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새벽예배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 2: 39-41)
녹취자: 김용재
이렇게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하는 이 기독교의 신앙을 선포하면서 복음을 전했더니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앞에 보면 먼저 복음의 보편성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그 분을 믿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죄의 용서와 성령을 주신다는 이 약속이 특별한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너희와 너희 자손뿐만 아니라 먼 데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도가 선포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 사실 그 당시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유대교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겐 또 다른 큰 충격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냐 하면 바리세인을 비롯한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매우 가까이 가있고 그리고 자신들은 그 사람을 통해서 겨우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받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맞닥뜨려서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고 그 위에 성령을 받게 된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들에게 매우 신기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성령 강령하심이 있고 난 후에 나타나는 신앙의 강력한 역동성입니다. 그 전까지는 이런 강력한 역동성이 없었습니다. 율법을 가르치고 그 율법대로 살도록 그 율법을 더 상세하게 연구해서 자신의 삶의 지침을 만들어 놓은 탈무드나 이런 것들을 가르치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온 어찌 보면 차가운 신앙생활이었고 능력을 보지 못하는 신앙생활이었는데 아주 놀랍게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력한 신앙의 참맛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에 있어서 역동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깊이 엎드려지면서 하나님 앞에 죄의 용서를 빌고 참회하며 믿고 성령을 받아서 기뻐하고 그래서 새 삶을 살아가고 하는 그런 강력하고 역동적인 역사가 이들 가운데 일어나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중요한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충격은 굉장했을 것입니다. 그 후에 사도들이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여러 말로 그들을 권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어떤 식으로 가르쳤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많은 이야기를 해서 그들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많고 많은 설득이 있었지만 가르침의 표적은 분명한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초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들 가운데 강력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제자들의 수에 가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는 역사가 그 날에 삼천 명이나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인구와 그때의 인구를 비교를 해본다면 어마어마한 일일 것이라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엄청난 일이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도 사실은 일세기의 문맥과 거의 같은 시대에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세계적으로 보면 강력한 핍박이 있고 그래서 20세기에 순교한 사람이 삼천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엄청난 사람이 박해를 받고 있고 물론 우리야 이렇게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엄청난 박해를 받고 있고 그리고 또 이방의 문화에 의해서 둘러 싸여 있고 많은 사람들이 복음 믿는다고 하지만 기독교는 여전히 소수이고 너무나 1세기와 유사한 문맥에 우리가 놓여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많은 선교적인 타개책들을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들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많이 애를 씁니다. 또 그런 작업도 필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문제는 무엇이냐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 이 문제를 타개하던지 간에 이게 사실을 그런 방법을 가지고 타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천적인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는 일 없이는 타개가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도시에서도 뼈저리게 느끼지만 도시에서는 비교적 덜 느낍니다. 덜 느끼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이 이 교회 저 교회를 자꾸 떠돌아다니니까 덜 느끼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골에 내려가서 우리들이 보게 되면 한 사람의 신자를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 나름대로 토착신앙을 가지고 있고 젊은이들은 다 사라져서 나이 들어서 완고한 사람들이고 심지어는 미신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고 동네사람들의 인식이 이 기독교 신앙을 배척을 해서 누가 한 사람이 기독교를 믿게 되면 따돌림을 당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강력한 반감과 저항감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경남이나 제주도 쪽으로 내려가면 새로운 신자를 얻는 것이 특히 제주도 같은 곳은 토박이 주민들이 신자가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고 얘기를 합니다. 지금도 시집갈 때 토박이들은 비단보자기에 뱀을 싸서 딸 손에 들려 보낸다고 합니다. 그럴 정도로 아주 완고하고 토착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또 그 토박이 들이 잘 살아서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없으면 사람들의 마음이 더 굳어집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무엇이냐 하면 사도행전적인 역사의 재판 이외에는 선교가 안 됩니다. 사실 그런 결론을 내립니다. 물론 노력은 하지만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선교는 사도행전의 재판과 같은 재현의 역사가 일어나기 전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XXX목사님이 거기에 건달로 지내다가 회심하고 은혜 받고 선교사로 파송이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제 제주선교의 문을 열지 않습니까. 그 때가 지금보다 훨씬 강퍅하고 완고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이야 외지인들이라도 있어서 생각을 깨우지만 그 당시에 외지인이 없는 상황에서 엄청났습니다. 같은 교회 다니는 형제가 있었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부목사가 교회에서 갔습니다. 서울 사람 같으면 내가 아무리 예수를 안 믿고 심지어 타종교를 믿어도 목사가 몇 명 데리고 제주도 까지 왔는데 예배는 못 드려도 문상은 하게 할 것 아닙니까. 슬그머니 들여보내라 그래서 그러지 말고 내가 가겠다. 목사가 왔다고 해라 도착을 해서 그 아들이 어머니한테 어머니 우리 아버지 문상하려고 목사님이 왔습니다. 마당에서 들여보내지도 인터랍니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해결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문화적인 접근이나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열려 있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없이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 또 하나는 아주 선명한 복음 이 두 가지가 강퍅한 유대인들의 마음을 깨뜨리고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선교의 역사들이 이런 전철을 밟는 것입니다. 강력한 성령의 역사와 선명한 복음. 이것이 사람들을 일깨우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섭리가운데 성령의 강림을 허락하시고 그 강림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런 성령의 강력한 은혜와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시고 싶어 하시는데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도 결국은 주님의 약속이 있었지만 주님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면 성령이 임하신다는 약속이 있었지만 언제 임할지는 잘 몰랐습니다. 주님 곧 오신다고 해놓고 아직도 안 오시지 않습니까. 이 약속도 사실은 언제 이루어질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질 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믿음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마음을 모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놀라운 역사가 자신들에게 임하고 나타나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성령의 강림이 이루어졌고 그래서 그들이 진정한 복음으로 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파하자 거기에 성령이 역사해서 그 완고하기 이를 데 없는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나라가 다르고 시대는 달라고 언제나 이런 식으로 복음의 성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의 역사의 진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바로 이 일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성령의 역사 없이 사람들이 교회를 드나들수록 아주 나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주 위선적인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할 때 하나님께서 이런 성령의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시고 지체들에게 부어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