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새벽예배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 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행 4:13-16)
녹취자: 이시내
4장 앞부분에 나온 사도들의 변론을 보면 그것은 사실 한이야기 전체가 실려있는것이 아니라 그 한 이야기의 핵심만을 추려서 여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나와 있는 변론의 내용들을 보면 골격이긴 하지만 그러나 정말 훌륭하게 논리정연하게 예수그리스도를 변증한 것 입니다. 그것을 듣고 사람들이 깊이 찔림을 받고 회개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쏟아져 나오는 것이 얼마나 유능하게 쏟아져 나왔는지 오늘 뭐라고 하냐하면 기탄없이 말하는구나 하였습니다. 물론 이 사람들을 종교지도자들의 눈에 비춰보면 고기나 잡아서 먹고사는 어부들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학문이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면서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논리정연한 전개를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럼 어떻게 이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평범한 제자들이 종교지도자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논리정연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굉장히 커다란 학문을 가진 사람처럼 논리정연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 비밀은 바로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오신 데에 있습니다.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바는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이와 같은 유능한 변론이 학문을 통해서 얻어진 것 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이 유능한 증언은 기독교신앙의 핵심만을 간추려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오시니까 이처럼 이들이 성령님을 통해서 큰 은혜를 받게 되고 성령님을 통해서 알게 된 예수그리스도의 오심과 사심, 그리고 죽으심과 다시 부활하심, 그리고 승천하심 그 이후의 성령의 강림하심에 대한 모든 의미를 새롭게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되니까 이들의 마음속에 놀라운 변화가 강력하게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오늘 이사람들이 이처럼 놀라운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오신 것이 바로 그 답입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예수님이 왜 오셨고 그리고 오신 예수그리스도가 무엇을 하셨고 그의 죽으심이 어떤 의미이고 다시 사신 것이 어떤 의미이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활승천하신 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을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령님을 보내셨는데 그 중요한 성령님의 임무는 예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사람들이 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깨닫게 하는 것이 성령님이 오셔서 하시는 일이고, 성령님이 오셔서 그 일을 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께로부터 그 복음을 전파 받으면서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아 그러면 성령님께서 오시는 것이 답이구나.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성령님이 오시면 이렇게 그리스도에 관해서 유능하게 증거 할 수 있겠구나.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반만 맞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이들이 비록 학문이 없는 범인인줄 알았다.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이 사람들이 전적으로 무식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도날드 거스리같은 유명한 신학자는 학문이 없는 범인이라는 이 말을 공식적으로 교육을 받지 못한 정도로 해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대인들이었고, 유대인들은 그들이 도시에 살던 시골에 살던 상관없이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율법을 교육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에 관해서 상당히 많은 가르침들을 어려서부터 받습니다. 이 사람들이 물론 종교지도자들처럼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성경하나만큼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지식이 있었는데 그때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구약을 아는 지식에 강력한 빛이 들어오게 되었고 그 빛이 들어오게 되니까 강력한 은혜를 받게 되고, 그러면서 이들의 마음가운데 아주 놀라운 은혜의 빛이 비춰지면서 알고 있는 구약의 지식이 빛이 들어오면서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언하는 성경 속에 있는 맥이 보이기 시작한 것 입니다. 그 성경 속에 있는 맥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그 속에 굽이치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기가막히게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신 것 자체가 구약의 예언을 따라 오신 것입니다. 전에 성령을 받기 전, 성령을 받고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기 전에는 구약을 읽어도 구약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참된 중심적인 줄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눈에 비늘이 벗겨지지 않아서 아직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약을 읽으면서 예수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행동같은 것들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것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비늘이 벗겨지면서 그 속에 구약의 위대한 역사 속에 흐르고 있는 예수를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그것 때문에 기탄없이 그들에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은 쉬운 것도 말하면 어렵고, 자신이 경험한 것은 어려워도 쉽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많이 경험한 것은 끊임이 없고, 압축도 가능하고 확대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자면 신기한 것이 미역인데 미역은 뭉쳐놓으면 조막만한데 물에 풀어놓으면 커다란 양푼 가득히 불어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 지식이 논리에 의해 잘 압축되면 분량을 줄일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어려운 설교 그리고 용어가 어려운 것은 불편하지만 그 대신 그렇게 설교를 하면 담기는 지식의 양이 엄청 많아집니다. 그래서 슬슬슬 풀면서 일상속에서 나오는 예화나 들고 그러면서 풀어나가면 한 시간 두 시간을 설교해도 진짜 그 속에서 얻게 되는 지식의 양은 작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말을 사용하면서 논리적으로 논문을 쓰듯이 설교하면 이해하기는 좀 힘들지만 짧은 시간에 어마어마한 양의 지식의 양이 담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이해하기만 하면 그 다음에 집에 가서 그것을 마치 딱딱한 미역을 따뜻한 물에 집어넣고 풀듯이 그것을 가지고 꺼내서 머릿속에서 잘 생각하면서 풀어내면 어마어마한 양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은 논리적인 훈련이 잘 안 되어있어서 그런 설교를 별로 잘 안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생각 없이 딱 앉아서 들어도 마치 옛날이야기 하듯 줄줄줄줄 풀려나가는 그런 종류의 설교들만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듣고 저것도 들어야 합니다. 아무튼 이 사람들은 기탄없이 풀려져나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증거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들고 다닐 수 있는 성경도 없었습니다. 암기된 가운데서 설교하고 암기된 가운데서 성경을 인용한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정확하게 예수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비밀이 성령으로 말미암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입니다. 그 속에서 이런 훌륭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꾼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사랑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그리스도의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하고자 하시는 일 ,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이고, 성도로서 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이고 마지막으로 성도로서 이 세상에서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그것들을 아주 명쾌하게 깨닫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이 기억해야 될 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것 이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것을 알아야지만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굉장히 그림도 멋있고 아름다운 장면도 많이 나오고 기가막히게 스펙터클한 영화를 본다고 하더라도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모른다면 재미있겠습니까? 무슨 이야기를 할려고 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기름통을 나르는 저 사람이 주인공인가 아니면 총 들고 뛰어가는 저 사람이 주인공인가 벌써 주인공은 죽었나 아니면 아예 주인공이 없는 영화인가 그러면 종잡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모든 그림도 이쁘고 장면도 스펙터클하고 영상의 효과도 멋있고 그래도 우리의 주된 관점은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그때에 재미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영화를 보는 요령이듯이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지금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 하나님이 그분을 통해 이루고자 하셨던 구원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깊이 깨닫고 경험하는 가운데 성경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설교사역을 해보면 참신기합니다. 세상적으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 박사들, 법률을 공부한 사람, 의학을 공부한 사람, 공학을 공부한 사람들 즉, 공부하면 한가닥 하는 사람들 그런데 그렇게 공부 잘하는 머리가 성경에 대해서는 깡통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부산에 내려갔는데 나 빼고 모두 박사였습니다. 진화론에 대해서 토론하고 생명공학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나오는 질문이 교회에서 새가족반에서 나올까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는데 묻는것마다 모르겠습니다. 교회에서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말씀사역하면서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할머니들, 세상적으로는 공부와는 담쌓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성경의 흐름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조목조목 짚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둘 다 같이 해야 합니다. 차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두 번째로는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경을 아무데서나 배우면 큰일납니다. 그러면 그 자체가 휩니다. 그래서 성령이 역사하셔도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에 맞게 역사하셔야지만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정말 건전하고 제대로 해석해서 가르쳐주는 그런 사람에게서 차분차분하게 성경을 배워야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습니다. 무엇이든지 간에 정말 흥미를 가지고 재밌게 잘 하고 유익을 얻으려면 기초서부터 차근차근 배워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흥미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차분차분 배우면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는 내 경험을 갖게 되면 신앙이 견고하게 쌓여져 가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성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바깥으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이 있고 핍박이 오고 이럴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동화가운데 돼지삼형제가 있지 않습니까? 한 돼지는 지푸라기로 집을 짓고, 한 돼지는 판자로 집을 짓고, 마지막 지혜로운 돼지는 벽돌로 집을 짓습니다. 늑대가 와도 게임이 안됩니다. 나머지 돼지들이 그래서 그 집으로 피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게 견고하게 쌓여져 올라갈 때,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물론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견고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도들이 이미 그런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여기에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똑같이 지식의 빛, 은혜의 불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이들이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갔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