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새벽예배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사도행전 4:1-4)
녹취자 : 이민희
그 앞에 나오는 3장에서의 이야기는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고친 후에 그들이 사도들을 주목하니까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가 우리의 경견과 능력으로 이 사람들을 살린 것처럼 생각하지 마라’라고 하면서 이렇게 쭉 전했습니다.
다시 보아도 얼마나 논리정연한지 모릅니다. 그 당시에 뛰어난 지성인이 아닌 그저 평범한 어부요 어떤 의미에서는 엘리트의 지식수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흘러나온 것이었습니다. 원고도 없이 그 자리에서 쭉 쏟아져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게 결국은 성령님께서 이들에게 임하셔서 깨닫게 하시니까 나타난 현상들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말씀하고 싶으실겁니다. ‘목사님 성령님이 오시면 모두 다 해결되는 거군요’ 그러나 그게 아니라 이 사람들이 비록 어부였고 이 세상에서 유능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후에 보면 베드로가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에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설교를 들으면서 감화를 많이 받는 것을 보면서, 종교지도자들은 이 베드로가 무식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학문이 없는’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도날드거슬리 같은 신학자는 그것은 아주 무식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주 ‘정규적으로 공식적으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라는 의미로 보아야된다 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사람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들은 모두 토라로 성경교육을 받은 자들입니다. 성경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 나이로 초등학교 6학년쯤 되면 히브리어로 성경을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교육을 받습니다. 젊은이가 되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거의 외웁니다. 종교지도자와 부모님으로부터 신앙교육을 받으면서 단단하게 율법에 대해 공부하는 것입니다.
(예화) 제가 대학원에 다닐 때 방글라데시에서 온 형제가 있었는데 그는 무슬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믿고 회심하여 목사가 되었는데, 그 친구도 보면 코란을 거의 2/3이상 외우고 동네에는 코란을 구두점까지 완벽히게 외우는 사람이 아주 많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기의 종교적인 책들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성령님이 오셔서 이렇게 질서정연한 구원의 역사를 설명하게 해주신 것이 아니라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오셔서 확 빛을 비추시니까 당시 유대교에 의해 잘못 배운 것들은 빠져나오고 성령님이 그들 속에 있는 지식들을 사용하셔서 쭉 꿰시면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일치하는 줄거리를 이 사도들의 가슴 속에 모두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무엇을 설교하던지 아주 분명한 교리를 갖고 구원의 역사에 대한 전망을 가진 채 사람들에게 복음의 증거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증거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자 이 광경을 지켜보고 그 설교를 들었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제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선 종교지도자들은 그렇게 예수그리스도를 들어 그분의 부활을 전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였고 그래서 결국은 사도들을 체포해서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자기들이 가르치는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풀고 예수님에 대해 말하니까 잡아 가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5천명이나 되는 엄청난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그런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결국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다 기뻐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의 부활하신 소식을 증거 할 때 항상 이 복음에는 어떤 능력이 있냐하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가지고 있는 진짜 마음이 무엇인가. 정말 그 마음속에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 복음이 전해지기 전 까지는 애매모호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선명하게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이시고 그 예수그리스도가 이런 일을 했고,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해야 된다. 돌이켜 회개하고 그리고 죄사함을 얻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된다 라고 아주 분명하게 그것을 적용해서 외치게 될 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면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복음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선명하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에는 항상 영적인 전쟁이 일어납니다. 자신이 선명한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사람과 그리고 그런 복음을 듣고도 하나님 앞에 돌이킬줄 모르는 사람들이 항상 공존하게 됩니다.
(예화) 마틴루터가 제자인 말링시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당신은 설교할 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당신에게 화를 내든지 혹은 설교가 끝난 후에 당신 자신에게 화가 나던지 둘 중 하나의 설교를 해야 한다’ 무슨 뜻이냐 하면, 선명하게 복음을 전하면 모든 사람들이 믿는 일은 없다. 반드시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은 믿지만 어떤 사람은 당신에 대해서 화가 난다. 왜. 복음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면 복음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그 강력한 힘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데 있다. 당신자신에게 화가 난다 라는 의미는 말씀이 신통치 않았다. 신통치 않아서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마틴루터 같은 사람들은 ‘참된 설교자가 누구이냐. 반대하는 사람이 없으면 거짓설교자요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참된 설교자요’ 라고 까지 말하였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을 체포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은 가둬 둘 수 있지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메일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였고, 증거하니까 하나님의 정말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들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관건은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의 마음을 살까 이런 것이 아니라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올바로 전하는 것이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고 그 말씀을 담대히 외치면 성령님이 함께 하시어 듣는 사람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구나’
(예화) 언젠가 전도한다고 결재가 올라왔는데 크리넥스를 한 3백만원어치 구입해서 열린교회라고 써서 아파트 주민에게 나눠주자고 하였고 결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교역자를 불러서 하지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치 팔리지 않는 상품을 처분하는 것처럼 우리들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고 그리고 영혼들에 대한 진정히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고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해주실 일이 정말 그들 자신을 어루만져 주시는 일이라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들이 마음을 모아서 간절히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부어주시니 그래서 힘써서 우리들이 영혼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파트 접근을 못하게 막고 이중삼중 차단을 하니까 그렇게라도 해서 교회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하였습니다. 근데 우리교회까지 그렇게 해야 하나 한참동안 비감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젠 지혜롭게 하자. 힘 닿는데까지 가까이 다가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교회에서 오늘날 하는 모든 것들을 보면 진짜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본받아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복음이 무엇인지 참된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하면 새까맣게 나와서 이사를 도와주고 어떻게든 신앙을 전파하려고 하는데, 진리가 무엇인지 복음이 무엇이지 안다고 믿는 사람들은 노력을 하는 것 자체가 현저하게 그런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한 것들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질로서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역사에 보면 19세기에 2차 미국대각성에 쓰임 받았던 찰스피니가 아침에 사람들이 출근할 때 맨하탄 거리에서 전도하다가 혼자서 맨바닥에 앉아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 채 지옥에 가고 있는데 저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진실한 사모함, 어떻게 하던지 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려주고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전해주고자 하는 처절한 사명감이 왜 부족한가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눈물을 흘리고 변화를 받는 모습들도 있지만 교회 구석구석에 보면 혼자서 옛날의 많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어둠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복음을 몰랐을 때는 몰랐기 때문에 사람들을 섬기지 않고 살았지만. 이제 복음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고 깨달았다면 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말할 수 없는 연민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리만 많고 말은 많고 어떡하면 교회생활을 즐겁고 효과적으로 할까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복음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미끄러진 사람들을 향한 눈물이 너무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지금 사도들이 병자를 고쳐놓고 담대하게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전했습니다. 그때에 간절하도록 눈에 보이는 현저한 핍박이 있음에도 담대하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던 이유는 거기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무지와 어두음속에서 예수를 모르고 살아가는 영혼들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연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세속주의는 나쁘지만 우리가 세속적인 신자들만큼도 영혼을 위해 일하고 몸부림치고 그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뭔가 우리 자신의 생활에 안주하면서 살고 있다면 그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들은 한 번의 복음전파를 목숨과 바꿨습니다.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지만 곤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화) 지난 주에 한 사람을 전도했습니다. 사진을 찍던 사람과 얘기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라. 목사님 교회에 꼭 나오겠습니다. 교구목사님에게 소개하였고 나오도록 안내했습니다. 또 어느날 목욕탕에 갔는데. 어느 분이 ‘열린교회 목사님 맞지요?’ 라고 인사를 해왔습니다. 우리교회 교인은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안생의 곤고함을 다 얘기합니다. 어릴 때는 교회에 다녔는데 지금은 다니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 해라 했습니다. 탕속에서 나와서 30분간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왜 당신이 곤고한지에 대해 옷도 안 입고 앉아서 쭉 얘기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 교회에 가끔 음식배달 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참 이 세상에는 익은 곡식들이 너무 많은데 추수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죽 했으면 예수님이 너희 하늘아버지께 청해서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제자들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정말 이렇게 곤고한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나 떡이나 물이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평생에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내게 들려주십시오. 그러면 믿겠습니다’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을 우리들이 버려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이들은 한번 딱 복음을 전하고 모두 체포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치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많이 복음을 전해야 되겠습니까. 먼 곳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도 해야겠지만 가까운 곳에서도 이 일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