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 새벽예배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사 20:33-35)
녹취자: 임종찬
앞에 나오는 이야기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한 것이 진리로 조직된 신앙의 교훈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여기에 나오는 사도바울의 생활에 대한 언급은 사랑으로 실천하고 있는 삶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자체가 진리로 잘 조직된 교훈, 그 다음에 거기에 사랑으로 실천된 실제의 삶, 이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진정한 신앙생활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면 사랑으로 실천된 삶이 나오는데 거기에 대해서 몇 가지를 이야기 해줍니다.
첫째로 사도가 무욕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이야기 해줍니다. 그래서 자기는 은이나 금이나 아무 사람의 의복도 탐하지 아니하였고, 무욕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사랑의 삶을 사는데 있어서 가장 커다란 방해를 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탐욕입니다. 부당하게 자기를 위하려고 하는 탐욕이 사랑의 삶을 사는 일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커다란 걸림돌,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무거운 짐은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다라고 할 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될 일은 자기 사랑을 버리는 일, 부당한 자기 사랑을, 정도를 넘는 자기 사랑을 버리고 또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들어온 첫날부터 보여주었던 삶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다 버린 그런 용기의 삶을 살게된 것입니다. 그렇게 욕심이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런 삶이 가능했었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둘째로 섬기는 삶입니다. 사랑이라는 특성 자체가 즐거워하는데 있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를 즐거워하고 그 사람을 즐거워하려고 계속하면 그를 위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고 3년여 아시아에 들어와서 머물러 있는 동안 교회를 목회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활이나 필요한 모든 것을 교회가 책임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사도바울은 선교사로서 한 교회에 머물러 있지 않고 교회를 떠나는 삶을 사는 아주 철저한 선교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거기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자신과 동행들의 쓸 것을 먹이고 입히고 자신들이 선교를 하는 교회에서 신세를 지지 않는 식의 선교를 했습니다. 천막 만드는 일로 인해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를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같이 그 업을 하면서 그러면서 필요한 사람들의 돈을 공급했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것들을 가리켜서 자비량선교라고 하는데 자기가 먹을 양식을 자기가 공급하면서 하는 선교 텐트메이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필요만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봤을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일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보여주었던 삶의 모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사랑의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섬긴 그런 삶을 사도바울이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 진리로 조직된 교훈을 가지고 있으면 사랑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사랑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깊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사랑받는 것에 만족해서 자기욕망으로부터 벗어나고 그 다음에는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가운데 진리로 조직된 삶을 사랑으로 실천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본을 보이는 삶입니다. 사도바울이 이타적인 삶을 살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본을 보이고자 함은 사람들의 신앙이 어리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라고 하는 것을 그들에게 사도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욕망이 전부는 아니지만은 그러나 그들에게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일들이 절대로 필요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게 다 그렇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신앙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이제 이런 본보기를 보면서 그리고 보이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는 이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예수의 말씀이었습니다.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 말씀은 종종 논쟁이 되는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서에 이 말씀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두가지 추측하는데, 첫 번째는 아마도 당시에 복음서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대한 기록들이 돌아다녔고 그 중에 한 구절을 사도가 이야기 한 것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복음서의 말씀의 정신을 사도바울이 표현한 것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것이 예수님의 정신이라고 하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복이다고 하면은 자신이 이 세상에 있는 재물이나 자원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것을 복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니라 이 사람 바울은 진짜 복이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주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 주는 자체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주는 것이고 물질을 사랑하면 그 끝은 탐욕과 죄악이지만, 주님을 사랑하면 그것은 끊임없는 영생과 하나님의 기쁨이요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물질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많이 복을 받는 다는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아가야 됩니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