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27일 교직원예배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사람들에게 다가오던 땅의 의미와 오늘날 우리에게 다가오는 땅의 의미는 사뭇 달랐을 것이라 생각 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농경사회기 때문에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고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는 기반이 땅이었죠. 그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이 이방인들이 아니라 유대인들 이었잖아요? 그들에게 있어서 이 땅은 또 다른 의미에서 생명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자신들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유리하던 나그네였죠!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을 선택하는 그 시점이 땅에 대한 약속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구속사의 전 과정이 땅과 연결되어 있어요. 그걸 전부다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대충 얘기하면, 처음에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 땅이 있었고, 인간이 땅으로부터 지어지고, 또 인간이 타락하니까 땅이 저주를 받고, 그다음에 하나님이 언약백성을 택하셧을 때 땅을 주실 약속으로 선택하시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땅에서 이루어 가시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그 땅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다가 결국은 구속과 함께 그 땅의 지경을 넓혀 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고, 마지막에 그 땅이 완전히 새로운 하늘과 함께 새 땅이 되는 것이 세계의 완성이에요.
그래서 마티즈라고 하는 신학자는 그 땅을 그리스도로 해석을 했어요.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그리스도를 주시겠다는 모형이고, 그리고 땅으로 말미암아 땅에서, 땅과 함께, 땅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이 삶이 신약에서 “아이를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라” 라는, 그리스도를 주시는 그것의 모형이고 바로 신약시대의 언약 백성들이 그 땅을 받고, 그 땅 안에서, 그 땅을 누리며, 그 땅과 함께 살다가 구속의 완성을 통해서 그 땅이 완성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분여 된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그런 주장을 펼쳐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이야 땅, 그러면 특히 우리에게는 생명이라기보다는 부귀, 재산증식의 수단, 부의 상징, 이렇게 생각이 되지만 그 당시에는 생명이었죠. 지금은 생명적인 의미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뭐냐 하면, 온유한 사람은 땅을 차지할 것이요, 그랬거든요. 그러면 여러분이야 땅이 많으시겠지만 나는 땅이 없는 데, 얼마나 온유해지면 땅 좀 차지할 수 있을까? 여러분은 좀 있죠? 임 실장 땅 좀 있어요? 없어요? 그대도 강퍅 하구만...ㅎㅎ 어느 분이 이걸 설교 하면서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합니다. 이삭의 예를 설명하면서 온유한 사람들이 이렇게 땅을 차지했다고 쫙 설명을 하는데, 그러면 온유한 예수님은 왜 땅이 없으셨을까? 여기는 그 의미가 아니에요. 이 세상 역사에서도 보면 정복했으나 정복을 당한 나라가 많아요. 대표적인 나라가 마케도니아에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제는 대단한 사람이죠.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계속 정복을 해나가죠. 어마어마한 역사를 펼쳐가죠. 그래서 이제 페르시아하고 한판 붙잖아요. 22만 명의 대군을 4만 명의 군사로 완전히 전멸을 시키죠.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해가지고 거대한 헬라 제국을 세우잖아요. 근데 그 후에 로마인들이 쳐 내려와서 알렉산더 사후에 나눠진 그 나라를 순식간에 다 삼켜서 로마로 다 통일을 하잖아요. 근데 군대의 힘으로는 마케도니아 제국을 정복했지만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마케도니아에게 지배를 받게 되는 거죠. 그래서 헬라의 문화에 그대로 잠식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로마 사람들이 쓰는 언어는 일부의 언어가 되죠. 히랍어가 통용이 되는 거죠. 그런 거죠! 그렇듯이 이 세상을 칼과 창, 물질로 정복해서 자기사랑의 질서를 확장하는 것, 그것만이 정복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정신적이고 영적인 정복이 진정한 정복이에요. 예수님은 땅 한 평도 가지시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수많은 왕들을 굴복시켜서 당신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게끔 만들어 주셨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엄청난 일이에요. 그러면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인이 될 때, 창칼로 그리고 돈으로 이 세상을 정복해서 자기사랑의 질서를 확장하려고 하는 시도는 포기한 사람들이에요. 나는 도구가 되어서 그 생명과 사랑을 한없이 전달해주는, 그래서 나를 통해서 주님이 이 온 땅을 통치하시게 하기 위해서 내가 부름을 받은 거거든요. 그러면은 그렇게 되기 위해서 그렇게 살아가는데, 그게 결국은 그렇게 하는 것을 위해서 우리가 부름을 받은 거거든요. 여기서 땅을 정복한다는 것은 온유한 사람들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감화력이에요. 그래서 그를 따르게 하는 거 에요. 그것이 바로 땅을 정복하는 거죠. 물리적인 땅 한 평 없어도 그 이상을 것을 정복하는 거죠. 어떤 사람이 그렇게 될 수 있냐하면, 온유한 사람이..., 여기서 온유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한없이 무르고, 그래서 우유부단하고, 그런 종류의 부드러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온유함은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서 사는 사람으로서의 그 사랑의 감화를 받은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친절을 가진 그 마음과 정신의 상태를 보여주는 거 에요. 그거에요. 그것이에요. 그래서 이러한 온유한 태도를 갖게 될 때, 그 사람에게 물질이나 권력이 없어도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죠.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죠. 돈이나 권력이 있어서 그것으로서 사람을 복종시키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내면까지 복종시키지 못해요. 왜냐하면, 그 사랑이 목적이 있는 사랑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런 권력과 물질을 상실하고 나면 절대로 복종하지 않아요. 그러나 이 온유함은 그 이상의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는 거 에요. 그게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며 가는 거 에요.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 이라는 건 결국 사람의 변화잖아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그게 뭐냐 하면, 예수님이 차례대로 말씀 하셨어요. 심령이 가난한 자, 그들만이 애통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인해 애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슬퍼하였던 사람들은 온유해 진다는 것이죠. 우리는 수시로 우리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잊어버리는 것이에요. 우리는 원래 이 세상의 악한 사람들과 구별된 사람들이 아니라 똑같이 세상에 있던 사람들인데, 하나님의 은혜로 택정함을 입어서 용서받은 사람들이죠. 그러니까 우리도 한때는 죄인이었는데 용서받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자기에게서 찾으면 안 되고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원을 위해 덕 입혀주신 거기에서 찾을 수 있어야 되요. 그때에 내가 정말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입었다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죠. 그래서 거기에서 오는 온유함이 나오는 거 에요.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본래 누구였는지를 끊임없이 상기하는 것, 그것이 온유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거 에요. 그래서 주님 의지하며 매순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