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쉬는 죄를 범치 말라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삼상12:22~23)
성경마다 남들이 많이 읽고 또 깨닫고 지나간 곳이 있습니다. 등산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많이 밟고 다닌 그런 길이 있다는 거죠. 그 중에서도 오늘 이 성경말씀 “내가 여호와 앞에서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치 아니하리라” 하는 이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이 알려진 그러한 성경구절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무대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구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매우 싫어하셔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그 화목이라 그럴까요? 화해? 그런 것이 깊이 깨져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던 그러한 시기입니다.
그들이 왕을 구한 것 그것은 세상정치로 볼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러나 신앙적으로 볼 때는 큰 문제가 됐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들이 왕을 필요로 했다는 이야기는 두 가지 점에서 크게 문제가 되었는데 하나는 세상나라처럼 되고 싶어 했다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자신들이 이렇게 약소하거나 혹은 또 가나안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왜적에게 시달리는 이런 고달픈 인생을 사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정치체제가 이방나라의 정치체제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두 번째는 더 본질적이고 큰 것인데 그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을 하나님이 애굽에서 불러내셔서 율법을 수행하시면서부터 이스라엘백성에게 늘 상기시키셨던 것은 “나 여호와가 너희를 친히 지킬 것이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왕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 하나님이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였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 위대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구함으로써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기를 거부하고 세상의 왕의 지배-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것보다는 인간의 지배를 받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하는 계산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커다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도움이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 우리를 못 도와주시거나 하나님이 우리를 힘이 없어서 못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힘이 나타나지 않을 때 오히려 하나님은 잠잠히 우리가 어려움 속에 있게 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많은 하나님 앞에서의 모습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런 무대에서 결국 사무엘선지자는 정직하게 ‘하나님이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그리고 너희가 왕을 구한 그것이 하나님이 얼마나 슬퍼하고 싫어하시는 일인지를 너희는 알아라.’ 그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때에 비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이러한 태도가 잘못됐다는 것을 부분적으로 깨달으면서 커다란 각성이 일어나고 두려움이 임하게 됩니다.
그때에 이제 이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가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행하실 일과 자기가 행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일에 대해서 그는 먼저 말하기를 하나님이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해서 그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긍휼히 여길 것이라고 하는 그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진노에 대한 두려움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다소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다 못하시는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를 향해서 행하시고 싶으신 일, 그리고 행하셔야 할 일들을 모두 다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누가 하나님에게 우리를 향한 어떤 의무를 부여해준 적도 없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그 백성들과 스스로 맺은 언약에 스스로 자신을 묶으셔서 당신이 하시고 싶어 하고 당신의 이스라엘 백성들 즉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해 주어야 마땅하리라고 생각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행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도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의무를 다 하셨는가?’ 하고 물을 사람도 없고 그것을 조사하거나 하나님을 심문할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책망하거나 하나님과 따지는 것과 같은 태도로 기도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우리에게로부터 따짐을 당하거나 혹은 우리로부터 국문을 당하거나 할만 아무 일도 하신 적이 없고 또 하시지도 않는 분이고 또 하실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자신 있게 “내가 너희를 향하여 진실한 것처럼 너희도 또한 나를 향해 진실해야 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진실과 신실은 모두 하나님의 살아계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지식에게 비롯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이 이 같은 위기 속에서 위기를 불러온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이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자신이 하여야 할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늘 변하지만 주님의 약속과, 그리고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행동이 너무나 신실하시고 변함없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믿지 못해 불안한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위로와 그리고 평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태도의 수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하나님이 나를 향한 하나님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서 착실하게 한 가지 한 가지 당신의 일을 해오셨고 지금 또한 이루고 계시고, 앞으로도 행해주실 것이라고 하는 기대와 소망을 생각하면 우리는 불안을 떨쳐버리고 나의 상태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보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위기를 당한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사실, 그리고 자기를 향한 당신의 자녀, 당신의 백성들의 태도와는 상관없이 당신의 일들을 모두 행하시고 또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하게 믿고 또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사무엘은 우리에게 두 번째로 자기가 하여야 할 일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하고 그다음에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귀중한 교훈을 하나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성실하게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진실한 그 성품은 결코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는 동기를 앗아가거나 혹은 태만하게 하거나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시고 약속하신 바를 기꺼이 이루어 가시는 미쁘신 하나님이신 줄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의무를 다하지 아니하는 자신의 불성실과 나태를 오히려 충분히 보상해주고도 남으리라고 하는 이런 기대는 믿음이라고 하기보다는 종교적인 사행심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깊이 믿으면 믿을수록 우리는 내가 그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사무엘 선지자는 우리에게 그런 모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실하시고 한없이 진실하셔서 당신에게 당신이 스스로 맹세한 모든 것들을 성실하게 이루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자신은 또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의 경험에서도 보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자꾸 의심하고 못 믿는 사람들은 누구냐 하면 신앙적인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아니하며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합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정직하고 바르게 살려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애쓰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신실하심이 행하면 행할수록 그 의무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자기를 쉽게 부인할 수 있게 되고 자기를 부인하면 부인할수록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신실하심이 우리의 양식이라고 하는 사실을 더 깊이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향한 의심,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고 하는 도우심과 약속과 언약에 대한 불신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기 이전에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우리가 해야 할 신앙적인 의무를 다하면서 살아가는 이런 신앙생활들이 끊어진 것에 이러한 의심과 그리고 불안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험에 들게 되면 십중팔구는 반드시 악에 떨어지게 되고 범죄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은 상승적으로 찾아오게 되는 것이죠.
오늘 이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셨지만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 이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멍하니 하나님만 바라보고 ‘잘 되겠지!’
여러분 ‘잘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과 ‘그 분이 친히 행하시리라!’ 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에요. ‘잘 되겠지!’ 이것은 그냥 단순한 기대요 희망입니다. ‘그분이 이루시리라!’ 이것은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잘 되겠지!, 어떻게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같지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루시리라!, 하나님이 당신자신의 성실한 성품으로 당신 자신의 일을 행하실 것이리라!’ 하는 이러한 신앙을 굳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신하면 확신할수록 하나님의 그 성실하심을 자신의 삶에 현장 속에서 보고 싶어 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열심히 기도합니다. 오늘 이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성품의 신실하심을 말한 다음에 그리고는 즉시 ‘기도하는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 그는 ‘결코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약속을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실 일이 있고 또 자기가 행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기도하고 더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추진력으로 삼아서 더 깊이 기도하고 더 간절히 기도해서 그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 마치 자신의 기도에 달려있는 것처럼 기도하는 그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뢰하고 하나님이 고통 가운데서도 행해주실 위대한 구원을 바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자신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고민하는 것만큼 기도하지 않고 고민에 우선순위와 기도의 우선순위는 깨어있는 사람이 아니면 전혀 비례하지 않습니다. 아무상관이 없습니다. 불안해하는 것만큼 하나님을 의지할 것 같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머릿속에서 오가는 공식이고 실지의 삶에 있어서는 불안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날들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날들보다 훨씬 더 쉽게 택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안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은 자격이 필요 없지만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의지하는 것은 그가 깨끗하고 정결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새롭게 빚어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무엘선지자는 오늘 이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라고 하는 약속을 선뜻 함으로써 그가 그 순간까지 어떻게 하나님을 성실하게 범사에 의뢰해왔고 그리고 위기에 나라가 처했긴 했지만은 백성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졌어도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하나님과 가지고 있는 모든 관계를 총체적으로 점검시켜 주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것 같은 위기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으시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경험한 적이 없었던 고통스러운 결핍 앞에 직면하게도 만들어주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어두워져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자비로우신 분이시지만 그러나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고 이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는 결핍이나 혹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배신, 혹은 모든 관계의 단절로부터 오는 어려움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분 앞에 서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무너진 기도의 세계, 끊어진 기도의 모든 줄이 하나님과의 끊어진 관계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임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살아가면서 어떤 커다란 실패를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 안되었기 때문에 깊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고통하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꿈이에요.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인데 하늘로부터 커다란 파이프가 끝도 보이지 않는 파이프가 쭉 내려오는데(송유관 같은 파이프에요.) 그런데 그게 머리위에서 딱 멎었어요. 그런데 그 관으로 기름이 막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거예요. 그것을 흠뻑 맞고 깨어났더니 어제 밤에 느꼈던 그런 말할 수 없던 고통이,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롭고 고통스러운 마음, 이런 것들은 모두 물러가 버리고 다시 하나님의 평강과 평화가 거짓말같이 찾아왔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길 수 없는 그 환경에서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이렇게 사무엘선지자처럼 결정적으로 필요할 때에 우리 자신을 다 부어서 기도할 수 있는 순발력은 매일 매일 삶을 통해서 기도에 바쳐지는 삶을 살지 않으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런 것들을 많이 배웁니다.
지금도 저는 햇수로 8년을 운전을 했습니다. 킬로수로 거의 십칠팔만 킬로를 탔습니다. 그런대도 삼사일 집회를 갔다 와서 핸들을 잡으면 한5분내지 10분정도는 핸들이 어설프고 불안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육체적인 연습에도 우리의 육체가 이렇게 민감하다면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 우리의 연습, 경건의 엑스사이즈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임무를 실천해가는 우리의 경건한 삶, 이런 것들이 얼마나 어렵겠는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 기도로 사는 일 없이 기도가 평소에 어려움과 그 다음에 커다란 전환점에서 자기가 활용하는 은혜의 수단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정적인 어려움과 시련에 부딪힐 때에 이 사람처럼 기도하는 것이 마치 자신에게 달린 것처럼 기도 안하면 내가 죄 짓는 것으로 치자 나는 기도 안함으로 죄를 짓는 그러한 범죄를 결코 내가 하지 않겠노라고 자신 있게 기도를 향하여 순발력 있게 달려 나가는 이러한 삶이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깊은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 되기 위해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없는 환경과 더불어 싸우면서 자신의 마음을 좋으신 하나님께 바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내려놓지 않고 어디다가 내려놓겠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쉽지 않으면 돌아가는 길이 있을 줄 압니까? 질러가는 길이 있을 줄 압니까? 길은 오직 한길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 길이 너무나 멀고 고통스럽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에는 너무나 쉽고 안일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배우는 것은 기도는 단지 실천하면 좋은 의무가 아니라 안하면 죄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기도의 의무는 이행을 하면 상급이 붙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이행하지 않으면 벌도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에 헌신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실까요? 누구를 위해서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도록 원하고 계십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구원하시는 거룩한 목적의 부합한 인생을 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영혼들을 지켜나가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성취해나가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축복받고 인정받고 그리고 우리가 그 기도 속에서 살아나는 그런 모습을 보게 하시려고 주님이 우리에게 이런 길을 걸어가게 하려고 권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말없이 주님의 이 권면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