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일 새벽예배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어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후에도 네 임으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행 5:1-6)
녹취자: 윤은정
이 5장에 처음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그 유명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입니다. 사도들 앞에 이 경건한 새 신자들이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서 그 전 재산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두고 공동생활 했다고 하는 것은 이미 4장에서도 잘 나타난 일입니다. 그렇게 했는데 이 5장에서 그런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한 부부가 소유를 팔아서 그 중에 일부를 떼어 놓고 나머지를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논 것입니다. 그 사실 여기에서 보면 사도들 앞에 아나니아나 삽비라가 ‘이게 판 것이 전부입니다.’ 라든지 아니면은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여기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냐면, 이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 사도들을 속이고 안속이고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님을 속였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냐 면은,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마음의 감동을 받아서 그래서 자신이 그렇게 해야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래서 하나님께 약속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재산을 팔고나서 보니까 무슨 마음이 생겼냐면은 만약에 이 재산이 전부 다 있는데, 이것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갔다두고 만약에 그 공동생활에서 다시 나와야겠다 라는 상황이 벌어지면은 무일푼이잖아요? 그래서 그 중에 얼마를 떼어 논 것입니다. 이게 문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는 마음이 아니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이런 생각을 하실 것 아닙니까? 만약에 그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하신다고 하면은 오늘날 살아남아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사실이 그렇거든요. 그렇게 따지면... 이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그렇게 심각하게 약속을 하고 했다라기 보다는, 순간적으로 성령님을 거스른 것인데도 이렇게 심판을 받는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약속한 일 조차도 아주 수시로 번복하고 심지어는 하나님 앞에 약속을 하고도 그것을 지키지 않는단 말입니다. 단지, 무슨 헌금을 약속을 하고 안 지키는 정도뿐만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위급한 때에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 약속을 하고 헌신을 결심을 하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수시로 번복을 합니다. 이것은 아주 굉장히 부끄러운 것이고, 그리고 이것은 나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은 인간들이 아주 쉽게 번복을 하고 하나님 없는 것처럼 대한다 이것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매우 나쁜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만약에 이 5장에 나오는 식으로 다룬 다면은 교회에는 시체가 가득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그러면은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을 내버려두시고, 왜 이 5장에는 이렇게 사람을 무섭게 다루시느냐 이것입니다. 몇 가지로 설명을 할 수가 있는데, 우선 가능한 설명은 뭐냐하면은, 하나님의 강력한 부흥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심판도 뚜렷하게 행해진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건 무슨 뜻이냐면은 부흥이 일어나서 성령님이 강하게 역사하실 때에는 사람들이 의무를 행하기가 쉬워집니다. 그리고 은혜에는 항상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항상 동일하게 취급하시지를 않으십니다. 누가 잘못했느냐 이것입니다.
(예화) 예를 들자면은, 집안에 돈이 있는데, 어린아이가 그것을 갖고 가서 마당에다 줄줄줄줄 흘리면서 가서 사탕을 하나 사먹고 돌아왔습니다. 그것과, 도둑이 복면을 하고 들어와서 돈을 가져갔습니다. 이것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범죄라 이것입니다. 그리고 똑같이 돈을 훔쳐도 조용히 돈만 가져가는 경우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을 칼로 찌르는 경우는 엄청나게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은혜 받은 것만큼 책임을 요구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예루살렘 교회는 엄청난 부흥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속에서 이들도 역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 속에서 마음이 변하고 범죄 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책임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뭐냐하면, 교회를 순결하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돈 얼마 그게 지금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이 교회의 순결이 위협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뒤편에 보면은 이 사건으로 인해서 복음이 더 이상은 전파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 사건이 끝나고 나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힘 있게 전파되는 기록이 뒤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이 영적으로 보면은 교회의 순결을 위협하는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하나님이 강력하게 도려내시지 아니하시면 교회의 성성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강력하게 하나님께서 다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도가 이 사람을 죽이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강력한 책망을 받고 그래서 아나니아가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교회가 두려움으로 떨게 되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이 어떤 것을 지향하는 두려움이었을까요? ‘순결해져야 되겠다’라고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런 큰 두려움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그것입니다. 이렇게 강력한 은혜의 부흥, 하나님의 말씀의 강력한 부흥이 일어나던 때에도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이 그 마음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때로는 푸른 풀밭을 지나고 아름다운 해변을 걷는 것 같은 때도 있지만은, 그러나 상당히 많은 때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것 같은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것 같은 그런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인간의 마음이 그런 식으로 노략질을 당하게 되면은 인생은 정신없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을 지키면서 산다고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 마음 껍질 안에 인간의 영혼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강력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도 이렇게 성령을 거스릴 수 있는 마음의 변화가 있었는데,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그런 위험은 많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비하게 주님을 의지하면서 이런 악에 빠지지 아니하고 주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면서 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