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15 새벽예배
11월 15일 새벽예배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행 20:25-27)
녹취자: 조은경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에 만나는 모든 것은 헤어집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회자정리’라고 했습니다. 만난 것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뜻입니다. 모든 이치가 그러합니다.
여기 열매와 꽃, 그리고 입사귀가 만나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 얼마 있으면 각각 흩어져 쓰레기 더미로 들어갑니다. 이런 물건이 있지만 여러 개의 부속들이 합쳐서 만들어지지만 언젠가 다 흩어집니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조합은 잠깐 영원과 영원의 틈바구니 사이에 잠깐 존재하는 것이고 결국은 모두 흩어집니다. 목회자와 교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주일도 김목사님이 설교하시겠지?’ ‘목사님이 오늘도 심방오시겠지?’ ‘목사님이 오늘도 새벽기도 하시겠구나’ 이게 언젠가는 딱 끝나고 우리가 서로를 이 세상에서 다시 보지 못할 때가 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아시아에 들어온 첫 날부터 섬겼던 이것은 눈물나는 섬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이 참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어떻게 섬긴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이렇게 말씀할 정도로 이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정말 깊이 고생하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에베소 교회에 쏟았던 사도의 사랑과 열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눈물과 겸손이며 유대인의 관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가정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너희에게 전한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교인들도 사도를 얼마나 사랑했겠습니까? 이제 헤어지면서 ‘이제껏 너희에게 내가 복음을 전해왔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파했지만 이제는 너희는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 그리고 이제 환난과 핍박이 기다린다고 성령이 증거하시는 그 핍박과 고난의 상황을 향해서 사도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이 장면 자체가 참 감동적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교회를 사도가 생명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에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관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기고 그렇게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것보다 더 큰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하는 이 사명이 사도에게는 더 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생명처럼 사랑하던 교회를 버려두고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든지 그러겠습니다마는 특히 한국교회는 목회자를 독점하려고 하는 아집이 참 강합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교회 목사님은 우리교회가 생활비를 드리니까 우리들만을 위해서 봉사해야한다.’ 이런 생각 말입니다. 이게 한국 사람들이 특히 강한 것 같습니다. 저야 교회를 개척했으니까 그럴 일이 없습니다만은 후배들이나 목사님들이 다른 교회 청빈 받아서 가면 조건이 ‘5년 동안은 아무데도 가지 마십시오.’ 가지말라는 것은 다른곳에 가서 활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년동안은 아무데도 가지말고 교회에 가만히 있으십시오.’ 어떻게 보면 그 교회 형편으로서 이해가 가지만 참 웃기는 겁니다. 결국은 목회자의 임무는 하나님의 교회의 영적인 번영과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입니다. 목회라고 하는 것도 그것을 위한 하나의 수단입니다. 자기 교회를 그냥 아무렇게나 되라고 내팽개치고 밖으로 돌아쳐도 안되겠지만은 목사의 임무는 교회의 영적번영과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강하게 기여하면서 살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저야 이렇게 얘기해도 많이 안 나가는 것을 여러분이 알지만은 그런 점에 있어서 교회가 좀 균형감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교회인데 교인을 여기에 두고 보라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하고 올라갔습니다,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보다 더 궁극적인 가치인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하기 위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두 번째 나오는 이야기가 내가 모든 사람들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 갑자기 피 얘기가 나옵니다. 피라는 것은 성경에서 생명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에도 보면 ‘짐승을 피째 먹지 말라 왜냐하면 피는 곧 생명이니라’ 그래서 피를 흘렸다는 것은 생명을 쏟았는 것이고 피를 다 흘렸다는 것은 생명이 모두 쏟아져나와 끝났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피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구약의 사상이 피가 육체적 생명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나는 이제 피에 대해서 깨끗하니’ 이게 무슨 뜻입니까? 피가 사람이 그냥 있는 동안에는 피가 흐를 일이 없습니다. 칼로 찌르거나 죽임을 당할 때 피가 쏟아져 나옵니다. 여기서는 죽음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피를 다 쏟아내면 죽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쏟아지는 피, 심판을 통해서 다 피가 쏟아져서 죽는 그때에 쏟아져 나오는 그 피, 심판에 의해서 쏟아지는 생명의 유출, 그 피에 대해서 깨끗하다. 무슨뜻이냐 하면 한 사람의 목회자가 일생동안을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면 그 복음을 다 전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나면 그 다음에 생각할 것은 그것을 들은 사람들이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그렇게 전파했는데 그 진리에 대한 너희의 반응이 뭐냐 하나님이 그것을 물으시는 겁니다. 그때가 오고 그때 나는 깨끗하다는 겁니다. 깨끗하다는 것이 무슨뜻이냐하면 에스겔서를 배경으로 합니다.
가령 파수꾼이 있는데 적군이 쳐들어오면 ‘야! 온다 빨리 대비해라’고 외쳤는데도 사람들이 ‘에이, 오긴 뭐가 와?’ 이러다가 성이 무너지고 망하게 됐다면 파수꾼은 깨끗하다 이겁니다. 왜? 전했으니까! 그 파수꾼은 왕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명령할 수 없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은 외치는 것입니다. ‘적군이 쳐들어온다! 그렇게 계속 있으면 이 성이 점령을 당하고 너희들은 망한다.’ 여기까지는 파수꾼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군대를 조직하고 공격을 하게하고 수비를 하게하는 것은 파수꾼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닙니다.
(예화) 조선시대에도 남산을 목녁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목녁산을 중심으로 팔도가 높은 산봉우리마다 봉화대가 있었습니다. 높은 산봉우리에 봉화꾼들이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 봉화꾼들은 아주 천한 노예신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쪽 전방에서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면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꽃이었습니다, 하나가 켜지면 조심해라 둘이면 공격의 조짐이 보인다 셋이면 쳐들어오고 있다. 그런 것들이 저 위에서 아래야 왜구밖에 없지만 오랑캐들이 들어오면 산봉우리를 타고 쭉 전파되면서 마지막에 목녁산 꼭대기에 불이 오르는 겁니다. 전방에 전황을 한꺼번에 보게 되는 것 입니다. 그 천한 하층 노예와 같은 사람들이 불 피워서 적이 쳐들어온다는 것을 알리는 거 말고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때리면 맞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그럴 힘은 파수꾼에게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파수꾼이 들어오고 있는데 말을 안합니다. ‘어, 들어오는구나’ ‘이렇게 얘기해서 저들이 들을까? 귀찮아할까?’ 이런 이유로 혹은 자기가 잘 못 알아보고, 태만해서 말을 안하면 결국은 전쟁에 수많은 사람은 죽을 것이고 그 피를 그 파수꾼의 손에서 찾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심판이 오기 전에 그렇게 외쳐라’ 무엇을 보여 주냐면 사도바울은 ‘내가 이 아시아에 들어와서 만나는 사람마다 애절한 마음으로 간절히 복음을 전했단다. 내가 가고나면 결국은 이제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텐데 그들이 언제 죽고 혹은 심판을 받게 되든지 간에 나는 깨끗하다. 왜냐하면 나는 모든 힘을 다해서 그들에게 전했고 그들을 돌이키려고 애썼지만 그들 중에는 돌이킨 사람도 있고 안 돌이킨 사람도 있다. 그것은 그들의 몫이다.’ 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나중에 죽고 나면 진리를 깨달은 책임이 얼마나 큰 것인지 나중에 알게 됩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받은바 진리의 말씀에 대한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그때에 목회자들은 온 힘을 다해서 그들에게 진실을 말했다면 깨끗한 거고 그렇지 못했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의 피를 목회자의 손에서 찾으실 겁니다. 이걸 두 번째로 얘기하는 겁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뭐냐하면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너희에게 다 전하였음이라 결국은 그 꺼림이 없다라고 하는 것이 뭐냐하면 진리와 관련돼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목회사역의 가장 큰 임무는 진리입니다.
(예화) 요즘 제 눈길을 끄는 광고가 있습니다. 저는 그 주유소 잘 가지 않지만 무슨 주유소가 나오면서 탤런트들이 그럽니다. ‘저요 주유소에 뭐 바라고 가나요. 좋은 기름하나 바라고 가지요.’ 여러분 보신적 있죠? 에스오일이에요? 그게 뭐냐하면 나는 그런거 참 싫어합니다. 저는 거의 안받는데 주유소에서 기름이나 제대로 넣어주면 되지 뭐 쓸데없이 휴지, 물병, 커피 심지어는 강냉이 뭐 별 잡다한걸 다 줍니다. 저는 거의 안 받습니다. 목마르면 물이나 한모금마실까 거의 안 받습니다. 항상 주면 필요없다고 이런 돈가지고 이런 헛데 쓰지말고 한푼이라도 더 주고 기름이라도 좋은거 사가지고 와서 넣어주던지 그래라 하고 있었는데 누가 나오더니 ‘주유소요 뭐 바라고 가나요.’ 그런게 다 비꼬는게 들어가 있는겁니다. 그런데 그 주유소도 뭐 주더라구요. 뭐 그런거 바라나요? 심지어 포인트를 적립하세요 그래서 됐네 이사람아 돈내고 기름 넣으면 되지 포인트는 무슨 포인트. 너나 가져라 세차권도 다 필요없다.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 뭐 바라고 오시나요? ‘교회요 뭐 바라고 가나요? 좋은 신앙하나면 되지요.’ 그런 신앙,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요 뭐 바라고 가나요? 좋은 신앙하나 배울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요.’ 그게 신앙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