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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 새벽예배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고후5:9)
녹취자: 박은경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국 생사를 건 삶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아니라 인생을 사는데 인생의 분명한 목표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끊임없이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살 때에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들이 계속 역사해서 생명력을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물이 흐를 때에 그 물이 건강하고 생명력을 유지하지만 물을 가둬두면 썩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도 역시 동일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바로 사용하고 은혜를 주신 목적을 따라 살려고 할 때 그 은혜가 더 은혜가 되어서 우리에게 넘치는 것입니다.
사도는 우리가 이 땅에서 받는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앞 장에서 설명하면서 우리가 고난을 받고 주를 위해 박해를 받고 시련을 당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사라지는 것들이고 우리는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영광스런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천국을 소망하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허망한 죽음이 아니라 죽음이후에는 주님이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약속이 있고 썩을 몸이 썩지 않을 영광스런 몸을 덧입어서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아주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으면 우리의 몸을 떠나 속히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이 우리의 사모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아주 가깝게 생각하고 죽음 자체를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벽을 뛰어 넘으면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부활의 영광의 세계를 갈망하게 됩니다. 이런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슴속에 생생하게 가지고 있을 때 그의 인생이 무엇을 위해 가장 잘 투자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힘쓰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헌신하면서 살자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렇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헌신하고 그것을 위해 자기를 바치면서 사는 삶이 될 때에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방향이 없는 삶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 앞에 구원받은 우리의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향입니다.
‘무엇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 다음에 등장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이 각자에게 적용된 후에는 하나님이 당신의 나라를 이루어 가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일을 맡기시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일들을 맡기셔서 영적인 전쟁을 수행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공중에는 비행기가 뜨고 바다 아래는 잠수함이 지나가고 바다 표면 위로는 해군이 지나가고 육지에서는 육군들이 공격을 하고 해변에는 해병대들이 상륙을 하는 등, 많은 입체적인 작전이 펼쳐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당신의 나라를 이루어 가실 때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당신 나라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적용은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목표는 동일합니다. 전쟁이 나서 거대한 미사일을 조작하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별이 몇 개씩 달린 모자를 쓰고 전쟁 전체를 지휘하는 사령관으로부터 봉제공장에서 군인들이 신는 신발을 꿰매는 근로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사모하는 바는 그 전쟁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이와 동일하게 여기에서도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이 각자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이고 우리를 세워 주신 자리가 어디인가를 깊이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자리가 나에게 말할 수 없이 중요한 자리이고 사명의 자리인 것을 아주 깊이 분명하게 느껴야 합니다. 그 사명의 자리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입니다. 일의 크기나 종류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나 자신이 부르심을 받은 이 사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사명의 가치는 그것을 자신에게 허락해 주시고 자기를 거기에 세워주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 사명의 자리에 불러주시고 세워주신 거기에 있다고 깊이 생각하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과업을 잘 수행해 내려고 하는 사명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무거운 물건 같은 것을 같이 여러 번 들어보면 인간성이 드러납니다. 진실하고 순수한 사람들은 여러 명이 물건을 들어도 최선을 다해서 듭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여러 사람이 무거운 물건을 들면 끝에서 한 손만 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진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각종의 사명이 있고 자기에게 세워주신 자리가 있습니다. 그 일을 감당할 때 여러분들이 그 일을 잘 감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갑자기 교회가 무너지고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좌절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자신에게 세워주신 사명의 자리에서 주님이 주신 은혜와 은사를 모두 사용해서 자기에게 맡겨주신 그 일이 귀중하고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섬기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의 힘, 기도의 능력도 그 사람의 삶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절실하고 맡겨진 사명의 자리에서 자신의 온 힘을 다해서 자기를 부르신 주님께 만족을 드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섬기며 살아가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런 사람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십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의 자리에서는 이탈하고, 사명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대신 태만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는 간구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자기자리에서 이탈에서 하나님 앞에 털어놓는 불평, 불만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해 주시는 기도의 힘과 능력도 다른 것입니다.
마지막 두 번째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신의 사명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결국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복음의 승리를 위해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인데 복음의 승리를 위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먼저 자신이 그 복음을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맡겨주신 일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강조되어야 할 것은 자신이 먼저 복음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승리를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체력을 바쳐서 헌신하는데 자신이 먼저 그 복음을 즐거워하며 그 복음 안에서 생활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진실한 헌신일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먼저 그 복음을 누리고 그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자신이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온 힘을 다해 지혜롭고 충성스러운 종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생명처럼 생각하고 그 일을 잘 감당해 나가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그 복음을 누리면서 진실한 신자가 되어져야 합니다. 일은 잘 하고 자신은 망가져버린 사람, 끊임없이 자신의 문제만을 붙들고 고민하지만 아무 삶의 열매도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도 언제나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감당해야 할 삶의 부분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주님이 우리 각자에게 세워주신 곳이 있고 거기서 하나님이 열매를 원하시고 열매를 잘 맺어서 주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동시에 우리가 날마다 깎이고 다듬어져서 진실한 신자가 되어져 갈 때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자녀다운 형상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날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