내다보고 있는 그 절망적인 상황이 결국 여러분이 여러분을 주님이 잊어버려서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은 언제나 여러분을 생각하고 계시지만, 그렇게 여러분이 인생의 벼랑 끝에서 당신을 찾을 때까지 하나님은 그 위대한 축복과 구원을 유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간구하고 자신의 간구와 소원을 올릴 때까지 마음을 쏟을 때까지 문제의 해결의 길이 여기 저기 있다고 믿으며 방황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나아와 무릎을 꿇을 때까지 주님은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 앞에 매달려 벼랑 끝에서 주님의 생각하심을 입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벼랑 끝에서 고통의 눈물이 변하여서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되기를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