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세월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딤후 2:1-4)
녹취자: 도현호
사도 바울은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어떻게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의 교회를 이끌어야할지를 가르치는 가운데,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자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과 같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일신의 평안과 풍요한 삶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있는 시대에는 매우 어리석게 들리는 말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동시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군대의 입대한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신앙을 갖는 것도 자기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 시대입니다. 모든 사물들의 질서를 재편해서, 자기의 행복에 이바지하게 하는 것이 현대의 정신이기 때문에, 신앙도 현대 정신에 의해서 재해석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이런 사람들을 모아서 그를 하나님 앞에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고 새로운 정신과 세계와 역사와 인간을 볼 수 있는 사상을 심어주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할들을 교회가 충실하게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조국교회를 염려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강함이라고 하는 것은 군대의 강함입니다. 그것 하나만이 나라의 강함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것 없이는 다른 강함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근대사속에서 중국이 여러 서구 열강에 의해서 강제로 개방을 하던 역사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들은 중화사상에 젖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많은 문명과, 기술에 있어서 전 세계 어느 나라에 내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나라가 중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외세의 열강에 간단하게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때에 전 세계 부의 2/3 를 중국이 소유하던 때였습니다.
시오노 나나미라고 하는 작가는 자신의 책 속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로마가 그토록 오랫동안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군대의 힘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수려했습니다. 로마의 군인이 강해지던 때에는, 로마가 강했고, 로마의 군인이 약해지기 시작하면서 로마는 함께 약해지고 무너졌다고 말입니다. 강성하던 시대에 로마의 군인들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추가적으로 적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에게 전투는 피 흘리는 훈련이었고, 훈련은 피 흘리지 않는 전투였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참된 복음을 전하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깊이 감격한 사람들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만약에 그런 하나님 사랑에 깊이 감읍한 사람이 정말 제대로 된 신앙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니, 이번에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을 차례라고 하는 군인 정신으로 무장시켜서 절제와 헌신 속에서 살게 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인해전술로 오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서말의 가루로 이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한줌의 누룩으로 세상이 변하는 나라이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자기의 국가론이라는 책 속에서 군인이 누구여야 하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통치자는 머리이고, 전사는 가슴이고, 일반 백성은 내장-오장육부-배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만약에 온 나라에 법정 스님 같은 사람만 있다면, 국가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경제고 문화고 어떤 발전이고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끊임없이 사랑하고 미워하고 더 좋은 것을 욕망하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고 더 좋은 의복을 입고 싶고, 욕망이 꿈틀거려야지만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고 나라가 물질적으로 부요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나라가 온전한 리가 없습니다. 제일 위에서 통치자들은 이런 모든 국가의 요소들을 잘 조합해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사람다운 사람이 살고 정의를 배우고 하늘의 뜻을 따라 살만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나라가 되도록 전체를 조직하고 건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들이,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 전사입니다. 그래서 이 전사는, 분명하게 그 시대에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절제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함께 백성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절제하고, 모범을 보이면서, 맘과 생각 전체를 나라의 안녕과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그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 이 세상에서 번영하고 이 세상에서 욕망대로 살면서 자기의 욕심을 만족시키는 일과는 구별된 성직자적인 삶을 살아야지만 나라가 보호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그러므로 군인들은, 전사들은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사느냐-라고 물었더니, 전사의 인생의 재미는 일반 백성들의 재미와 다른 것이다, 일반 백성들의 재미는 먹고 마시고 쾌락을 즐기는 것에 있지만, 전사의 행복은 지혜로운 왕과 함께 높은 하늘의 지혜를 배우는 기쁨 속에서 희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의 혼탁상들은 정말 우리에게 많은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오늘날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욕을 먹고, 그리스도인들이 신랄하게 비난을 받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비난에는 근거 없는 요소들이 상당수가 있고, 근본적으로 오늘날 현대 사상을 뒤덮고 있는 무신론의 강력한 사상이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지만,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전사로 자처하기보다는, 오히려 예수 때문에 번영하고 이 세상에서 세속적인 행복을 누리는데 골몰해 있기 때문에 여기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도덕적인 타락의 결과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이것은 매우 슬픈 일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오기 위하여 부여하신 기회를 매우 잘못된 곳에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대한민국의 한 사람의 군인이고, 사람들을 지도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군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속속들이 내용은 모르지만, 늘 관심은 많이 갖고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그러한 일반 국민 중에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군인이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고, 군인이기 때문에 무엇인가 고통 받는 삶을 사는 것으로써, 군인의 본분을 다하는 것 같은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미군 navy seal 중에 최정예 부대원들이 한꺼번에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야 접할 수 있는 정보가 신문과 잡지밖에 없기 때문에 내용을 상세히 읽어보니, 그 군인이 일 년에 받는 월급이 2억 가까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미국의 인플레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에서도 그 정도의 금액이면 상당한 고액의 연봉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나라가 부강해 질 때, 군인들을 잘 대우하고 행복하게 하고 군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인 존경에 있어서 결코 찌그러지지 않도록 넉넉하게 대우해주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시편에 말씀하신바와 같이 너희는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치신하지 말지니라-하신바와 같이 군인과 사회 지도층에 잇는 사람들은 넉넉한 환경 속에 살게 된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안주하거나 그것에서 너무나 많은 기쁨을 누리면 정당한 군인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고려대학교 앞에 포장도로가 깔리지 않은 비포장도로였고, 도로에는 달구지가 바퀴달린 차보다 훨씬 많은 시대를 살았습니다.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가난 속에서 이만큼 살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언젠가 영국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당신 나라 대한민국에 대해서 자부심이 없는 것을 보고 참 충격을 받는다. 당신들은 산업에 있어서 영국이 300년 동안 이룰 수 있는 산업을 한꺼번에 이루었고, 영국이 200년 동안 이룬 민주화를 단 30년 만에 이룬 세계 유일한 나라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어떤 사람도 이런 말을 합니다. 자기들은 50년 전에 한국보다 훨씬 부강한 나라였고 한국을 도와주는 나라였지만, 산업화도 실패하고 민주화도 실패하였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을 부정하는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고 지금도 풍요로운 시대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가난하던 시대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들이 그렇게 하나님 주신 번영을 그 자체에 탐닉하는 동안에 교회가 철저한 군인정신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깊은 자각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 사실이 두렵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 나라에서 살지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며, 이 세상 나라만을 위해서 헌신할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은 주님을 잘 믿고 간절히 기도해서 은혜를 많이 받고 능력을 받으면, 힘들게 하던 일을 쉽게 할 수 있고, 어려웠던 일도 가볍게 희생 없이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진리와는 반대의 사실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능력이 많이 주어진 사람에게, 고난도 많이 기다리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쓴 편지 속에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라.
여기에서 좇아-라고 하는 말은 비율에 맞게, 그것에 따라서라는 뜻입니다. 네가 받은 하나님의 능력의 크기를 따라서 그만큼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을 것이니라. 누가복음 3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의 능력을 한량없이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난도 한량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능력을 구하고 은혜를 구하는 것은, 군인이 최신 병기를 달라고 신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은혜를 주신 것은, 그 능력을 주신 것은 바로 그것을 가지고 이곳 어두운 세상에서 빛의 군사로서 싸우라고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같고 스승 같은 사도바울이 이미 자신의 삶이 고난 중에 있다고 하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와 능력의 자원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철저하게 헌신해서 이 땅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군인 된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사도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라고 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군인으로 하나님앞에 살아가면서 자신의 모든 인생의 소원과 군인의 소원이 일치가 되었다고 하는 뜻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군인으로 사는 것이 또 다른 인생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군인으로서 사는 그 자체와 인간으로 살아가는 그 삶의 목표가 일치가 된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삶에 얽매인 것이 없는 사람이 바로 군인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군사로 모집한 그 분을 기쁘게 하는 것이 군인으로서 살아가는 그 모든 삶에 양식이요 기쁨이 된다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양식을 가지고 제자들이 근심할 때, 예수님은 자신의 양식을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게는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나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니라 - 이것이 당신의 양식이라고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가끔 정말 진실한 목회자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계도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참이슬처럼 영롱하고 깨끗한 목회자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중에 공부를 아주 잘 한 사람도 있고 덜한 사람도 있고, 장로교회를 섬기는 사람도 있고 감리교회를 섬기는 사람도 있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쁨이 자신의 지위나 물질적인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기쁨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좋아하시도록 하면서 살아서, 그 분이 즐거워하시는 것이 자신에게는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이외의 것에서 기쁨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영혼이 심각하게 병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신 분은 그리스도 예수이시고, 우리를 또한 당신의 나라를 위한 군사로 불러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길은 우리 홀로 가는 길이 아니라, 예수께서 먼저 고난을 받고 피 흘리며 걸어가신 길이기 때문에 우리는 외로운 길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충성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군인은 자기를 모집한 그 분의 기쁨이 양식이 되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외에 다른 것에서 군인이어야 할 이유를 발견할 때, 군대는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잡지에 실린 글을 인용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투가 벌어졌고, 군종 목사님이 거기를 같이 참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병사 여럿이 집중 사격을 받으며 쓰러지면서 죽었습니다. 그 중에 흑인 병사 하나가 난자하도록 총탄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위생병도 갔지만 목사님도 달려가서 쓰러진 그 군인을 치우고 끌어안았습니다. 교회에 잘 나오던 군인이었습니다. 온 몸에 피가 흐르는데, 목사님이 너무 안타까워서, 가망이 없어 보이니깐, 아프지, 너무 힘들지, 죽지 마라, 그랬더니 이 군인이 손등에 흘러내려오는 피를 잉크 삼아서 덜덜 떨면서 무엇이라고 바지에다가 글씨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semperfidelis 라틴어로 항상 충성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맘 속으로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 그렇구나, 군인이 자신의 나라를 위해서 자기를 불러준 국가를 위해서 이렇게 마지막 죽어가는 순간에도 항상 충성이라고 외치는 군인이 있기 때문에, 나라가 있는 것처럼,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정말 semperfidelis의 정신으로 살았는가?
(찬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정말 그렇게 주님이 나를 어둠 가운데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정말 한평생을 충성스럽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충성스러운 한 사람이 충성스럽지 않은 1만 명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한 사람은 합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군인입니다. 한 국가의 군인, 동시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내는 군사로 살도록 불러주신 영적인 군인이기도 합니다. 충성스럽게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기쁨을 주님께 두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로 말미암아 국가가 행복해지고 여러분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