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새벽예배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약 5:16-17)
녹취자 : 이시내
갑자기 죄사함을 위해서 서로 기도하라 병 낫기를 위해 간구하라 해놓고서 뜬금없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성경에서 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것입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를 보여주는데 첫째는 기도에 있어서 기도자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도가 다 같은 기도가 아니고 누가 그 기도를 하느냐에 따라서 기도내용자체는 같아도 누가 기도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실 수도 있고 안 들어주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무엇을 보여주냐하면 회개를 통해서 우리들이 기도자로서 얻는 실제적인 유익이 무엇이냐면 우리를 하나님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날 설교한가운데 두 번이나 반복한 내용이 있었는데 한사람이 과거에 아무리 의로운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 의는 죄가운데 살던 사람들이 깊이 뉘우치고 용서받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오늘의 의를 능가하지 못합니다. 문장이 좀 깁니다. 그런데 굉장히 중요합니다. 더 줄일 수가 없습니다.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과거에 아무리 의롭게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그 의가 오늘 이제껏 죄 가운데 살다가 깊이 뉘우친 사람을 하나님이 너는 죄없다. 깨끗하고 의롭다라고 하나님께로부터 은총으로 덧입는 그 의를 능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로운 삶이. 그러니까 죄 가운데 살다가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들의 참된 회개가 의로운 삶을 살면서 참회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삶보다 훨씬 더 의롭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비근한 예가 바리새인은 그렇게 의로운 삶을 살았는데도 죄를 많이 지은 세리가 더 의롭다 함을 얻고 성전에서 내려갔습니다. 그 이유는 실제 삶에 있어서는 바리새인이 세리보다 의로웠습니다. 그런데 세리는 깊은 참회가 있었기 때문에 회개하는 그 사람을 용서해 주시는데서 오는 하나님의 그 의가 바로 의로운 삶을 살았던 바리새인의 그 의로운 삶보다 훨씬 더 능가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누구의 예를 드냐면 엘리야의 예를 드는데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성정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됨, 사람의 성품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건데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이냐하면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모든 연약함과 심지어는 죄까지도 공유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공유한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그 사람은 의인이었다.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엘리야가 의로운 사람이었을까요. 아까 말씀드린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가 의로운 삶을 살고 하나님 앞에 부던한 자기 부서짐 속에서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야의 생애를 보면 계속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의인이다 라고 하는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진 채 아주 차갑게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의의 근원자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영적인 연합이 없는 의인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 가운데 살다가 용서받은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죄의 용서함 때문에 의인이기도 하지만 죄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과 회복된 관계 때문에 그 사람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 보면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라고 하며 악인을 누구와 대조했냐 하면 악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의인과 비교를 하고 그 의인은 결국은 누구냐하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음같이 그 앞으로 더 나아가면 복 있는 사람은 주야로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는 자로다. 점진적으로 나아가서 결국은 의인과 악인의 날카로운 대조는 무엇이냐면 의인은 그 생명의 뿌리를 하나님께 박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그 생명의 수액을 먹으면서 생명의 기원과 뿌리를 하나님께 깊이 박고 거기로부터 공급받으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보실 때 의로운 사람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의로움의 개념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바른생활에서 나오는 의로운 개념이 아니라 초등학교에서 나오는 의로운 사람의 개념이 아닙니다.
3년 6개월 동안 아합의 시대에 비가 오지 않았을 때 천지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실은 땅 자체가 죽음의 땅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6개월만 비가오지 않아도 살지 못하는데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 아합의 시대가 모두 타락한 시대이긴 했지만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무리 그 세대사람들이 패괴했다 할지라도 누군가는 기도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사람들의 기도는 다시 비가 오게 하는데 기여하지 않았습니다. 역사는 해석하기를 엘리야 한사람의 기도 때문에 하늘이 문을 닫았고 또 하늘이 다시 문을 열었다라고 합니다. 어떤 주석가는 하늘의 문을 닫고 열쇠를 주머니에 집어넣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심겨진 생명나무와 같이 생명의 뿌리를 주님께 박고 그분을 깊이 의지하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 그리고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려서 전심으로 기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오늘 도대체 우리가 누군데 조국교회를 위해 기도합니까. 조국교회가 한둘입니까. 아니 구역 식구 한사람 돌봐줘도 변하지를 않는데 조국교회가 변합니까. 그런데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가 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를 움직이십니다. 이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기도하는 사람은 항상 먼저 하나님의 행동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내려오실려나 역사해주실려나 은혜를 베풀어주실려나 관심이 많습니다. 그것 못지않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기도가 끝나면 삶이 펼쳐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삶은 다음에 다시 기도하러 올 때까지 준비운동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위해서 살고 또 기도하는 것은 살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살고 살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깊은 은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깊은 기도의 은혜 속에서 살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