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쓰고 애쓰신 기도
“예수께서 나가 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좆았더니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끊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 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 (눅22:43-44)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오늘이 저녁 시간에도 저희들이 하나님의 면전이 그리워 나왔습니다. 하나님 보시옵소서! 우리의 부정하고 더러운 마음을 주님께서 깨 끗게 해주시고 하나님 죄 지을 때도 있었고 마음이 하나님을 떠날 때도 있었지만 그러나 더 많은 날 동안 주님을 뵈옵기를 원했고 빛 가운데 살기를 소원하였습니다.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 오셔서 저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고 하나님의 참사랑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셔서 저희로 오늘 이 밤의 시간에 정말 주님 뵈옵는 기도회가 되도록 도와 주시오소서 잠시 말씀을 상고고자 할 때 주께서 은혜를 내려 주시고 하나님 저희에게 큰 힘과 깨달음을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생애가 어떤 생애였는가 하면 그 생애는 아 액체의 생애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땀과 눈물 과 그리고 물과 피를 쏟으신 생애였습니다. 주님이 흘리신 눈물은 주님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서 구원 사역을 위해서 오신 그 부르심의 길을 적셨고 그리고 그분이 흘리신 피는 이 세상에 있는 구원 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은혜의 강물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잡히시던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그 모습을 기록한 누가의 기록을 대하고 있습니다. 상세하게 기록한 누가의 기록 속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기도하셨던 그 처절한 기도의 순간을 그림같이 생생하게 기록해서 우리에게 보도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십자가를 지기 위한 기도를 드리실 때에 주님이 어떤 상황에서 이 기도를 드리셨는지 한번 기억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조차 잠든 절대 외로움 속에서 하나님 한 분께 매달리는 기도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제자들의 태만과 의심함이 그들로 하여금 그 마지막 기도의 시간에 동참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보다 더 넓은 섭리 속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조차, 조차 잠들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더더욱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며 기도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십 먼저 어느 성경은 말하기를 힘쓰고 애쓴 기도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힘쓰고 애쓴 기도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홀로 행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물론 다른 경험과 마찬가지로 기도에 있어서도 주도권을 쥐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어느 사람을 기도하게 만드실 때에 그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며 그는 마치 자기가 기도한다기보다는 자기 안의 하나님께서 오셔서 자기를 사용해서 당신이 하시고 싶은 기도를 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그렇게 성령에 사로잡힌 기도는 하나님에 의해서 주도권이 붙들린 그런 기도입니다. 그러나 다른 많은 경험에 있어서 신앙의 경험처럼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정말 결 따라 역사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자신을 다 드려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마음이 있는 사람들 그 마음의 결을 따라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간절하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거나 덜 도와주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만은 도무지 하나님 앞에 기도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 갑자기 쪼개질 것 같은 가슴을 안고 영혼의 진액을 쏟아내며 하나님 앞에 어 그 울부짖으며 기도하게 된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보십시오. 겟세마네 동산에 예수님이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해가 밝으면 이제 당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이미 알았습니다. 당신이 먹이고 입히시던 그 많은 백성들 한때는 당신의 가르치는 일에 열광하며 따르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손에 손에 돌멩이를 들고 그리고 침을 뱉으며 당신을 욕하고 모욕하며 당신을 박해할 것을 아셨습니다. 열광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던 그 손으로 자기를 때리실 것을 아셨고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되 당신이 사랑하시던 제자들에게조차 버림을 당하실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택하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늘 하던 습관대로 예수님께서는 일부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 언덕까지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기도하게끔 몰아가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 이제 잠시 후면 내가 십자가에서 내 생명을 하나님 아버지와 그 분을 등진 내가 구원하여야 할 많은 백성들을 위해서 받칠 텐데 내가 이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낼까? 결정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과 홀로 대면하여 기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그 자신이 당하신 그 때가 그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때인 줄을 아셨고 그랬기 때문에 거기에서 자신을 다 쏟아 붓는 열심히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주님이 스스로 기도하시기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언제나 그러했지만 자신을 다 쏟아 붓는 열심 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방해하는 모든 얽매인 것들을 풀고 그 하나님 앞에서 열렬하게 자기를 다 드려 매달리고 부르짖고 싶은 그런 소망을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가지셨던 것입니다. 그 분이 스스로 걸어서 겟세마네 동산까지 올라가셨고 거기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때도 예수님은 평소와 다름없이 하나님의 말씀의 말씀을 전하고 백성들을 고치고 가르치는 일에 하루를 바치셨을 것입니다. 다락방에서 이루어졌던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은 목매인 저녁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을 아직까지는 어리기 짝이 없는 철부지들을 두고 떠나가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린아이를 두고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는 어머니의 마음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 자기의 모든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올라가서 한 기도는 상당히 장시간의 기도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단지 십자가를 질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기도가 아니라 요한복음 11장에 기록된 그 대제사장으로서의 교회와 남겨진 그리스도인들과 그리고 자기를 부르신 그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과 그 백성들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위해 처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보고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아버지처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자 하는 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릴 수 없는 소원이었지만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좋은 복음을 거절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말씀을 거절하고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부터 도망쳐서 어두운 세상으로 속히 달려가는 것처럼 그 때에도 그러하였습니다. 잠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봤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전보다도 더 칠흑 같은 어두움 속으로 달려가기 좋아하고 잠시 하나님을 사랑한 것, 잠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을 회복한 것이 커다란 실수나 한 것처럼 오히려 더 만학하고 간 팍해져서 주님을 멀리하고 배반의 길로 도망가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는 것처럼 그 때에도 그러하였습니다. 한때에는 당신에게 치료받고 당신에게 먹을 것을 얻어먹고 당신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감격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잠시 후 폭도로 돌변하여 자신들에게 사랑을 베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손에 못 박을 준비가 되어있는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택하신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생애 전체는 기도로 어우러진 생애였습니다. 태어나실 때기도 속에서 태어나셨고 그리고 잉태되셨고 그리고 모태로 부터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며 공성에 등장하기까지 자라온 그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도 하나님의 은혜아래 있었기 때문에 역시 어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기도 속에서 자라오셨다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성령이 그에게 비둘기와 같이 임하시던 그 때에도 기도하던 때였고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마지막 십자가로 닫혀질때까지 기도의 생애였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 수 없거나 알아도 조금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마음을 잘 알 수 있고 주님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은 주님처럼 이런 애지의 생애를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순간 한순간 예수님의 전 생애는 기도로 점철되어온 생애였습니다. 이제 일생을 다 하나님의 어린백성들을 위해서 자기를 드리고 잠시 후 온 세력에게 이끌려 십자가에 매달리실 때가 되었는데 사랑하는 가족들과 작별하는 대신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과 작별하는 대신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드리기 위한 처절한 고난의 기도를 아버지 앞에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깨서는 먼저 이 기도 속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승리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방법이 어떤 것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아들의 피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보혈의 피에 우리를 향한 당신의 진노를 모두 씻으시고 우리를 향한 은혜와 사랑을 베푸셔서 우리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것이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하셨고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는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자기를 찢어서 바치는 그 피가 필요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들이 먼저 기도의 눈물을 흘리는 후에야 기도 속에서 흐르는 그 피를 먼저 받으신 후에야 비로소 십자가에 자기 몸을 버려 찢으시는 그 보혈의 피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이 마음을 아셨기 때문에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로 결심했고 그 것이 바로 잡히시기 바로 전날 밤 바로 그 새벽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오늘 하신 그 기도는 힘쓰고 애쓴 기도였습니다. 자신의 편에서 이미 자기를 다 드린 결단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받쳐져야 된다고 굳게 믿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일생동안을 우리와 같이 모자란 죄인들에게 둘러싸여서 사신 생애였습니다. 주님은 천사들의 친구가 아니라 죄인들의 친구였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사실 때에 마치 이세상이 당신이 꼭 있어야 될 나라 인 것처럼 그렇게 하셨습니다.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그 교제를 통해서 소망이 없이 망가져 버린 더러운 죄인들을 고치고 치료하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우리와 같은 천한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사신 그 삶은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삶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사시는 동안에 자기를 다 바치시고 자기를 다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죄 없으신 생애를 사신 정결한 분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시간에 다시 한 번 다 모아서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한 기도에 받치기로 결심하신 것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그리스도도 이렇게 마음에 결심을 하고 힘을 다하고 애를 써서 하나님 앞에 기도로써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다고 할 것 같으면 예수님처럼 정결하지도 않은 우리 스스로 요동치는 마음을 갖고 스스로 믿음의 눈을 잃어버리는 우리는 얼마나 더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뜻을 세우고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 그리하신 것처럼 우리는 이 밤에도 힘쓰고 애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간절히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고 그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는 그런 간절한 힘쓰고 애쓰니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필요하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의 생애에 있었던 이 마지막 기도는 예수님의 진액을 짜서 받친 기도였습니다. 땀이 떨어져 핏방울 같이 되었더라 하는 부분을 두고 해석이 많지만 그러나 다른 모든 해석보다도 정확한 해석은 땀샘속의 피가 섞어 나왔다고 하는 해석이 가장 그럴듯한 해석입니다. 저는 땀 속에 피가 섞겨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의학적으로 입증되는지 안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번 금식을 해보고 나서 이 말이 사실이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금식을 했는데 소변에서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을 봤습니다! 그게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경험을 하게 되었고 저 뿐만이 아니라 간절히 금식한 사람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 공통된 고백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그 기도는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내려오실 때부터 예수님의 생애는 그 십자가 한군데를 목표로 해서 달음질 쳐온 생애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백성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저주와 원한을 푸시고 다시금 거룩한 창조시의 화해 속으로 우리를 데려가시려고 할 때 그 수난을 기다리며 모든 피조물들이 흐느끼면서 예수그리스도를 말미암는 구원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 일이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바라보고 그리워하다 죽은 그 위대한 구원의 날 . 이 세상을 사로잡았던 그 어두움의 권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주님과 함께 죽었던 거룩한 성도들이 다시 살게 된 영광의 부활을 약속하는 그 거룩한 날이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 이였습니다. 그때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이 예수그리스도에게 전해졌을 때 그 마음은 자기를 다 짜서 하나님 앞에 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러한 처절하지만치 뼈에 사무치는 간절함을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속에 불러 이르켯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셨습니다. 죄 한 점 없으신 그분이 죄때문에 거룩한 하나님을 등지고 그 분의 사랑을 거절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비참함을 보셨기 때문에 죽음당할 자신 때문에 우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아버지를 등지고 살아가는 우리들과 그리고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그 빛깔 짖은 사랑을 느끼셨기 때문에 사랑하신 하나님과 그 사랑을 거절하고 불순종으로 달음질하는 그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이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자신을 찢으시는 아픔과 몸부림으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이렇게 자신의 진액을 다 쏟아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신 것은 바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화목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저희는 다 각기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다 제 갈 길로 간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를 찢으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이제 우리가 다시는 죄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등지지 아니하고 당신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이 거룩한 화목을 지키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기를 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범죄의 유혹을 받을 때마다 내가 지금 범하고자 하는 이 죄 때문에 좋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그 고결한 육체를 찢으셨고 힘없는 피를 흘리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제물이 되어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고난의 형상을 대하면서 우리는 그분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밤에 하나님과의 화목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진액을 짜서 하나님께 기도하셨던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주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고난과 위기 속에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주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이 하나님과의 열려있는 이 교제는 실로 지향할 수 없이 값진 대가를 치른 끝에 얻어진 것입니다. 아들이 우리와 하나님사이에서 육신이 으깨어지는 고난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금 피석인 땀방울을 흘리며 아버지 앞에 부르짖고 기도하는 것은 이렇게 자기를 온전히 깨뜨려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의 손잡게 하시려고 고난을 준비하는 것임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고난을 당하셨으니 우리는 이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과의 화해를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 속에 있는지 없는지를 잴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바로미터는 바로 우리의 기도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에 하나님을 두며 그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삶을 살아왔더라면 여러분들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 속에서 언제나 쉽게 미끄러지듯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영광과 감격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시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기를 힘쓰고 애쓰나 사실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기쁨이나 높음이나 환란이나 시련이나 박해 때문도 아니고 더더욱 육신의 연약함이나 혹은 경제적인 결핍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것은 오직 단 하나 하나님과 화목한 사이를 유지하며 지내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정신에 의해서 지배된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기 때문에 우리들이 기도의 시간이 되어도 기도의 영을 회복하지 못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의 삶이 다소 허물 있고 그리고 연약하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기도할 때에 주님의 십자가의 마음이 있는 성도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깨서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하나님과의 화목을 깨뜨리며 살았던 자신의 죄를 회계하는 사람들 또 그런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기 때문에 주님의 더 깊은 사랑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 영혼의 상태를 가진 사람들은 실로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육체의 진액을 모두 짜서 하나님 앞에 바치고 아버지 앞에 기도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이 기도는 결국 우리를 위한 승리를 가져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안 우리들은 일평생 인생 살면서 이런 기도에 동참하며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분노하시면 그것 때문에 우리도 분노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면 그것 때문에 우리가 기뻐하고 주님이 슬퍼하시면 그것 때문에 우리도 슬퍼하면서 인생을 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사는 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이 밤에도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그리 하셨던 것처럼 오늘 이 밤에도 여러분들이 자기를 다 쓸어 붓는 그런 기도 속에서 하나님 앞에 살게 되길 소망하고 또 그런 상태를 유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보니까 천사가 와서 예수그리스도의 기도를 도와주었습니다. 언제 천사가 내려왔습니까? 늘 그분 가까이 있는 천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침 예수님이 기도하시다가 힘이 다 떨어지길 기다린 것처럼 기다리다가 예수님의 힘이 다 떨어지니까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도운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주님의 능력은 우리가 우리자신을 다 쏟아 부은 그 연약한 것에서 나타납니다. 주님의 놀라운 권능은 주님의 놀라운 힘은 우리가 우리의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의 모든 힘을 다 쏟아 붓고 이제는 더 이상 주님을 위해 쏟아 붓고 십지만 쏟아 부을 힘이 없어서 통곡하는 그때에 주님의 권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약할 때에 나타나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그릇된 길로 갈 때에 오히려 더 정난하게 나타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천사를 나타내어 예수그리스도를 도우셨던 것처럼 성령님을 보내셔서 여러분들의 기도 속에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먼저 힘을 다하여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주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이 힘을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저녁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 시간 우리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