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10 인턴십 종강
2012.12.10 17기 인턴십 종강MT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에 7:10)
녹취자: 서재임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시절의 지도자였습니다.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에스라의 상황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70년 전에 떠나온 예루살렘에는 이방인들이 살고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느헤미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여러 많은 이민족들에게 박해를 받으면서 또 거기서 성을 건축하고 성전을 지었는데, 바로 에스라에 의해서 성전의 지대를 놓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역사의 격동기 속에서 쉽지 않은 상황 속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 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에스라는 율법에 매우 능한 사람이라고 널리 인정받고 있었고, 왕에게도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그 많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모아서 그가 제일 먼저 헌신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들이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지 못하는 이유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모두 합당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경험해 보아서 알지만, 학교 다니고 리포트 내고 또 가정도 돌봐야하고 그러면서 교회도 섬겨야하고 그 중에 어떤 학생은 생계유지가 안 돼서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그 일을 하니 언제 시간이 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정도 바쁜 것은 일평생 계속되기 때문에 지금 못한 것은 나중에 더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공부하여야 할 이 소명을 생각하면서 거기에 깊이 헌신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연구한다는 것은 단지 성경을 연구한다는 것이 아니라 신학을 연구하는 모든 것이 거기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신학을 철저히 탐구하려고 애를 써야해야합니다.
지금이 여러분 생애에서 가장 쉬운 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아무리 바빠도 안전한 포구에서 배를 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이 되면 망망대해로 나가야되고 그 드넓은 바다에서는 포구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 격랑 속에 시달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인 신학을 탐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이 자는 만큼 다 자고, 남이 쉬는 만큼 다 쉬고, 남이 즐기는 모든 것을 즐겨서 아무것도 희생하는 것이 없는데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희생하지 않으면 안 돼는 것입니다. 그것이 몸에 배이게 되면 그러면 아주 쉽게 그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에 저는 양자역학에 많은 관심을 많이 갖고 그에 관한 자료들을 보고 있습니다. 기초적인 수준에 불과하지만, 정말 놀라운 세계입니다. 그리고 정말 미래의 인류 물질문명의 운명은 양자역학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여러분도 아는바와 같이 우리에게 소위 얘기하는 physic라는 물리학과 quantum physics라고 하는 양자물리학은 세계가 다릅니다. 일반 물리학은 일반 물질의 세계를 다루는 것이지만, 양자물리학은 원자 이하의 세계를 다루는 것입니다. 원자 이하의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과 원자 이상의 물질계를 지배하는 세계는 다르고 이런 물질이 우주로 들어가게 되면 초거대 세계를 다루는 그 안에서의 물리 법칙들은 또 다르게 됩니다. 이렇게 엄청나게 변화가 일어나는데 양자역학에서 연구하는 것 중의 하나가 뇌 속에서 일어나는 작용입니다. 그것은 수학 물리학이라고 하는데, 설명을 들으니까 어떤 일들을 끊임없이 동일한 것을 하려고 할 때 전두엽에서 작용들이 일어나는데 항상 물질의 분비와 관련이 된다는 겁니다. 펩타이드라는 물질이 나와서 어떤 일들에 계속 그 일을 위해 종사하고 그 일을 생각하고 그쪽으로 의지를 사용하게 되면 거기에서 펩타이드라는 물질이 나와서 아미노산의 고리와 같은 물질이 세포 속으로 들어가서 세포와 결합하거나 혹는 떨어졌다가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서 세포를 변화시켜버리고, 세포 하나하나는 우리 몸 전체에 울려 퍼지는 음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가능하고 어려워 보이는 의무들도 꾸준히 그 일을 감당하면 우리 몸 자체 속에 변화가 일어나서 그 의무를 행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는데 이것은 신령한 의무나 책임 등뿐만이 아니라 죄나 유혹 이런 것도 마찬가지로 적용하게 되어서, 결국은 어떤 쪽을 택하든지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전혀 생각이 없는 일반 물리학자들, 의학자들에 의해서도 설명이 되는데 그러면 우리가 당장은 그 일이 힘들어 보여도 그 일에 끊임없이 종사하고 헌신할 때 그 일을 행하기에 적합한 사람처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할 삶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매일 핑계대고 이유나 찾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연구한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목회의 성장이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은 그것 없는 성장이라는 것은 얼마나 가소로운 것일지 한번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해서 설교할 수 있는 내용과 실제로 설교하는 것이 얼음과 같아야 됩니다. 얼음을 물속에 집어넣으면 1/10은 뜨고, 9/10는 가라앉습니다, 비중에 의해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항상 자기가 이야기하고 가르쳐야할 가르침들이 학문의 부족으로 인해서 결핍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학문이, 공부를 하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부지런히 탐구하고 그것도 쓸데없는 공부가 아니라 성도들을 진리의 말씀에 세우고 교회를 온전하게 하는 일을 위해서 우리들이 끊임없이 공부하고 탐구하고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학사 에스라를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일평생 그 자세를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11주 정도 동안에 매주 책 한권씩 읽고 설교 테잎을 듣고 그러면서 해왔는데 절대적인 양이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자세로 여러분이 매주 한권씩 의미 있는 책을 읽으면서 만약에 10년 정도만 그렇게 산다고 하면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과 마주 앉아서 대화 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격차를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단순한 책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책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면서 도전을 받고 자극을 받으면서 끊임없이 사색하게 되는 그 힘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를 열어주는지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학사 에스라가 한 일은 그렇게 율법을 연구한 다음에 자신이 스스로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연구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는 하나님 말씀의 배달부가 아니라 그 말씀을 먼저 자신에게 적용시킨 사람이었습니다.
(예화) 중국 의학사에 보면 ‘신농’이라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아마 하나라 시대 정도 은시대나 하시대 정도의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이 사람은 의학의 신으로 불릴 정도인데 많은 불쌍한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고 그리고 이러한 상처에는 어떤 약이 적합한지를 수없는 약초를 붙이면서 자신의 몸을 임상 재료로 삼아서 그 의학의 임상결과들을 내놓아서 의학에 관한 지식들을 전해준 중국의학의 아버지입니다.
목회자는 바로 그런 사람이여야 합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잘 깨닫고 난 다음에는 그것을 치열하게 지키면서 살아서 그것을 자신의 삶속에서 적용해보고, 거기서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승리하고 열매 맺는 비결을 터득을 할 때에 많은 사람을 인도할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공부는 우리에게 개념을 형성해주지만 그것대로 살아본 체험은 그 개념의 내용들에 색깔을 입혀서 총천연색이 되게 만듭니다. 그렇게 해서 만약에 공부를 통해 깨달은 것이 흑백TV라면 실제로 체험을 하고 땀을 흘리고 눈물을 흘리고 피를 쏟으면서 살아온 것은 그것은 3D로 만드는 것입니다. HD도 아니고 3D, 고화질 3D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두 개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의 책속에서 ‘Modus vivendi Copia dicendi 모두스 비벤디 꼬피야 디켄디’ 라는 말을 남깁니다. 그것을 직역을 하자면 ‘삶의 방식, 가르쳐야할 풍부함’ 이라는 뜻으로, ‘Modus vivendi 모두스 비벤디’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 그것에 의해서 가르칠 수 있는 양이 풍부해진다는 것입니다. 남에게서 전도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 전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실제로 치열하게 전도자의 삶을 사는 사람이 전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그 사이의 차이는 얼마나 큰 것인지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해보고 싶은 학문이 불교 철학입니다. 아마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심오한 철학의 세계를 힌두교와 불교가 남겼습니다. 아직 접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런데 비록 우리와는 다른 종교에 있는 사람들이고 진리의 빛에서는 너무 먼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똑같은 사람인데 우리는 불교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에 대해서 훨씬 더 어두운 견해를 가지고 있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사람들이 자기를 처서 복종시키는 훈련들을 더합니다. 요즘 절에서, 불교에서 무슨 기간인줄 아십니까? 동안거 기간입니다. 동안거는 12월, 1월, 2월 이렇게 해서 석 달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온전히 가부좌하고 앉아서 아침부터 밤까지 참선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거에 90일 참석을 하고 나면 8-9kg가 빠진다고 합니다. 그렇게만 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안거라고 해서 여름이 되면 다시 모여서 석 달 동안 그렇게 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우리 기독교적인 용어로 말하면 경건의 능력을 함양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사람들보다 훨씬 불리한 위치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왜? 수많은 물질과 도시 속에서 수많은 유혹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그 정도로 하나님 앞에서 경건에 힘쓰고 있는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이교도들의 열심을 본받아서 그 정도로 치열하게 하나님 앞에서 경건을 위해서 힘쓴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까.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자기의 마음속에서 모두 용해되어 울려 퍼지는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렇게 산 삶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할 때 남을 위해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굳게 붙들려야 사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빛으로 산다는 것은’을 썼는데, 후속작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리스도인이 소금으로 산다는 것은’을 쓰고 싶습니다. 오늘도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막 오고 갔습니다. 결국은 그렇게 되면 윤리와 도덕의 이야기가 됩니다. 앞에 것이 진리와 사상에 관한 이야기니까, 윤리와 도덕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사실 윤리와 도덕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은 오늘날에 윤리주의자들이 놓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그래서 이것도 역사적으로 소위 얘기하는 계몽주의 시대에 모랄리즘(moralism)이 일어나면서 그것이 교회에서 경건이 사라져 버리게 하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계몽주의 치하에서 생겨나게 된 자유주의적인 도덕의 개념과 거룩함에서 나온 도덕의 개념들이 완전히 혼돈이 되어서 이제는 아무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오늘날에 ‘교회가 세상에서 올바르게 해야 된다, 윤리적이 되어야 된다.’는 외침들 속에는 이미 거룩함의 열매로서의 윤리와 계몽주의의 도덕으로서의 윤리 사이에 어떠한 차이점도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러한 현실들을 해부하고 그래서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소금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역사 속에서 규명하여 밝히는 작업인데 이것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그 모든 것들이 실천의 문제이고, 그 실천을 통해서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상이 무엇인가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본받아야 될 것이 이렇게 치열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몸부림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고, 그렇게 우리들이 절실하게 하나님 앞에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3번째가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 율례와 규례를 각각 나누어서 설명을 하면서 아마도 이 율례는 하나님 앞에서의 도덕적인 교훈을 구체화한 윤리생활에 관한 것이고 규례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의 예법과 관련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찌됐든지 간에 이 율례와 규례는 하나님의 율법 속에서 그 시대의 백성들이 구체적으로 지키면서 살도록 이끌어낸 구체화된 가르침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말씀대로 삽시다.’하면 이것은 훌륭한 것이지만 너무 추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오늘날의 시대에 구체화해서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도둑질 하지 말라’ 그러면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은 남의 물건이나 남의 소유의 어떤 재산을 훔치는 것으로 끝났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그 정도가 아니라 불법복제부터 시작해서 지적재산권을 허락 받지 않고 쓰는 것, 사람의 초상권, 심지어는 인격권 혹은 다른 사람들의 명예를 보존하는 것 등 이 모든 것까지 훨씬 포괄적으로 들어갑니다.
(예화) 요즘은 좀 뜸한데 몇 년 전에는 여러 사람의 연예인들이 자살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최진실 자살 같은 것을 보면, 주위에서 인터넷을 통해서만 그렇게 흔들지 않았어도 그런 극단적인 선택까지는 안하지 않았을 까요? 이런 것들도 넓게 보면 심각한 인격권을 침해하면서 사람들을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살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것까지도 오늘날에는 성도들에게 지키면서 살도록 가르쳐야할테니까 내용들을 구체화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들이 바로 교리화 하는 작업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에스라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학문이 理智(이지)에만 머무는 학문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거룩하게 살게 하는 그 일에 대한 체험을 자신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에게도 주의 말씀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아울러 백성들에게 지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이스라엘 공동체를 세워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이때와는 훨씬 다른 시대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천 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지금도 이런 지도자가 우리에게는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느 하나 가지고 돼는 것이 아니라 도전을 많이 받고 혼자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와 다른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이 부르심을 감당해가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그 가르침대로 행하고 그것을 구체화해서 백성들에게 율례와 규례를 가르쳐서 모본을 보이므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목회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