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새벽예배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 47)
녹취자: 김용재
이제 성령을 받은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모여서 기쁨으로 떡을 떼고 교제하고 음식을 나누며 한 마음이 되고 이렇게 되었고. 오늘이 마지막 절에 보니까 하나님을 찬미하였더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함께 하나님을 찬미했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찬미는 노래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기리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 오고갔던 대화나 모든 칭송까지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기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흔히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주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이지만 어떻게 그렇게 이 땅에 있는 교회가 주님의 이름만을 높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 연약한 인간이 우리 하나님의 이름만을 높이고 그분의 이름만을 찬송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할까요. 물론 우리들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또 그 주의와 사상을 가지고 항상 그 표준에 맞게끔 생활하도록 가르치고 우리가 힘써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제에 있어서 그렇게 교회가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데에만 관심을 갖고 주님의 이름을 기리는 데에만 전념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나님만 높이는 교회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걸 기억해야 됩니다.
이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있으니까 그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죄 용서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마음을 오로지 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교제하고 떡을 떼고 음식을 나누며 기쁨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들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싶고 주님의 이름만을 높이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하는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찬양과 노래가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강력한 은혜와 말씀의 선포가 있고 나니까 그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되었고 죄를 회개하고 나니까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예수를 기리고자 하는 착한 마음들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그 분이 우리가 노래하는 그 주님의 영광이 우리의 삶속에 그대로 펼쳐지기를 아주 간절히 사모하고 원하는 삶들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보니까 중요한 요소가 나오는데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박해를 받은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박해뿐만 아니라 칭송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불신자들에게 칭송을 받을 때도 있느냐는 것입니다. 교회의 참된 본질은 이 세상을 위해서 미담을 만들어 내는 그런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의 선행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이 교회가 선한 일을 하는 것이구나 하고 알려지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일차적인 사명은 미담들을 만들어 내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 교회의 가장 본질이요 이상입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교회가 항상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삶의 질을 가진 사람들이 그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이 칭송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사람들이 이 세상에 칭찬을 받으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얻게 된 그런 칭찬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사로잡힌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고 그 은혜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거룩입니다. 거룩을 추구하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느 한 순간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 분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 거룩의 삶을 살아가면 그 결과가 도덕적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어떻게 하든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이 세상에서 지탄을 받지 않는 그런 공동체가 되어야 됩니다. 교회는 어떤 식으로든지 이 세상에서 지탄을 받지 않는 그런 선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지탄을 받지 않고 오히려 칭찬을 받는 것이 교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지만 그 방식은 그걸 목표로 한 방식이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목표는 오히려 주님이 우리를 자신의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 은혜로 우리에게 큰 사랑을 베푸셨으니까 우리가 그 분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알고 그 사랑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려고 애쓰다 보니까 그러니까 그 거룩한 삶의 부산물로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삶의 모본을 보여줄 때에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닌데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려고 하다 보니까 이렇게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교회의 역사를 보면 초창기에 복음이 들어와서 교회가 막 세워질 때 그 때부터 시작을 해서 이제 신사참배가 행해지기 전까지 그 때까지만 해도 한국 교회는 깨끗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교회에서 영이 섰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 급속하게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면 그 당시에 구한말이니까 그 관리들의 가렴주구가 굉장했습니다. 나라가 부패하고 봉건체계는 무너져 가고 서양의 종교라고 해서 기독교를 배척했지만 국내에 사람들이 의존할 수 있는 사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패하고 백성들은 봉건체제에는 더 이상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고 관리들은 타락하고 부패하고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복음을 전해준 사람들이 이 복음주의와 청교도의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삶이 깨끗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도덕적인 모본이 당시 사람들의 부패와 불합리에 질린 사람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준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급속도로 빨리 전파된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1907년과 같은 강력한 부흥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어쨌든 그런 것들이 함께 역사에서 선을 이룬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그렇게 됐기 때문에 아주 분명하게 XX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현저히 어긋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교회에서 명백히 XX했습니다. 심지어 제가 직접들은 증언인데 믿는 자녀를 믿지 않는 남자에게 시집을 보냈기 때문에 본인뿐만 아니라 부모까지도 XX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아주 분명하게 XX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교인들이 이동을 할 때에는 물론 그 때는 교회가 지금보다 더 적었을 때니까 그렇겠지만 이동할 때에는 교인을 그냥 받는 법이 없고 이명 증서를 써서 와야 됩니다. 그래서 XX를 받았으면 거기에 XX받은 사항이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교단을 초월해서 교회가 분명하게 영이 서고 교회의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것이 언제 무너졌냐면 신사참배 하면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신사참배에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이것으로 인해 교회가 갈라지기 시작하면서 절대적인 기준으로써의 신앙의 가치들이 흔들리고 권징의 체계들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의 형편없는 교회의 모습들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 어떻게 하겠습니까. 벌써 권징의 체계들이 무너져 버려서 그래서 도덕적인 삶의 수준도 현저하게 낮아지고 그래서 그것을 XX하면 증서도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니까 결국은 교인들 내쫓는 턱이 되고 그리고 결국은 그 교인들이 이리저리로 돌아다니면서 한번 문제 일으킨 사람이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초대교회를 보는 것입니다. 거룩한 교회였기 때문에 도덕적인 삶이 흘러나왔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칭송의 대상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많은 사람들을 구원 얻는 무리에 더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물론 우리는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말로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동시에 삶에 실제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과 우리가 그 분에 의해서 택함 받은 거룩한 백성들이라는 것을 보여줄 때 우리의 전파하는 복음이 더욱 힘있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