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교직원예배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마 2:9)
녹취자: 안두현
눈이 좋은 사람도 빛이 없으면 시력이 없는 사람과 별로 다름이 없게 됩니다. 자연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길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우리가 가는 인생길을 잘 알고 훌륭하게 걸어가면 참 좋은데 때로는 안그런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동방의 박사들이라는 사람들이 그 별을 보고 무엇인가 왕이 될 중요한 인물이 이 세상에 태어날 것을 알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 추측하기를 페르시아에서 온 사람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어쨌든 그 사람들이 먼 유대땅까지 오게 됩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가는 길도 모르고 그저 별을 따라서 온 것 아니겠습니까? 낮에는 별이 없으니 쉬고 밤에는 별빛의 인도를 따라서 이제 예루살렘까지 왔는데 별빛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이 사람들이 무슨 별빛을 보고 따라와서 메시야를 만나서 어마어마한 이권을 챙기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하늘의 징조를 보고 그가 신이 보내신 매우 중요한 인물인줄 알아서 경배하고 높이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계시는 자신들에 없었지만 그분의 나심이 이 세상의 운명 그리고 평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 하늘에서 별빛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대낮에 일어난 것이 아닐 것입니다. 틀림없이 이 일은 밤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별빛이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갈 길을 잃어버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꼭 우리들이 악한 일을 행하고 허물이 있어서 그럴 때도 있지만 때로는 주님을 섬기려고 하고 올바로 이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데 주님을 경외하면서 이 길을 가려고 하는데도 별빛조차 사라진 밤하늘 아래서 홀로 갈 길을 물어야 하는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때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살 소망이 모두 끊어지고 그래서 폭풍 속에서 주님 앞에 자신의 삶을 의탁하며 기도해야 되는 때도 있었습니다. 자기 생각에는 아시아로 복음을 전파하고자 많이 애를 썼지만 그 길을 막으시면서 도대체 어디로 이 복음을 들고 가야할지 모르는 난관에 처할 때도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을 경외하며 살았던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선명한 하나님의 인도와 명백해서 그래서 밝은 대낮과 같은 길을 걸어갔던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 가운데서 살았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훌륭하게 섬기며 살았던 사람들도 자기를 의뢰하는 마음을 버리고 주님을 온전히 따르지 않을 수 없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그들을 붙들어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의 세계입니다.
자신들이 제일 먼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그 이의 탄생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별빛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별빛을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너희 나라에 왕으로 오시는 이가 태어나실텐데 너희도 알지? 어디 그분이 계시냐 우리는 그분을 경배하러 왔노라 할때 온 성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래서 왕이 제사장과 그리고 서기관들을 모아서 도대체 메시야라는 사람이 온다고 하는데 어디 있느냐 그랬더니 미가서의 본문을 읽으면서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니 네게서 다스리는 자가 나와 목자가 되리라 읽어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언의 말씀을 주신 본고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는데도 그분이 자신들의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성경 조차도 받지 못했던 완전히 소외된 이방인에 의해서 메시야는 처음으로 경배 받으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신 후에 이루어질 신약의 교회가 어떤 지평을 가질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열두지파의 족장들이 아니라 서기관과 제사장들이 아니라 백성의 두령들이 아니라 완전 이방인 사람들이 첫 번째 경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그들은 커다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우리 베들레헴으로 가자 그리고 이번에는 별빛도 없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그것도 이방인들이 붙들고 믿음으로 베들레헴을 향하여 갔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이 예루살렘을 떠나서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을 어느 순간에 다시 찬란한 별이 나타나서 그들의 앞길을 인도했습니다. 마치 그들이 예루살렘 성에 갔을때 사라진 별빛이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한적한 베들레헴을 향하여 길에 접어드니 마치 예루살렘 사람에게는 이 별빛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처럼 혹은 이 페르시아의 박사들이 예루살렘 사람들과 섞여 있을 동안에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처럼 별빛을 감추신 것처럼 그렇게 별빛이 베들레헴 가는 길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누구이든지간에 당신을 경배하며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원수의 발 아래 무릎을 꿇는 것 같고 그리고 수많은 절망적인 상황이 있지만 그래서 다윗을 비방하던 사람들과 같이 저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으며 여호와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하는 때가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진정으로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통해 경배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잠시 별빛을 잃은 어두운 밤하늘 아래 두실 때가 있지만 영원히 별빛이 없이 길 잃어버린 자로 이 세상에 홀로 버려두시는 법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고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을 이끄시는 인도의 원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문제를 접할 때 거꾸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명백하게 상급도 보여주시고 갈길도 보여주시고 그 길을 가는 것을 좋아하시고 그리고 그 길을 갈 때 형통함이 있고 후원하는 사람도 있고 모든 환경이 잘 마련되고 이런 모든 것들이 주어지면 그러면 그 길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시는 길이라 생각하면서 섬기겠노라 하고 생각을 합니다. 이 성경은 반대입니다. 이방인들이 미가서를 성경책을 알리나 있겠습니까? 그러나 생전 처음 서기관들이 들려주는 그 짧은 하나님의 말씀 한구절을 전적으로 믿고 베들레헴을 향하여 밤길을 재촉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네명이 출발했다고 전하여 집니다. 그중 한명이 오는 길에 쓰러진 노인을 만나서 아기를 경배하지 않고 그 노인을 공영했는데 알고 보니까 예수였더라 하는 전설도 내려옵니다만 어쨌든 이 사람들이 그렇게 밤길을 재촉하며 베들레헴으로 갔을때에 그때 그들은 실낱같으나마 이 한구절을 붙들고 믿음으로 베들레헴을 향해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첫 번째 성탄절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주님은 잠시 별빛없는 어두운 밤하늘에 두실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이 없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은혜안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도 하나님밖에 의지할 때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이끄시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아주 시골에 작은 동네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서 예언의 말씀대로 작지 않은 마을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거기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많이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이 초라하고 높은 학식과 뛰어난 재능이 없어도 주님이 그 마음에 오신 사람들은 모두 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안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고 주님을 경배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에 있는 주님을 보고 기뻐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주님을 베들레헴이 품었을때 그때에 베들레헴이 모든 고을 위에 뛰어난 고장이 된 것 처럼 여러분도 주님을 가슴에 모시고 삶으로 주님이 보시기에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알기에 뛰어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때까지 한결같이 주님을 경배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잠시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 있다할지라고 별빛은 다시 나타날 것이고 주님은 여러분을 다시 인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